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57화 (57/281)

57. 디자이너 II

채연서가 말했다.

“어제 거기서 먹은 그 토마토가 또 먹고 싶다.”

채연서의 언니인 디자인 회사 사장 채승아가 물었다.

“넌 그 일을 겪고도 거기서 먹은 게 생각나니?”

“진짜 맛있다니까?”

“그럼 사 먹어.”

“파는 분 연락처를 몰라.”

“백화점에 가봐.”

“가면 팔까?”

“팔겠지.”

채연서가 눈을 반짝였다.

“미팅 취소하고 백화점이나 갈까? 나 좀 쉬어야 하잖아.”

“쉬긴 뭘 쉬어. 너 어제 엄청 팔팔하고 잠도 엄청 푹 자더라.”

채연서가 두 팔을 쭉 폈다.

“응. 어제 진짜 컨디션이 좋았어.”

어제는 많이 돌아다니고 큰 사건까지 겪었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오늘도 오전까지는 그랬는데, 슬슬 평소 컨디션으로 돌아오네.”

“일할 때 되니까 평소 컨디션이냐? 잔머리 굴리지 말고 미팅이나 해.”

채연서가 물었다.

“JHC 테크는 첨단기술 전문 기업이라며. 그러면 당연히 최신 최고급 제품 디자인 의뢰겠지?”

“주로 기술만 팔지 제품을 파는 곳은 아닌데, 이번엔 제품이 있나 봐. 어떤 제품인지는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더라.”

“신기한 최첨단 제품이면 좋겠다. 그러면 의뢰를 받아도 되는데.”

***

채연서와 최종훈은 디자인 회사의 회의실에서 만났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간 후에 최종훈이 말했다.

“토마토 포장 상자와 포장지 디자인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채연서와 채승아가 눈을 깜빡였다. 디자인 의뢰 대상이 생소해서였다.

채승아가 물었다.

“토마토요? 혹시 회사를 잘못 찾아오신 건….”

“제대로 찾아왔습니다. 명품 토마토의 포장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

“혹시 그 토마토라는 게 JHC 테크의 기술로 만든 신제품 이름인가요? 그러니까 사과 마크처럼 토마토 마크를 심볼로 삼으려는 건가요?”

“진짜 토마토입니다만?”

채승아는 왜 최종훈이 제품이 뭔지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미리 알았으면 이 미팅 스케줄은 잡지 않았을 텐데.’

채승아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잘못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농산물 포장 디자인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최종훈이 작은 상자를 꺼냈다. 활력 토마토가 담겨 있는 상자였다.

“일단 맛을 보시면 생각이….”

“그 상자는 액세서리 상점에서 살 수 있는 거군요. 동대문 도매상에서 사면 개당 이천 원쯤 하죠.”

“맞습니다. 역시 잘 아시는군요. 거기선 이게 제일 비쌌습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해서….”

“더 비싼 상자를 파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곳에서 상자를 사서 쓰세요.”

“그러지 말고 일단 맛을….”

“농산물은 저희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요.”

채연서는 조금 전까지 토마토가 생각나던 참이다. 그런데 최종훈이 방금 토마토의 맛을 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그 토마토, 진짜 제가 먹어도 돼요?”

“그럼요. 드시라고 가져온 거니까요.”

채연서가 상자를 넘겨받은 후에 뚜껑을 열었다.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어머?”

상자 안에는 어제 선우현 덕분에 먹었던 그 토마토와 똑같이 생긴 것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색과 모양을 구분하는 감각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좋다.

그녀는 이런 깊은 색을 가진 토마토는 어제 촬영 현장에서 처음 봤다.

채연서가 물었다.

“JHC 테크라고 하셨죠? 혹시 이 토마토, 그 회사에서 만든 건가요? 그러니까 유전자 기술 같은 거로 합성한다든지….”

최종훈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는 분이 직접 재배한 겁니다.”

“혹시 이런 토마토를 재배하는 곳이 흔하다든지….”

“그러면 이렇게 채연서 씨를 찾아왔을 리 있겠습니까?”

최종훈이 자랑했다.

“이건 다른 과일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명품 토마토입니다. 일단 맛부터 보시죠.”

채연서가 상자에서 토마토를 꺼냈다.

채승아가 제안했다.

“썰어오라고 할게.”

“아니야. 내가 다 먹을 거야.”

“응?”

채연서가 토마토를 한 입 깨물었다. 저절로 신음이 나왔다.

“음!”

