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의심
조충식이 화를 냈다.
“그 철탑이 왜 벌써 무너져! 이번 일에 걸린 게 얼마나 큰데!”
그 일을 주로 처리한 이창수가 설명했다.
“형님. 사람들이 첫날부터 출렁다리에 너무 많이 올라간 데다가, 그 위에서 뛰는 놈까지 있어서….”
“그 정도는 계산하고 세팅했어야지!”
“세팅한 기술자를 족치겠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있을 때 탑이 무너지게 하는 건 성공했으니까….”
“무너뜨리면 끝이냐? 죽은 놈이랑 다친 놈이 나와야 하는데, 다 멀쩡하잖아!”
“그건 갑자기 이상한 놈이 뛰어들어서 사람들을 대피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까지 예상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충식이 차가운 눈으로 이창수를 노려보았다.
“이 새끼 봐라? 너 지금 내 앞에서 변명하냐?”
이창수는 즉시 머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는 다만….”
조충식의 목소리도 서늘해졌다.
“내 계획을 망친 그놈은 누구일 것 같냐?”
“그건 기자들도 모른다고 뉴스에….”
“뻔하지. 그 새끼는 탑이 무너질 줄 알았던 거야. 그러니까 시간 딱 맞춰서 거길 올라갔겠지. 그런데 말이야.”
조충식이 이창수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 새끼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제 생각으로는 현장에서 나사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거나, 아니면 흔들림을 봤을 수도….”
“아니야.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예?”
“우리 쪽에서 정보가 샌 거야.”
이창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로 아닙니다!”
“아닌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너 뭘 알고 있는 거야?”
“예?”
조충식이 이창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새끼가 자꾸 변명하는 게 수상한데?”
“그게 아니라 저는 상황을 분석해 보고를….”
조충식이 갑자기 이창수를 걷어찼다.
“컥!”
이창수가 뒤로 나자빠졌다. 조충식이 이창수를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란 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잖아!”
“켁켁. 상황이…. 커억!”
“네가 배신자라서 아는 거야! 역시 너 때문이었어!”
“형님. 살려….”
조충식이 이창수의 급소를 걷어찼다.
“끄아악!”
조충식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밖에는 부하들이 있었다.
“야! 들어와서 이 새끼 끌어내!”
“예? 차, 창수 형님을요?”
조충식이 무기를 꺼냈다.
“이 새끼가! 너도 뒈지고 싶냐!”
“아, 아닙니다!”
***
선우현은 경기도 김포 지역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갔다. 목적지는 허름한 건물 3층에 있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최 사장님이 말한 곳은 여기인데.”
선우현은 최종훈에게 무너진 탑에 불량 나사를 납품한 회사가 어디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현지 협력자 최종훈은 비서 김찬혁에게 지시했다. 김찬혁은 비서실의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경찰 수사 정보를 조금 얻어냈다.
그 정보에 이 작은 사무실의 주소가 있었다.
“사무실은 간판만 걸어놓은 느낌인 데다가.”
그 사무실은 실제로 운영되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허름하고 규모도 작았다.
“먼저 온 손님까지 있네.”
선우현이 얻은 정보의 소스는 경찰이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형사들이 이미 그곳에 와서 사무실을 조사하고 있었다.
선우현은 오토바이는 멀찍이 세워놓고 현장에 접근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오른쪽으로 가시면 형사 몇 명이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곳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선우현이 그쪽으로 가서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담장 너머로 형사들의 대화가 들렸다.
“팀장님. 여긴 아무도 없습니다. 이미 튀었습니다.”
“알아. 통화 기록 조회는 나왔어?”
“예. 조금 전에 나왔습니다.”
“음식점 번호 같은 건 일단 빼. 나중에 다시 확인하면 되니까. 당장 확인해야 하는 번호 있어?”
“이 사무실에서 번호 하나에 여러 번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쪽에서 걸려올 때도 있었습니다.”
“위치는?”
“경기도 파주에 창고가 하나 있습니다. 전화 상대는 주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파주 어디?”
형사가 스마트폰에 지도를 띄워 보여주었다.
“여기입니다.”
“공장이거나 아니면 그 불량 나사를 쌓아둔 곳이겠군.”
선우현이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작게 말했다.
“수선아. 주소나 지도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 봤냐?”
탐사대 지원위성에 딱 하나 남은 관측 카메라는 대상 범위를 좁히면 영상의 정밀도가 올라간다.
