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70화 (70/281)

70. 탑 차이

선우현은 철탑이 무너지기 전에 출렁다리에 올라가 사람들을 내려보냈다. 그래서 위험한 사고가 났는데도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기자들이 오기 전에 현장을 떠났다.

기자가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네요. 모르는 사람 이야기로 무슨 기사를 써야 하나.”

다른 기자가 슬쩍 끼어들었다.

“기사 처음 쓰시나. ‘사람들을 구해주고 홀연히 사라진 의문의 남자. 그는 누구인가.’ 같은 기사 쓰면 되잖아요.”

“그렇게 쓰는 방법도 아는데요. 직접 인터뷰하는 것만은 못해서 말이죠. 쩝.”

선우현은 기자들이 오기 전에 현장을 떠났지만, 아직 남아 있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인터뷰는 이 사고를 겪은 사람들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탈출한 그 고등학생 있잖아요. 그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요.”

부상자가 없다는 걸 다른 기자들에게 알려준 사람이 물었다.

“그런데 사고 원인이 뭐랍니까?”

다른 기자가 타박했다.

“날로 먹으려고 하시네. 어디서 오셨어요?”

“예?”

“그런 알짜배기 정보는 직접 알아내셔야지.”

기자는 당황했다.

“아니,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주고받은 이야기는 뭔데요? 난 부상자가 없다는 정보를 말해줬는데.”

“그거야 전화 한 통이면 쉽게 알 수 있는 거니까 서로 공유한 거고요.”

“와. 장난 아니십니다? 좋은 거 배웠습니다. 젠장.”

***

철탑 붕괴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여러 기관의 사람이 현장에 모였다. 서울 한복판 한강공원에서 일어난 사고라 외진 곳보다는 사람들이 빨리 모일 수 있었다.

조사단은 그날 낮에 활동을 시작했다.

외부 전문가로 참여한 장도철 교수가 철탑 잔해를 보며 말했다.

“철탑이 마치 수수깡으로 만든 것처럼 무너졌구나. 이렇게까지 부서지는 건 흔치 않은데 말이야.”

조교가 옆에서 물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애들 투입해.”

장도철이 데려온 대학원생들이 철탑 사진을 찍고 떨어져나온 잔해를 수집했다.

장도철은 관계기관에서 제공한 도면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대학원생이 가져온 조각들을 확인했다.

“부러진 볼트가 꽤 많은데?”

임시 회의가 시작됐다. 장도철 교수가 부러진 나사를 보여줬다.

“이 대형 볼트가 연달아 부러지면서 탑이 붕괴했을 겁니다.”

정부기관에서 나온 사람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그 정도는 저희도 잔해를 보고 확인했습니다.”

장도철이 도면을 짚었다.

“문제는 어디부터, 그리고 왜 부러졌냐이겠죠. 도면을 보면 여기 이 지점부터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

공원 관리공단에서 나온 사람이 얼른 말했다.

“맞습니다. CCTV를 확인해보면 탑이 정확히 거기서부터 꺾이더니 결국 무너졌습니다.”

그 CCTV 영상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장도철은 영상을 보지도 않고 무너진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 대충 찍은 게 아니라면 원인을 안다는 뜻이다.

정부기관에서 나온 담당자가 표정을 바꾸고 공손하게 물었다.

“교수님. 사고 원인이 뭘까요?”

장도철 교수가 도면의 여러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했다.

“이 탑은 처음부터 설계가 잘못됐어요. 대표적으로 여기, 여기. 이쪽으로 구조물의 무게가 쏠리는데, 여기 이 부분이 그 하중을 다 지탱해야 합니다.”

장도철은 설명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걸 왜 이렇게 지었대? 이게 허가가 나나?”

사람들이 허가권을 가진 구청 직원을 쳐다보았다.

구청 건축 담당자가 말했다.

“이건 일반 건축물이 아니라 공원에 설치한 일종의 예술작품입니다. 그래서 빌딩 같은 것과는 좀 다른 규정을 적용했습니다.”

“아무리 예술작품이라도 이런 사이즈면 구조 안전성은 확보하고 만들어야지요.”

“당연히 그러라고 업체에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만….”

다른 기관에서 나온 사람이 슬쩍 말을 던졌다.

“이거 그쪽 구청장님이 작정하고 추진하던 사업이라던데 말이죠.”

구청 직원이 두 손을 흔들었다.

“어휴. 아닙니다. 추진하신 건 맞지만, 그렇다고 대충 만든 건 절대 아닙니다.”

