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탑 II
젊은 운동선수 김인혁은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졌다.
눈앞에서 철탑의 중간이 꺾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 철탑과 연결된 출렁다리 위에 있다.
김인혁은 공포에 질렸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김수선이 경고했다.
- 선장님! 다리가 끊어집니다! 이젠 그냥 뛰세요!
선우현이 두 사람을 양손으로 붙잡고 출렁다리를 달렸다.
두 개의 철탑과 그사이에 놓인 출렁다리는 예술가가 디자인하고 전문업체가 그 디자인을 바탕으로 설계해 만들었다.
출렁다리는 수십 개의 블록을 강철 와이어가 아니라 금속 고리 같은 부품으로 연결해 만들었다. 그것도 예술가가 선택한 디자인이다.
그 다리는 사람 몇십 명이 올라가는 정도로는 끊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설계상의 스펙은 그랬다.
하지만 업체가 그 출렁다리를 설계할 때 고려한 것 중에는 철탑 자체가 붕괴하는 상황은 없었다.
출렁다리의 각 블록을 연결한 금속 부품에서 쇠가 비틀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출렁다리 자체도 팽팽하게 당겨졌다.
김수선이 빠른 목소리로 보고했다.
- 탑이 무너집니다! 그 출렁다리로는 충격을 못 버팁니다!
선우현도 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끌고 뛰었다. 반대쪽 탑은 바로 앞에 있었다.
선우현이 왼손으로 멱살을 잡은 여자부터 앞으로 밀었다. 그녀는 철탑의 출입구 안으로 밀려가 넘어졌다.
“꺅!”
김인혁은 선우현의 뒤쪽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탑이 무너진다!”
뒤쪽 탑의 중간 부분이 꺾이다 못해 기어이 부러졌다. 부러진 부분이 옆으로 넘어가며 탑 자체가 무너졌다.
출렁다리는 금속으로 만들긴 했지만, 무너지는 철탑의 막대한 중량을 버틸 힘은 없었다.
다리를 구성하는 수십 개의 블록을 연결한 부품들이 모조리 터지고 끊어졌다. 다리 자체도 여러 조각으로 끊어지며 15m 아래로 추락했다.
두 개의 철탑 중 하나가 완전히 무너졌다.
선우현 덕분에 이미 철탑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
“무너진다!”
“도망쳐!”
다리는 부서졌지만 선우현은 추락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철탑의 난간을 왼손으로 잡고 매달렸다. 그가 매달린 곳은 철탑의 15m 지점이다.
선우현 혼자만 매달린 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김인혁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김인혁도 두 손으로 선우현의 오른팔을 꽉 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김인혁이 다급히 말했다.
“케켁! 형! 살려주세요!”
“언제 봤다고 형이야?”
“저 고등학생이에요!”
선우현이 김인혁을 내려다보았다.
“아닌 것 같은데? 담배 살 때 프리패스겠는데?”
“제가 얼굴이 좀 삭았다는 말 많이 들어요! 진짜 고등학생이에요!”
“고딩이 학교는 안 가고 왜 여기서 노냐?”
그 이유는 김수선이 알려주었다.
- 선장님.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아. 토요일.”
- 네! 저 모범생이에요! 살려주세요!
선우현이 고등학생 김인혁을 진정시키려고 말했다.
“야. 이 높이에서는 다리부터 떨어지면 잘 안 죽어. 좀 다칠 수는 있지만 안 죽는 게 어디냐.”
김인혁이 다급히 외쳤다.
“저 선수예요! 다치면 안 돼요!”
“선수? 제비라고?”
“아니요! 저 야구선수예요! 살려주세요!”
“아. 운동선수.”
선우현이 김인혁을 위로 천천히 끌어올렸다. 더 빨리 들 수도 있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힘만 보여줬다.
선우현이 김인혁을 적당히 끌어올린 후에 말했다.
“야. 이제 내 팔 놓고 네 손으로 난간 잡아.”
김인혁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무, 무서워요. 그냥 이렇게 형 팔에 매달려 있으면….”
“확 던져버릴까?”
김인혁이 얼른 오른손을 뻗어 난간을 덥석 잡았다. 쇠로 된 난간을 잡으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렇게 형이랑 난간 양쪽을 다 잡으면 더 안전….”
선우현이 멱살을 슬쩍 놓았다.
김인혁은 화들짝 놀라 왼손도 뻗어 난간을 잡았다.
그는 고교 야구선수다. 난간에 매달리는 것쯤은 쉬웠다.
김인혁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선우현이 말했다.
