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청소
선우현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뭐하냐? 들어와.”
조충식의 부하들은 바짝 긴장했다.
제일 먼저 나선 놈이 선우현에게 당했다. 그냥 당한 것도 아니다.
“분명히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사람이 단 한 방에 저기서 저기까지….”
“죽었나?”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형사들이 사용하는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김수선은 아까 방문한 허름한 사무실 근처 영상을 가지고 있다. 그 영상을 보면 사무실 근처에 세워져 있던 차량의 차종과 색상, 번호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중 한 대가 나타났다. 형사들은 현장이 정리되면 이 창고를 확인하러 온다고 했다.
지금 그 차에 누가 타고 있을지는 뻔했다.
“시간은 얼마나 있는데?”
- 형사들과 마주치지 않으려면 10분 안에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충분하네.”
선우현이 적들에게 말했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너희들이 안 들어오면 내가 들어가야지.”
선우현이 바닥을 툭 차며 전진했다. 움직임이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빨랐다.
한 놈이 먼저 덤볐다가 날아간 덕분에, 다른 놈들은 선우현이 위험한 상대라는 걸 깨달았다.
선우현의 타깃이 된 놈은 상대가 공격하면 받아치려고 마음먹고 칼을 꽉 쥐었다.
선우현이 미끄러지듯 날아왔다.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적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이다!’
그놈이 달려드는 선우현을 노리고 잭나이프를 휘둘렀다. 어깨와 허리가 같이 돌아가며 나이프의 속도를 높였다.
칼날이 매섭게 공간을 가르며 선우현의 가슴을 향해 정확히 움직였다.
그놈은 확신했다.
‘이건 못 피한….’
피할 필요가 없었다. 선우현이 적의 칼을 쥔 손을 덥석 잡았다.
적의 손이 마치 공중에서 벽에 박힌 것처럼 고정됐다. 어깨에는 강력한 반동이 돌아왔다.
“컥!”
선우현이 말했다.
“손도 느린 놈이 그렇게 정면으로 찌르면 통하겠냐?”
“놔, 놔….”
선우현이 적의 팔을 확 끌어당겼다. 적이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딸려왔다.
선우현이 다른 손으로 적의 멱살을 잡아 위로 번쩍 들었다.
“놓는다?”
선우현이 적을 집어 던졌다.
“으아악!”
적의 몸이 창고를 가로지르며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벽에 충돌한 후에는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케엑!”
그놈은 짧은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었다. 조금 전에 허리를 맞은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꿈틀거렸었다.
선우현이 다른 놈들을 보았다.
아직 남은 놈은 많았다. 그런데 두 놈이 너무 일방적으로 나가떨어졌다.
적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무, 무슨 힘이….”
선우현은 움츠러드는 적을 향해 전진하며 발을 내질렀다.
겁을 먹은 놈이 다급히 팔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발이 방어를 뚫고 들어가 배를 관통할 것처럼 깊숙이 박혔다.
적은 허리가 앞으로 완전히 접히며 뒤로 날아갔다.
“꾸에엑!”
그 뒤에 한 놈이 더 있었다. 날아가던 놈이 서 있는 놈과 충돌했다.
“으악!”
두 놈은 하나로 뒤엉켜 뒤쪽으로 처박혔다.
모든 적이 기가 죽은 건 아니다.
선우현이 적의 대형을 뚫고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옆쪽에 저절로 위치하게 된 놈이 있었다.
그놈의 눈에 선우현의 옆구리가 보였다.
‘빈틈!’
선우현은 정면에 있는 적을 걷어차는 중이라 측면에 빈틈이 생겼다.
그놈은 즉시 선우현의 옆구리만 노려보며 돌진했다. 잭나이프는 앞으로 쭉 뻗었다. 칼날이 정확히 선우현의 옆구리를 향했다.
그놈은 확신했다.
‘됐다! 옆구리에 칼을 한 방 맞으면 아무리 강한 놈도 힘이 빠….’
갑자기 눈앞에서 선우현이 사라졌다.
“헉!”
그놈은 깜짝 놀랐다. 선우현이 서 있던 곳에 도착했지만 칼에 닿는 건 없었다.
“어, 어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적이 급히 뒤도 돌아서려고 시도했다.
늦었다.
선우현이 돌아서려는 적의 허리를 발로 콱 걷어찼다.
적은 허리가 반대로 꺾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끄아아악!”
부하들만 놀라고 기가 죽은 게 아니다.
두목 조충식은 입을 떡 벌렸다.
“저, 저 새끼 뭐야? 사람 맞아?”
