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45화 (45/281)

45. 알바

이 결혼식 파티장 한쪽에는 지정석 테이블이 여러 개 배치되어 있다.

그중 두 테이블에 신랑의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인 기업가들이 앉아 있었다. 테이블 하나에 네 명씩 모두 여덟 명이었다.

그들의 앞에 작은 접시가 놓였다. 접시 위에는 활력 토마토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토마토 하나를 여덟 개로 자른 조각이었다.

신랑의 아버지인 호산정밀 최 사장이 자랑했다.

“들어본 분도 계실 텐데, 이게 소문의 그 활력 토마토입니다. 제 아들 결혼을 축하하러 와주신 분들을 위해 어렵게 구했습니다.”

여덟 명 중에는 활력 토마토의 소문을 이미 들어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어? 이게 그거입니까?”

“아십니까?”

“알지요. 제가 아는 사람이 하도 자랑해서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맛을 보네요.”

소문을 들은 사람은 여덟 명 중에서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일곱 명은 활력 토마토에 대해 처음 들었다.

그 일곱 명 중 한 사람이 토마토 조각을 먹으며 투덜댔다.

“최 사장. 토마토가 귀해 봤자 토마토지. 겨우 한 조각이면 입맛만 버리겠…. 어?”

맛을 본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최 사장이 씩 웃으며 물었다.

“윤 사장. 어때?”

“이거 진짜 맛있는데? 최 사장. 이거 좀 더 내오지?”

“진짜 구하기 어렵다니까 그러네. 이것도 원래 내가 먹어야 하는 하나를 여덟 조각으로 잘라서 딱 여덟 분에게만 드리는 거야. 내가 먹을 것도 없는데 더 줄 게 어디 있어?”

“아니, 이 친구가 어떻게 아들 결혼식에 돈을 아끼나? 웃돈을 주고라도 샀어야지.”

“어허. 이건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거야.”

“세상에 돈으로 못 구하는 과일이 어디 있어?”

“가격이 딱 정해져 있어서 웃돈이 안 먹혀. 게다가 산삼처럼 생산량이 진짜 극소량이거든.”

“아…. 산삼 이야기를 하니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네. 그래도 토마토잖아. 산삼보다는 흔하겠지?”

최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결혼식을 핑계로 댔더니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살 수 있었다.

“그야 그렇지. 그런데 구할 수 있는 통로가 하나뿐이야.”

“어디서 구했는데?”

“JHC 테크 최종훈 사장. 며칠 전에 하나 가져왔길래 먹어봤는데.”

최 사장이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효과가 진짜 엄청났지. 얼마나 몸에 좋은지 온종일 활력이 넘치더라니까?”

이 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덟 명은 모두 기업체 사장이다. 다들 돈은 많이 벌었지만 건강은 예전 같지 않았다. 몸에 좋다는 건 가격에 상관없이 구해서 먹어도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몸에 좋다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다른 하객이 물었다.

“그래요? 최 사장님. 자세히 좀 이야기해봐요. 이게 어떤 거라고요?”

“활력 토마토라는 겁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딱 한곳에서만 아주 소량이 생산되는 명품 보양 토마토입니다.”

***

구하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송국 예능 막내 작가 안유정이 말렸다.

“응? 여기서 만나? 저 오빠를?”

“어. 선우현 씨가 왜 여기 있는 건지는 만나서 물어보면 되잖아.”

“보는 사람이 많은데?”

“가수는 뭐 사람도 못 만나냐?”

“아니, 언니 말고.”

“응?”

선우현은 뷔페코너에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교체하는 중이다.

안유정이 말했다.

“저 오빠 말이야.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면 어떻게 하려고.”

“너 그거 오버하는 거야. 선우현 씨는 그냥 평범한 무술 고수야.”

“혼자서 무장강도 다섯 놈을 쓸어버렸는데 평범하진 않잖아?”

“그야 그렇지만….”

“혹시 조금 전에 그 여자 때문에 이러는 거야?”

조금 전에 길성 기업 비서실의 박서윤 대리가 선우현과 짧게 대화했다.

“아니야.”

“누구인지 말도 안 했는데 아니라는 대답을 어떻게 하지? 하긴. 저 오빠한테 말을 건 여자가 예쁘긴 하더라. 처음 보는데 신인 배우인가?”

“아니라니까.”

구하니가 선우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인기 가수가 움직이자 시선 몇 개가 따라왔다.

안유정이 한숨을 내신 후에 구하니를 따라갔다.

선우현은 접시 교체를 마치고 주방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중이다.

구하니가 선우현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선우현이 쟁반을 든 채로 계속 걸어가며 대답했다.

“알바 합니다만?”

