78. 소형 부품 제작기술
기술 이전을 받은 업체 두 곳은 중소기업이다.
JHC 테크는 일부러 동서남기공과 비슷한 생산 설비를 가진 회사를 골라 계약했다.
덕분에 미리 준비해둔 장비로 개조하는 작업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장 직원들도 쉽게 익숙해졌다.
사장이 겨우 며칠 만에 시험 생산된 부품을 보며 감탄했다.
“제조 단가는 내려갔는데 어떻게 품질이 예전보다 더 좋지?”
공장장이 맞장구쳤다.
“저도 만들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역시 JHC의 기술력은 대단합니다.”
사장이 입맛을 다셨다.
“이러면 버려뒀던 부품들도 만들 수 있겠는데?”
“버려두다니요?”
“그거 있잖아. 단가 경쟁을 못 따라가서 접었던 부품들. 그걸 다시 생산할 수 있잖아.”
“아. 그거요.”
“왜? 어려워?”
공장장은 한술 더 떴다.
“어렵긴요. 제작하기 어렵던 부품도 가능한데요. 이 기술의 장점은 부품 성형이 굉장히 쉽다는 겁니다.”
다른 회사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런데 그 회사는 사장이 욕심을 조금 부려보았다.
“더 큰 것도 만들 수 있을까?”
“JHC에서 그러는데, 부품이 너무 커지면 내부까지 강화처리가 안 된답니다.”
“그래?”
“예. 이건 소형 부품 제작에 최적화된 기술이랍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양산에 적용한 게 나사라던데요.”
사장은 그 문제는 포기했다.
“그럼 뭐, 소형 부품만 대량으로 생산해야지. 아. 다른 라인에도 적용해 볼까?”
현재는 라인 하나만 JHC 테크에서 미리 만들어둔 장비를 가져다 개조했다.
“개조용 장비 말이야. 몇 대 더 얻을 수 있나?”
공장장이 설명했다.
“JHC에서 초기 고객 서비스로 빌려준 건데, 우리 회사가 받은 게 마지막이랍니다. 이제 없답니다.”
“그럼 라인을 증설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앞으로는 직접 제작하라더라고요.”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하냐? 전문업체 불러야지. 증설할 때 JHC가 기술 지원은 해주겠지?”
“물론이죠. JHC의 기술 지원은 비싸서 그렇지 효과는 확실하니까요.”
“그럼 경쟁 붙기 전에 빨리 진행해.”
***
오성기공의 연구팀장이 자체 생산 제품인 펌프의 공정 개선 문제를 회의하며 머리를 박박 긁었다.
“곤란하네.”
팀원이 말했다.
“단가를 높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데요.”
“성능은 좋게. 단가는 낮게. 그래야 수입 펌프와 경쟁이 된다잖아.”
“마케팅에서 요구하는 단가로 만들면 품질이 떨어지고, 품질을 유지하려면 단가를 맞출 수 없습니다.”
“싸고 튼튼하면서 생산성도 좋은 부품 어디 없으려나.”
“그런 게 있었으면 벌써 사다가 썼죠.”
팀원 이 대리가 손을 들었다.
“저기, 팀장님.”
“어. 왜? 좋은 생각 있어?”
“전에 말씀하신 나사 기술 말인데요. 제 친구가 다니는 회사가 이번에 그 기술을 받아서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친구가 나사 회사에 다녀?”
“아니요. 그거 원래 소형 금속 부품 제작에 특화된 기술이라던데요?”
“응?”
“성형부터 하고 후처리로 강화하는 기술인데요. 시제품 품질이 상당히 좋습니다. 그 기술로 제작한 부품을 납품받아서 쓰면, 단가 문제와 성능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거 아닐까요?”
“야. 검증된 것도 아닌 기술을 어떻게 그냥….”
“JHC 테크가 기술 지원을 했다더라고요.”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일단 브리핑해 봐.”
미리 자료를 받아 검토한 이 대리가 서류를 보여주며 간단히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팀장이 턱을 긁으며 말했다.
“이게 가능하다면, 우리 펌프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는데?”
다른 팀원들도 동의했다.
“핵심 부품이야 검증이 필요하니까 아직 어렵지만, 다른 부품은 이 방법을 쓰면 단가가 내려가겠는데요?”
그 서류에는 그 제작기술의 기본 개념이 적혀 있었다.
“제조법이 되게 간단하네?”
“너무 간단해서 무인도에 떨어져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음…. JHC 테크에 연락해서 구체적인 자료 좀 받아. 이 대리 친구네 회사에는 우리 펌프 부품 납품이 가능한지 문의…. 아니다. 내가 연락할게. 담당자 연락처 보내.”
***
JHC 테크 연구소장 이백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역시 우리 기술은 대단하다니까요? 기술 문의가 아주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종훈이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기술은 아니잖아. 개발자는 따로 있으니까.”
“어쨌든 우리를 통해서 체계화되고 기술 이전도 우리가 했잖습니까? 그럼 우리 연구소도 묻어갈 수 있죠.”
김충식 본부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우리가 영업도 잘하고 홍보도 잘해서 난리 난 거 아니겠습니까?”
