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64화 (64/281)

64. 벼룩

박길성 회장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지?”

박서윤이 설명했다.

- 선우현 씨가 자신을 감시하던 놈을 붙잡아 배후를 캐다가, 다른 패거리가 채연서 씨까지 노린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납치당하기 직전에 구하러 와줬습니다.

“그래. 선우현에게는 또 신세를 졌구나.”

- 네. 제가 신세를 또 졌습니다.

박서윤은 박길성을 깍듯이 회장으로 대했다.

박길성은 그녀의 그 말투가 조금 아쉽고 안타까웠다.

“휴우. 알았다. 필요한 게 있으면 회사 경비로….”

박길성이 말을 하다 말았다. 박서윤의 사적인 일을 회사 경비로 해결하면 나중에 비용 처리할 때 문제가 생긴다.

회장이 시키면 그런 문제는 비서실이나 관리부서에서 알아서 해결하기는 한다. 그런데 그러면 박서윤을 다른 비서실 직원보다 더 챙긴다는 것도 알려지게 된다.

“그건 곤란하겠군.”

곤란한 줄 알면서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혼자 지내면 불안할 텐데, 어디 호텔 전망 좋은 방이라도 하나 구해줘야 할까?’

박길성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오늘은 어디서 지낼 거냐?”

- 오늘은 채연서 씨 집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오늘 겪은 사건이 있는데 여자 둘이서 괜찮을까?”

- 그 집에는 채연서 씨의 언니도 있습니다. 보안이 철저한 고급 아파트라 안전 문제는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호텔에 방을 구해줄 이유가 없어진다.

“그나마 다행이구나. 알았다. 아 참. 그 집까지는 선우현에게 데려다 달라고 해라.”

- 선우현 씨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더 받아야 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응? 범인도 아닌데 조사를 왜 받아?”

- 납치범들이 많이 다쳤습니다.

박길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드디어 대놓고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살아 있는 게 어디야!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하마! 나만 믿어라!”

***

선우현은 조사실에 앉아있었다.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선장님. 이번에는 왜 그놈들을 살살 패지 않았습니까?

“내가 제일 먼저 날려버린 놈 봤지?”

그놈은 오토바이로 돌진하면서 날려버렸다.

“다른 놈들도 그놈 수준에 맞춰서 패야 공평하잖아.”

- 그럴 때만 공평하십니까?

“괜찮아. 적당히 팼어. 차가 좀 부서져서 그렇지, 팔다리는 안 부러지고 멀쩡해. 뼈에 금은 좀 갔겠지만.”

예전에 목격자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잡은 놈들은 팔다리는 물론이고 다른 곳까지 부러졌다. 그놈들에 비하면 이번에 잡은 놈들은 상태가 그나마 나았다.

- 전당포에 처박아둔 두 놈은요? 장물아비는 오른손 손가락이 다 부러졌을 텐데요.

“손가락은 팔보다 작으니까 금방 낫겠지. 원래 접착제도 작은 거 붙일 때는 조금만 발라도 되잖아.”

- 그건 또 무슨 논리입니까?

맞은편에 앉아서 서류를 확인하던 형사가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환장하겠네.”

그가 선우현을 보며 말했다.

“선생님이 좋은 일 하신 건 압니다. 거기서 그 여성분들을 구하기 위해서 혼자서 그놈들과 싸우신 것도 알고요.”

“알아달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 했지요. 음하하하.”

“아니, 지금 웃으실 때가…. 그래도 좀 살살 하셨어야죠. 지금 그놈들 전부 다 입원했습니다.”

선우현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놈들이 먼저 칼을 휘둘렀습니다. 칼이 무서워서 살살 팰 수가 없었습니다.”

“아, 예. 총이라도 들었으면 아주 반 죽여놨겠습니다?”

“어휴. 사람이 어떻게 맨손으로 총이랑 싸웁니까?”

형사가 방금 확인한 조회 서류를 보여주었다.

“저번에 예능 방송에 나온 그 해안가 사건 말입니다. 거기서 마약조직원들을 때려잡은 게 선생님이시네요? 그때는 두목이 총을 쐈다던데요?”

“아. 그랬죠. 까먹었네요.”

“아니, 선생님?”

조사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이 두 명 들어왔다.

두 사람이 형사에게 명함을 내밀며 신분을 밝혔다. 둘 다 변호사였다.

그들이 선우현에게도 명함을 주며 말했다.

“박길성 회장님이 이번 사건을 확실히 해결하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최종훈 사장님께서 연락 주셨습니다.”

형사는 두 사람의 명함을 보며 당황했다.

“아니, 아직 피의자가 아니라 그냥 참고인 조사하는 건데, 왜 로펌 하나도 아니고 두 곳에서 동시에 변호사가….”