- 이미 저 형사들만 집중해서 보는 중입니다. 스마트폰 화면이 위쪽을 향할 때 지도를 봤습니다.
“그 창고 위치는?”
- 확인했습니다.
팀장에 형사에게 말했다.
“여기는 슬슬 정리하고 거기로 이동하자.”
“알겠습니다.”
***
선우현이 경기도 한적한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렸다.
그는 CCTV가 없는 일반 도로만 이용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꼭 그렇게 달려야만 합니까?
“수선아. 내가 스트라이크 바이크를 몰고 오염지역에서 작전을 뛰던 사람이야. 포장도로에서 겨우 100km 가지고 뭘 그래?”
- 그 오토바이는 스트라이크 바이크가 아닙니다만?
“오염지역 전술 침투용은 주행 안정장치가 없으니까 운전하는 건 대충 비슷해.”
- 성능 자체가 다르죠. 그 오토바이는 사고 위험이….
김수선이 갑자기 경고했다.
- 전방에 급커브!
선우현이 급감속하며 커브를 돌았다. 타이어가 도로 위에 검은색 선을 그렸다.
- 선장님. 그 도로는 표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그런 오토바이로 커브를 돌다가 돌이라도 밟으면 훅 갑니다. 속도를 줄이십시오.
선우현은 커브를 통과한 후에 다시 가속했다.
“봐라. 내가 이렇게 잘 몬다.”
- 줄이라고요.
“알았어.”
- 그리고 선장님이 안전하게 모는 게 아닙니다. 앞쪽 도로의 위험 상황을 열심히 체크해서 알려주는 제 덕분에 사고가 안 나는 겁니다만?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갑자기 세웠다. 오토바이가 도로 위를 조금 미끄러지다가 정지했다.
“도착했으니까 잔소리는 거기까지.”
100m쯤 앞, 길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창고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물었다.
“수선아. 저 주변에 사람이 보이냐?”
- 창고 외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 건물에는?”
“실내는 안 보여서 알 수 없습니다만.”
김수선은 지원위성에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지붕이 있는 건물 내부는 볼 수 없다.
“창고 뒤쪽에 차량이 세 대 주차되어 있습니다. 승용차 두 대. 승합차 한 대입니다.”
“그럼 저 안에는 이번 일을 물어볼 사람이 최소한 세 명은 있겠네.”
선우현이 오토바이는 세워두고 창고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창고 문은 닫혀 있기는 했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선우현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손을 내밀다가 멈췄다. 창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흥미로웠다.
“창수 너 이 새끼! 머리 좀 굴릴 줄 안다고 챙겨줬더니, 네가 배신을 해?”
“아, 아닙…. 커억!”
“너 아니면 누가 배신을 했다는 거냐! 너밖에 없어! 뒈져!”
“으아악!”
- 선장님. 사람의 비명이 들립니다.
“자기들끼리 싸움이 났나 보다.”
그가 두 손으로 창고 문을 활짝 열었다.
창고 안에서 조충식이 이창수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이창수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피를 흘렸다. 너무 맞아서 도망은커녕 바닥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다른 부하들은 옆에서 긴장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선우현이 문을 활짝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충식과 부하들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선우현을 돌아보았다.
조충식이 화를 냈다.
“저 새끼 뭐야?”
선우현은 바닥에서 피를 흘리는 이창수를 보며 말했다.
“수선아. 저놈 써먹을 수 있겠는데?”
- 어떤 놈 말입니까?
“몇 대 더 맞으면 죽을 것 같은 놈이 있어. 패던 놈이 떠들던 소리를 보면 부하 같은데, 살려주려고.”
- 레드 포션을 그런 놈한테 낭비하실 겁니까?
“그걸 왜 저런 놈한테 써? 아깝게 그럴 리가 없잖아. 살려만 줄 거야.”
조충식은 선우현이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그의 뒤쪽부터 확인했다.
‘형사라면 경찰차가 보이거나, 아니면 여러 명이 같이 들어오기라도 해야 하는데?’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타난 사람은 선우현 혼자였다.
조충식이 인상을 썼다.
“야. 헬멧. 너 뭐야? 배달시킨 것도 없는데 어디서 왔어?”
선우현은 오토바이용 풀페이스 헬멧을 쓴 상태다. 그래서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선우현이 바닥에 쓰러진 이창수에게 말했다.
“창수야. 너 그러다 죽겠다?”
이창수의 이름은 창고 문 앞에서 들었다. 그래서 불러봤는데 두목은 다르게 이해했다.
