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사고 설계
경찰은 한강공원 철탑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을 조사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교차 검증했다.
장도철 교수 같은 전문가들도 자문을 통해 수사를 도왔다.
탑을 만든 회사의 이사는 버티지 못하고 자백했다.
“사실은 저희가 원가절감을 좀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쪽 업계에서 다들 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불량 나사로 바꿔치기하셨다?”
“아이고. 그건 아닙니다. 원가절감은 설계 변경을 통해 안전하게 했습니다.”
“안전하게 했는데 왜 무너집니까?”
“저도 그게 이해가 잘….”
그 이사가 문제점을 다 털어놓은 건 아니지만 쓸만한 정보를 제법 내놓았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사건 담당 형사팀의 팀장이 서장에게 보고했다.
“전망대 탑의 최초 도면과 실제 제작 도면이 좀 다릅니다.”
“왜 차이가 나는 건데?”
“그 회사 이사 말로는 원가절감을 했답니다.”
“한심하네. 원가절감을 얼마나 많이 했으면 전망대를 공개한 당일에 무너지냐.”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나사는? 나사가 많이 부러졌다며?”
“대형 나사는 두 회사의 제품이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형태만 비슷하지 품질은 완전히 다릅니다.”
“부러진 쪽이 안 좋은 거지?”
“예.”
“그 나사도 원가절감 때문에 구매했대?”
“그건 아니라는데, 지금 담당자를 조사 중입니다.”
***
자재 구매 담당자가 고개를 열심히 옆으로 흔들었다.
“아닙니다. 그건 진짜 아닙니다.”
“아니긴요. 이미 품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게 밝혀졌는데. 선생님. 자꾸 이렇게 나오면 형량 세게 맞을 수 있습니다.”
담당자가 손까지 흔들었다.
“진짜 아닙니다. 철근도 아니고 겨우 볼트랑 너트에서 무슨 대단한 이익이 남겠습니까?”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남긴 남을 거 아닙니까?”
“아파트나 대규모 공사도 아니고 겨우 철탑 두 개 만드는 겁니다. 나사는 진짜 돈이 안 됩니다.”
“그럼 왜 그 나사를 산 겁니까? 알아보니까 일반 자재상에서 파는 게 아니던데요.”
담당자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냥, 자기네 볼트와 너트를 유명 조형물을 만드는 데 썼다고 홍보하겠다고 해서, 그래서 그냥….”
“그래서 뒷돈을 받으셨다?”
“뒷돈까지는 아니고요. 나사 회사에서 고맙다고 그냥….”
“그냥 교도소 가면 되겠네.”
“헉! 형사님. 그냥 술이나 한 잔 얻어 마신 것뿐입니다!”
형사가 물었다.
“그럼 다른 탑은?”
“예?”
“한쪽 탑은 불량 나사를 썼는데, 다른 쪽 탑은 왜 튼튼한 나사를 썼습니까?”
“아.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서남기공에서 만든 나사를 유명 조형물을 만드는 데 써달라고 해서….”
“거기서도 뒷돈을 받으셨고?”
“거긴 진짜 아닙니다. JHC 테크 영업팀에서 싸게 줄 테니까 좀 써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회사가 JHC의 기술을 쓰는 게 있어서 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간단한 부탁이니까 그냥 써준 것뿐입니다.”
“잠깐만요. JHC?”
그 형사는 예전 사건에서 JHC 테크의 이름이 들은 적이 있다.
형사가 감탄했다.
“이야아. 기술 전문 회사에서 개발한 건 나사 하나까지 다르구나.”
“예?”
“두 번째 탑이 못 버텼으면 그 다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15m 높이에서 추락하고 머리 위로 철탑까지 무너지면 살기 어렵잖습니까?”
“헉!”
“모르셨구나. 그 회사 나사가 여러 사람 살렸는데.”
구매 담당자의 표정이 좀 밝아졌다.
“그럼 저는 이제 괜찮은 거지요? 제가 JHC의 부탁을 들어준 덕분에 인명피해를 막은 거잖습니까?”
“그거는 그거고. 이럴 줄 알고 그 나사를 산 건 아니잖습니까?”
“그야….”
형사가 서류를 확인했다.
“선생님네 회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나사는 제값 주고 사셨더군요. 그런데 방금 JHC의 주선으로 나사를 싸게 샀다고 했지요?”
“예?”
“차액은 어디 갔을까요?”
“아, 아니, 그게….”