선우현은 개떼 속에 뛰어든 사자처럼 날뛰었다. 조충식의 부하들이 칼을 허겁지겁 휘둘렀지만 닿는 건 하나도 없었다.
선우현을 먼저 공격한 놈은 칼을 휘두르는 순간 얻어맞고 날아갔다. 움츠러들어서 방어하려던 놈은 선우현이 달려들어서 창고 벽으로 집어 던졌다.
“사람이 힘이 어떻게 저렇게….”
겁먹은 부하가 선우현을 피해 도망치려다가 뒷덜미를 붙잡혔다.
“으, 으아, 살려….”
선우현이 그놈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벽을 향해 집어 던졌다. 사람이 마치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처럼 날아가 벽에 충돌했다.
“케에엑!”
그놈은 팔다리가 벽에 달라붙었다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충격이 너무 커서 꿈틀거리지도 못했다.
조충식이 침을 꼴깍 삼켰다.
“죽었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많던 부하는 이제 겨우 두 놈이 남았다.
그런데 두 놈 다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아, 악마….”
그들의 눈에는 선우현이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로 보였다. 감히 악마에게 덤빌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 창고 문이 열려 있어도 도망칠 자신이 없는데, 그 문은 선우현이 이미 닫았다.
선우현의 공격을 한 번쯤 운 좋게 피한다 해도 문을 열 시간이 없다.
도망칠 곳조차 없어진 두 놈은 그저 잭나이프를 선우현을 향해 겨누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둘 다 칼날이 와들와들 떨렸다.
“사, 사람이 아니야.”
조충식은 이제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부하가 둘밖에 남지 않았다.
‘저 새끼들도 결국 다른 놈들처럼 박살 날 거야. 마지막에는 내 차례겠지.’
부하가 줄어들수록 불리해진다는 건 상식이다. 혼자 남으면 승산은 더 떨어진다.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하고 선우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건 다 너 때문이다!”
선우현이 두 놈은 놔두고 조충식을 돌아보았다.
“어디서 개가 짖나.”
조충식이 재킷을 젖히고 권총을 뽑았다. 작은 크기의 6연발 리볼버였다.
조충식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총을 쏘게 된 건 다 너 때문이라고!”
그 권총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항구 도시에서 외국 선원에게 달러를 한 뭉치 주고 그 권총을 구했다. 총알은 권총에 들어 있던 여섯 발뿐이지만 상관없었다. 총이 상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 총을 쏘면 경찰 전체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다. 그러면 작은 조직쯤은 순식간에 갈려 나간다.
그래서 조충식은 그동안 이 권총을 부하들이 두목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조충식은 원래 잔인한 놈이다. 거기다 권총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하들은 조직의 넘버 투 이창수가 맞아 죽어가는데도 감히 말리지 못했다.
그런데 조충식은 이제 이 권총을 쓰는 것 외에는 이 사태를 벗어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잭나이프가 아니라 장검을 들어도 선우현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일단 총을 꺼내자 자신감이 생겼다.
‘진즉에 이랬어야 했어.’
조충식이 선우현을 향해 권총의 총구를 겨누며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꿇어! 이 새끼야!”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 또 총이다. 아주 개나 소나 총을 가지고 있네.”
- 자동화기입니까?
“아니. 6연발 리볼버.”
- 알아서 잘 피하십시오.
“아니. 안 피하려고.”
- 그럼 총에 맞으시게요? 레드 포션 맛이 그리우십니까? 상처가 치료될 때의 그 고통을 즐기는 변태셨습니까? 세상에. 오천 년 동안 그걸 몰랐네요.
“설마 내가 변태겠냐? 그냥 안 피하고 안 맞으려고.”
조충식이 권총을 겨눈 채로 소리를 질렀다.
“꿇으라고!”
선우현이 옆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전쟁터에서는 말이야. 그따위 소리를 할 시간에 한 발이라도 더 쏘는 게 생존확률을 높여줘. 아. 이쪽 전장은 상황이 좀 다른가?”
“이 새끼가! 이거 진짜 총이야!”
선우현이 바닥에 떨어진 잭나이프를 발로 툭 걷어차며 말했다.
“알아.”
대충 걷어찬 잭나이프가 화살처럼 날아갔다. 목표는 조충식이었다.
조충식이 급히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이 창고 내부를 울렸다. 총탄이 총구를 벗어나 고속으로 날아갔다.
권총은 원래 명중률이 떨어진다.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쏘는 권총은 더 그렇다.
게다가 조충식은 잭나이프 때문에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조준은 이미 틀어졌고 반동도 제어되지 않았다. 발사된 권총탄은 선우현을 한참 벗어나 날아갔다.
