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53화 (53/281)

53. 바다 II

구하니는 눈을 깜빡거렸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날 뻔했는지 깨달았다.

“파도가….”

그녀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바위를 커다란 파도가 덮쳤다. 그 파도에 맞았으면 그대로 바다에 떨어질 뻔했다.

그녀의 눈에 빠져나가는 바닷물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김승빈과 홍은성이 보였다.

“아. 저 사람들….”

“안 죽었습니다.”

김수선도 말했다.

- 저 사람들이 있는 위치는 파도에 직격당하는 곳은 아닙니다.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습니다.

구하니가 서 있던 곳은 달랐다. 그 위치에 있던 촬영용 소품들은 파도에 맞아 모조리 쓸려나갔다.

구하니가 선우현을 보았다. 그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선우현이 두 팔로 안고 있던 그녀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스스로 설 수 있게 조심해서, 발끝이 바닥에 살짝 닿게 해주었다.

그녀가 작은 소리를 냈다.

“아….”

그녀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상태로 똑바로 섰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생각했다.

‘이건 방금 놀라서 그런 거야. 분명히 그래서일 거야.’

그녀가 정신을 차리게 한 건 홍은성의 비명이었다.

“살려, 켁, 켁!”

아이돌 가수 홍은성과 배우 김승빈을 덮친 바닷물이 바깥쪽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그 바닷물에 휩쓸려서 바다 쪽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아! 저 사람들 구해줘야 해요!”

선우현이 주변을 보았다. 촬영장비용 예비 케이블이 둘둘 말린 채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가 그 케이블을 주웠다. 그런 후에 한쪽 끝을 잡고 공중으로 크게 휘둘렀다.

둘둘 말려 있던 케이블이 촤라락 펴지면서 공중을 날아갔다.

홍은성은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댔다. 급류가 그의 몸을 깊은 바다 쪽으로 끌고 갔다.

짠 바닷물이 입에 밀려 들어왔다. 물살이 너무 강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겁이 났다. 무서웠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주마등처럼 여러 가지 일이 짧게 떠올랐다. 부모님의 얼굴도 떠오르고, 연습생으로 고생하다 데뷔했을 때도 떠올랐다.

에이투원은 인기 그룹이 아니다. 얼굴이 그나마 알려진 멤버는 홍은성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는 팀원들이 방송에서 홍보 잘하고 오라고 응원했다. 아침에 큰소리치면서 같이 웃었던 게 생각났다.

후회되는 일도 많았다. 미련도 많이 남았다.

살고 싶었다.

“살려….”

갑자기 홍은성의 몸 위로 전선이 툭 떨어졌다.

선우현이 말했다.

“그거 잡으면 산다.”

홍은성은 아까 선우현에게 말을 함부로 했던 게 생각났다.

그러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는 허겁지겁 두 팔을 휘저었다. 손에 케이블이 걸렸다. 그걸 두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꽉 잡았다.

“살려주세요!”

“그러면 놓치니까 손에 감아.”

홍은성은 즉시 케이블을 손에 감았다.

갑자기 다리에 무게가 느껴졌다. 홍은성이 뒤를 보았다. 김승빈이 홍은성의 다리를 두 팔로 붙잡았다.

홍은성이 소리를 질렀다.

“잡았습, 켁! 켁!”

입안으로 바닷물이 다시 들어왔다.

선우현이 케이블을 잡아당겼다. 구리선이 들어 있는 케이블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홍은성을 끌어당겼다. 그의 다리를 두 팔로 붙잡은 김승빈도 같이 끌려왔다.

선우현은 케이블을 쓱쓱 잡아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전선이 피아노 줄처럼 소리를 냈다. 홍은성의 몸도 쭉쭉 딸려왔다.

선우현이 케이블을 손에서 놓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구하니는 두 손을 꼭 잡고 구출 장면을 보다가 급히 물었다.

“네? 여기까지라니요?”

“이제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바닷물이 꽤 많이 빠졌다. 두 사람도 안전한 곳까지 끌려와 다리가 바닥에 닿았다.

구하니가 외쳤다.

“이제 일어나도 된대요!”

홍은성의 두 다리는 김승빈이 잡고 있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억지로 일어나려다가 바닥에 엎어져 바닷물만 더 마셨다.

“켁! 켁!”

다리가 자유로운 김승빈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사, 살았다!”

홍은성은 다리가 풀리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켁! 켁! 우웨에엑!”

선우현이 말했다.

“파도가 또 오겠네.”

두 사람은 그 말을 듣자마자 허겁지겁 그곳을 떠나 안쪽으로 도망쳤다.

촬영은 당연히 중단됐다.

스태프들이 홍은성과 김승빈에게 달려갔다.

피디가 다급히 물었다.

“두 사람 다 괜찮아?”

홍은성이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이제 괜찮습니다.”

피디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다.”

김승빈이 항의했다.

