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목적
두목 조충식은 이창수를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더 때렸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조충식과 조직원 전체가 방금 전멸했다.
그렇게 만든 선우현이 이창수의 앞에 서서 말했다.
“살아는 있구나.”
이창수는 몸은 엉망이지만 입을 열 힘은 있었다. 다른 놈들이 쓸려나가는 동안 쉰 덕분에 숨도 쉴 수 있었다.
그가 바닥에 쓰러진 채로 물었다.
“고맙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왜? 사람을 보낼 곳이 있냐? 너 진짜 배신한 거냐?”
“아, 아닙니다.”
“다들 말은 아니라고 하지.”
“그게 아니라, 오다가다 알게 된 사람이 좀 있습니다. 혹시 그중에 누가 저를 구하기 위해 보냈나 했는데.”
조직원들은 정말 순식간에 전멸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형님 같은 고수를 보낼 곳은 없습니다. 누구신지 몰라도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어떻게 된 건지 말해봐.”
“어디부터….”
선우현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수선아. 형사들은?”
- 그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형사들과 마주치지 않고 빠져나가시려면 8분 안에 상황을 정리하십시오.
“충분하네.”
선우현이 이창수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맞았는지부터 말해.”
이창수는 방금 맞아 죽을 뻔했다. 그게 너무 억울했다. 게다가 선우현은 경찰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창수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한강공원에서 철탑 전망대가 무너졌습니다. 그 사건은 조충식 저 새끼가 꾸민 일입니다.”
- 역시 그놈들 짓이네요. 다 쓸어버리고 났더니 잘못 본 거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입니다.
선우현이 이창수에게 물었다.
“뉴스에 불량 나사 이야기가 나오더라. 그거냐?”
“예. 그 탑이 무너지게 하려고 일부러 불량 나사를 접대까지 하면서 납품한 겁니다.”
“그럴 줄 알았다. 탑 하나에 들어가는 나사를 팔아봤자 얼마나 남는다고 접대까지 하나 했지. 그럼 탑을 무너뜨린 이유는 뭐냐?”
“형님이, 아니, 충식이 저 새끼가 물주한테 돈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주가 그 탑이 완성되고 나면 무너뜨려 달라고 했습니다.”
“물주는 왜 돈을 줬는데?”
“그건…. 저 새끼도 말을 안 했습니다.”
“너 아는 게 생각보다 없다? 실망인데? 그냥 충식이를 깨워서 풀어주는 조건으로 설명을 들을까?”
이창수는 화들짝 놀랐다. 그는 핵심 정보는 숨기고 싶었다. 나중에 그 정보를 쓸 곳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정보를 아낄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제가 확실히 아는 게 있습니다! 그 탑이 예상보다 빨리 무너졌습니다!”
“응?”
“공개 첫날부터 그렇게 무너지면 안 됐습니다. 그래서 저 새끼가 제가 배신해서 그렇게 됐다고 주장한 겁니다.”
“왜 무너지는 시점이 중요한데?”
“적당한 수준의 인명피해가 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사 몇 개 빼먹자고 벌인 일이 아니라,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예. 너무 큰 사고가 나면 곤란하고, 두세 명쯤 죽거나 다치는 게 적당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어중간한 목표를 설정한 거야?”
“제가 아니라 저 새끼가 한 말입니다.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우리 조직의 앞날에 꽃길이 펼쳐질 거라고 했습니다.”
“물주에게 받기로 한 게 돈이 다가 아니네? 그 꽃길은 어떻게 깔리는데?”
“그건 저도 모릅니다.”
“너 말이야. 살고 싶으면 모르면 안 돼.”
이창수가 다급히 말했다.
“저 새끼 대포폰에 이번 일을 맡긴 물주와 통화한 게 녹음되어 있습니다! 그걸 확인해보십시오!”
“녹음된 거 확실해?”
“예! 녹음 잘 됐는지 확인하는 걸 제가 봤습니다!”
선우현이 조충식의 주머니를 뒤졌다. 스마트폰이 두 개가 나왔다.
“어느 거야?”
“둘 다 대포폰인데, 하얀색이 제가 말한 그거입니다.”
선우현이 대포폰에 조충식의 지문을 찍어 잠금을 해제했다.
그 대포폰에는 통화할 때마다 자동으로 녹음되는 음성 파일들이 들어 있었다. 등록된 전화번호는 하나밖에 없고 녹음 파일의 수도 많지 않았다.
“평소에 쓰는 휴대폰은 확실히 아니네.”
선우현이 그 대포폰을 챙긴 후에 물었다.
“너 이 조직에서 위치가 어떻게 되냐?”
