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77화 (77/281)

77. 소형 부품 제작기술

이튿날 오전에 선우현이 옥탑방 옥상에서 고깔 과자 열 개를 열 손가락에 끼우고 하나씩 빼먹었다.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그렇게 먹으면 맛있습니까?

“이게 먹는 재미가 있어. 칼로리바만 먹던 시절에는 할 수 없는 일이잖아.”

그는 고깔 열 개를 다 먹고 새로 열 개를 끼웠다.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최종훈이었다.

모든 손가락에는 이미 고깔이 끼워져 있었다. 선우현이 그중에 하나를 빼먹은 후에 받았다.

간단한 인사가 오간 후에 최종훈이 물었다.

- 장현석 구청장을 혹시 아십니까?

“알긴 합니다.”

- 저희 쪽으로 문의가 왔습니다. 그런데 문의 내용이 이상합니다. 어제 우리 나사 기술 개발자가 김치찌개를 먹었냐더군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아. 그거요. 김치찌개를 먹은 게 아니라, 먹는 사람을 구경했다고 전해주시죠.”

그는 어제 장현석이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실 때 그 앞에 앉아서 이야기했다.

“예? 이거 혹시 무슨 암호입니까?”

“별거 아닙니다. 아. 소주도 따라줬다고 추가해 주시고요. 그러면 알아들을 겁니다.”

최종훈은 원래 선우현의 일은 깊게 따지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간단하네요.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후에 선우현이 고깔 과자를 다시 하나씩 빼먹었다.

김수선이 물었다.

- 장현석이 선장님의 신분을 확인하고 싶은가 봅니다.

“사건의 사이즈가 크잖아. 내 말과 녹음 파일만 믿고 일을 진행하긴 좀 불안하겠지. 만약 내가 사기꾼이면 일을 진행한 장 구청장이 매장될 테니까.”

- 그래서 나사 제작기술 개발자라는 걸 알려주셨군요.

“알아서 눈치껏 확인하라고 알려준 거야. 정치인치곤 사람이 나쁘지 않더라고.”

***

장현석은 그날 낮에 기자회견을 했다. 그 이야기가 밤 9시 뉴스 시간에 나왔다.

[경찰은 오늘, 한강공원 철탑 붕괴 사건의 핵심 용의자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어제는 선우현이 청부업자 조직을 쓸어버렸다. 그놈들은 어제 모두 체포됐다.

[오늘 체포된 용의자는 어제 체포된 청부업자들에게 돈을 주고….]

오늘 체포된 건 그 조직에 탑 붕괴 사고를 청부한 물주였다.

구청장 장현석은 낮에 한 기자회견에서 대포폰에 들어있던 녹음 파일도 일부 공개했다.

그가 기자 회견하는 모습이 꽤 길게 9시 뉴스에 나왔다.

TV에서 장현석이 말했다.

[이 사건은 저를 구청장 자리에서 밀어내려는 세력이 저지른….]

서울 시장도 아니고 구청장이 공중파 9시 뉴스에 그렇게 오래 얼굴과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장현석은 지금 그의 구가 아니라 전국에 얼굴을 알리고 있었다.

게다가 사건 내용도 자극적이었다.

원래는 단순 비리 사고로 취급되던 철탑 붕괴가, 갑자기 구청장을 낙마시키려고 저지른 살인모의 음모로 바뀌었다.

장현석은 자신이 왜 타깃이 됐는지를 자랑을 슬쩍 섞어서 설명했다.

[저는 뇌물을 전혀 받지 않고 모든 걸 법에 근거해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의 비리에 방해됐을 겁니다.]

뉴스 게시판에는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렸다.

- 그 건물은 우리 동네에 있습니다. 그 땅에 어떻게 건물을 짓나 신기했는데, 역시 비리였구나.

- 장현석한테는 뇌물이 아예 안 통하니까 저렇게 음모를 꾸며서 날려버리려고 했나 보다.

