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간단한 기술
길성 기업 회장 박길성이 JHC 테크 사장 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사장. 어제 선우현 씨가 결혼식 파티에서 알바를 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야.”
- 네. 호산정밀 최 사장님 둘째 아들 결혼식이었죠.
“알고 있었군?”
원래는 최종훈도 몰랐다. 그런데 호텔 삼인방이 저지른 청부폭력 사건 때문에 알게 됐다.
- 제가 좀 친합니다. 하하하.
“도대체 왜?”
최종훈도 왜 선우현이 그랬는지 잘 모른다.
- 어…. 천재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최 사장도 천재잖아. 천재끼리 통하는 게 있을 텐데?”
- 제가요? 에이. 저는 흔해 빠진 수재 정도죠. 진짜 천재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어쨌든 이건 계산이 맞지 않아. 최 사장이나 나나 기술자 출신이라 숫자는 확실하잖아. 토마토 하나에 백만 원씩 받는 사람이 뷔페 알바라니. 너무 이상하단 말이야.”
- 음…. 박 회장님. 이건 회장님이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그래. 이유가 뭐야?”
- 저는 선우현 씨를 처음 만난 날 이후로, 아무리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다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는 선우현을 처음 만났을 때 레드 포션으로 다리 후유증을 치료받았다.
“허…. 평범하진 않은 사람인가 보군.”
- 선우현 씨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박 회장님이 아시는 건 빙산의 일각이죠.
“언제 술이라도 마시면서 그 이야기나 나누지. 내가 궁금해서 그래.”
- 술이야 좋지만,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알아내셔야 할 겁니다. 아, 뒷조사라도 하란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고요. 그러다 걸리면 진짜 큰일 납니다.
“내가 그렇게 예의도 모르는 파렴치한은 아니야.”
최종훈은 현재 처리 중인 청부폭력 사건이 생각났다. 그는 그 일을 잘 수습하겠다고 큰소리친 상태다.
- 음…. 이건 박 회장님이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선우현 씨가 무술 고수인 건 아시죠?
그건 박길성이 먼저 물어봤었다. 박서윤이 납치됐을 때 구출한 사람이 선우현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알지. 잘 알지.”
- 그거 회장님만 아셔야 합니다. 누가 물어봐도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셔야 합니다.
“응? 그거야 당연히 비밀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말을 하는 이유는?”
- 비밀입니다. 죄송합니다.
“알았어. 나 알잖아. 내가 어디 허튼 말 하고 다니는 사람인가?”
통화를 마친 후에 박길성이 박서윤에게 방금 대화를 그대로 전했다.
박서윤이 말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다가, 어젯밤에 작은 폭력조직 하나가 궤멸당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최종훈 사장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 일을 한 사람이 선우현 씨일 겁니다.”
“그래? 어떤 조직인데?”
“기사에는 안 나왔지만, 많이 나쁜 놈들이었을 겁니다.”
“응? 아. 그렇겠지.”
***
최종훈은 전화를 끊고 나서 비서 김찬혁에게 말했다.
“박 회장님이 기사를 보면 혹시 의심하실까 봐 미리 약을 친 거야.”
“그래서 사장님을 본 거 아닙니다. 나사 분석 결과가 나왔다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쩌긴. 회의 소집해.”
***
선우현이 옥상 의자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서 콜라를 마시다가 말했다.
“아차! 알바비 또 안 받았다.”
김수선이 물었다.
- 결혼식 파티 알바비는 받으셨잖습니까?
“그거 말고. 전에 하니 씨 일일 매니저 알바 한 거.”
그는 어제 결혼식장에서 구하니와 마주쳤다. 그때 알바비 이야기도 했었는데 결국 받는 걸 까먹었다.
- 아차!
“너도 이제 생각났냐?”
- 이쯤 되면 구하니가 일부러 떼어먹으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에이. 설마. 알바비를 핑계로 나를 또 만나려고 일부러 안 준 거 아닐까?”
- 그럴 리가 있습니까?
“없지. 나도 알아. 그냥 말해 봤어.”
선우현이 옆을 보았다.
그는 도철이파를 쓸어버릴 때 곽도철을 시켜 금고를 열었다.