장도철이 도면 위의 출렁다리를 따라 손을 쭉 그으며 설명했다.

“이 다리 때문에 탑의 붕괴 시기가 빨라졌습니다. 이 다리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면서 하중이 쏠린 방향으로 힘이 더 들어갔을 테니까요. 올라간 사람들의 몸무게만큼 옆으로 당기는 효과가 추가된 거지요.”

구청 직원이 말했다.

“그건 출렁다리형 전망대인데, 튼튼히 만들었다고….”

“다리만 튼튼히 만들면 뭐합니까? 일단 여기 올라간 사람들은 당연히 움직였겠죠?”

CCTV를 미리 확인한 관리공단 직원이 얼른 말했다.

“예. 재미있다고 뛴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올라가서 움직이면, 그 반동이 탑에 전달됩니다. 이번처럼 운이 나쁘면 그 반동이 중첩되죠. 그러면 안 그래도 무게가 쏠린 쪽에 더 큰 부하가 걸립니다.”

장도철이 탑이 처음 꺾인 중간 부분을 가리켰다.

“그러다 결국 이 부분을 결속한 대형 볼트부터 부러졌을 겁니다. 일단 하나가 부러지면 남은 나사들은 더 힘을 받고, 그렇게 뚝뚝 부러지다가 탑이 무너졌겠죠.”

정부기관에서 나온 담당자가 물었다.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은, 나사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탑 설계가 엉망이었다는 말씀이시죠?”

“당연히 그게 첫 번째 원인입니다. 음.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장도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계산을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구조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탑이 너무 일찍 무너졌어요. 오늘이 일반에게 공개한 첫날인데 벌써 부러지는 건 좀 이상합니다.”

“그러면 두 번째 원인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볼트의 품질에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확인해야 합니다.”

“나사를 회수해 즉시 검사하겠습니다.”

***

선우현은 옥탑방 옥상에서 라면을 끓였다.

바로 앞에는 옥탑방에서 꺼내온 TV가 켜져 있었다.

TV에는 공원 탑 붕괴 사고가 나오고 있었다.

기자가 현장에서 말했다.

[영상에서 보시는 용감한 시민이 탑의 붕괴를 일찍 눈치채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구출했습니다.]

어제 선우현이 사람들을 구출하는 모습을 직접 촬영한 사람은 없었다.

그 탑은 워낙 순식간에 무너지고 다리도 끊어졌다.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순간에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찍는 사람은 적어도 그곳에는 없었다.

선우현이 다른 탑에서 나왔을 때, 대놓고 스마트폰을 들이댈 정도로 예의가 없는 사람도 그곳에는 없었다.

선우현이 아니었으면 철탑 붕괴 사고에 휘말려 죽을 뻔했던 걸 알기 때문에, 다들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선우현은 잠깐 그곳에 머문 후에 떠났다. 그래서 나중에 그의 모습을 찍을 수도 없었다.

대신에 멀리서 공원 전체를 감시하는 CCTV에는 당시 상황이 처음부터 끝까지 찍혔다.

그 영상은 너무 멀리서 찍혀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선우현이 어떻게 탑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내보냈는지, 그리고 탑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볼 수 있었다.

[보시는 것처럼 이 시민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사람들을 탑에서 내보냈습니다. 심지어 탑 사이를 연결한 다리가 끊어질 때도 남아 있다가, 같이 있던 고등학생을 구출했습니다.]

선우현이 라면을 먹으며 말했다.

“수선아. 봐라. 저게 나다.”

- 유기물 재처리 합성장치를 수리하느라 바빠서 그런 거 볼 시간 없습니다. 수리 자재만 넉넉했어도 벌써 끝났을 텐데 말이죠.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사고 원인에 대한 뉴스도 나왔다. 기자가 부러진 나사 하나를 들고 있었다.

- 탑의 구조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렇게 빨리 붕괴한 건 이 나사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부러진 나사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관계기관에서는 무너진 탑에 사용된 나사의 품질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선우현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 나사 기술 라이센스 판매 사업은 첫 단추부터 완전히 망했나 보다. 수선아. 너한테 우주왕복선을 보내려면 오래 기다려야겠는데?”

- 선장님?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

사고 원인 분석 회의가 끝난 후에, 장도철 교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무너지지 않은 철탑 쪽으로 이동했다.

조교가 말했다.

“교수님. 좀 전에 멋있으셨습니다. 다들 교수님 말만 듣고 있던데요?”