“피디님. 저는 안 괜찮은데요? 물에 빠졌는데요?”

“다친 건 아니잖아.”

“위험했습니다.”

“구하니 씨는 그 파도에 직접 맞을 뻔했어.”

“그래도 구하니 씨는 괜찮잖습니까? 저렇게 안전하게 서 있는데요. 그리고 제가 바다에 제일 깊게 빠졌단 말입니다.”

피디가 협상안을 내놓았다.

“파도에 휩쓸렸다가 구출되는 모습을 내가 아주 멋지게 뽑아줄게. 그러면 이슈가 될 거야.”

“어…. 저는 진짜 잘 뽑아주셔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어쨌든 아무도 안 다쳤다니까.”

피디가 슬그머니 물었다.

“촬영 계속할 수 있을까?”

김승빈은 물을 별로 안 마셨지만, 홍은성은 바닷물을 실컷 마셨다. 다 토해내긴 했지만 얼굴이 좀 창백해져 있었다.

홍은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아이돌 그룹 에이투원은 인기가 고만고만하다. 오늘 여기서 그림이 잘 나오면 에이투원이 조금 더 알려질 수 있다.

피디가 말했다.

“촬영을 여기서 접을 수는 없잖아. 정 어려우면 두 사람은 빼고 가고.”

홍은성이 몸을 만져보았다. 다친 곳은 없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가서 먼저 씻고….”

“응? 씻다니?”

“예?”

“그 상태 그대로 가야 리얼하지.”

“예?”

“내가 그림 멋지게 뽑아준다니까? 잠깐 쉬었다가, 음…. 물기 마르면 안 되니까 촬영 들어가기 전에 물 좀 더 뿌리자.”

“아니….”

“누가 바닷물 좀 퍼 와! 큰 통에 퍼!”

김승빈과 홍은성은 다시 촬영에 참여하기로 했다. 두 사람도 여기서 촬영을 끝내기는 아쉬웠다.

문제는 구하니다.

피디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구하니 씨. 어디 다치신 곳은 없죠? 다행입니다. 하, 하하.”

“다치진 않고 죽을 뻔했죠.”

“하지만 괜찮으시….”

“선우현 씨가 저를 구해줬으니까요. 안 그랬으면 또 죽을 뻔했어요.”

피디가 생색을 냈다.

“현 씨가 우리 스태프잖습니까? 스태프가 구해드린 거죠. 하하하.”

“현 씨가 아니라 우현 씨예요. 성이 선이고요. 이름도 모르시면서 무슨.”

“아….”

피디가 당황하다가 선우현에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아니다. 아예 우리 방송에서 고정으로 일해요. 내가 자리 만들어줄 테니까….”

“안 합니다.”

“예?”

“오늘은 그냥 하루 알바 뛴 거라서요.”

“그러니까 고정….”

“내일부터 다른 일로 바쁠 예정이라서.”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안 바쁘실 텐데요? 노실 텐데요?

“여기 일당이 짜더라. 그리고 촬영 구경은 다 했잖아. 이제 밥차 밥만 먹으면 여기는 볼 일 없어.”

- 그건 그렇습니다.

피디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예. 그럼 나중에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그리고 구하니 씨는….”

피디가 구하니의 눈치를 보았다.

구하니는 오늘 운전도 하고 촬영도 하고 위험한 일까지 겪었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늘 나 컨디션 진짜 좋네.’

그녀의 눈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홍은성이 보였다. 그는 그 상태로도 방송에 더 나가고 싶어 했다.

그녀는 아이돌 그룹 에이투원은 들어봤지만 멤버인 홍은성은 잘 모른다. 에이투원도 잘 아는 건 아니다. 그런 그룹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안다.

계속 방송 촬영에 참여하려고 하는 홍은성의 상황이 짐작이 갔다.

그녀가 말했다.

“알았어요. 저도 할게요.”

피디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구하니는 예정에 없던 초대손님이다.

게다가 일 년 전에 사고를 당한 후로 슬럼프를 겪다가, 최근에야 시련을 극복하고 전성기 실력을 되찾았다.

그런 그녀가 바다에 빠질 뻔했다.

피디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의 추가 촬영은 무리라고 봤다. 촬영은커녕, 구하니가 이 문제를 방송국에 항의하면 시말서로 안 끝나는 수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구하니 쪽에서 먼저 촬영을 제안했다.

이러면 추가 촬영을 활용해서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 먼저 제안한 구하니가 항의할 리도 없다.

구하니도 파도의 파편을 조금 맞아 약간 젖어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이대로 갈까요? 아니면 저도 물 더 뿌려요?”

“그냥 뿌리면 되나요! 우리 분장팀이 구하니 씨의 미모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잘 세팅해서 적시겠습니다.”

“바닷물로요?”

“당연히 생수 쓰겠습니다.”