그런데 그쪽에는 아직 당하지 않은 부하 두 놈 중 하나가 서 있었다.
총탄이 그놈의 다리에 박혔다. 총에 맞은 놈이 고꾸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왜 나를!”
선우현이 툭 찼던 잭나이프도 조충식이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그런데 손이 아니라 발로 찬 잭나이프는 명중률에 조금 문제가 있었다. 화살처럼 날아가긴 했는데, 조충식의 어깨 옆을 스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조충식은 팔에 섬뜩한 느낌이 들자마자 칼에 맞았다고 착각하고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아. 그게 빗나갔네.”
“으아아?”
- 선장님?
“피부만 살짝 긁었어.”
방금 잡은 놈들이 많아서 바닥에 떨어진 칼도 많았다.
선우현이 옆으로 걸어가며 다른 잭나이프를 걷어찼다. 칼이 다시 조충식을 향해 날아갔다.
조충식이 화들짝 놀라 권총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칼이 빨랐다.
잭나이프의 칼날이 조충식의 어깨에 꽂혔다. 화끈한 충격이 어깨를 때렸다. 오른팔이 아래로 축 처졌다.
“으아아악!”
“팔을 노리긴 했는데, 어깨에 맞아도 결과는 같으니까 그거 명중이다.”
선우현이 조충식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런데 넌 어떻게 부하를 쏘냐?”
“이, 이 새끼….”
조충식이 황급히 왼손으로 권총을 잡았다.
선우현이 걸어가면서 옆에 있는 의자를 잡아 조충식을 향해 던졌다.
조충식도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오른손으로도 맞히기 어려운 권총을 왼손으로 쐈는데 맞을 리가 없다. 총탄은 선우현 근처로도 못 가고 창고 벽으로 날아갔다.
선우현이 손으로 던진 의자는 발로 찼을 때와는 달리 정확하게 날아갔다.
묵직한 의자가 조충식의 머리를 때리고 튕겨 나갔다. 머리가 뒤로 덜컥 젖혀졌다.
“켁!”
조충식이 뒤로 비틀거렸다. 왼손에 쥐고 있던 권총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선우현이 조충식을 향해 걸어갔다.
“너 그 권총 하나만 믿고 부하를 죽을 때까지 팬 거냐?”
이창수는 바닥에 쓰러져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더 큰 세력을 손에 넣었으면 선량한 사람들도 막 죽였을 놈이네.”
조충식은 비틀거릴 때 자기도 모르게 뒤로 조금 이동했다. 이제 바닥에 떨어뜨린 권총을 집으려면 앞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선우현이 권총 근처에 서 있었다.
조충식이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냐. 누가 보냈냐?”
“혼자 왔다니까.”
“너 킬러냐? 돈이라면 내가 주겠다. 의뢰비로 얼마를 받았든, 두 배, 아니, 세 배를 주겠다! 그러니까 살려….”
선우현이 조충식을 걷어찼다.
“케에엑!”
조충식은 뒤로 날아가 창고 구석에 처박혔다.
선우현이 불평했다.
“무조건 몇 배라고만 말하면 신뢰가 가겠냐고. 협상하고 싶으면 금액을 선제시해야지.”
-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멀쩡한 부하는 하나만 남았다.
그놈은 이미 공포에 질렸다.
“초, 총이 안 통해. 으아아!”
그놈이 비명을 지르며 창고 문을 향해 달려갔다. 문은 선우현이 이미 닫아놓았다.
적이 두 손으로 문을 허겁지겁 열려고 했다.
선우현이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들어 약실을 열었다. 총알 두 발과 이미 사용한 탄피 네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탄피 두 개에서는 화약 냄새가 났다.
“두 발은 나한테 쐈는데, 다른 두 발은 언제 누구한테 쏜 거야?”
창고 문이 열렸다. 마지막 놈이 도망치려고 했다.
그가 탄약이 제거된 권총을 창고 문 방향으로 던졌다. 쇠로 만든 권총이 날아가 문을 막 나가려던 놈의 뒤통수를 정확히 때렸다.
“케엑!”
마지막 놈은 문 중간에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선우현이 이미 제압한 놈들을 확인했다. 일부는 기절했지만 아직 눈을 뜨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끄으으….”
“내가 너무 살살 팼나? 멀쩡한 놈이 많네.”
선우현이 그런 놈들을 다시 걷어찼다.
“켁!”
이제 정신을 잃지 않은 건 조충식에게 맞아서 쓰러져 있던 이창수밖에 없다.
선우현이 이창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창수는 조충식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어나는 건 고사하고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선우현이 이창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살아는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