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76화 (76/281)

76. 진흙탕

이창수는 창고 안쪽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두목 조충식에게 너무 많이 맞고 피도 흘려서 일어날 힘이 없었다. 일어나기는커녕 바닥을 기어가는 것도 어려웠다.

그가 신음을 흘리며 창고에 방금 도착한 형사들을 불렀다.

“끄으으. 저, 저기….”

형사팀 막내 최동희가 이창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시체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언데드입니다!”

“자수할 테니까 살려….”

“안 죽었구나. 휴우. 어? 자수?”

당황한 막내가 고참에게 물었다.

“형님. 이런 경우도 자수로 받아주나요?”

“좀 애매한데….”

이창수가 사정했다.

“제가 다 자백할 테니까 병원에 좀 보내주세요. 저 새끼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새끼가 두목인데.”

이창수가 손을 겨우 들어 조충식을 가리켰다.

두목인 조충식이 이창수보다 먼저 풀려나면 그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이창수가 살고 싶으면 조충식을 확실히 처넣을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저 새끼는 진짜 나쁜 새끼입니다. 저 새끼가 사람 죽이는 거 제가 다 봤습니다!”

고참 형사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자수한 거 맞네. 막내야. 뭐하냐? 구급차 빨리 불러야지. 한 대는 좋은 차로 보내달라고 해라.”

“구급차가 골라서 부를 수 있는 건가요?”

“농담이야. 그냥 많이 와달라고 해.”

***

장현석은 구청장이다. 그의 지역에는 한강공원이 하나 있다.

그런데 그 공원에 세운 전망탑이 일반인에게 공개한 당일에 무너졌다.

장현석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환장하겠네. 유명한 예술가를 설득해서 전문업체에 맡겨 만든 탑인데, 왜 그게 그렇게 무너지나.”

구청장 장현석은 그 지역에 사는 유명 예술가를 직접 찾아가서 전망탑 디자인을 부탁했다. 탑 건설을 맡긴 업체는 그런 시설을 만든 경험이 많은 곳을 선정했다.

“많이 만들어본 놈들이라 자재 빼먹는 것도 참 잘하네. 젠장.”

그 전망탑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람이 바로 구청장 장현석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일로 욕을 많이 먹었다.

탑이 무너질 때 사상자가 없어서 다행이었지, 사망자라도 나왔으면 욕이 아니라 법적 책임 문제까지 휘말릴 뻔했다.

그는 오늘도 여기저기서 욕을 실컷 먹고,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혼자서 술집을 찾았다.

허름한 그 술집은 옛날에 많이 오던 곳이다.

“옛날에 여기서 술 마실 때는 좋았는데, 오늘은 술이 쓰다. 김치찌개는 또 왜 이리 짜냐.”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시장의 얼굴은 알아도 자기가 사는 구의 구청장 얼굴은 잘 모른다. 어지간해서는 TV에 얼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술집은 다른 지역에 있었다. 다른 구의 구청장 얼굴까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장현석이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소주를 한 잔 더 마셨다.

“나사 납품 비리까지 내가 어떻게 알고 대비할 수 있냐고. 내가 직접 부품 하나하나 검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푸념하는 그의 앞에 선우현이 앉았다.

“장현석 구청장님.”

장현석이 선우현을 슬쩍 보며 물었다.

“누구신가?”

술집 TV에서 선우현이 탑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모습이 나왔다. 뉴스가 아니라 시사 방송의 한 장면이었다.

선우현이 TV 화면을 가리켰다. 장현석이 화면을 보았다.

CCTV가 멀리서 찍은 영상이라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다시 선우현을 보았다.

“어?”

다시 화면을 보고 선우현을 보며 비교했다. 비슷한 옷과 비슷한 체형, 비슷한 머리 스타일이었다.

“설마?”

선우현이 장현석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제가 나사 제작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아니, 난 지금 나사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

“저 탑에 그 나사가 쓰였다는 말을 듣고 잘 만들었나 구경하러 갔습니다.”

장현석은 선우현과 화면을 다시 번갈아 보았다. 이제 그가 누구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아!”

장현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시민들이 모두 무사했습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앉으시죠.”

장현석이 앉으면서 말했다.

“오늘도 욕을 먹고 왔지만, 저 사건으로 누가 죽기라도 했으면 지금까지 먹은 욕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가 선우현의 앞에 소주잔을 놓으며 말했다.

“어떻게 탑이 무너지기 전에 아셨나 했더니, 나사 기술을 개발한 전문가라서 가능….”