선우현은 파티장을 나가 주방으로 가는 복도로 이동했다. 구하니도 그런 선우현을 따라갔다. 같이 따라가던 안유정이 복도에서 물었다.

“오빠. 진짜 알바 하러 온 거예요? 아니죠? 여기 어디에 테러리스트가 숨어 있는 거죠?”

“난 진짜 알바라 그런 건 모릅니다만?”

안유정이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한테는 사실대로 말해도 돼요. 오빠가 왜 여기서 알바를 해요?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노는 김에 생활비라도 좀 아껴보려고.”

안유정은 멈칫했다.

“네?”

“그래서 돈도 벌고 밥도 나오는 꿩 먹고 알 먹는 알바를 찾았는데.”

선우현이 불평했다.

“식사제공이 안 된다네요. 음식이 많이 남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너무하네.”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선장님도 너무하죠. 있는 사람이 더하다더니.

“수선아. 우리가 가진 게 없이 산 세월이 오천 년이잖아. 한 조각도 버리지 않고 쓰고 먹은 세월이 그만큼이야.”

- 자원 부족을 겪으며 산 세월은 오천 년이 맞는데, 활동한 시간은 다 모아도 백이십 년쯤입니다만? 생명유지장치에 있을 때는 딱히 먹진 않았습니다만?

“생명유지장치에서도 최소한의 영양공급은 받았잖아. 먹은 건 아니지만 먹은 거나 다름없지.”

- 그건 그렇습니다.

선우현이 김수선과 작게 중얼거리는 동안 구하니는 혼란에 빠졌다.

‘그럼 돈이 없어서 결혼식 파티 알바를 하는 거였어?’

길성 기업의 박서윤은 선우현이 돈 때문에 이 알바를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활력 토마토 하나의 가격이 백만 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하니는 그런 상황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선우현이 돈이 없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알바를 왜 하지? 경호원을 하면 돈을 훨씬 더 많이 벌 것 같은데?’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유정이 말처럼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되는 건가? 그렇다고 첩보원은 아닐 것 같은데….’

그녀는 문득 한강공원에서 청부업자들을 때려잡은 사람이 생각났다. 형사가 가져온 영상은 선명하지 않아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선우현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녀가 확인을 위해 물었다.

“혹시 최근에 공원 주차장에서….”

“한강공원?”

“공원이라고만 했는데 한강공원인 걸 아네요? 역시 그 청부업자들을 잡은 사람은 선우현 씨였군요.”

‘선우현 씨가 유정이를 구출할 때도 강도들이 크게 다쳤다고 했어. 한강공원 주차장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싸웠을 때도 청부업자들이 다쳤잖아.’

그녀는 그래서 선우현이 경호원 알바를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경호원을 하다 실력을 드러낼 일이 생기면, 그 사건들도 의심받을 테니까 알바를 하는구나.’

그녀는 그렇게 오해했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선우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수선아. 구하니 씨가 나한테 미안할 일이 뭐지?”

- 알바비를 아직 못 받으셨습니다.

선우현이 얼른 말했다.

“아! 전에 일일 매니저를 알바로 해준 거! 알바비 아직 못 받았는데!”

“네? 아!”

“와. 그걸 떼어먹으려고 미안하다고 하는구나.”

“네? 아뇨. 그게 아니라….”

“한두 푼도 아니고 백만 원인데.”

“그건 드리려고 했….”

안유정이 끼어들었다.

“잠깐. 언니? 이 오빠는 왜 백만 원이고 내가 일일 매니저 해줄 때는 왜 이십만 원이야? 왜 다섯 배가 차이 나지?”

“으응? 아니, 그때는 경호원 겸 매니저로 알바를 한 거라서….”

안유정은 즉시 납득했다.

“하긴. 이 오빠를 경호원으로 쓰려면 백만 원은 줘야지.”

“너무 쉽게 납득하니까 당혹스럽다.”

안유정이 선우현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오빠는 돈 때문에 이 결혼식 피로연 알바를 한다는 거죠?”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내가 신랑 신부랑 아는 사이도 아닌데.”

예능 방송 막내 작가인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우리 방송에서도 알바 하실 수 있어요?”

선우현이 거절했다.

“방송에 얼굴 팔리면 평소에 피곤해서.”

구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술 실력을 감추려면 방송에 나가는 건 피하는 게 좋겠지.’

안유정이 손을 흔들며 웃었다.

“어머. 개그도 잘 치신다. 당연히 스태프 알바죠. 연예인도 아닌데 방송에 어떻게 나와요.”

“그러면 카메라에 찍힐 필요는 없군요.”

“당연하죠. 스태프가 찍혀서 TV에 나가면 방송사고죠.”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어차피 지금 알바는 오늘 하루만 한다면서요.

선우현도 관심이 갔다.

“전에는 이런 촬영을 지원위성에서 카메라로 보기만 했잖아.”