형사와 변호사들이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걸 보면서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수선아. 박 회장님한테 활력 토마토를 지금 일주일에 두 개씩 팔고 있잖아.”

- 최소한 두 개는 있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세 개로 늘려야겠는데?”

- 그러게요. 현지 협력자도 아닌데 이렇게 변호사를 보내 성의 표시를 하네요.

***

선우현은 경찰서를 나왔다.

채연서의 차는 운전석 유리가 깨져 있지만 다른 부분은 멀쩡했다.

그녀는 오늘은 남이 운전하는 차는 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그 차를 직접 운전했다.

박서윤은 그 차 조수석에 탔다.

두 사람은 채연서의 집으로 향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두 사람의 차를 따라갔다.

채연서가 룸미러로 뒤쪽을 슬쩍 보며 말했다.

“이러니까 에스코트 받는 거 같아서 든든해요.”

“진짜 그러네요.”

“그런데 서윤 씨. 아까 왜 112가 아니라 선우현 씨한테 전화한 거예요?”

“아까는 술이 덜 깨서요.”

“그렇다고 왜….”

“선우현 씨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강한 분이에요.”

“그건 저도 그래요. 선우현 씨처럼 잘 싸우는 사람은 저도 처음 봤어요. 그래도 그 상황에서 보통은 112에….”

박서윤이 손바닥을 얼굴에 댔다. 술이 깨고 나니 선우현에게 연락한 게 부끄러워졌다.

“전에도 저를 구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랬나 봐요.”

“아. 저도 구해줬는데.”

“알아요. 촬영 현장에서.”

“서윤 씨는요? 언제 구해줬어요?”

“전에 회사 기밀을 빼내려는 놈들한테 잡힌 적이 있어요. 그때요.”

그 사건은 납치범들이 도망치는 바람에 정확한 납치 목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비서실 사람들은 누군가 회사 기밀을 빼내려고 벌인 짓이라고 추측했다.

채연서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아…. 비서실에 있으면 그런 일도 겪는구나.”

“제가 처음이었어요.”

“처음? 그럼 혼자 붙잡힌 거예요?”

“네.”

채연서는 조금 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난 선우현 씨가 촬영 스태프 전체를 구해주면서 같이 구한 건데, 서윤 씨는 혼자 잡혔는데 구하러 간 거네요.”

“음…. 오늘은 채연서 씨를 구하러 온 거잖아요.”

채연서의 표정이 확 펴졌다.

“어머. 그러네요? 서윤 씨. 집에 가서 더 마실까요? 오늘 같은 날은 마셔야 해요. 내일은 어차피 주말이잖아요.”

“좋죠. 안주는 포장해 왔으니까 소주만 사면 되겠네요.”

“집에 술 많아요. 그리고 그 안주는…. 배 안 불러요?”

“배불러요.”

“집에 가벼운 안주 있어요. 그거 먹어요.”

채연서가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선우현 씨도 같이 마시자고 할까요?”

***

채연서의 집 앞에서 선우현이 말했다.

“난 처리할 일이 남아 있어서 가야 합니다.”

“어머. 아쉬워라.”

박서윤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구해주셔서.”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의 뒷모습을 두 사람이 계속 보고 있습니다.

선우현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른손을 슬쩍 들어주었다. 그런 후에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이며 그곳을 벗어났다.

“수선아. 방금 좀 멋있었냐?”

- 오토바이를 탈 때는 두 손으로 핸들을 잡으십시오. 개폼 잡지 마시고요.

“까칠하기는.”

***

선우현을 빼내기 위해 경찰서로 보냈던 변호사가 박길성을 찾아왔다. 변호사가 경찰서에서 알아온 납치 미수 사건의 상세한 내용을 설명했다.

박길성이 인상을 구겼다.

“이게 다 김승빈이란 놈이 저지른 짓이라고? 유명한 놈인가?”

“아닙니다.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으로 몇 번 출연했는데 인기는 별로 없습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군. 그놈 확실히 처넣어. 고소든 고발이든 아니면 인맥을 동원하든 뭐든 다 해.”

“회장님. 김승빈은 재성퍼시픽 사장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따로 알아온 정보를 보고했다.

“지인을 통해 들었는데, 그 회사에서 김승빈이 구속되는 걸 막으려고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재성퍼시픽이 공범이다?”

“그건 저도 잘….”

“그럼 재성퍼시픽도 박살을 내면 되겠구만!”

“네?”

***

김승빈은 아지트로 쓰던 오피스텔에서 인상을 쓰며 고민했다.

“그 새끼 도대체 뭐야?”