“다 알고 묻는 거니까, 전부 털어놓으시죠?”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되겠습니까?”
***
선우현이 옥탑방 앞 옥상에서 고민했다.
“탑이 무너졌으니까 나사 제작 기술은 망한 거 같다. 탐사대 지원 기술 중에서 다른 걸 찾아보자.”
- 이번에 이렇게 망쳤는데 현지 협력자가 다음번에도 기술 판매에 협조할까요?
“어…. 글쎄?”
- 직접 만나서 말해보시죠. 현지 협력자의 차량이 건물 밑에 도착했습니다.
“따지러 왔나 보다. 이번 일로 JHC도 이미지에 손해 좀 보겠지.”
- 어떻게 해결하실 겁니까?
“토마토라도 한 상자 줄까? 좋아하잖아.”
- 겨우 토마토로 때울 상황은 아닌 듯합니다만?
“지금 수확된 과일이 이것밖에 없어. 이럴 줄 알았으면 사과도 키워볼걸. 사과 박스에 담게.”
- 사과나무가 수확 가능한 크기로 자라려면 급속성장촉진제를 써도 오래 걸릴 겁니다. 게다가 옥상 화분에 심을 크기도 아닙니다.
“그럼 딸기라도.”
최종훈이 옥상으로 올라오는 문을 두드리면서 대화가 중단됐다.
최종훈은 옥상에 들어오자마자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우현 씨! 전화가 안 돼서 찾아왔습니다. 뉴스 보셨지요?”
선우현의 휴대폰은 어제부터 일부러 꺼놨다. 최종훈이 전화로 따질까 봐 한 일이다.
선우현이 얼른 말을 돌렸다.
“진정하세요. 어떻게, 토마토 주스라도 드릴까?”
“그건 언제나 좋지요!”
최종훈은 여기 오면 토마토 주스를 종종 얻어 마셨다.
그는 선우현에게 그와 동생의 몫의 활력 토마토를 따로 얻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얻어먹으면 따로 얻어간 토마토는 하나가 남는다.
선우현이 믹서기에 토마토를 두 개 넣고 갈아서 주스를 만들어주었다. 평소엔 한 개만 넣는데 오늘은 찔리는 게 있어서 두 개를 넣었다.
최종훈의 눈이 커졌다.
“어? 두 개나!”
“다른 첨가물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완전 생과일주스입니다. 쭉 드시죠.”
“잘 먹겠습니다.”
최종훈은 신나서 활력 토마토 주스를 마셨다.
맛있었다.
이걸 먹으면 몸에 활력이 생긴다. 두 개를 먹는다고 두 배의 활력이 생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있어서 좋았다.
“캬아. 맛이 역시 끝내줍니다.”
선우현이 한술 더 떴다.
“한 상자 드릴까요?”
“헉! 한 상자나!”
“상자가 별로 안 큽니다. 한 열 개 들어가나?”
“열 개나!”
선우현이 씩 웃었다. 그가 주스를 마시는 최종훈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수선아. 봤냐? 토마토가 통한다.”
- 현지 협력자가 현실도피를 하는 거 같습니다. 이상하게 실실 웃고 있습니다.
최종훈이 토마토 주스를 아껴 마시며 물었다.
“뉴스 보셨지요?”
“어…. 안 봤습니다. 당분간 뉴스 안 보려고요.”
“꼭 보셔야지 왜 그러십니까?”
최종훈이 리모컨을 집어 옥상에 꺼내놓은 TV를 켰다. 드라마가 나왔다.
“그런 거 그만 보고, 여기 와서 토마토나 골라서 따시죠.”
“먼저 이건 보셔야죠.”
최종훈이 스마트폰을 TV에 무선으로 연결해 뉴스 영상을 재생했다.
뉴스에서 기자가 대형 볼트를 하나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바로 이 나사가 달라서 한강공원 전망탑 중 하나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JHC 테크에서 개발한 우수한 품질의 이 나사는 가격도 저렴….]
최종훈이 TV를 껐다.
“아니다. 뉴스 안 보시겠다고 했지. 그럼 토마토를 딸까요?”
선우현이 말했다.
“아니, TV를 왜 끕니까?”
“예? 방금 끄라고….”
선우현이 얼른 TV를 다시 켰다.
“최 사장님은 그만 보라고 한 겁니다. 난 계속 볼 겁니다. 얼른 영상 다시 연결하시죠?”
최종훈이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TV에 다시 뉴스 영상이 나왔다.
기자가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그림과 표로 정리해서 설명했다.