- 무성영화가 나왔을 때부터 멀리서 보기만 했죠.

“영화가 아니라 예능이지만, 현장에서 일하면서 직접 보면 재미있겠지?”

- 이번에는 일당을 꼭 챙기셔야 합니다.

선우현이 안유정에게 물었다.

“음…. 그 알바 일당은?”

“제가 방송국에 잘 말해서 팍팍 드릴게요.”

“언제입니까?”

“날짜는 출연진 스케줄 조정 때문에 아직 미정인데, 며칠 뒤에 촬영할 거예요.”

“콜.”

“아싸아!”

선우현은 두 사람을 남겨두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가는 길에 복도를 확인했다.

“그 세 놈이 없네?”

- 거기서 덤볐다가 맞은 세 놈 말입니까?

“어.”

- 어딘가 있겠죠.

***

선우현이 파티장으로 돌아가 요리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잘 차려입은 남자가 선우현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명함을 주며 말했다.

“아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선우현이 명함을 받았다. 연예기획사 명함이었다. 그가 작게 말했다.

“수선아. 연예기획사에서 나한테 접근했다. 쭉 지켜봤단다. 역시 얼굴을 보고 접근한 거겠지?”

-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합니다.

“내가 확인시켜 줄게.”

선우현이 씩 웃으며 기획사 직원에게 물었다.

“왜 나를 지켜보셨을까?”

“아까 대화한 그 미녀, 그러니까 비서실에 근무한다는 그분 말입니다. 아는 사이시죠?”

“응?”

- 그건 그럴 리가 있지요. 흐….

“너 지금 웃냐?”

- 들렸습니까?

기획사 직원이 말했다.

“저희 기획사에서 미팅 한 번만 하자고 말 좀 전해주시죠. 사람들 앞에서 스카우트를 제안하면 좀 곤란해 할 것 같아서.”

곤란한 상황에서 제안하면 부정적인 대답을 듣기 쉽다. 그 직원은 그래서 선우현을 통해 박서윤에게 따로 연락하려고 했다.

선우현이 말했다.

“잘 모르는 사이입니다.”

“예? 분명히 아까….”

“일해야 하니까 비키세요.”

“아. 그러면 구하니 씨랑은 잘 아시죠? 좀 전에 구하니 씨와 같이 가던데요.”

“응?”

“구하니 씨와 자리를 마련해주시면 제가 신세 잊지 않겠습니다. 사례로 저희 기획사 가수의 공연 티켓을 보내드릴 테니까….”

“바쁘니까 비켜요.”

***

파티장으로 돌아온 구하니가 물었다.

“유정아. 조금 전에 선우현 씨한테 알바 제안한 그거, 어느 방송 이야기야?”

“나 이번에 다른 프로로 옮겼잖아.”

안유정은 예능 방송 사전 답사를 가다가 무장강도 사건에 휘말렸었다. 방송국에서는 그 일이 혹시 문제가 될까 봐 다른 예능 방송으로 그녀의 자리를 옮겨주었다.

“정식으로 간 건 아니고 임시야. 전에 그 사건이 정리될 때까지만 잠깐 도와주는 거야.”

“임시 작가인데도 선우현 씨를 꽂을 수 있어?”

“가보니까 그 프로는 작가만 부족한 게 아니라 스태프도 부족하더라. 며칠 뒤에 예능 촬영을 가는데, 선우현 씨가 있으면 든든할 거 같아서 내가 밀어보려고.”

구하니가 잠시 궁리하다 물었다.

“음…. 촬영이 정확히 언제야?”

안유정이 눈을 반짝였다.

“응? 왜? 언니도 출연하게? 당장 피디님한테 연락해서 게스트 자리 만들라고 할까?”

“갑자기 그러면 민폐지. 원래 게스트가 있을 텐데.”

“언니가 나간다고 하면 피디님이 없는 자리라도 추가로 만들어낼걸?”

그녀가 손을 살짝 흔들었다.

“아니야. 그러지 마.”

“그럼 왜 물어본 거야?”

구하니가 사슴 같은 목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교통사고로 위장한 트럭 습격 사건을 겪고 나서 예전 목소리를 되찾았다. 일 년 전에 다친 목이 그날 이후로 스무 살 때처럼 상태가 좋아졌다.

‘내 목소리가 좋아진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그날 차에서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때 그녀의 바로 앞에 선우현이 있었다.

‘내가 기절한 동안 선우현 씨가 내 목에 뭔가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 생각은 추측일뿐 확신하는 건 아니다.

구하니가 말했다.

“그냥, 그날 그 촬영장 앞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구경이나 할까 하고 물어본 거야.

“촬영장소가 섬인데?”

“섬을 우연히 지나갈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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