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동에 번쩍 서에 번쩍 IV
선우현은 오토바이의 속도를 서울 시내 주행 제한속도에 맞추었다.
반면에 김승빈의 노란색 미국산 스포츠카는 과속으로 차선을 옮겨가며 다른 차들을 추월해 도망쳤다.
선우현은 상관하지 않고 느긋하게 추적했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추적 대상 차량과의 거리가 1km 이상 벌어졌습니다.
김승빈의 차는 이미 선우현의 시야를 벗어났다.
“열심히 도망치라고 해.”
지금처럼 도로 위로 도망치면 위성에서 내려다보는 김수선의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
“저놈이 어디로 가든 결국 잡….”
오토바이의 엔진에서 까랑까랑 소리가 들렸다.
“어?”
- 불길한 소리가 들리는데요?
“오토바이가 고장 나려나 본데?”
- 선장님? 정비 미리 하신 거 아닌가요? 선체 수리 5000년 경력자라 오토바이 수리 정도는 자신 있다면서요?
“깨어있던 시간은 다 합쳐도 120년 정도지.”
- 수리의 달인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군요.
“자동 수리모듈이 없어서 오토바이 정비를 선체에 있을 때만큼 완벽하게 하지는 못했어.”
- 그렇게 말씀하셔도 수리모듈은 못 보내드립니다.
“눈치챘구나? 역시 안 되겠지?”
- 당연합니다. 수리모듈은 지금도 부족합니다. 하나 보내드렸다가 1년 전 같은 긴급상황이 생기면 선체가 쪼개집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의 속도를 낮췄다. 속도가 느려지면서 까랑까랑 소리도 작아졌다. 그는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우고 엔진을 살펴보았다.
“그래도 기본적인 정비는 했는데 이상하네.”
- 선장님. 그 오토바이는 이전 사용자를 세 명이나 사고로 보냈잖습니까?
“그래서 싸게 샀잖아.”
- 그 오토바이, 혹시 오염된 기체 아닐까요?
그건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살 때 이미 했던 말이다.
“전에는 무슨 그런 재수 없는 말을 하냐더니? 그럴 리가 없다며?”
- 이 지구에서 그럴 리는 없죠. 그래도 그 오토바이로 계속 추적하는 건 좀 불안합니다. 오토바이는 작은 사고로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수 있습니다. 수리부터 하십시오.
“그러려고 했어. 저놈은 네가 계속 추적해.”
- 이미 추적 중입니다. 김승빈은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중입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속도는 조금 낮췄다.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바로 앞에 오토바이 수리점이 있습니다. 있는데, 그냥 지나치시네요?
“이거 산 가게에 가서 고쳐달라고 해야지. 어떻게 벌써 고장 나냐?”
- 이전 수리 내역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군요. 덤으로 무상 A/S를 요청하십시오.
“그러려고.”
***
김승빈은 차를 과속으로 몰며 도망쳤다. 선우현은 쫓아오지 않았다.
김승빈이 룸미러를 힐끗 보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 새끼. 도대체 어떻게 날 찾았지?”
그는 혹시 선우현이 다시 쫓아오지 않나 경계하며 양평에 있는 모텔로 갔다.
그 모텔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현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이런 무인 호텔을 몇 군데 알고 있었다.
***
선우현은 오토바이를 산 가게에 도착했다.
“와. 이 아저씨 장사 안 하네.”
수리점은 이미 문을 닫고 사장은 퇴근한 상태였다.
“수선아. 김승빈은?”
- 양평 지역 모텔에 있습니다.
“거기서 자겠네. 오토바이는 내일 아침에 수리하고 오늘은 쉬자.”
- 저는 선체 수리해야 하는데요?
“응?”
- 김승빈을 추적하느라 선체에 생긴 고장은 아직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어…. 내가 옥탑방에서 같이 밤샐까? 망원경으로 올려다보면서?”
- 카모플라쥬 시스템이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데 망원경으로 본다고 보이겠습니까?
“안 보이지. 어쩔 수 없이 난 그냥 자야겠다.”
- 새벽에 이유 없이 깨우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십시오.
***
선우현은 이튿날 오전에 오토바이를 산 가게에 갔다. 그 가게에서는 오토바이 판매와 수리를 같이 한다.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이거 여기서 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고장이 납니까?”
- 잘하고 계십니다. 당당하게 A/S를 요구하십시오.
가게 사장이 오토바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거 이상하네. 주인을 세 번이나 보내긴 했어도 오토바이는 항상 멀쩡했는데…. 험하게 타셨나?”
험하게 탔다.
“어…. 수리비 할인되지요?
- 선장님?
“험하게 탄 거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전문가잖아. 전문가는 속이는 거 아니야.”
