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탑 차이 II
최종훈은 옥탑방 옥상에 도착한 후에 토마토가 심어진 곳부터 살폈다.
‘새로 열린 게 많아야 얻어먹을 것도 있…. 어?’
옥상의 모습이 어제 오전과 달랐다. 토마토 화분이 두 배로 늘어났다.
“우와아. 이게 다 뭡니까?”
“토마토요.”
새 화분에서는 이미 줄기가 올라오고 잎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이걸 언제 이렇게 키운 겁니까?
평범한 토마토는 설사 모종을 심어도 하루 만에 이렇게 자랄 수는 없다.
최종훈은 활력 토마토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열매가 자라고 금방 빨갛게 익는다는 건 안다.
최종훈은 토마토 열매가 빨리 크는 건 선우현이 만든 특별한 식물 영양제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는 이미 레드 포션의 기적적인 효과를 몸으로 경험했다. 그래서 열매가 빨리 맺히는 것 정도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농사 상식이 없어도 씨앗이나 모종이 하룻밤 사이에 이 정도로 클 수 없다는 건 안다. 그가 아는 식물 중에 그렇게 자라는 건 죽순밖에 없다.
그래서 최종훈은 합리적인 추측을 했다.
“어디 다른 곳에서 키우다 옥상으로 옮기셨나?”
선우현이 말했다.
“정성을 담아 키웠더니 빨리 자라더군요.”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급속성장촉진제의 어디에 선장님의 정성이 들어 있습니까? 제가 여기서 만들었는데요.
“내가 여기서 응원했잖아.”
- 도움이 참 많이 됐겠습니다.
최종훈이 웃었다.
“하하하. 어떻게 정성만으로 이렇게 자라겠습니까?”
선우현이 대충 둘러댔다.
“그렇죠? 사실 4층이 비었길래 거기 창가에서 좀 키우다가 가져온 겁니다.”
최종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건물은 4층이 통째로 비어 있지요.”
최종훈은 기존에 심어 이미 잘 익은 토마토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 곧 토마토 생산량이 두 배로 늘겠는데요? 그럼 두 배로 많이 팔 수 있을 겁니다. 공급이 부족해서 문제지 수요는 완전히 아우성 상태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많이 재배하면 여유분이 더 생기지 않을까 하는데요.”
선우현이 말했다.
“그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남는 거 많으니까 그냥 드시죠? 찬혁 씨도요.”
뒤쪽에 서 있던 김찬혁이 얼른 다가왔다.
“잘 먹겠습니다!”
그는 빨간 토마토를 모두 확인한 후에 제일 잘 익은 것을 땄다.
“맛있겠다.”
최종훈이 손을 쓱 내밀었다.
“줘.”
“사장님?”
“억울하면 네가 사장 하던가.”
“드리겠습니다.”
김찬혁이 그 토마토는 넘겨주고 두 번째로 잘 익은 토마토를 땄다. 어차피 차이는 거의 없었다.
최종훈이 토마토를 옷에 쓱쓱 닦은 후에 깨물었다.
“아. 이건 정말 먹을 때마다 놀랄 정도로 맛있습니다.”
먹어보면 토마토의 맛과 식감은 맞는데, 최고급 열대 과일을 현지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었다.
게다가 이 토마토는 먹을 때마다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활력 토마토를 맛을 음미하며 먹는 최종훈에게 선우현이 말했다.
“우리가 제작 기술을 제공해 생산한 나사 말입니다.”
“예. 동서남기공에서 여러 규격으로 팔고 있다더군요. 일반 나사 형태는 물론이고, 좀 큰 볼트와 너트도 공급하고 있습니다. 예술작품인 한강 전망대 철탑에 그 볼트가 들어갔죠. 하하하.”
선우현은 최종훈이 웃는 걸 보며 혹시나 해서 물었다.
“어제 공원에서 그 철탑이 무너진 사건 아시죠?”
최종훈의 표정이 굳었다.
“예?”
“모르셨구나.”
“제가 어제부터 오늘까지 출장을 다녀오느라 바빠서요.”
그가 김찬혁을 돌아보았다.
“왜 보고 안 했어?”
“저도 사장님 모시고 같이 다녀왔는데요?”
“아. 그렇지.”
“그럼 지금이라도 보셔야겠네.”
선우현이 옥상 탁자에 올려놓은 노트북에 뉴스 영상을 띄웠다.
최종훈이 영상을 보며 말했다.
“아. 저 탑이 만들자마자 무너졌군요. 그래도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다 괜찮은 건 아니죠. 저 탑을 만들 때 사용된 나사가 부러져서 무너졌다고 하니까요.”
“헉!”
최종훈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 나사는 무척 튼튼하다고 보고받았습니다.”
“그러게요. 제대로만 만들었으면 쉽게 부러질 리 없는데 말이죠.”
- 맞습니다. 탐사대 지원 기술이 어떤 기술인데요. 현지 협력자의 회사에서 뭔가 잘못했을 겁니다.
“역시 남 탓 잘하는 김수선.”
- 선장님 탓을 할까요?
“JHC가 잘못했을 거야.”