“나 먼저 올라간다. 천천히 올라와라.”
김인혁은 당황했다.
“예? 저, 저 혼자 어떻게 올라고요. 형!”
“이게 언제 봤다고 자꾸 형이래. 너 야구선수라며. 이 정도 올라갈 힘은 있잖아.”
“너무 무서워서 팔이 잘 안 움직여요.”
“덩치는 큰 놈이 간은 콩알만 하네. 알았어. 뒤에서 잡아줄 테니까 올라가.”
선우현이 김인혁의 뒷덜미 쪽 옷을 잡고 위로 밀어주었다. 김인혁이 두 팔에 힘을 주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선우현이 뒷덜미에서 손을 놓았다. 김인혁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날 버렸….”
선우현이 김인혁의 허리띠를 잡으며 말했다.
“밀어주려고 그런 건데, 이거 진짜 버릴까?”
“아뇨! 믿을게요!”
선우현이 계속 밀어준 덕분에 김인혁은 난간을 넘어 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탑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아래로 대피해서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먼저 탈출시킨 친구도 그곳에 없었다.
김인혁은 당황했다.
“세상에. 어떻게 날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 도망칠 수가 있어?”
선우현이 난간을 가볍게 넘어 탑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차인 거냐?”
김인혁이 자존심을 세웠다.
“아니거든요? 제가 찰 거거든요?”
“살려줬더니 기운이 넘치네? 인사는?”
김인혁이 얼른 머리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이게 그 엎드려 절받는다는 그거냐?”
“제가 엎드릴까요?”
“여기서 빠져나가기나 해.”
김인혁이 얼른 계단으로 가며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아차! 여기도 무너지기 전에 빨리 나가죠!”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그쪽 탑은 붕괴 전조 현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야. 여긴 괜찮아. 안 무너질 거야.”
선우현이 반대쪽을 보았다. 그쪽 탑은 완전히 무너져 철근 더미로 변해 있었다.
“저게 무너진 게 문제지.”
김인혁은 선우현의 말을 믿고 마음을 좀 놓았다.
“휴우. 그래도 형 덕분에 다친 사람은 없는 거 아니에요?”
“사람은 안 다쳤는데….”
- 사람은 안 다쳤지만, 선장님이 개발하신 나사가 부러져 탑이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나사라니까. 너한테도 책임이 있어.”
- 아무도 안 죽었으니 괜찮습니다.
“그치. 아무도 안 죽었으면 된 거야.”
선우현은 고등학생 김인혁과 철탑의 계단을 내려갔다.
김인혁이 내려가며 말했다.
“형. 진짜 힘이 장난 아닌데 무슨 운동 했어요? 어떻게 저를 한쪽 팔만으로 들어 올려요?”
“너 왜 계속 나를 형이라고 부르냐?”
“처음에는 아저씨라고 부르면 안 구해줄까 봐 그렇게 불렀죠.”
“안 구해줄 걸 그랬네.”
김인혁이 실실 웃었다.
“히히. 이미 살려줬으니까 늦었어요.”
“후회하는 중이다.”
“에이. 아무도 안 죽어서 다행이라면서요.”
선우현이 김수선과 이야기할 때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래서 김인혁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는 못했다.
그래도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몇 마디는 대충 알아들었다. 그중에는 아무도 안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 그 말의 모든 단어를 정확히 듣지는 못했다. 그래서 김인혁은 다행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고 대충 알아서 이해했다.
선우현이 실실 웃는 김인혁에게 말했다.
“탑 밖에 사람 많다. 나가면 전 여자친구한테도 그렇게 웃어줘라.”
“아니, 왜 또 아픈 상처를 후벼 파세요?”
“너 차인지 1분도 안 지났어. 오래된 상처처럼 말하지 마라.”
탑에서 김인혁이 먼저 나왔다.
탑에 있던 사람 중 절반은 조금 전에 죽을 뻔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서워서 그곳을 떠났다. 그들은 그런 위험한 장소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나머지 절반인 십여 명은 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들도 탑이 무너질까 봐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이미 한쪽 탑은 무너졌다. 다른 탑은 멀쩡히 서 있었지만, 약간 남은 다리 잔해가 흔들리다 탑에 부딪히곤 했다. 그때마다 쇠가 쇠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그곳에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탑에 들어갈 정도로 간이 큰 사람이 없었다.
두 사람이 탑에서 나오는 걸 보고, 밖에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나왔어!”
“이제 다 괜찮아!”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기요. 탑에 남은 사람은 없는지 확인했어요?”
선우현이 말했다.
“들어가서 직접 확인하든가.”