“이런 탑의 구조 분석은 내가 전문가니까 그런 반응이야 당연하지.”

“그런데 왜 표정이 그러십니까?”

장도철이 인상을 쓰며 탑을 올려다보았다.

“저 탑은 무너졌는데 이 탑은 왜 안 무너졌을까?”

“설계가 다른 거 아닐까요?”

“설계도는 두 탑이 완전히 똑같아. 내가 이미 확인했어.”

“그러면 이쪽 탑도 똑같은 하중을 받았겠는데요?”

“아니야. 이쪽이 조건이 더 나빴어.”

“예?”

“저쪽 탑이 무너지는 순간에는 말이야. 이쪽 탑은 출렁다리가 끊어질 정도로 강한 힘을 옆으로 받았어. 탑을 무너뜨리려는 힘을 저쪽보다 더 강하게 받았단 말이야.”

“그러면 이 탑도 당연히 무너져야….”

“그렇지. 그런데 안 무너졌잖아.”

“어…. 탑을 만든 회사가 다른가요?”

“한 회사가 두 개의 탑을 다 만들었더라.”

“그럼 왜….”

“두 탑에 뭔가 중요한 차이점이 있겠지. 안 그러면 말이 안 되거든.”

옆에서 대학원생이 의견을 내놓았다.

“혹시 자재나 부품을 다른 걸 쓴 건 아닐까요? 이쪽 탑은 나사, 그러니까 볼트와 너트 같은 걸 다른 제품을 썼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올라가서 뭐가 다른지 하나하나 직접 확인해보자.”

***

선우현이 말했다.

“나사 기술은 망했으니까, 일단 토마토를 키우는 화분을 두 배로 늘려야겠어.”

- 갑자기요?

“철탑이 무너졌으니까 나사 기술 판매 사업은 어려워질 거야. 그러면 다른 수입이라도 늘려야지.”

- 얼른 화분과 흙부터 사십시오.

“그거야 파는 곳이 많으니까 당장 나가서 사 올 수 있어. 그런데 식물용 급속성장촉진제도 더 있어야 해.”

급속성장촉진제를 쓰면 식물을 고속으로 성장시키고 열매도 빨리 맺게 한다.

그런데 그 촉진제는 탐사대 지원위성에서만 만들 수 있다. 만들 때 레드 포션도 소량이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그 촉진제를 만들려면 지원위성에 있는 유기물 재처리 합성장치를 사용해야 한다.

“재처리 합성장치 상태는 어때?”

- 아직 수리 중이라 효율이 평소보다 낮습니다. 그리고 촉진제는 아직 남아 있잖습니까?

“당장 쓸 건 있긴 있지. 그런데 화분을 두 배로 늘리면 소모량도 두 배가 되잖아. 곧 더 필요해질 거야.”

- 그런데 선장님. 나사 기술을 접으려면 일단 현지 협력자와 의논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 사장님은 오늘 출장 간다더라. 그래서 내일 연락하려고. 어차피 망했는데 서두를 거 없잖아.”

***

이튿날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이 선우현의 전화를 받았다.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하자는 전화였다.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야지요. 그럼요.”

최종훈이 전화를 끊었다.

“선우현 씨 집으로 가자. 임원회의는 연기해.”

비서 김찬혁은 최종훈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최종훈이 다리 부상의 후유증을 어떻게 벗어났는지 몰랐다. 최종훈이 레드 포션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찬혁이 물었다.

“사장님은 바쁘시잖습니까? 선우현 씨는 평소에 시간이 많아 보이던데요. 그러니까 선우현 씨한테 회사로 오라고 하셔도 될 텐데요.”

“에이. 그래도 내가 가야지.”

“왜 이렇게 급하게, 그것도 집으로 찾아가신다는 겁니까?”

“활력 토마토 하나 더 먹으려고.”

“아!”

김찬혁도 옥탑방 옥상에 갔을 때 몇 번 얻어먹어 봤다. 그걸 먹으면 몸에 활력이 생겼다. 그런 날은 여자친구도 좋아했다.

게다가 여자친구도 김찬혁이 가져온 활력 토마토를 먹어보고 맛있다며 정말 좋아했다. 다만, 한 개의 가격을 듣고는 또 먹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김찬혁이 입맛을 다셨다.

“사장님. 오늘은 저도 같이 옥상으로 올라갈까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김찬혁은 최종훈의 최측근이다. 같이 어울려 다니는 시간이 많아 개인적으로도 친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옥탑방 옥상에 가자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가라.”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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