구하니가 촬영 방법을 이야기하는 동안 채연서가 선우현에게 다가와 호들갑을 떨었다.

“와. 방금 선우현 씨 진짜 멋졌던 거 알아요?”

“압니다.”

“어떻게 전선을 그렇게 멋있게 던졌다가 당겨요? 카우보이인 줄 알았어요.”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이 선체 외부에서 카우보이처럼 케이블을 던지면서 시간을 때우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러다 그 케이블을 잃어버리셨죠.

“우주에서 놓치니까 참 잘 날아가더라.”

- 아직도 위성 궤도를 돌아다닐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때 연습한 덕분에 오늘 써먹었잖아.”

채연서가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좀 전에 두 사람을 구하는 모습을 제가 간단하게 그려봤는데요.”

스케치북에는 선우현이 밧줄을 당기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제 새 디자인에 이 모습을 좀 써도 될까요?”

“이걸 그대로요?”

“당연히 아니죠. 이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모티브로 새로 디자인할 거예요. 지금 아이디어가 팍팍 떠오르고 있거든요.”

“맘대로 해요.”

“고맙습니다! 오늘 여기 오길 정말 잘했어요! 신나서 일해서 그런지 오늘은 계속 기운이 넘쳐요!”

“어….”

- 아마 활력 토마토의 효과겠지요.

두 사람이 대화하는 곳으로 홍은성이 다가왔다. 그는 촬영 때문에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저기….”

그가 머뭇거리다가 선우현을 향해 머리를 꾸벅 숙였다.

“고맙습니다.”

“살려줘서?”

“네. 그리고 아까는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합니다!”

“평소 하던 대로 했을 텐데.”

“그거야 그렇지만.”

“그러니까 평소에 나 말고도 죄송할 사람 많았겠던데.”

“반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안 그러겠습니다!”

채연서가 말했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죽다 살아나니까 개과천선하는 건가?”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는데.”

홍은성이 다급히 말했다.

“안 쉬웠습니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후회되는 일이 막 생각나서….”

“알았으니까 가서 촬영해요.”

“네!”

홍은성이 다시 꾸벅 인사하고 돌아갔다. 선우현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의외네.”

- 그러게 말입니다.

채연서가 옆에서 말했다.

“아깐 좀 재수 없다 싶었는데, 반성 제대로 하네요. 연예인병이 바닷물 먹고 나았나 보다.”

“역시 바다에 빠뜨리는 게 정답이었어.”

“네?”

“농담입니다.”

***

대본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수정됐다.

피디가 작가에게 말했다.

“이제 바위 쪽으로는 절대로 가지 말자. 바닷가 땅만 파자.”

작가도 동의했다.

“그래야죠. 욕심부렸다가 진짜 사고 터지면 다 망하는 거니까요.”

***

산에 숨어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당황했다.

“형님. 저것들이 다시 저쪽으로 가는데요? 저기 우리 물건이 있는데….”

“환장하겠네.”

***

구하니가 촬영에 다시 들어가기 전에 선우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파도가 바위를 덮치기 전에 선우현이 다가와 그녀를 안고 빠져나왔다.

감이 좋으면 그럴 수는 있다. 그런데 그는 그 일을 한창 촬영 중일 때 했다. 파도가 곧 덮친다는 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바다가 이상해 보이더군요.”

김수선이 말했다.

- 먼저 알아본 건 접니다.

바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걸 먼저 알아본 건 지원위성에 있는 김수선이다.

선우현은 그 경고를 듣고 바다 상태를 살피다가 환경 분석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구하니는 그의 말을 알아서 해석했다.

“바다의 상태는 보기만 해도 아시는구나. 혹시 평범한 지구인이 아니라….”

- 큰일 났습니다. 현지인이 선장님의 정체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 그러게 적당히 하셨어야죠!

구하니가 물었다.

“조상님이 아쿠아맨이세요?”

“아닙니다.”

- 눈치챈 건 아니네요.

다시 촬영이 시작됐다.

김승빈이 바닷가에서 삽질을 했다. 그러다 삽에 딱딱한 게 걸렸다.

“이건 또 뭐야?”

그가 바닥을 삽으로 긁어보았다. 그 아래에서 가방이 나왔다. 완전히 밀폐된 가방이었다.

“어? 이게 뭐지?”

***

산에 숨어 있던 놈 중 하나가 말했다.

“형님. 저거 우리가 회수해야 하는 가방 아닙니까?”

“젠장. 결국 걸렸네.”

두목이 지시했다.

“마스크랑 모자 써. 저놈들이 머릿수가 더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접근해서 기습한다.”

***

김수선이 보고했다.

- 선장님. 산에 있는 사람들이 해안가로 천천히 접근하고 있습니다.

“구경하러 오는 건 아니지?”

- 당연히 아닙니다. 모두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린 후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구하니 씨한테 마가 꼈나.”

- 그러게 말입니다. 그게 좀 수상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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