“왜? 맛이 이상해?”

“역시 맛있어!”

어제 처음 먹어본 바로 그 맛이었다. 그녀가 토마토를 허겁지겁 먹으며 생각했다.

‘같은 토마토야. 확실해.’

채승아가 손수건을 꺼내 슬그머니 옆자리에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속삭였다.

“야. 입이랑 손 닦으면서 먹어. 다 묻었어.”

채연서는 토마토를 기어이 다 먹은 후에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런 후에야 손과 입술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아. 진짜 맛있어요.”

최종훈이 그 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이 정도면 1차 저항선은 통과한 것 같은데?’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완전 마음에 들어요. 이거 어디서 살 수 있어요? 어느 백화점에 있어요? 당장 몇 상자 사와야겠어요.”

최종훈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백화점에서는 안 팝니다.”

“그럼요?”

“일반 판매를 안 하니까요.”

“아니, 왜….”

“좋은 걸 드셨으니까 좀 있으면 몸에 활력이 돌 겁니다.”

“네?”

“그 토마토 이름이 활력 토마토입니다. 몸에 좋은 성분이 워낙 많아서, 하나 먹으면 하루 정도 활력이 돕니다.”

“아!”

“물론 지금은 안 믿으시겠지만, 조금 기다리시면 반응이….”

그녀가 얼른 말했다.

“아뇨! 믿어요!”

“네?”

그녀는 왜 어제 그렇게 컨디션이 좋았는지 깨달았다. 이미 경험했으니 못 믿을 이유가 없다.

최종훈이 말했다.

“아. 그러면 이야기가 쉽겠군요. 그런 귀한 걸 쉽게 재배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그건 아주 소량만 나옵니다.”

“와…. 귀한 거구나.”

“농약은 당연히 안 치고 벌레는 손으로 직접 잡을 정도로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합니다.”

벌레는 안티 버그 레이저 포탑이 잡는다. 선우현은 벌레에는 손도 안 댄다.

최종훈이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그래서 한 개 가격이 백만 원입니다.”

“네?”

채연서는 당황했다.

“하나에 백만 원이나 한다고요?”

“비싼 게 아닙니다. 그 활력 효과를 생각하면….”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는 어제 선우현을 떠올렸다.

‘이 토마토 세 개를 나랑 구하니 씨한테 나눠줬는데, 그러면 그게 삼백만 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제 선우현 씨 하루 일당이 얼마였을까? 십만 원? 아무리 많아도 이십만 원을 넘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선우현은 어제 일당의 열다섯 배에서 서른 배의 가치를 가진 토마토를 단지 빵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나눠줬다.

‘혹시 이 토마토의 가치를 모르고 갖다 준 건가? 그럼 나중에 크게 혼나는 거 아냐?’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 토마토를 재배한 분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기밀이라서요.”

“그러면요. 혹시 관계자 중에 선우현 씨라고 계세요?”

최종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걸 어떻게!”

“네?”

“혹시 박 회장님이….”

“국내에 박 회장님이 한두 분이 아닌데, 어느 박 회장님 말씀이실까요?”

“아, 아닙니다. 선우현 씨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음…. 총칼이 난무하는 현장에서도 신뢰하는 있는 사이?”

“네?”

채연서가 손을 흔들었다.

“어쨌든, 선우현 씨가 이 토마토를 혹시….”

그녀는 선우현이 토마토 농장에서 일하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최종훈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선우현 씨는 이 토마토를 재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유일이요?”

‘그럼 남의 농장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키우겠네?’

그녀는 선우현이 어제 마약조직원들을 무찌르던 모습을 떠올렸다.

‘아! 무술을 수련하는 계곡에서 토마토도 키우나 보다. 자연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서 키운 토마토! 그래서 이렇게 맛있….’

“예. 생명공학의 천재입니다.”

“네?”

“왜 놀라십니까? 어?”

최종훈은 당황했다.

“선우현 씨가 누군지 아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 알죠. 알아요. 아는데요.”

채연서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생명공학의 천재? 그런 사람이 어제 거기서 알바는 왜 한 거야?’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머리만 짚고 있었다.

최종훈이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선우현 씨가 뭔가 보여줬나 보다. 나처럼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받아들이면 편할 텐데, 아직 그 정도 단계는 아니군.’

최종훈이 혼란에 빠진 그녀를 보며 본론을 꺼냈다.

“이 토마토를 하나씩 담을 선물용 상자와 포장지, 쇼핑백 등 디자인 일체를 의뢰하고 싶습니다.”