장현석은 그 기자회견과 뉴스 방송으로 청렴한 이미지도 얻었다.

- 저 정도면 구청장만 하기엔 아까운 사람 아닌가?

***

가수 구하니가 스마트폰으로 그 뉴스를 보았다.

“이런 나쁜 놈들 좀 봐. 이제 무서워서 저런 전망대에는 못 가겠다.”

예능 방송 막내 작가 안유정이 그녀의 앞자리에서 와인을 마시며 말했다.

“언니. 여기도 전망대거든? 우리 지금 한강의 멋진 경치를 보면서 스테이크 썰잖아.”

“맛있어?”

“더 시켜도 돼?”

“당연히 되지.”

안유정이 와인잔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수상한데? 이번엔 뭔데?”

“표 나?”

“완전.”

“다음 주에 연차 쓰고 내 임시 매니저 하루만 해.”

“뭐야. 이거 그냥 사주는 거 아녔어?”

“스테이크랑 와인 다 그냥 사주는 거야. 너도 내 일일 매니저를 그냥 봐줄 거잖아.”

안유정이 툴툴대며 포크로 고기를 찍었다.

“이젠 내 본업이 방송 작가인지 가수 매니저인지 헷갈린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KMTV에서 꽤 크게 하는 공연인데, 방송국 공연 스케줄이라 매니저가 필요해서 그래.”

“물론 일당이 쏠쏠하니까 해도 좋긴 하지만.”

안유정이 물었다.

“근데 언니. 진짜 왜 아직도 정식 매니저를 안 구하는 거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안유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현 오빠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했잖아.”

“그래서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찾는 중인데 없네?”

안유정이 걱정했다.

“언니. 앞으로도 계속 혼자 다니려고 그래? 그 오빠랑 비슷한 수준이 어떻게 있냐고.”

“네가 있잖아.”

“난 바쁘다고.”

뉴스에서는 무너진 탑과 멀쩡히 서 있는 탑의 모습도 나왔다.

구하니가 그걸 보며 말을 돌렸다.

“안 무너진 탑에 사용된 나사는 뭔가 특별한가?”

***

선우현도 그 뉴스를 보았다.

“장 구청장이 녹음 파일을 다 깐 건 아니네.”

- 정치인 쪽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당 내부에서 싸울 때 쓸 무기로 남겨둔 거겠지.”

- 그런데 선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다음 주에 KMTV 방송국에서 음악 공연을 크게 해. 이거 직관하려고 응모하는 중이야.”

- 뉴스에서는 저렇게 빵빵 터지고 있는데 놀 궁리만 하시는군요.

“틈틈이 일도 하잖아.”

- 틈틈이 노시라고요.

***

이튿날 현직 구청장 장현석이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어제 9시 뉴스에 1차 기자회견이 나간 덕분에 오늘은 기자가 더 많이 모였다.

장현석이 그 기자들 앞에서 목소리에 힘을 주며 연설하듯 말했다.

“그들은 저를 다음 선거에서 낙마시키려고, 그 전망대에 사람이 있을 때 무너뜨리는 천인공노할 짓을 꾸몄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장현석은 탑을 무너뜨리려 한 청부업자들과 그들에게 사주한 물주까지만 공개했다.

***

2차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 장현석이 당의 3선 국회의원을 찾아갔다.

“장 구청장. 이거 체급이 확 커졌어. 이러다 다음에는 국회의원이나 시장 선거까지 도전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걸 의도한 건 아닌데 말이죠.”

어느 정도는 의도했다.

정치인 대부분은 뉴스에 이름이 나기를 원한다. 그가 기자회견을 두 번이나 한 건 이름을 최대한 알려 더 큰 자리를 노리기 위해서다.

3선 국회의원이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당에서는 장 구청장이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다가 공격받았다는 점을 강조할 거야. 그러면 당의 지지도도 높아질 테니까, 큰 공을 세우는 거야. 하하하.”