[이쪽 탑은 불량 나사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공개 첫날 무너졌지요.]
기자가 그 옆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쪽 탑에는 다른 회사의 고품질 나사가 사용됐습니다. 탑의 설계는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었는데도, 이 나사가 버텨준 덕분에 참사를 피했습니다. 이 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멀쩡히 서 있습니다.]
전문가도 나와서 나사의 품질을 설명했다. 그는 아예 나사가 박혔던 철판을 보여주었다.
[여기를 확대해 보면 말입니다. 탑 구조물의 변형이 보이는데도 이 나사는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선우현이 그 뉴스를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개발한 나사가 워낙 우수해서, 그 덕분에 한쪽 탑이 안 무너졌다는 거네요? 그래서 사람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 수 있었고요.”
조용히 듣고만 있던 김수선이 얼른 끼어들었다.
- 선장님. 우리가 개발한 나사입니다.
“반면에 무너진 탑에 사용된 나사는 나랑은 상관없는 다른 회사에서 만든 거고요?”
최종훈이 대답했다.
“그렇죠. 아. 진짜 뉴스 안 보셨….”
선우현의 표정이 활짝 폈다.
“당연히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하하하.”
- 우리가 개발한 나사니까요! 저도 믿고 있었습니다!
최종훈도 맞장구를 쳤다.
“저도 당연히 우리 회사 잘못은 아닐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왜 두 탑에 서로 다른 회사의 나사를 쓴 겁니까?”
“제가 뉴스를 보고 여기로 오면서, 연줄을 동원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봤습니다.”
이 사건은 이미 조사 결과가 뉴스를 통해 공개됐다. 그래서 추가 정보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저 탑을 만들 때 비리가 좀 있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무너진 탑에 사용된 나사는, 뒷돈을 받고 쓴 거지요.”
“우리 나사는요? JHC에서 뒷돈을 준 겁니까?”
“아니요. 우리건 그냥 싸서 썼다던데요. 대신에 장부를 약간 조작해서 담당자가 차액을 횡령했습니다. 얼마 되지는 않아서 술값으로 썼다더군요.”
“아…. 나사를 싸게 파셨구나.”
“아니, 그게, 선우현 씨가 개발한 기술 덕분에 생산 단가가 낮잖습니까? 하, 하하.”
선우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최종훈이 얼른 설명을 추가했다.
“사실 처음 파는 거라서 할인 특가에 풀기는 했습니다. 앞으로는 제값을 받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요.”
선우현이 TV 화면을 가리켰다.
“저런 작은 철탑 하나에 들어가는 볼트와 너트의 양이 얼마나 된다고, 뒷돈까지 주면서 납품했나 싶어서요.”
“아. 그 회사에서는 홍보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더군요.”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아닌데 그게 홍보가 됩니까?”
“어… 사실 우리 회사에서는 딱히 홍보 효과를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판매 실적이 필요해서 밀어붙인 건데….”
선우현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이상했다.
“저 불량 나사는 어디서 납품한 건지 아십니까?”
최종훈이 스마트폰을 집었다.
“그쯤이야 전화 한 통이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수사 관계자한테 직접 물어보시게요?”
“아니요. 우리 김 비서가 그런 거 잘합니다.”
김찬혁이 전화를 받았다.
- 예. 사장님.
“그 불량 나사 말이야. 어디서 납품했는지 알지?”
- 네? 제가요?
“모르면 비서실 움직여서 알아와.”
- 넵!
최종훈이 전화를 끊었다.
선우현은 노트북으로 뉴스 기사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선우현 씨. 그럼 토마토 한 박스는….”
“어? 아….”
선우현은 찔리는 게 있어서 토마토를 한 상자 준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찔릴 게 없어졌다.
최종훈이 얼른 말했다.
“제가 알아서 따겠습니다! 어휴. 잘 익은 게 많네요!”
***
조충식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젠장.”
TV에서 한강공원 철탑 소식이 잠깐 나오다가, 금방 다른 뉴스로 넘어갔다.
“철탑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졌으면 당연히 인명사고가 났어야 하는데, 아무도 죽지도 다치지도 않았단 말이야.”
조충식이 눈동자를 번뜩이며 부하에게 물었다.
“내가 저 탑이 적당한 때에 무너지게 하려고 돈을 그렇게 많이 쓰고 준비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다들 멀쩡하지?”
“그게….”
“왜 다친 놈조차 없어? 너는 도대체 일을 어떻게 꾸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