채승아가 옆에서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우리 전문 분야가 아니….”

채연서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할게요! 이 토마토에 관한 모든 디자인을 꼭 제가 하게 해주세요!”

“어? 연서야. 왜….”

“나 이거 할 거야!”

“뭐, 맘대로 해라. 네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채승아는 이 회사를 채연서를 서포트하기 위해 만들었다. 채연서가 워낙 우수한 디자이너라 돈은 이미 충분히 벌고 있다. 그녀가 하고 싶은 디자인이 있으면 말릴 이유가 없다.

최종훈이 환하게 웃었다.

‘이 의뢰가 이렇게 성공하네.’

그가 얼른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당연히 최고의 대우로 의뢰하겠습니다.”

“돈은 됐어요.”

“예?”

“연서야?”

채연서가 조건을 말했다.

“구매권으로 주세요.”

“무슨 구매권….”

“이 활력 토마토, 이렇게 맛있고 몸에 너무 좋아서 활력까지 생기는데 생산량은 아주 소량이라면서요? 가격만 봐도 얼마나 귀한지 알겠네요. 당연히 아무나 살 수는 없겠죠?”

“역시 최고의 디자이너답게 이런 최고급 명품의 특성을 잘 아시는군요.”

“근데요. 저는 이걸 꾸준히 먹고 싶어요. 그러니 구매권을 주세요.”

최종훈이 머리를 굴렸다.

‘의뢰비 대신에 활력 토마토를 매일 하나씩 주는 건 불가능해. 이 토마토의 가치는 돈이 다가 아니니까.’

“음…. 그러면 딜을 하죠. 의뢰비는 당연히 드리고, 거기에 추가로 토마토를 한 달에 한 개?”

“어머. 농담도 잘하신다.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사겠다는 건데.”

“하, 하하. 열흘에 한 개….”

“일주일에 한 개요. 당연히 디자인 담당자 할인가로.”

최종훈이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상대는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명품 디자이너 최연서.’

이 토마토 포장 디자인만 놓고 보면 조건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비용은 그대로 지급하고 추가로 토마토 구매권을 주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우현 씨는 토마토만 개발한 게 아니잖아.’

지금 그의 회사에서는 나사 제작 기술의 특허를 진행 중이다. 폐기장비에서 부품을 모아 만든 새 모형도 생각났다.

‘선우현 씨가 뭔가 다른 걸 개발하면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하겠지? 그때는 포장이 아니라 제품 디자인까지 필요할지도 몰라.’

그가 채연서를 쳐다보았다.

‘채연서와의 인맥은 그때 가서 빛을 발하겠지.’

최종훈이 결론을 내렸다.

“선우현 씨를 만나 그 제안을 전달하겠습니다. 정기 구매권은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계약 기간도 설정해야 하고요.”

채연서는 어제 선우현의 번호를 따려다가 실패했다. 그녀가 얼른 제안했다.

“그럼 같이 만나죠.”

“예?”

“선우현 씨와 토마토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려고요. 진짜예요. 사심은 없어요.”

***

며칠 뒤에 최종훈이 이백현 연구소장에게 물었다.

“나사 제작 기술의 특허 문제는 어떻게 됐어?”

“출원 중입니다. 국내는 이미 서류 접수를 끝냈고, 국제 특허도 진행 중입니다.”

“그래? 그러면 팔아도 되겠군.”

“예? 사장님. 이제 겨우 출원 서류를 접수했습니다. 그것도 특허팀에서 최우선으로 진행한 건데….”

“기술 검증은 이미 끝났잖아.”

“나사를 만드는 기술은 확인했습니다. 다만, 소형 부품 제작 기술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특허에 포함은 시켰지?”

“물론입니다. 이론을 완전히 이해해야 양산 때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만, 특허 신청에 필요한 만큼은 이해했으니까요.”

“나사는 이미 양산 기술을 확보했다며. 그럼 나사 제작 기술 라이센스부터 팔자.”

이백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장님. 왜 그 기술을 빨리 파는 데 집착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이 더 중요한 기술 협력 관계의 마중물 같은 거라서 그래. 어쨌든 팔아. 빨리 팔아. 우리가 나사 만드는 회사와 거래가 있나?”

“연구소에서 직접 거래하는 곳은 없습니다만….”

사장 최종훈이 말했다.

“그러면 영업본부에 맡겨서 당장 팔라고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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