그가 대포폰으로 가짜 대리기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장물아비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도 선우현이 받았다.

김승빈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장물아비는 물론이고 그가 보낸 놈들이 전멸한 것도 아직 몰랐다. 연락이 안 되기 때문에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젠장. 뭔가 잘못된 건 맞아.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어.”

그는 스마트폰을 그곳에 가기 전부터 꺼놓고 대포폰만 사용했기 때문에 위치추적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지트로 쓰는 그 오피스텔은 그의 이름으로 빌린 곳이다.

그는 오피스텔에서 나왔다.

“여기 있으면 경찰이 찾아올지도 몰라.”

그는 지하 주차장에서 평소에 타던 스포츠카를 몰고 그 건물을 빠져나갔다.

***

선우현이 말했다.

“장물아비의 말대로면 그 동네에 김승빈의 아지트가 있을 거야.”

채연서를 납치하려던 놈들이나 선우현을 감시하던 놈은 청부한 놈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장물아비는 김승빈과 오래 거래한 사이라 아는 게 좀 있었다.

그중에는 아지트의 위치에 관한 것도 있었다.

- 정확한 주소를 알아내셨어야죠.

“장물아비도 아지트가 대충 서울 어디쯤 있는지만 안다잖아. 그것도 다른 이야기 하다가 나온 거 우연히 들은 거라던데.”

- 여자를 데려가서 놀았다고 자랑할 때 나왔던 이야기라고 했….

김수선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 잠깐만요. 선장님. 그 이야기를 지금 하시는 이유가?

“수선아. 내가 너 믿는 거 알지?”

- 뻥 치지 마십시오.

“김승빈의 차가 뭔지는 촬영장에서 봐서 알잖아. 그 동네에 그런 차가 있는지만 봐줘.”

- 차가 지하 주차장에 있으면요?

“어….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 그러려면 도대체 며칠을 그 동네만 보고 있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그런다고 찾는다는 보장도 없….

투덜대던 김수선의 목소리가 갑자기 자신만만하게 바뀌었다.

- 선장님. 저만 믿으십시오.

“응? 갑자기?”

- 김승빈의 차를 찾았습니다.

“장하다! 김수선!”

- 제가 이렇게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진짜 어떻게 찾은 거야? 나도 네가 찾아낼 거라고 생각하고 시킨 게 아니….”

- 선장님?

“믿고 있었다고!”

김수선이 설명했다.

- 섬 촬영 현장에 김승빈이 타고 온 차는 노란색 미국산 스포츠카였습니다. 흔한 차는 아니죠. 방금 그 동네 전체를 관측 카메라로 훑어봤더니, 그 노란색 차가 도로 위를 지나가는 모습이 딱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운이 좋았다는 거네?”

- 어쩐지 관측 카메라가 오작동이라도 해서 그 차를 놓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운도 실력이지!”

***

김승빈은 오피스텔을 벗어나 서울 외곽으로 향했다.

그의 차가 교차로 신호에 걸렸다. 앞차가 먼저 서는 바람에 설 수밖에 없었다.

김승빈이 차를 정차시키며 투덜댔다.

“젠장. 그 새끼 도대체 정체가 뭔데? 왜 내가 어느 놈한테 전화하든 그 새끼가 받아?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야?”

바로 옆에 오토바이가 한 대 섰다. 김승빈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선우현이 김승빈의 차 유리를 톡톡 두드렸다.

“아씨. 짜증 나는데!”

김승빈이 유리를 내리며 욕을 했다.

“이 새끼가! 이 차가 얼마짜리인지 알아?”

선우현이 김승빈을 보며 슬쩍 웃었다.

“야. 너 혹시 도망치는 중이냐?”

김승빈은 선우현의 얼굴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으허억! 너! 너!”

“어. 나다.”

김승빈은 전화 통화에서 잠깐 들은 목소리만으로는 상대가 선우현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다시 듣고 나서 확실히 깨달았다.

“내 전화를 받은 놈이 너였냐!”

“어. 네가 전화를 자꾸 끊어서 이렇게 찾아왔잖아.”

김승빈이 놀란 눈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내,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내가 원래 천리안이 있어.”

“이, 이 새끼….”

“야. 내려. 어차피 도망 못 친다.”

김승빈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아냐고!”

“납치 청부를 한 중범죄자잖아.”

“우리 집이 재성퍼시픽이야!”

“태평양에 던져달라고?”

교차로의 신호가 바뀌면서 앞차가 출발했다.

김승빈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스포츠카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김승빈은 다른 차 사이로 차선을 넘나들며 도망쳤다.

선우현도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이며 말했다.

“저게 도망치네?”

- 제가 위성궤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도망이라니요. 뛰어봤자 벼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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