“예? 그게…. 느긋하게 나오시길래 난 그냥….”
“저게 멀쩡해 보여도, 뛰면 무너질 수도 있잖습니까? 그래서 천천히 나왔는데.”
“죄, 죄송해요.”
탑에 매달려 있던 다리 잔해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이쪽 탑도 무너진다아!”
선우현이 탑을 본 후에 하늘을 슬쩍 보며 말했다.
“수선아? 거기서 관측장비 통해서 보고 있는 거 맞지? 이쪽 탑도 무너지냐?”
- 안 무너집니다. 그쪽 탑은 붕괴 전조 현상이 없습니다. 그냥 출렁다리 남은 게 떨어진 것뿐입니다.
사복을 입은 여자 고등학생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김인혁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인혁아! 걱정했어!”
김인혁이 그녀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너!”
“으응?”
“네가 어떻게 나를 버리고 갈 수가 있냐?”
“그야…. 먼저 나왔으니까 먼저 내려왔던 것뿐인데….”
“기다려 줬어야지!”
“한 명이라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게 네 진심이냐? 알았어!”
김인혁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우리 헤어져!”
여고생은 당황했다.
“헤어지다니? 우리는 사귄 적도 없는데?”
이번에는 김인혁도 당황했다.
“오늘 이거 데이트 아냐?”
“그냥 심심해서 놀러 온 거 아녔어?”
“어, 어, 어쨌든 헤어져!”
사람들이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구경했다. 그걸 깨달은 여고생은 얼굴이 벌게지더니 휙 돌아섰다.
“됐어! 나 집에 갈 거니까 붙잡지 마!”
여자애가 뒤로 휙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았다.
김인혁이 외쳤다.
“가라. 가! 가란 말이야!”
“간다! 이 새끼야!”
여고생이 식식거리며 사라졌다.
김인혁이 손으로 앞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가라. 나는 다시 고독해지련다.”
선우현이 한마디 했다.
“너 중2병이냐?”
“네? 저 고등학생인데요? 고3인데요? 야구선수인데요?”
“둘이 진짜로 사귄 줄 알았네. 하긴. 네 얼굴로 저런 예쁜 애를 사귀는 건 무리지.”
김인혁이 반박했다.
“형. 제 얼굴이 연식이 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저 인기 많거든요?”
“그래서 사귀어본 적은 있고?”
“운동에 집중하느라 안 사귄 거거든요?”
“그럼 재는?”
“어….”
“혹시 너한테 웃어주니까 바로 넘어간 거냐?”
“아, 아니거든요?”
“맞네.”
김수선도 동의했다.
- 맞네요.
선우현이 말했다.
“그럼 넌 계속 개폼 잡으면서 사람들하고 있어라. 난 간다.”
김인혁은 당황했다.
“네? 왜 가세요?”
“내가 여기 남아서 뭐하게? 잔해라도 같이 치울까? 난 오늘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김인혁이 다시 손으로 앞머리를 넘기며 씩 웃었다.
“박수를 좀 더 받아야죠.”
선우현이 무너진 쪽 탑을 보았다. 김수선이 말했다.
- 탑이 무너진 원인이 된 나사를 누가 개발했는지 알려지면 상황이 복잡해질 겁니다. 일단 튀십시오.
선우현이 말했다.
“내가 이런 거 익숙하지가 않아. 뒷일은 너한테 맡길 테니까 잘해라. 난 간다.”
***
예술가가 디자인하고 전문업체가 한강공원에 설치한 철탑 두 개 중 하나가 시민들에게 공개한 당일에 무너졌다.
만약 출렁다리 위에 있던 사람들이 대피하기 전에 탑이 무너졌다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현장에 여러 기관에서 사람들이 나와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한강공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보니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도 취재를 위해 찾아왔다.
기자들이 한쪽에 모여서 정보를 공유했다.
“죽은 사람은 없다던데요.”
“다행이죠. 다리에 있던 사람들이 추락했으면 무너지는 철제 다리와 탑 파편까지 맞아서 사망자가 여럿 나왔을 뻔했으니까요.”
“다친 사람은 있지 않아요?”
“크게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긁히거나 타박상 정도입니다.”
“그것도 다행이긴 한데, 그럼 그쪽으로는 기삿거리가 없겠군요.”
현장에 먼저 도착한 기자가 말했다.
“있죠. 탑의 붕괴를 눈치채고 다리 위에서 사람들을 대피시켜 참사를 막은 남자 이야기.”
“그 남자가 누군지 아는 분 계십니까?”
“음….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