“안 그러시는 게 좋을 텐데요.”

“어? 그 좋은 걸 왜 안 하려고….”

장현석은 선우현이 준 녹음 파일을 모두 공개한 게 아니다. 파일 하나는 빼놓았다.

“이걸 좀 들어보시죠.”

스마트폰에서 그 녹음 파일이 재생됐다. 대화 내용을 들은 국회의원의 표정이 굳었다.

“어? 이거….”

“여기서 말하는 사람 말입니다. 의원님 쪽 사람이죠?”

“아니,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이봐. 장 구청장. 이 녹음 파일만 가지고는 그 사람도 한통속이라는 증거는 안 되잖아.”

“안 되죠. 그래서 이 녹음 파일을 공개하지 않은 겁니다. 확실한 증거도 아닌데 당에 피해를 줄 수는 없으니까요.”

“잘했어. 역시 현명….”

“물론, 제가 숨겨도 경찰이 이 내용을 알아낼 수는 있습니다. 범인들이 체포됐으니까요. 두목이 자백할 수도 있잖습니까?”

“아니, 그러면….”

“저를 날리면 우리 당의 돈을 잘 먹는 사람이 차기 구청장이 된다? 그걸 노리고 일을 벌였다는 게 알려지면, 당에 피해가 갈 겁니다.”

“그, 그렇지? 문제가 되겠지.”

“그 사람이 평소에 돈을 너무 먹는단 소문을 듣긴 했습니다.”

그런 뇌물은 원래 혼자 먹으면 탈이 난다. 적당히 나눠 먹어야 문제가 덜 생긴다.

찔리는 게 있는 3선 국회의원이 시선을 피했다.

“그 사람은 자중해야겠어. 앞으로 쭉.”

***

언론에 자주 언급된 사건이라 경찰은 수사력을 충분히 투입했다.

탑 붕괴 원인 중 하나인 불량 나사는 당연히 철저히 조사했다. 그러면서 비교군으로 다른 탑에 사용된 나사도 분석했다.

정부 기관에서 직접 비교 분석한 결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그걸 보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생겼다.

장현석의 상대편 당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런 고품질의 나사를 그렇게 저렴한 단가에 납품했다는 게 이상합니다. 당연히 단가를 더 높게 받아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쪽으로도 뭔가 있을지 모릅니다. 수사해야 해요.”

방송국 기자가 나사를 만들어 판 회사를 찾아가 확인했다.

동서남기공의 사장이 공장을 보여주면서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직접 설명했다.

“가격이 싼 건 제조 원가가 낮기 때문입니다. 신기술을 적용해서 재료도 저렴하고 가공도 쉽습니다. 금속의 강화처리도 간단하고요.”

“그래서 저렴하게 판매하셨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냥, 싸게 만들었으니까 싸게 판 겁니다.”

“그럼 이 신기술을 직접 개발하신 겁니까?”

“아닙니다. JHC 테크의 기술을 받았습니다.”

“아! JHC.”

“이 기술을 쓰는 회사는 아직은 우리 회사뿐이라더군요. 그래서 JHC의 기술 지원을 확실히 받았습니다. 하하하.”

그 기사가 공중파 뉴스에 나갔다.

혹시 음모가 있는 건 아니냐던 말은 싹 사라졌다.

그런데 그 공장의 영상을 보고 다른 걸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그런 글들이 올라왔다.

- 영상에 나사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런 방식으로 나사를 만들 수 있으면, 다른 부품도 만들 수 있겠는데요?

- 그것도 저렴한 비용으로요.

- 저게 사실이면 우리 회사 생산 공정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 JHC 테크의 기술을 라이센스 했다니까 뉴스에 나온 건 다 사실일 겁니다. JHC는 원래 기술 라이센스로 먹고사는 회사니까요.