“응. 아니야. 영업에서는 수익 많이 낼 수 있는 대형업체에 먼저 팔자고 했잖아. 그러면 생산은커녕 아직도 협의 중이었겠지.”
***
최종훈이 선우현을 찾아와 자랑했다.
“우리 영업부서와 홍보부서에서 적극적으로 일한 덕분에, 기술을 원하는 곳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잘됐네요.”
“연구소에서도 기술 지원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다들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하하하.”
선우현이 토마토 주스를 컵에 담아주며 말했다.
“더 열심히 일하시게 활력 토마토라도 한 상자 보내야겠네요?”
“이 귀한 걸 아깝…. 아, 아닙니다.”
최종훈이 토마토를 얻어먹으며 물었다.
“탑이 무너질 때 사람들을 구한 분, 선우현 씨 맞지요?”
“CCTV 영상은 멀리서 찍혔던데 용케 알아보셨네요.”
“그 탑을 일반에 공개한다고 알려드린 날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리고 영상에서 본 것처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무너질 것도 알고 구할 방법도 있는데 방관할 수는 없어서요.”
최종훈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던데요. 혹시 정식으로 밝히실 거면 우리 회사 홍보팀이 지원하겠습니다.”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뭐 대단한 일 했다고요. 관심 없습니다.”
선우현은 지원위성에서 보낸 그 긴 시간 동안 인류 역사의 유명한 사람을 관찰하곤 했다.
그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인간이라면 못할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도 많이 봤다.
죽을 때까지 업무에 치여서 사는 사람을 보며 답답해한 적도 많았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다.
탐사대 지원위성에 갇혀서 지낸 그는, 지상에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최종훈의 말처럼 얼굴이 너무 팔리면 그 자유로운 삶이 방해받는다.
선우현이 말했다.
“난 그런 일로 얼굴이 알려지는 건 별로라서요.”
“아. 하긴. 사람들이 얼굴을 다 알 정도로 유명해지면 개인 생활이 없어지죠.”
최종훈이 다른 걸 걱정했다.
“그런데 소형 부품 제조법에 관한 국제특허는 선우현 씨 이름으로 출원됐습니다. 그건 어떻게….”
선우현은 얼굴이 팔리는 게 싫은 거지 존재 자체를 숨기려는 건 아니다.
“이름만 보고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긴 그렇죠.”
***
JHC 테크 임원회의에서 기술 라이센스 문제로 회의가 열렸다.
이백현 연구소장이 말했다.
“자기네 공장에서도 그 기술을 쓸 수 있냐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최종훈이 물었다.
“반응이 예상 이상이지?”
“소형 금속 부품 제조에 특화된 기술이라서, 저희가 예상한 것보다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최종훈이 따져 물었다.
“우린 왜 거기까지 예상하지 몰랐을까?”
“우리가 자체 개발한 기술이 아닌 데다가, 사장님이 빨리 팔라고 해서 테스트만 하고 판 기술이라서요.”
“아. 내가 그랬지. 나야 뭐….”
그는 선우현에게 생색을 내려고 빨리빨리 대충 처리하라고 했다.
“그때는 나사만 좀 팔면 될 줄 알았지.”
“저도 그런 줄 알고 빨리 테스트한 후에 진행했습니다. 나사 품질이 확실한지만 확인하면 됐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왜?”
이백현이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폐기 장비 적치장에서 이것저것 뜯어 연구하다가 개발한 기술이라고 해서, 대단한 기술은 아닐 줄 알고….”
최종훈이 말했다.
“천재라서 그래.”
“아무리 천재라도 그게….”
최종훈은 그 기술보다 훨씬 더 대단한 레드 포션의 효과를 이미 몸으로 경험했다.
“나처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여.”
이백현 연구소장이 다른 걸 물었다.
“사장님. 그럼 요청 들어오는 건 어떻게 대응할까요? 좀 많은데요.”
“그 기술을 많이 팔면 좋잖아.”
“저희 기술 지원 인력이 무한한 건 아니잖습니까?”
JHC 테크는 이미 기존에 진행하는 일이 많았다. 새 기술 하나에 계속 인원을 쏟아부을 수는 없다.
“아…. 좀 골라서 계약해야겠네.”
***
최종훈이 선우현을 찾아와 또 자랑했다.
“소형 금속 부품 양산 기술을 달라는 제조 업체만 벌써 일곱 곳입니다. 그중 두 곳은 외국 회사입니다. 그 공장들이 부품을 만들어 팔면, 그걸 사다 쓰는 업체는 최소 수십에서 많으면 수백 곳은 될 겁니다.”
“수출도 하시게요?”
“어…. 하지 말까요?”
“당연히 해야죠.”
“하하하. 사실 우리 JHC 테크는 외국에도 기술을 많이 팝니다. 잘 처리하겠습니다.”
선우현도 자랑했다.
“이제야 그 기술의 가치를 사람들이 알아보나 봅니다.”
김수선이 맞장구쳤다.
- 역시 지구연합의 기술은 여기서도 잘 통하는군요.
최종훈이 업체 명단을 보여줬다.
