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동에 번쩍 서에 번쩍 II
선우현이 말했다.
“너 이 건물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나를 감시했잖아.”
도둑놈 최두식이 뒤로 주춤 물러나며 거짓말을 했다.
“아, 아니다! 난 그런 적 없…. 켁!”
선우현이 최두식의 멱살을 콱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최두식은 저항하려 했지만 목이 너무 꽉 눌려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선우현이 최두식의 차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 그놈을 밀어 넣은 후에 멱살을 놓았다.
최두식은 자기 차 트렁크에 구겨져 들어간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선우현이 트렁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 나 왜 감시했냐? 뒤에서 찌르려고 그런 거냐? 너 킬러냐?”
“증거도 없는 일로 모함하지 마라!”
“나 경찰 아니다. 너를 산에 묻어버리는 데는 증거가 필요 없어.”
“뭐, 뭐라고?”
“뭐야? 너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온 거냐?”
선우현이 거기까지만 말하고 트렁크를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최두식은 겁에 질렸다.
300m 거리에 숨어 있던 그를 찾아내고 순식간에 건너온 선우현의 신체 능력이 두려웠다.
멱살을 잡혔을 때 느낀 압도적인 힘도 무서웠다.
그는 트렁크에 갇히기 전에 이미 겁을 먹은 상태였다.
트렁크 안은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더 겁났다.
게다가 트렁크에 갇히고 나니 산에 묻는다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누굴 감시하라고 한 거야? 저놈은 왜 나를 킬러라고 생각한 거지?’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
‘헉! 혹시 저놈 정체가 킬러인가?’
최두식이 공포에 질려서 더듬던 손에 트렁크 비상 탈출 손잡이가 잡혔다. 그는 그걸 급히 돌리고 트렁크를 밀었다.
트렁크가 활짝 열렸다.
선우현은 여전히 그곳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문을 여네? 탈출 레버를 부숴놓고 가둘 걸 그랬어.”
최두식이 다급히 사정했다.
“사, 살려주십쇼!”
“너를 왜 살려줘야 하는데?”
“저는 선생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감시만 하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정말 누구신지 모릅니다!”
“그럼 그 의뢰를 한 놈은 지금 어디 있냐?”
“그놈과는 대포폰으로 연락해서 어디 있는지는….”
선우현이 트렁크 뚜껑을 잡았다.
“산에 가자. 깊게 묻어줄게.”
최두식이 양손 손바닥을 흔들며 다급히 말했다.
“그놈을 연결해준 장물아비를 압니다! 어디 사는지도 압니다!”
***
천대석은 전당포를 운영한다.
전당포는 위장용 사업체다. 간판만 전당포라고 걸어놨을 뿐이다. 그의 본업은 도둑놈이 훔쳐온 장물을 싸게 매입하고 비싸게 처분하는 장물아비다.
천대석이 볼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예전에는 김승빈이 짭짤한 거 많이 가져왔는데.”
그가 굳이 전당포 간판을 걸어놓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들켰을 때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장물 거래가 경찰에 걸리면 훔친 물건인 줄 모르고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하려고 전당포를 운영했다.
다른 하나는 김승빈 같은 경우를 노리기 위해서였다.
김승빈은 예전에 어디서 훔쳤을 게 뻔한 물건을 팔러 왔다. 고등학생이 여성용 보석 반지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천대석이 모르는 척하고 그걸 사줬더니 김승빈은 그 후에도 여러 번 찾아왔다.
“금수저가 훔쳐온 물건이라 그런지 진짜 짭짤했는데, 배우가 되고 나서는 그게 없어져서 아쉽단 말이야.”
김승빈은 배우가 되고 나서는 리스크가 큰 도둑질 취미는 그만두었다.
“이번 기회에 마지막으로 한탕 크게 빨아먹고 싶은데….”
전당포 문이 열렸다. 선우현을 감시하라고 보낸 도둑놈 최두식이 들어왔다.
천대석이 물었다.
“뭐야? 일하고 있을 시간 아니야?”
“천 사장. 그게 말이야.”
선우현이 뒤따라 들어오며 물었다.
“네가 장물아비냐?”
천대석이 인상을 썼다.
“넌 뭐냐?”
“네가 나 감시하라고 이놈 보냈다며?”
천대석이 도둑놈을 슬쩍 본 후에 바로 부정했다.
“보내긴 뭘 보내? 내가 그런 거 아니다.”
“아니긴. 다 알고 왔는데.”
“당장 꺼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거다.”
“살아 있어야 부를 수 있잖아.”
도둑놈 최두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 사장. 이분 무서운 분이야.
천대석은 모른다고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최두식에게 화를 냈다.
“너 이 새끼. 나에 대해 떠들면 죽인다고 했지?”
“천 사장은 협박인데, 이분은 진짜 죽일 거 같았어. 그래서 어쩔 수가 없었어.”
선우현이 물었다.