최종훈이 남은 토마토를 급히 입에 쑤셔 넣은 후에 말했다.
“회사로 돌아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겠습니다.”
***
최종훈이 차로 돌아갔다. 김찬혁이 먼저 뛰어내려와서 준비하고 있다가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사장님.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공짜 토마토는 앞으로 못 얻어먹을 수도 있다. 나는 그래도 먹을 게 남는데, 너는 국물도 없겠지?”
“헉! 회사로 빨리 가겠습니다!”
“신호는 지켜.”
최종훈은 영업 마케팅 담당인 김충식 본부장과 연구소 책임자인 이백현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본부장. 30분 뒤에 내 방에서 보자. 그때까지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해. 이 소장한테는 이미 말했어.”
***
30분 후에, 최종훈의 방에서 김충식 본부장이 툴툴댔다.
“그러니까 왜 겨우 나사 기술을 사장님이 직접 팔자고 밀어붙이셔서….”
최종훈이 물었다.
“너 지금 이게 내 탓이라는 거냐?”
김충식과 이백현은 최종훈과 셋만 있을 때는 임원회의 때보다 말을 편하게 한다. 회사 밖에서 사적으로 만날 때는 아예 호칭도 바뀐다.
그래도 지금처럼 눈치를 봐야 할 때는 말을 조금 조심하는 편이다.
“예? 어…. 아니죠. 품질 검증에 실패한 이백현 연구소장 탓이죠.”
이백현이 즉시 발끈했다.
“김충식 본부장. 이렇게 나올 거야?”
“억울하면 잘 좀 하지 그랬어.”
이백현이 최종훈을 보며 설명했다.
“우리가 그 나사를 테스트할 때는 분명히 품질이 우수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와?”
“그게 저도 이해가 잘….”
김충식이 실실 웃으며 압박했다.
“연구소에서 품질관리를 제대로 못 한 게 문제라는 거 인정하지?”
최종훈이 한마디 했다.
“넌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
김충식이 얼른 정색했다.
“아뇨.”
이백현은 최종훈이 그의 편을 들어주는 줄 알고 한마디 했다.
“그 나사 기술을 더 테스트하고 진행했어야 하는데 영업에서 너무 빨리 팔았습니다.”
최종훈이 인상을 썼다.
“내가 빨리 팔라고 했는데, 너도 내 탓이야?”
“네? 아뇨! 아니죠. 사장님 잘못이 아니라 그 나사를 개발한 사람 잘못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폐자재에서 부품 뜯어다가 이것저것 하는 이상한 사람이라던데….”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최종훈이 머리를 벅벅 긁은 후에 말했다.
“됐고. 이 소장은 그 공장에 사람 보내서 생산 제품 품질 검사부터 직접 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라고.”
“예.”
“김 본부장은 우리 쪽으로 피해가 오지 않게 언론 쪽을 신경 좀 쓰고.”
김충식 본부장이 활짝 웃으며 손을 비볐다.
“그거야 제 전문이죠. 흐흐.”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어? 아, 아닙니다.”
***
김충식 본부장은 그의 방에 돌아온 후에 실실 웃었다.
측근인 윤 이사가 물었다.
“본부장님. 좋은 일 있으십니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십니다?”
“좋은 일? 있지. 한강공원에서 무너진 철탑에 우리 기술로 만든 나사가 납품됐잖아. 그거 연구소에서 다 책임지게 생겼다.”
“역시 본부장님이십니다! 그걸 다 저쪽으로 던지셨군요!”
“이럴 때 실력 좀 보여줘서 저쪽 애들 기를 팍 죽여버리자. 우리 회사 이름은 기사에 안 나가게 연락 좀 돌려.”
“예!”
***
연구소는 초상집이었다.
이백현이 푸념했다.
“아…. 그래서 내가 우리 전문분야도 아닌 그런 잡다한 기술은 팔지 말자니까.”
이백현의 측근인 연구소 실장이 물었다.
“소장님. 이제 어떻게 하지요?”
“뭐라도 해봐야지. 동서남기공에 사람 보내서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알아봐.”
“그러다 우리 문제로 밝혀지면….”
“젠장. 김충식이 신날 거 생각하니 벌써 배가 아프다.”
***
사건 현장에서 조사 담당자들이 모였다. 테이블에는 탑에서 빼낸 볼트와 너트가 몇 개 놓여 있었다.
그중 일부는 부러진 상태였다.
“정밀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나사는 불량품입니다. 볼트의 품질이 규정보다 많이 약합니다.”
장도철 교수가 설명했다.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사고는 탑 설계의 구조적인 문제와 불량 나사가 겹쳐서 생긴 일입니다. 설계도 그렇고 자재도 그렇고, 일을 어떻게 이렇게 하는지. 나 원 참.”
이 사건 조사에는 공무원들도 참여했다. 관련 기관의 사무관이 질문했다.
“장 교수님. 그러면 위쪽에는 나사가 사건의 중요 원인이라고 보고해도 되겠습니까?”
“공식적인 발표에 필요한 데이터는 조사를 더 해야 정리될 겁니다. 지금은 미리 알고 계시라고 말한 겁니다. 하지만 뭐.”