***
김승빈은 모텔방에서 술을 마시며 욕을 하다가 잠들었다.
그는 이튿날 낮에 일어났다.
“어우. 머리야.”
자고 일어났더니 숙취가 찾아왔지만 정신은 좀 들었다.
“그 새끼는 진짜 뭐지? 어떻게 어느 놈한테 전화를 걸어도 그 새끼가 받고, 어젯밤에는 어떻게 갑자기 내 차 옆에 나타나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제 그놈들한테 맡긴 일은 또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모텔 컴퓨터로 어제 채연서를 노린 사건이 기사로 떴는지 검색했다. 관련 기사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젠장. 진짜 모르겠네.”
김승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안 되겠다. 도와달라고 해야지.”
그는 전에도 사고를 크게 치면 집안의 힘을 이용해 해결했다.
김승빈이 모텔을 나와 강변을 따라 차를 몰았다.
***
선우현은 오토바이를 수리한 후에 그 모텔로 찾아갔다. 그런데 김승빈의 노란색 스포츠카가 보이지 않았다.
“수선아. 바쁘냐?”
- 네. 바쁩니다.
“여기 김승빈의 차가 없다. 좀 찾아봐라.”
- 바쁜지는 왜 물어보셨을까요?
“그냥 궁금해서.”
김승빈의 스포츠카는 흔치 않은 디자인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찾았습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강변에 있습니다.
***
김승빈은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강변에 차를 대충 세우고 내렸다.
“날씨 더럽게 좋네.”
그가 숨을 몰아쉰 후에 집에 전화를 걸었다.
“형. 내가 지금 문제가 좀 생겼는데….”
상대가 전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너 이 새끼! 너 도대체 누굴 건드린 거야!
김승빈은 채연서 이야기인 줄 알고 급히 변명했다.
“어? 아니야. 채연서가 오해하는 거야. 형이 잘 합의해주면….”
- 이 새끼야! 지금 회사가 망하게 생겼어!
김승빈이 눈을 껌뻑였다.
“어? 그게 무슨….”
- 길성에서 우리 회사와 전쟁이라도 할 기세야! 회사 규모나 인맥이나, 언론 플레이 능력까지 우리가 길성의 상대가 될 거 같아?
“아니, 길성이 왜….”
- JHC 테크도 참전할 거라더라!
“거기는 또 왜….”
- JHC 사장이 요즘 재계에서 얼마나 뜨는지 알아? 길성이랑 JHC 테크가 작정하고 공격하면 우리 회사가 위험해진다고!
“그 회사들하고 사이가 나빠? 얼마나 나쁘길래 전쟁을….”
- 너 때문이잖아! 이 새끼야! 길성과 JHC 테크의 변호사들이 어젯밤에 네가 저지른 납치 사건 때문에 경찰서에 갔다더라!
김승빈은 당황했다.
“그, 그 회사 변호사들이랑 채연서가 무슨 사이인데….”
- 채연서가 아니라 선우현이란 사람을 빼내러 갔다는데, 너 도대체 누구를 건드린 거야!
“어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 새끼는 알바란 말이야.”
- 알바든 뭐든 닥치고 자수해! 네가 저지른 납치 때문에 우리는 명분도 없어! 이대로 싸우면 회사가 위험해! 네가 자수해야 회사가 살….
김승빈이 전화를 확 끊었다. 시끄럽던 소리가 조용해졌다.
그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게 말이 돼? 그 알바가 도대체 누구인데 일이 이렇게 커지는 거야?”
오토바이 한 대가 그가 있는 쪽으로 들어왔다. 김승빈이 오토바이를 쳐다보았다.
선우현이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헬멧을 벗었다.
“여기 있네?”
김승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너!”
“태평양에 던져달라더니 한강으로 왔냐? 그래. 바닷물은 짜니까 민물이 낫겠지.”
김승빈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도, 도대체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김승빈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았다. 그 스마트폰은 그동안 꺼놨다가 방금 켜서 통화했다.
“설마 통화 위치를 추적해서?”
위치를 알아낸 건 휴대폰 위치추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인지와는 별개로 설명은 가능하다.
그런데 선우현은 김승빈이 통화를 마치자마자 나타났다.
“도대체 어떻게 전화를 하자마자 여기에 나타날 수 있지? 너 어제는 분명히 서울에 있었는데….”
김승빈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어제부터 이미 몇 번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그는 공포에 질렸다.
“수, 순간이동 초능력?”
김수선이 말했다.
- 착각하나 본데요?
“착각하게 놔두자.”
선우현이 김승빈에게 말했다.
“넌 뛰어봐야 벼룩이야.”
김승빈은 선우현에게 감히 덤빌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해안가 촬영장에서 마약조직원들을 때려잡는 무술 실력은 이미 봤다.