“야. 이놈 누가 보냈냐? 누구한테 소개해준 거야?”
천대석이 선우현을 보았다. 그와 선우현 사이는 쇠로 만든 전당포 창살로 막혀 있다.
천대석이 갑자기 실실 웃었다.
“그걸 공짜로 알려줄 수야 있나. 모든 정보에는 정보료가 붙는 법인데.”
“얼마냐?”
천대석이 손가락을 하나 세우며 말했다.
“1억.”
선우현이 갑자기 창살 사이로 손을 휙 집어넣어 그 손가락을 콱 잡았다.
“어? 어?”
천대석이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빠지지가 않았다.
선우현이 천대석의 손가락을 확 잡아당겼다. 손가락이 부러지며 팔이 창살 밖으로 끌려 나왔다.
천대석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팔만 끌려 나온 게 아니다. 어깨가 창살에 끼고, 얼굴은 창살에 눌렸다.
“으아아….”
선우현이 말했다.
“야. 장물아비. 1억은 너무 비싸잖아.”
“놔, 놔라!”
선우현이 손가락을 하나 더 부러뜨렸다.
“으아악!”
“다시 묻지. 저놈을 누구한테 소개해줬냐?”
“너 이러고 무사할 줄 알아? 내 뒤에는….”
선우현이 손가락을 또 뚝 부러뜨렸다.
“으아악!”
“손가락이 이제 두 개 남았네?”
그는 손가락을 하나 더 부러뜨렸다.
“아아악!”
“이제 남은 게 하나밖에 없네?”
천대석은 공포에 질렸다.
“김승빈! 김승빈이 소개해달라고 했…. 으아악!”
마지막 손가락이 부러졌다.
“으아악! 대답했잖아!”
“초면에 왜 반말이냐? 야. 다른 손 내놔.”
천대석이 왼손을 허리 뒤로 숨기며 소리를 질렀다.
“대답했잖습니까! 김승빈이 시켰습니다!”
“내가 그 새끼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야. 다른 손 달라니까?”
“주, 줄 리가 없잖습니까!”
“손목부터 차근차근 부러뜨릴까 보다.”
“사, 살려주세요. 저는 그냥 보잘것없는 장물아비입니다.”
“열쇠.”
“예?”
“이번에는 목이라도 부러뜨려줘?”
장물아비 천대석는 겁이 났다. 열쇠를 주면 선우현이 전당포 안쪽으로 들어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붙잡혀있으면 목이 부러져 죽을 것 같았다.
장물아비가 어쩔 수 없이 열쇠를 꺼내 물건을 주고받는 구멍으로 내밀었다.
“여, 여기….”
선우현이 도둑놈 최두식에게 말했다.
“야. 네가 열어.”
천대석은 기겁했다. 그는 선우현이 문을 열려면 손을 놔야 한다고 판단하고 다른 열쇠를 내놓았다. 그런데 선우현은 천대석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가 얼른 다른 열쇠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입니다. 이거. 제가 착각을…. 으아악!”
도둑놈 최두식이 겁에 질린 얼굴로 창살 문의 자물쇠에 열쇠를 꽂고 돌렸다. 철컥 소리가 났다.
“여, 열렸습니다.”
선우현이 팔을 놓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위장용으로 차려놓은 전당포라서, 안쪽 공간이 바깥보다 훨씬 더 넓고 안락했다.
선우현이 소파에 털썩 앉아 다리를 꼬았다.
“야. 거기 계속 서 있을 거냐?”
천대석은 오른손 손가락이 다 부러졌다. 그가 왼손으로 오른팔을 잡으며 맞은편 소파에 앉으려 했다.
“거기 앉게?”
“아닙니다!”
천대석이 소파 옆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후에 머리를 숙이며 사정했다.
“살려주십쇼. 제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중개를 했습니다. 알았으면 절대로 안 했을 겁니다.”
“김승빈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그놈이 고딩 때부터 장물을 종종 가져왔습니다.”
“그놈 도둑놈이네?”
“예. 처음에는 집에서 훔친 걸 가져오더니, 나중에는 밖에서 훔친 것도 곧잘…. 최근에는 거래를 안 했습니다!”
“이번에는?”
“기술자를 좀 소개해달라고 해서, 평소에 거래하던 도둑놈들을 몇 명….”
“저런 놈?”
“예.”
도둑놈 최두식은 움찔했다.
최두식은 도망칠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그가 옥상에서 장비를 챙겨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에 선우현이 300m나 되는 거리를 건너와 1층 현관에서 미리 기다렸다. 그렇게 빠른 사람 앞에서 도망칠 자신이 없었다.
도둑놈 최두식이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저는 어디서 알바를 하시는지 그걸 알아내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선우현이 인상을 썼다.
“그런데 넌 겨우 한 놈이잖아.”
“예? 그야 당연히….”
선우현이 천대석을 보았다.