“제가 넘버 투입니다.”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 무슨 넘버 투가 겨우 그 정도 실수로 죽을 때까지 맞아?”
“진짜입니다. 충식이 저 새끼가, 조직 내에서 제 입지가 점점 커지니까 이 핑계로 저를 제거하려고 한 겁니다. 제가 두목 자리를 위협할까 봐서요.”
“그럴듯한 이야기네. 그런데 넘버 투면, 너희 조직이 그동안 한 일을 아는 게 많겠네?”
“예. 꽤 압니다.”
선우현이 창고를 둘러보았다. 부실한 장비와 물건을 담아두는 상자가 조금 보였다. 그 외에는 텅 비어 있었다.
“여기는 낡아빠진 장비뿐인데.”
거기다 창고 건물도 낡았다.
“탑이 멀쩡히 서 있다가 사람들이 올라가면 사고가 나게 볼트를 조작하는 기술이 너희 따위에게 있다고?”
“예? 그, 그건….”
“아니지. 그렇게 하는 것만 해도 어려울 텐데, 아예 원하는 때에 딱 맞춰서 무너뜨리려고 했다며. 그거 누가 하냐?”
이창수가 눈알을 굴렸다.
“그건….”
선우현이 경고했다.
“너 계속 숨기는 게 있다? 그러다 걸리면 죽는다.”
“기, 기술자를 하나 섭외해서 싸구려 볼트가 더 쉽게 부러지게 손봤습니다!”
“원하는 때에 무너뜨리는 건?”
“미리 기본 작업만 그렇게 해놓고, 적당한 때에 추가로 손을 써서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예상보다 탑이 너무 빨리 무너졌습니다. 기술자 놈이 뭔가 잘못 계산했나 봅니다.”
탑이 왜 무너졌는지는 안다.
“그 탑은 구조적인 문제도 컸다고 뉴스에 나왔잖아. 그 기술자는 그것까지 계산할 능력은 없었겠지.”
“그게 맞을 겁니다!”
“그래서 그 기술자는 어디 있냐?”
“그, 그게….”
“네가 죽였냐?”
이창수가 다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살아 있습니다! 다른 장소에 가둬놨습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형사들이 도착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제 가셔야 합니다.
선우현이 이창수에게 말했다.
“네가 지금까지 나한테 말한 거, 아직 말하지 않은 너희 조직이 과거에 저지른 죄, 그리고 탑을 조작하는데 협조한 그 기술자가 어디 있는지를.”
“예. 예.”
“경찰이 오면 그대로 말해.”
이창수는 당황했다. 그는 선우현이 다른 조직에서 보낸 킬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겨, 경찰이요? 경찰이 왜….”
“지금 여기로 오고 있거든.”
“경찰이셨습니까?”
“그건 네가 알 거 없어. 넌 그냥 자수해서 다 털어놔. 그래야 네가 살아.”
탑 붕괴 때는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창수는 조직에서 넘버 투가 될 정도로 평소에 죄를 많이 지었다.
“걸리는 게 너무 많아서 자수해도 처벌이….”
선우현이 기절한 놈들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다른 놈들은 말이야. 내가 너를 구하러 온 줄 알아. 그런데 지금은 기절해서 우리 대화를 하나도 못 들었네?”
“그, 그야…. 형님이 다 박살 내셨으니까….”
“저놈들이 나중에 깨어나면 당연히 네가 배신했다고 생각하겠지? 저놈들이 체포됐다가 일찍 풀려나면 말이야. 너 살 수 있겠냐? 특히 두목이 널 가만두겠어?”
이창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거냐!”
선우현이 이창수를 걷어차려고 발을 들었다.
“이걸 그냥 확….”
이창수는 겁을 집어먹고 몸을 움츠렸다.
“히익.”
“아니다. 지금 걷어차면 너 진짜 죽겠다.”
이창수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금은 말은 곧잘 하고 있지만, 부상이 심해서 언제 쇼크가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선우현이 설명했다.
“너 머리 나쁘냐? 내가 안 왔으면 넌 오늘 여기서 죽었어. 너를 함정에 빠뜨릴 필요도 없이 그냥 맞아 죽었다고.”
“그, 그렇죠.”
“그러니까 네가 살고 싶으면, 저놈들이 너보다 교도소에 아주 오래 있을 만한 이야기를 형사들에게 하라고.”
이창수는 교도소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선우현이 오지 않았으면 그는 조충식의 손에 죽었다.
그가 입을 다물면 조충식이나 조직원들이 풀려나거나, 설사 처벌을 받는다 해도 이창수보다 먼저 형기를 마칠 수도 있다.