장현석은 멈칫했다. 철탑은 두 개다. 한쪽은 불량 나사가 사용됐고, 다른 쪽은 고품질 나사를 썼다.

“저기, 혹시 어느 쪽 탑의 나사를 개발….”

“오른쪽 탑입니다.”

장현석의 표정이 확 펴졌다.

“아! 무너지지 않은 탑! JHC 테크의 기술로 만든 그 나사!”

“JHC와는 연구 협력 관계라서요.”

“대단하십니다. 한쪽 탑이 무너지지 않게 한 튼튼한 나사도 개발하시고, 또 직접 사람들도 구하셨군요.”

“운이 좋았지요.”

“대피한 사람들이 운이 더 좋았죠.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저 사고로 하마터면 제가 개발한 나사 기술이 묻힐 뻔했습니다.”

“하긴. 처음에는 양쪽 탑의 나사가 다르다는 게 알려지지 않았었지요.”

“그래서 어떤 놈들이 그런 괘씸한 짓을 했나 알아봤습니다.”

장현석도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건 경찰이 철저히 수사 중입니다. 곧 찾아낼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좀 알아봤습니다.”

“혼자 알아보셔봤자 경찰보다는….”

“그러다 구청장님이 알아야만 하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장현석이 선우현의 표정을 보았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냉수를 한 잔 마셔 술기운을 조금 씻어냈다. 그런 후에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군요. 들려주시겠습니까?”

“구청장님이 지금 누군가의 사업에 방해된다더군요. 다음 선거에서 구청장에 재선되면 당연히 계속 방해가 될 테고요.”

장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저를 욕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전임 구청장이 저지른 짓을 제가 많이 바로잡았으니까요. 이것저것 실컷 해먹던 사람 여럿이 이제는 못 해먹게 되니까 저를 미워합니다.”

“그 구에 건물은 함부로 지으면 안 되는 땅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는 땅값이 쌉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곳에 대형 건물을 지었습니다.”

장현석이 탁자를 살짝 쳤다.

“아! 어디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그 건물은 전임 구청장 시절에 착공해서 제가 당선되고 나서 다 지었습니다.”

“그 건물을 지을 때는 예전 구청장하고 이야기가 다 돼서 일단 저질렀다더군요. 그런데 구청장님은 그 건물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허가나 승인을 안 내주셨지요.”

“저는 불법 건축물을 법대로 처리한 것뿐입니다.”

“거기 돈이 많이 묶여 있는데, 허가만 나면 대박이 난다면서요?”

“그거야 그렇지요. 원래 그런 건물을 지으면 안 되는 땅이라서 땅값이 쌌던 거니까요.”

선우현이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 한강공원에서 무너진 탑을 짓는 사업을 추진한 사람은 장현석 구청장님입니다. 만약 그 탑이 무너질 때 사망 사고가 났다면, 구청장님은 재선에 실패하겠지요?”

장현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나를 떨어뜨리려고 수십 명이 죽을 수도 있는 사고를 냈다는 겁니까?”

“놈들의 원래 계획은 사망자를 그렇게 많이 내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자기들도 뒷감당이 안 되니까요.”

“그럼….”

“출렁다리에 두세 명 정도 있을 때를 노렸습니다. 그런데 그놈들 계획보다 먼저 탑이 무너진 겁니다.”

“두세 명은 사람 목숨이 아니랍니까? 사악한 놈들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전임 구청장이 범인이란 말이지요? 그 인간이 기어이 사고를 쳤군요.”

선우현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아니요.”

“예?”

“그 탑이 무너질 때 두세 명 정도의 인명사고가 났다면, 구청장님은 당에서 다음 공천을 받기 어렵겠지요.”

“그건 그렇습니다. 장소나 상황이 여러모로 저한테 불리하니까….”

“하지만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정당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그러면 구청장님과 같은 당에서 새로 공천을 받은 사람이 차기 구청장이 되겠죠. 짚이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장현석은 숨을 들이켰다.

“헉! 그럼 그 사람이….”

장현석이 지난번에 구청장 공천을 받을 때 당 내부에서 그와 경쟁한 사람이 있었다.

만약 장현석이 구청장 자리에서 날아가면 차기 구청장 공천은 그 사람이 받을 게 뻔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그 사람은 돈을 주면 잘 먹는다던데.”

장현석은 긴장했다.

그는 선우현이 탑이 붕괴할 때 사람들을 구한 영상 속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영상만 봐서는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니 확실한 건 아니다.

‘영상과 비슷하게 외모를 꾸미고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일 수도 있어.’

그래서 그는 선우현의 말을 무작정 믿을 수는 없었다.