“그런데 모든 회사에 라이센스를 동시에 팔 수는 없습니다. 생산 시설이나 기술 지원 환경 등등 고려할 조건이 상당히 많습니다. 순서를 정해서 하나씩 진행해야 합니다.”
선우현이 업체 명단을 보았다.
“이런 거야 뭐, 최 사장님이 알아서…. 음?”
그중에 이름을 아는 회사가 있었다.
“재성퍼시픽? 여기는 그 약쟁이 배우 놈 집안에서 하는 거잖습니까?”
섬 촬영 사건 때 사고를 치고 도망친 배우 김승빈은 재성퍼시픽 사장의 아들이다.
최종훈이 명단을 보았다.
“아. 거기가 끼어 있었네요. 그 회사라면 이 기술이 꼭 필요하긴 할 겁니다.”
“거 염치도 없네요.”
“재성퍼시픽은 선우현 씨가 누구인지 모르겠죠.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합니까? 나 뒤끝 있는 사람입니다.”
“알겠습니다. 재성퍼시픽은 아예 빼겠습니다. 어차피 기술을 달라는 곳은 많으니까요.”
***
한강 철탑 붕괴 사건은 한동안 뉴스가 쏟아지다가 최근에는 조용해졌다. 이제 공중파 뉴스에는 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삿거리가 다 사라진 건 아니다. 아직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게 하나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 그때 그 탑에서 사람들을 구한 그 남자는 누구일까요?
- 모르죠. 고등학생을 마지막으로 구한 후에 현장에서 그냥 사라졌으니까요.
***
한성고등학교 야구부 선수 김인혁이 배트를 힘차게 휘둘렀다.
“스트라이크!”
“아. 그게 안 맞네. 맞았으면 홈런인데.”
코치가 말했다.
“맞는다고 다 홈런이겠냐? 그리고 너 타격 감각이 계속 안 돌아오면 하나는 포기하는 게 어떠냐?”
김인혁은 투수와 타자 둘 다 뛴다. 고교 야구선수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김인혁이 큰소리쳤다.
“에이. 저는 그냥 잠깐 슬럼프가 온 거예요.”
“일 년이 어떻게 잠깐이냐?”
“그렇다고 투수만 하고 싶지는 않아요.”
“너 이제 제구도 안 돼.”
“그것도 잠깐 슬럼프….”
“그놈의 슬럼프 때문에 9번 타자로 내려간 게 벌써 1년이다. 너 이제 3학년이야. 이놈아. 차라리 둘 중 하나에 집중해. 그러는 편이 나아.”
“꼭 둘 다 해야 하는데….”
“빨리 결정해라. 그리고 기자가 너 만나고 싶다고 찾아왔다. 가봐라.”
김인혁이 활짝 웃었다.
“거 보세요. 미래의 에이스에 강타자를 알아보고 인터뷰하러 오잖아요.”
“스포츠 기자 아니다.”
“아. 그럼 그거구나.”
“어. 한강공원 철탑 사고 때 일을 물어보고 싶다고 찾아왔다.”
***
김인혁이 기자 앞에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 형이랑 같이 탑을 탈출하는데! 그때 출렁다리가 갑자기 끊어지는 거예요!”
기자가 말했다.
“그건 영상으로 봐서 알아. 내가 묻는 건, 그때 학생을 구해준 그 사람이 누구냐는 거야.”
“저야말로 묻고 싶은데요. 기자 아저씨는 아는 거 없어요?”
“있으면 너를 찾아왔겠어? 바로 그 사람을 찾아갔지.”
“현장에 남은 지문을 조회하면 되잖아요.”
“경찰이 굳이 그런 일까지 할 이유는 없지.”
기자가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형인데 나는 왜 아저씨냐?”
“에이. 그 형은 그때 아저씨라고 부르면 안 구해줄까 봐 형이라고 부른 거고요. 기자 아저씨는 아저씨라고 불러도 제가 망하진 않잖아요.”
“음…. 그렇게 생각해?”
“에이. 설마 없는 이야기를 쓰진 않겠죠?”
“그럼 당연하지. 내가 그 선은 잘 지켜.”
***
선우현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었다. 야구부 김인혁이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였다.
“아저씨라고 부르면 탑에서 떨어드릴 거 같았다고? 얘가 선 넘네?”
- 김인혁은 현장에서도 같은 말을 했잖습니까?
“그거야 농담으로 한 거였지. 그런데 그걸 기사로 내는 건 다르잖아.”
- 다시 보면 혼내주십시오.
선우현이 밥을 먹으며 말했다.
“됐다. 다시 볼 일이 있겠…. 저 녀석이 왜 여기 있어?”
- 선장님. 김인혁을 발견했습니다. 그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알아.”
김인혁이 선우현이 밥을 먹는 식당에 들어왔다.
“어우. 배고파. 두 그릇도 먹을 수 있…. 어?”
김인혁은 선우현을 발견했다.
그는 처음에는 잘못 봤나 싶어 눈을 껌뻑이다가 선우현이 있는 테이블로 후다닥 달려왔다.
“형!”
“야.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