‘저놈들이 먼저 나와서 내가 나오기만 기다리면 어쩌지? 만약 조충식이 나보다 하루라도 먼저 나오면 난 죽은 목숨이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놈들이 감방에 나보다 오래 처박혀 있어야 내가 살아.’
“자수하겠습니다. 조충식 저놈은 총으로 사람도 죽인 놈입니다. 그것까지 말하면 저놈은 감방에서 영원히 못 나올 겁니다.”
선우현이 경고했다.
“내가 너 지켜본다. 그 기술자를 못 찾았다거나, 죽었다거나, 너만 쏙 빠져나갔다는 소리가 뉴스에 나오면 내가 너 찾아갈 거야.”
“아, 아닙니다. 꼭 자수하겠습니다.”
***
형사 두 명이 탄 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원래는 차 두 대로 왔는데, 다른 차는 길에서 만난 작은 사고 때문에 조금 있다가 오기로 했다.
막내 형사가 말했다.
“오다가 본 그 사고요. 놈들이 시간을 끌려고 일으킨 거 아닐까요?”
고참 형사가 피식 웃었다.
“우리가 무슨 첩보조직하고 싸우냐? 우리가 올 걸 미리 알았다면 모를까, 어떻게 실시간으로 그런 걸 일으켜?”
“그런가요?”
“그리고 우리가 가는 창고에는 대단한 건 없을 수도 있어. 그냥 관계된 건 다 확인하려고 가는 거야.”
“아쉽네요.”
“원래 우리 일이 그래.”
***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진짜 그 넘버 투를 지켜볼 겁니까?
“왜? 네가 지켜보게?”
- 제가 그런 시간 낭비를 왜 하겠습니까? 그럴 시간에 선체나 수리하겠습니다.
“나도 귀찮다. 그쯤 말해줬으면 자기 처지를 알겠지. 살고 싶으면 다 말할 거야.”
- 형사들이 창고에 도착했습니다.
***
형사팀의 막내가 창고를 보며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형님. 우리 일이 원래 이렇다는 거, 진짜입니까?”
고참 형사도 당황했다.
“이럴 리가 있냐? 원래는 이렇지 않아!”
창고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창고 안에는 팔다리가 부러진 채로 기절한 놈들이 많았다.
막내가 창고 입구 쪽에서 권총을 발견했다.
“헉! 여기 권총이 있습니다!”
고참이 즉시 외쳤다.
“일단 후퇴한다! 후퇴해서 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
“권총이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어?”
“출입문 중간에서 기절한 놈 옆에 떨어져 있는데요?”
고참이 여전히 주변을 경계하며 명령했다.
“일단 챙겨!”
“예!”
막내가 급히 권총을 주웠다. 그런 후에 약실을 확인했다.
“이거 빈 총인데요?”
고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빈 총…. 야. 너 그거 지금 맨손으로 잡았냐?”
막내는 당황했다.
“어? 아…. 너무 급해서 그만….”
“야 이! 지금이라도 봉투에 담아!”
막내가 주머니에서 증거물 수집용 비닐 봉투를 꺼냈다. 고참이 팀장에게 전화로 지원을 요청했다.
“팀장님! 여기서 총이 나왔습니다! 여기 관할이랑 군부대에 중무장한 지원부대를 요청해야 합니다!”
***
김수선이 보고했다.
- 형사들이 창고 내부를 확인하고 당황했습니다.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창고 문 활짝 열어놨으니까, 안쪽을 보면 깜짝 놀라긴 하겠다.”
- 형사들이 문 앞에서 권총을 발견했습니다. 지원을 요청하나 봅니다.
“어? 권총? 아. 맞다. 도망치는 놈한테 권총 던진 거 잊어버렸다.”
- 남들은 다 권총이 있다고 부러워하시더니?
“그렇다고 그걸 주워올 순 없잖아. 현장에서 총이 사라지면 많이 귀찮아져.”
김수선이 물었다.
- 총은 버려두셨으면서, 두목의 대포폰은 왜 경찰에 안 넘기고 가져오셨습니까?
“우리 나사 제작 기술 사업을 망치려고 한 물주 말이야. 기분 나쁘잖아. 그래서 누군지 내가 먼저 확인하고 나서 넘기려고.”
그 대포폰에는 통화 상대가 한 명뿐이었다. 녹음 파일도 많지 않았다.
선우현은 대포폰의 통신 기능은 작동하지 않게 한 후에 녹음된 파일만 하나씩 재생했다. 그렇게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탑을 무너뜨리려 한 이유가 짐작이 갔다.
“수선아. 이 대포폰을 현장에 놔두고 왔으면, 물주는 돈과 빽을 써서 빠져나갈 수도 있겠는데?”
김수선이 물었다.
-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무너진 탑이 있던 한강공원. 그 지역 구청장을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