“이 새끼를 구하러 왔구나? 역시 한패가 있었어! 이 배신자 새끼!”
“원래는 너희들 짓인지 친절하게 물어본 후에 패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 상황은 싸구려 나사나 팔아먹는 사기꾼들이 하는 짓이 아니다. 오히려 조직에서 배신자를 처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선우현이 말했다.
“일단 패고 나서 물어봐도 되겠네.”
조충식은 그 말을 듣고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부하들이 천천히 좌우로 흩어져 선우현을 포위하려고 했다.
조충식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물었다.
“혼자 왔냐?”
선우현이 말했다.
“왜 이런 새끼들은 매번 묻는 게 혼자 왔냐일까?”
- 그래야 만만하니까요.
“아. 내가 만만해 보이는 거구나. 열 받네.”
조충식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혼자서 창수를 구하려고 왔으니까 설마 싸우려는 건 아닐 테고.”
그게 조충식의 상식이다.
“그럼 나에게 제시할 게 있겠군. 뭐지? 돈이냐? 약이냐? 아니면 다른 조직의 메시지냐? 뭐가 됐든 나를 만족시켜 봐라.”
“돈이나 약보다 더 좋은 거 있어. 만족할 거야.”
“그래? 뭔지 기대되는군.”
선우현이 창고 문을 닫으며 말했다.
“살려줄게.”
조충식은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뒤늦게 말뜻을 깨달았다.
“이 새끼가 뒈지고 싶어서 찾아왔구나!”
“거 살려준다니까 왜 죽는다는 소리나 하고 있냐?”
조충식이 부하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해? 조져!”
앞쪽에 있는 놈들이 잭나이프를 뽑았다.
선우현이 그걸 보며 말했다.
“수선아. 저놈들이 칼을 꺼냈다.”
- 감히 우리 우주왕복선 사업에 고춧가루를 뿌린 놈들입니다. 일단 쓸어버리십시오. 물어보거나 따지는 건 그 후에 해도 됩니다.
“당연하지.”
- 물론 그놈들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긴 있습니다만.
“그런 건 쓸어버린 후에 생각하자고.”
- 당연하죠.
선우현은 혼자 이 창고에 들어왔다.
조충식의 부하 중 몇 명은 생각이란 걸 할 줄 알았다.
‘믿는 게 있으니까 혼자 왔겠지?’
그걸 깨달은 놈들은 방심하지 않았다.
‘일단 간을 보면서 조심하는 게 좋겠지.’
그렇다고 자기들이 진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좀 다른 생각을 하는 놈도 있었다. 그는 두목 조충식에게 잘 보이려고 다른 놈들보다 먼저 선우현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선우현을 공격하면 잠깐은 일대일 상황이 된다.
그놈이 머리를 굴렸다.
‘내가 앞에서 대충 견제하면서 시간을 끌면, 다른 놈들이 저놈을 뒤에서 치겠지. 그런 그림을 만들어야 내가 제일 돋보여.’
계산을 끝낸 놈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선우현이 서 있는 방향으로 칼을 가볍게 흔들었다. 아직 5m는 떨어져 있어서 칼이 닿지 않았다.
그놈은 입으로 소리를 내서 선우현을 위협하려고 했다.
“쉭쉭.”
선우현이 딱 한 걸음 앞으로 걸었다. 겨우 한 걸음 걸었을 뿐인데 둘 사이의 거리가 사라졌다.
그놈은 당황했다.
“어?”
선우현이 그놈의 팔을 덥석 잡았다.
“이거 입으로 싸우는 놈이네.”
그놈이 급히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선우현이 붙잡은 팔을 확 잡아당겼다.
“끄아악!”
어깨가 덜컥 빠졌다. 몸이 앞으로 쭉 끌려갔다. 순식간에 중심을 잃었다.
그놈의 몸이 앞으로 넘어갔다.
선우현이 끌어당긴 팔을 놓고 몸통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놈의 허리가 옆으로 덜컥 꺾였다.
“케에엑!”
그놈은 옆으로 쭉 날아가다가 창고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떨어진 후에도 바닥을 미끄러지다가 한쪽에 쌓아둔 상자에 충돌했다.
그놈은 창고 바닥에서 몸을 움찔거리기만 할 뿐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오른팔은 어깨부터 비틀려 있었다.
창고 안에 정적이 흘렀다.
조충식의 부하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선우현 쪽으로 움직이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선우현이 그놈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쫄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