그것만 해도 싸울 생각이 안 드는데, 이제는 순간이동 초능력까지 있다고 착각했다.
김승빈은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으아아!”
두 다리로 뛰어서는 도망칠 자신이 없었다. 그는 재빨리 차에 타고 가속페달을 꽉 밟았다.
출력이 높은 스포츠카가 도로도 아니고 강변에서 급출발했다. 타이어 일부가 접지력을 잃으며 차가 휙 돌아갔다.
“어? 어?”
스포츠카가 나무를 들이받았다.
“으악!”
선우현이 차의 문을 열고 김승빈의 멱살을 잡아 차 밖으로 끌어냈다.
김승빈이 소리를 질렀다.
“살려줘!”
선우현이 김승빈을 흐르는 강물 쪽으로 질질 끌고 가며 말했다.
“한강 가야지?”
“으아아! 어? 어? 설마 진짜로…. 꾸에엑!”
***
선우현은 JHC 테크 최종훈을 지구연합 탐사대의 현지 협력자로 선정했다.
정작 최종훈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래도 선우현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왔다.
선우현은 그의 생명의 은인인 데다가 레드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종훈이 연락을 받고 강변에 도착했다.
“어제 납치 사건의 범인을 잡았다고 하셔서 당장 달려왔….”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김승빈을 발견했다.
“어? 저놈 김승빈이잖습니까?”
선우현이 말했다.
“도망치는 걸 잡았는데, 저러고 있네요.”
“혹시 저놈 팔다리도 분질….”
“경찰에 넘겨야 하니까 안 팼습니다. 차에서 끌어낼 때 멱살 한 번 잡은 게 다입니다.”
최종훈이 차를 보았다. 차가 박살이 나 있었다.
“저 차도 박살을 내셨….”
“저건 저놈이 도망치다가 혼자 나무를 들이받은 겁니다.”
“진짜 안 팬 거 맞지요?”
“어…. 강물에 좀 적시긴 했습니다.”
최종훈이 김승빈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했다.
‘일단 팔다리가 꺾인 건 없네?’
“휴우. 잘하셨습니다. 저놈이 멀쩡할수록 더 확실히 밟아버릴 수 있습니다. 정상 참작의 여지조차 없게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
김승빈은 어제 채연서와 박서윤 납치 미수 사건을 사주한 혐의로 수배된 상태였다.
최종훈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강변으로 출동해 김승빈을 체포했다.
경찰서 취조실에서 형사가 김승빈을 조사했다.
김승빈은 선우현에게 잡혔을 때는 겁에 질려 아무 소리도 못 했다.
그런데 경찰서에 도착한 후부터는 갑자기 기세가 살아났다.
김승빈이 수갑을 찬 채로 입에 침을 튀어가며 주장했다.
“그 새끼, 순간이동 초능력자라니까요! 초능력으로 날아와서 날 공격했습니다!”
“이봐요. 김승빈 씨.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하고 제대로 된 진술을 해요.”
“아, 진짜라니까! 그 새끼 빨리 연구소에 가둬놓고 실험해야 한다니까!”
형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아. 이제 알겠다.”
김승빈의 표정이 환해졌다.
“내 말 알겠지요? 그렇지요?”
“김승빈 씨. 그러니까 본인이 정신병이 있다고 주장해서 감형을 받겠다는 거군요?”
김승빈이 소리를 질렀다.
“어? 아이 씨발! 나 안 미쳤다고! 그 새끼 진짜로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전화하자마자 옆에 나타나고 그랬다고!”
“이 사람 이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욕이야!”
다른 방에서 그 모습을 보던 형사과장이 말했다.
“교도소 대신에 정신병원에 가고 싶나 보네.”
형사팀장이 맞장구쳤다.
“아버지가 재성퍼시픽이라는 중견기업의 대주주에 사장이랍니다.”
“집이 부자니까, 교도소 대신에 병원에서 좋은 대우 받으면서 지내려는 거겠지.”
“진짜로 미친 게 아니라면, 그게 목적이겠죠.”
***
김승빈의 납치 사주와 체포 소식이 뉴스에 나왔다. 어제는 경찰에서 수사 정보를 통제했지만, 범인을 체포한 후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김승빈은 인기 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줌의 팬은 있다.
체포 뉴스가 나오는 도중에 방송국 게시판에 김승빈의 팬이 댓글을 달았다.
- 우리 승빈 오빠가 그럴 리가 없어요.
뉴스가 계속 나왔다. 경찰서를 배경으로 기자가 말했다.
[한편 김승빈 씨는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본인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주장하며 처벌을 피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방금 댓글을 단 팬이 그 아래에 댓글을 추가로 달았다.
- 와. 다시 보니 쓰레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