“넌 몇 놈을 소개했다며? 다른 놈들은 어디 있어?”
“그게, 선생님 쪽으로는 한 명만 보냈지만, 여자 쪽으로는 네 명을….”
“여자? 누구?”
***
디자이너 채연서가 길성 비서실 박서윤 대리를 만났다.
오늘 만남은 채연서가 먼저 연락해서 이루어졌다.
“그 예능 촬영 참관을 처리해준 분도 박 대리님이고, JHC 테크와 연결해준 것도 박 대리님이라면서요?”
“마침 제가 맡은 일이어서요.”
“그래서 제가 식사라도 사고 싶었어요. 남자 직원이면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데, 박 대리님은 같은 여자니까 괜찮잖아요.”
박서윤도 그래서 부담 없이 채연서를 만나러 왔다.
채연서가 오늘 맛있는 걸 사겠다고 했다. 박서윤은 맛있는 걸 좋아한다.
채연서가 고급 요리를 파는 술집에서 물었다.
“뭐 먹고 싶어요? 내가 다 살 테니까 말해요.”
“웅…. 저기서 저기까지?”
“네? 아. 농담도 잘…. 농담 맞지요?”
“부담스러우시면 저것만….”
“아뇨. 부담은 무슨. 다 시켜요. 술은?”
“새벽이슬이요.”
“박 대리님은 와인만 마실 것처럼 생겼는데 소주를 찾네요?”
“소주가 더 싸잖아요.”
“호호. 농담도 잘…. 이번엔 농담 맞지요?”
“소주도 좋은데….”
“오늘은 와인 마셔요. 내가 사는 거니까 술은 내가 고를래요.”
박서윤은 일곱 개나 주문한 요리를 열심히 먹었다. 술안주로 나오는 요리라 하나당 양은 적었지만, 일곱 개나 모아놓으니 무척 많았다.
두 사람은 와인을 한 병 다 마시고 두 병째를 땄다. 박서윤은 와인도 많이 마시고 요리도 많이 먹었다.
나중에는 채연서가 말렸다.
“박 대리님. 요리 억지로 안 먹어도 돼요.”
“남기면 아깝잖아요.”
“나온 거 다 먹으면 병원 가야 할지도 몰라요. 참아요.”
“그럼 남은 거 포장해달라고 해야겠다.”
“술집 안주를 왜 포장해요?”
“아깝잖아요.”
“알았어요. 포장해달라고 할게요. 일어나요. 더 마시면 안 되겠다.”
두 사람은 술집을 나왔다.
채연서는 차를 가져왔다.
“박 대리님 차는?”
“저는 차가 없어요.”
“그럼 내 차 타고 가요.”
채연서가 대리운전 앱으로 기사를 호출했다.
잠시 후에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대리 부르셨죠?”
“네. 박 대리님. 타요. 집에 데려다줄게요.”
박서연이 술을 마셔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로 실실 웃었다.
“히히. 고마워요.”
두 사람은 뒷좌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한 후에 채연서가 물었다.
“괜찮아요? 너무 많이 먹은 거 같은데.”
“맛있으니까 많이 먹어둬야죠.”
“그거 언제 다 소화되려나 몰라.”
“맛있는 거 많이 먹었으니까 소화 안 되고 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네? 그건 또 무슨 이상한 소리예요?”
술에 취한 박서윤이 포장해온 음식들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켰다.
“이건 냉장실에 넣어두고, 이건 내일 아침에 먹고, 이건 냉동실에 넣어두고….”
채연서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대리 부르셨죠? 어디 계십니까?
“네? 이미 차 탔는데요?”
- 아니, 대리를 불러놓고 그냥 가면 어떻게 합니까?
“무슨 소리예요? 이미 오셔서 탔는데.”
-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전화가 툭 끊겼다.
채연서는 당황했다.
“분명히 대리기사분이….”
그녀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차도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저, 저기요. 제가 불러서 온 대리기사분 맞죠?”
갑자기 차가 도로 옆으로 빠졌다. 한적한 이면도로가 나타났다.
“이, 이봐요!”
차가 그 이면도로 안쪽에 정차했다.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그러게 잘 알아보고 차 키를 넘겼어야지.”
“다, 당신 뭐야!”
다른 승용차가 그들이 탄 차를 지나가다가 앞쪽에 정차했다. 그 차에서 남자 셋이 내렸다.
채연서는 겁을 집어먹었다.
“뭐, 뭐냐고!”
박서윤은 대리기사가 가짜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정신을 차렸다. 술이 완전히 깬 건 아니지만 눈빛은 선명해졌다.
그녀는 채연서가 납치범을 상대하는 동안 스마트폰을 몰래 꺼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술이 아직 덜 깨는 바람에, 112가 아니라 선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우현이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작은 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우리 지금 납치되고 있어요. 구해주세요.”
- 구할 겁니다.
“제가 취해서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어요.”
- 내가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