장도철이 부러진 볼트를 하나 들었다.
“비공식적인 의견으로는 이런 불량 볼트를 썼는데 탑이 안 무너졌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사무관이 다른 철탑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탑은 왜 멀쩡합니까?”
철탑은 하나만 무너졌다. 다른 탑은 아직도 그대로 서 있었다.
“두 개의 탑이 똑같은 모양이고, 다리가 흔들릴 때 똑같이 충격을 받았을 텐데요.”
“똑같은 충격은 아닙니다.”
“아. 서 있는 탑은 충격을 덜 받은 거군요.”
“그 탑이 충격을 더 받았습니다.”
“네?”
“한쪽 탑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졌습니다. 저 탑은 무너진 탑이 원래 받았던 부담에, 다리가 끊어질 때의 충격을 추가로 더 받았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똑같은 모양에 충격은 더 많이 받았는데도 저 탑은 안 무너졌잖습니까?”
“그것도 나사가 원인입니다.”
“예? 그게 무슨….”
“저 탑은 예술적인 형태만 고려하느라 안정성이 개판입니다. 그 모든 부담을 볼트의 힘으로 버텨야 하는 구조라니.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만들었을 겁니다.”
장도철이 서 있는 탑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런데 저쪽 탑은 볼트가 그 충격을 버텨냈습니다. 볼트로 연결한 철 구조물에 변형이 생길 정도인데, 정작 볼트는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불량 나사인데 왜 그렇게 결과가 다릅니까?”
“제가 확인해봤는데, 같은 나사가 아니더군요.”
“예?”
장도철이 부러진 볼트와 멀쩡한 볼트를 하나씩 들어서 보여주었다. 같은 규격으로 만든 것이라 겉모습은 유사했다.
그래도 구분할 방법은 있었다.
“나사 머리에 새겨진 상표가 다릅니다.”
장도철이 오른손에 든 멀쩡한 볼트를 흔들었다. 그건 무너지지 않은 탑에서 나온 볼트였다.
“이 볼트는 생산한 곳이 다르다는 뜻이죠. 제가 알아봤더니, 이 멀쩡한 볼트는 동서남기공이란 회사에서 만들었더군요.”
“그러면 동서남기공의 그 나사는 정상 규격을 만족하는 품질이라는 겁니까?”
“정상이요? 그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우수하더군요. 동서남기공의 볼트의 품질은 요구 스펙을 한참 뛰어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충격을 다 버틴 거겠죠.”
다른 관계자가 손뼉을 쳤다.
“아. 그러니까 무너진 탑에는 불량 나사를 쓰고, 서 있는 탑에는 다른 업체에서 굉장히 좋은 나사를 따로 사다가 썼다는 거군요. 어…. 도대체 왜요?”
다들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부러 탑 하나만 무너트리려고 했을 리는 없을 텐데요.”
“저도 이해가 안 갑니다. 그 이유는 경찰에서 알아내겠죠.”
***
선우현이 옥상에서 말했다.
“우리 기술은 좋았는데 이상한 놈들이 나사 만들 때 수작을 부려서 불량품이 나온 거면 좋겠다.”
- 그러면 뭐가 좋습니까?
“그러면 남 탓을 할 수 있잖아. 그놈들을 찾아내서 나사랑 같이 묻어버리는 거지.”
- 역시 남 탓하는 건 선장님이 최고이십니다.
“나는 너 따라가려면 멀었지.”
- 저는 선장님을 보고 배웠습니다.
두 탑의 나사 제조사가 서로 다르다는 건 아직 뉴스에 나오지는 않았다. 경찰이 탑을 만든 회사를 상대로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우현과 김수선, 최종훈은 동서남기공이 만든 나사가 두 개의 탑에 다 사용된 줄 알고 있었다.
- JHC가 초기 생산품의 품질 테스트까지 했으니까, 최종훈 탓을 하면 되겠네요.
“에이. 그래도 현지 협력자를 묻어버리는 건 아니지.”
- 저는 묻어버리자고는 안 했는데요?
“와. 너 지금 나만 나쁜 놈 만드냐?”
- 어쨌든 선장님이 개발한 나사입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십시오.
“무슨 소리야? 우리가 개발한 나사잖아.”
***
한강공원에 두 개의 철탑을 만든 회사는 책임자부터 실무자, 그 탑을 처음 디자인한 예술가까지 줄줄이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 회사의 이사가 항의했다.
“어쨌든 아무도 안 다쳤잖습니까? 그럼 그냥 재산상의 손해만 좀 생긴 건데 이럴 것까지 있습니까?”
형사가 말했다.
“사망사고는 나지 않아서 체포되지 않은 겁니다. 어떤 용감한 분이 눈치채고 다 대피시켰으니까 아무도 안 죽은 거라고요. 조금만 늦었으면 스무 명 이상이 죽을 뻔했습니다.”
“어쨌든 아무도 안 죽었으니까….”
“뉴스에 크게 난 사건이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철저하게 조사 중입니다. 조사하다가 뭐라도 나오면 그것도 뉴스에 날 텐데, 그렇게 여유 부리셔도 되겠습니까?”
“예? 어, 아니 그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