- 우리 회사는 저 뉴스를 보자마자 JHC 테크에 문의했습니다. 담당 부서에서 아직 미팅 일정 잡는 중이라는데, 한 가지는 확실히 확인했다네요. 저건 원래 소형 부품 제작용 기술이랍니다.

- 그럼 왜 나사를 만든 거지요?

- 나사도 소형 부품의 일종이니까요.

- 그런데 제작 영상을 저렇게 공개해도 되나요? 기술 유출 문제는 어떻게 하죠?

- 우리 회사에서도 JHC 테크에 문의해 확인했습니다. 그 제조 기술은 이미 국제특허까지 신청했답니다.

- 역시 기술 전문 회사답게 특허 문제는 확실하게 처리하는군요.

***

최종훈이 선우현을 찾아와 자랑했다.

“그 기술에 관한 문의가 여러 곳에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일을 키운 보람이 있네요. 그런데 전부 다 나사를 만들겠다는 아니지요?”

최종훈이 접촉 중인 회사 명단을 보여주었다.

“소형 부품 제작 문의가 대부분입니다. 저희 영업에서 그렇게 설명했거든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JHC 테크에 미리 만들어뒀다던 개조용 장비 말입니다. 얼마나 있습니까?”

동서남기공은 그 장비를 가져다 쓴 덕분에 며칠만에 생산 장비를 개조할 수 있었다.

“동서남기공과 비슷한 시스템이라면 두 곳 정도 개조할 수 있습니다.”

선우현이 명단을 보며 말했다.

“그 개조 장비를 즉시 적용해 제품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회사가 좋겠군요.”

“개조 장비 대여에 기술 지원 서비스까지 제공한다고 하면 계약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최종훈이 물었다.

“그 기준으로 고른 이유는 역시 홍보가 목적인 거지요?”

김수선이 말했다.

- 그건 지구연합의 탐사대의 현장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선정한 제작기술입니다.

선정 기준은 현장에서 필요한 부품을 얼마나 쉽게 만들 수 있는가였다. 그래서 품질이 더 뛰어나더라도 제작이 어려운 기술은 제외되고, 품질은 다소 낮더라도 쓰기 쉬운 기술이 선정됐다.

- 그러니까 당연히 다양한 형태의 부품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부품 크기에 제한은 있지만요.

선우현이 말했다.

“그 기술이 소형 부품 대량생산에 얼마나 최적화된 기술인지 실제로 보여주면, 원하는 곳이 더 많아질 겁니다.”

“뉴스를 많이 탄 지금이 홍보하기 제일 좋은 시기이죠. 즉시 진행하겠습니다.”

***

JHC 테크 연구소는 최종훈의 지시를 받고 회사 두 곳을 골랐다. 그중 한 회사의 생산 담당자가 JHC 테크를 직접 찾아왔다.

“그 기술로 저희가 생산하는 부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셔서, 직접 보고 확인하려고 왔습니다.”

연구소 직원이 영업부 직원과 함께 그 사람을 안내했다.

“일단 우리가 준비해둔 장비를 보시죠.”

“준비라니요?”

“빠른 생산 지원을 위해 미리 장비를 좀 만들어뒀습니다. 현재 귀사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연결하면 곧바로 생산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담당자는 JHC 테크 연구소에 준비된 장비와 개조 계획서를 보고 감탄했다.

“이러면 우리 제조 공정을 금방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군요. 이런 지원은 어디서 찾아오든 다 해주는 겁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초반에 계약하는 세 회사만 해드립니다. 아. 동서남기공 이야기는 들으셨죠? 거기서 제일 먼저 기술 지원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회사가 먼저 계약했으니까, 이제 딱 하나 남았군요.”

“헉! 회사에 돌아가는 대로 윗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JHC 테크의 기술로 동서남기공에서 만든 나사 이야기가 뉴스를 많이 탄 덕분에 계약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새로 계약한 두 회사 모두 나사 쪽은 관심도 없었다.

둘 다 소형 금속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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