그런데 그 금고에 현금은 얼마 없었다. 대신에 곽도철이 뇌물로 쓸 때 사용하는 금괴 몇 개와 장부가 들어 있었다. 금괴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 뇌물로 주기도 편하고 감추기도 쉬웠다.
선우현이 옥상 바닥에 굴러다니는 금괴를 보며 불평했다.
“결혼식 파티 알바는 괜히 했어. 남은 것도 없다.”
- 적의 금고에서 금괴는 몇 개 챙겼잖습니까?
“저걸 어디에 쓰냐고. 부품 소재용 말고는 쓸모가 없잖아.”
- 돌 반지를 만들면 팔 수 있습니다만?
“저걸 언제 다 돌 반지로 만드냐고. 그리고 반지도 너무 많이 팔면 의심받아.”
- 건물 관리인이 올라올 수 있으니 금괴는 좀 치우시죠.
선우현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금괴들을 주워 창고 공간에 던져넣었다.
“이젠 뷔페 알바는 하지 말아야겠다.”
- 촬영 스태프 알바는 가신다면서요?
“그건 다르지. 밥차 밥맛이 궁금해서 가는 거니까. 덤으로 예능 촬영 현장도 가까이에서 직접 보려고.”
- 선장님. 다 좋은데요. 탐사대 지원 기술 재현 작업은 언제 하실 겁니까?
“나사 샘플을 최 사장님한테 맡겨서 분석 중이잖아.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려.”
- 정찰드론도 아니고 겨우 나사 기술을 팔아서 얼마나 벌지 모르겠습니다.
“그거라도 버는 게 어디냐.”
- 탐사대가 현장에서 제작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기술이라, 이미 다른 회사에서 개발했을 수도 있습니다.
“너 안 바쁘냐?”
- 그러고 보니 저만 바쁘네요?
“응? 아. 토마토에 물이나 줘야겠다.”
***
나사 분석 업무를 맡았던 연구팀 팀장이 화면에 사진과 데이터를 띄워놓고 설명했다.
“저희가 나사를 만드는 회사는 아니라서 모든 검사를 하진 못했습니다. 게다가 샘플이 하나밖에 없어서 많은 걸 시험할 수도 없었습니다.”
최종훈이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나사의 품질은 어떻습니까?”
“일단 단단하고, 잘 부러지지 않고, 깨지지도 않고, 녹도 잘 슬지 않았습니다.”
“좋군요.”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기존에 흔히 쓰는 나사보다 훨씬 우수한 품질이었습니다.”
“품질이 우수한 거야 예상했는데….”
최종훈은 선우현이 레드 포션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혹시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요?”
“이를테면 기존 나사와 차원이 다른 특성이 있다든지….”
“품질이 우수하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기존에 판매되는 제품, 그러니까 저희가 비교 테스트에 사용한 나사 중에도 이 정도 품질의 제품은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최종훈은 조금 실망했다.
‘하긴. 한 사람이 그런 전혀 다른 분야까지 천재이긴 어렵지.’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한 건 아니라 실망이 크진 않았다.
어쨌든 이건 선우현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기술이다. 이 기술을 팔아야 관계가 유지된다.
“제작 기술 문서를 받아서 넘겨줄 테니까 판매가 가능한 기술인지 확인해주시죠. 이미 알려진 기술이거나 생산성이 떨어진다면 팔 수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
최종훈이 선우현을 찾아가 분석 결과를 설명했다.
“나사가 품질이 참 좋습니다.”
“그거야 당연합니다.”
- 지구연합이 탐사대 현장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고른 기술이니까요.
최종훈이 말했다.
“이제 제작 기술 문서를 주십시오.”
“어?”
- 펑펑 노느라 문서 작업을 안 하셨을 텐데요?
선우현이 말했다.
“오늘 밤에 보내드리죠. 지금은 좀 바빠서. 아. 오신 김에 토마토나 따 가시죠? 많이 열렸는데 익은 건 다 따가도 됩니다.”
최종훈은 말 돌리기에 간단히 넘어갔다.
“진짜 많이 열렸는데요? 어떻게 따도 따도 저렇게 열립니까?”
“충분한 비료와 영양제의 시너지 효과?”
“아니, 그렇다고….”
“필요 없으면 마시고.”
“익은 건 다 따가겠습니다.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요.”