장현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 소문을 좀 듣긴 했지만, 그 사람이 사람을 죽일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을 겁니다.”

“돈을 잘 먹는다는 건 아시나 보네. 그걸 다른 사람도 알더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를 노리고 사람을 죽….”

“아니요. 그놈들은 장현석 구청장님을 날리면, 돈만 주면 허가를 내주는 사람이 새 구청장이 된다는 걸 노렸습니다.”

“예?

“나중에 뇌물만 주면 되니까, 꼭 그 사람과 미리 작당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다 작당했을 수도 있고요.”

“그럼….”

“탑이 무너지게 조작한 놈과 그 땅에 건물을 세운 놈. 둘이 작당한 거죠. 새 구청장을 매수할 뇌물을 넉넉하게 준비해 놓고서요.”

“음….”

장현석이 듣기에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는 선우현을 오늘 처음 보았다. 말만 듣고 무작정 믿을 수는 없다.

“설사 그렇다 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잖습니까?”

선우현이 대포폰을 술집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건 조충식의 조직을 박살 내고 빼앗아온 대포폰이었다.

“증거라면 여기 있는데.”

“예?”

“불량 나사를 일부러 납품한 조직의 두목과 물주가 통화한 내용이 여기 들어 있습니다.”

“아! 이게 있으면 적어도 물주는 잡을 수 있겠군요!”

“누가 차기 구청장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말도 있습니다. 이걸로는 직접 증거는 안 되겠지만, 그 사람도 개입했는지 수사할 근거는 되겠지요.”

“당연하지요.”

“상대편에서 수사기관에 압력을 가하는 것만 막는다면 말이죠.”

“아. 그건….”

“뒷돈 잘 받는 사람이 수사 무마 시도는 왜 못 하겠습니까? 당연히 할 겁니다.”

선우현이 제안했다.

“그러니까 이 증거를 가지고 직접 싸워보시죠. 언론을 동원하든, 수사기관의 협조를 받든.”

이번 사건에는 정치인이 연루되어 있다.

그 정치인이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한 발 정도는 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이 커지면 안 좋은 일에 정치인이나 소속 정당의 이름이 나올 수도 있다. 그걸 막기 위해 연줄을 동원해 수사를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장현석도 정치인이다. 그것도 공격당한 쪽이다. 녹음 파일이 있으면 제대로 반격할 수 있다.

장현석이 잔에 담긴 소주를 단숨에 마셨다.

“크으. 지저분한 싸움이 될 수도 있겠군요.”

그가 이 녹음 파일을 터트리면 상대도 구경만 하지는 않을 테니 싸움이 지저분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싸우고 싶어졌다.

장현석이 말했다.

“사실 정치판은 원래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깨끗해 보이는 물도 깊은 곳까지 들어가면 진흙탕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진흙탕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의 머릿속에서 당내 권력 구도가 그려졌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이번 철탑 붕괴 사건으로 망가진 내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어. 잘만 하면 인지도도 크게 높일 수 있겠지.’

그러려면 같은 당의 사람을 쳐야 한다.

같은 당이라도 계파 간의 갈등과 경쟁은 있다.

그가 쳐야 하는 건 다른 계파 사람이다.

‘성공하면 우리 계파에서 내 입지가 더 높아질 거야.’

장현석은 정치인이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처럼 큰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을 이루려면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지만 그래도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장현석이 대포폰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내가 이 신세는…. 음?”

선우현이 대포폰을 놓지 않았다. 장현석이 당겨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선우현이 말했다.

“어떤 방법을 쓰든 상관없는데, 내 이름은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이 휴대폰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선우현이 빈 잔에 소주를 따라준 후에 일어났다.

“먼저 가겠습니다. 마저 드시고 가시죠.”

장현석이 다급히 말했다.

“저기, 성함이나 연락처라도….”

“기회가 되면 또 뵙겠지요.”

선우현이 술집을 나갔다.

장현석은 선우현의 이름은 모르지만 누가 아는지는 안다.

그는 선우현이 상대편이 보낸 사기꾼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JHC 테크에 대신 연락해달라고 부탁하면, 내가 오늘 만난 사람이 진짜인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겠지.”

그가 대포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정치판에는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함정을 파는 놈들이 있으니까, 확실히 확인하고 진행해야 해.”

그렇다고 선우현이 누구인지 JHC 테크에 구체적으로 물어볼 생각은 아니다. 선우현이 비밀로 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진짜인지만 확인하자.”

구청장 장현석이 소주잔을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이나 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야 하는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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