최종훈이 토마토를 따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선우현 씨. 혹시 이번에 처리하신 그 봉고차 조폭 놈들 말입니다. 혹시 도철이파….”
“어? 최 사장님이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 조직이 하룻밤 사이에 전멸했다는 기사가 작게 났습니다. 우리 김 비서가 찾아냈죠. 혹시 그놈들도 선우현 씨가 처리한 겁니까?”
“그놈들이 날 쳤으니 나도 쳐야죠. 그래도 살려는 놨습니다.”
***
최종훈을 보낸 후에 선우현이 말했다.
“수선아. 나사 제작 기술 문서 말이야.”
- 저한테 떠넘기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
“눈치챘구나.”
- 저는 유기물 재처리 합성장치 수리하느라 바쁩니다.
“그게 당연히 더 중요하지. 그게 수리돼야 급속성장촉진제를 만드니까. 넌 그거 계속해.”
- 문서 작업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가 나사 만들 때 네가 설명해준 거, 그거 그냥 그대로 옮겨 적어야겠다.”
-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텐데요? 선장님이야 중간 과정을 경험으로 해결하셨지만, 그 경험을 명확히 정의하려면 복잡한 문서 작업이 필요할 겁니다.
“중간에 빠진 부분은 기술 지원 문서에 있는 거 그대로 옮겨적자. 그러면 JHC 테크에서 알아서 이해하겠지.”
- 선장님도 이해 못 해서 경험으로 때우신 건데, 그 회사 사람들도 이해 못 하면요?
“이해가 될 때까지 보라고 해야지.”
- 역시 선장님이십니다.
***
선우현은 그날 밤에 문서 자료를 이메일로 보냈다. 최종훈은 그 문서를 연구소에 넘겼다.
이튿날 연구소 팀장이 최종훈을 찾아왔다.
“보내주신 문서대로 나사를 제작할 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제조법이 간단해서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잘됐군요.”
“생산성도 좋습니다. 고품질 나사를 일반 나사와 비슷한 제작 비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나사를 싸게 많이 만들 수 있으면 상업적 가치가 있겠습니다.”
최종훈이 속으로 생각했다.
‘잘하면 나사 제작 기술을 팔 수 있겠어. 선우현 씨를 찾아가서 자랑 좀 해도 되겠네.’
팀장이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왜 그럽니까?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저번에, 이 나사에 기존 나사와 차원이 다른 특성이 있냐고 물어보셨잖습니까?”
“그랬지요. 없다면서요?”
“나사만 볼 땐 없었는데요. 문서를 보니까 있습니다.”
최종훈이 눈을 반짝였다.
“뭐가 다릅니까?”
“문서 중간에 처음 보는 이론이 언급되었는데, 설명이 너무 압축되어 있어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잠깐만. 나사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했잖습니까?”
“보내주신 문서에는 철에 다른 소재를 어떻게 섞어 합금으로 만들고 어떻게 후처리해야 고품질 나사가 되는지 모두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사는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됐잖습니까? 이론 이야기는 뭡니까?”
“그런데 그 기반이 되는 이론이…. 아무래도 나사만 만드는 제조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뭘 만드는 이론입니까?”
“그 합금으로 소형 금속 부품을 쉽게 제작하는 방법에 관한 이론 같습니다.”
“어? 아!”
최종훈은 놓치고 있던 걸 깨달았다.
“나사를 만드는 기술로 다른 금속 제품도 만들 수 있겠군요.”
“정확한 건 더 연구를 해봐야 하겠지만, 그렇습니다.”
“특허는요? 이미 있는 이론입니까?”
“특허팀에서 검색했지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보는 이론입니다.”
최종훈이 활짝 웃었다.
“합금의 성분과 비율, 후처리 방법, 그리고 그 소형 부품 제작 이론까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특허 출원부터 하세요. 국제특허까지 싹 다.”
“예? 국제특허까지요?”
“나사 팔아서 얼마나 남겠습니까?”
그동안은 그걸 걱정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우리는 나사가 아니라, 그 나사에 적용된 모든 기술의 라이센스를 팔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특허는 혹시 사장님 이름으로….”
최종훈이 펄쩍 뛰었다.
“지금 날 도철이 어쩌구처럼 한 방에 보내려는 겁니까?”
“네?”
“아, 아닙니다. 발명한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맙시다.”
“아,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