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나사 II
탐사대 지원용 정찰드론은 헬리콥터가 아니라 새처럼 생겼다.
선우현이 오늘 만든 정찰드론을 보며 말했다.
“새를 만들었는데 왜 날지를 못하지?”
- 제어장치용 소프트웨어가 없으니까요.
“오늘 온종일 이거 만드느라 힘들었는데.”
- 제어 프로그램은 대책이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네가 내 대책이었어.”
- 그런 안타까운 일이!
선우현이 버드형 드론에 충전용 케이블을 연결했다.
“일단 돌려나 보자.”
- 날개를 못 움직일 텐데요?
버드형 정찰드론의 제어장치는 버려진 양산품 드론에서 분리해 옮겨붙였다. 프로펠러도 하나 따라왔다.
“수평 추진력 보조용으로 작은 프로펠러를 붙였잖아. 그거라도 돌려보려고.”
그가 버드형 드론의 전원을 켜며 진지하게 말했다.
“처음으로 만든 탐사대 지원장비의 가동 시험을 시작한다. 오늘 이 작은 한 걸음은 역사의 위대한 한 걸음….”
드론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었다.
“어?”
지원위성에는 실내가 보이지 않는다. 김수선이 물었다.
- 왜 그러십니까?
“스파크가 꽤 튀는…. 아. 터졌다.”
드론이 조금 큰 소리를 내면 폭발했다. 폭탄처럼 터진 게 아니라 내부 회로가 나가고 동체 표면이 그을린 정도였지만, 어쨌든 터졌다.
“이게 왜 터지지?”
- 선장님은 오천 년 동안 선체를 수리하면서 장비를 참 많이 터트리셨습니다만? 지상에 내려가서도 또 터트리신 겁니까?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 하나도 안 이상합니다. 익숙합니다.
“아! 그거네. 폐기장에서 주워온 부품에 문제가 있었을 거야.”
- 여기서는 파편까지 싹 다 주워서 쓰는데, 그 풍족한 곳에서 어떻게 형체가 온전한 부품 탓을 하십니까? 그 정도면 여기선 A급 자재입니다.
선우현이 의자를 뒤로 밀며 손을 흔들었다.
“에이! 나 안 해! 그냥 토마토나 팔 거야!”
- 네? 선장님. 토마토 팔아서는 우주왕복선을 못 삽니다.
“배 째라.”
- 여기서 어떻게 째는데요? 궤도 폭격 무기가 없습니다.
“됐어. 관둘래. 허탈해.”
김수선이 살살 달랬다.
- 선장님. 잘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겁니다.
“너는 이쪽 장비의 제어 프로그램은 못 만든다며?”
- 제어장치 개발은 외주를 주는 방법도 있잖습니까?
“응? 탐사대 지원장비의 제어 프로그램 개발을 외주를 주라고? 그러려면 필요한 정보를 다 제공해야 할 텐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
-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그건 좀 아니네요.
“우리 수선이가 날 놀리는구나. 됐어. 때려치울 거야. 피곤해.”
- 피곤하시면 활력 토마토를 드셔 보시죠. 효과가 끝내준다던데요.
“나한테는 효과 없더라.”
- 제가 선장님을 믿고 의지하는 거 아시죠?
“뻥 치지 마.”
- 당연히 뻥이긴 한데요. 그래도 해결 방법을 찾아봐야죠.
선우현이 불평하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열렸다. 최종훈이 들어왔다.
“선우현 씨. 퇴근 안 하십니까?”
“이제 가려고요.”
“같이 가시죠.”
최종훈은 오늘 선우현의 옥상을 찾아갈 생각이다.
‘거기 가서 토마토 주스도 얻어 마시고, 활력 토마토도 새로 좀 얻고.’
선우현은 최종훈과 그의 여동생이 먹을 토마토는 알아서 가져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가져가려면 옥상에 들러야 한다.
게다가 토마토는 많을수록 좋았다.
“활력 토마토 몇 개는 홍보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제 동생도 몇 개 줬더니 남은 게 없습니다. 홍보용으로 더 뿌려야 합니다.”
“잘 익은 거 많던데 한 바구니 정도 따 가시면 되겠네요.”
“헉! 한 바구니나! 얼른 가시죠.”
선우현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버드형 정찰드론을 손으로 들었다. 그는 그걸 상자에 넣어 집에 가져갈 생각이다. 날개가 접이식이라 다 접으면 상자에 넣을 수 있다.
최종훈이 그걸 보며 말했다.
“아. 오늘 연구소에서 엄청나게 활약하셨다더니 그게 그 결과물이군요.”
선우현이 작게 물었다.
“수선아. 내가 오늘 활약했냐?”
- 아니요. 헛고생만 하셨는데요.
최종훈이 물었다.
“그런데 제작할 때 폐기부품을 주로 써서 그런지, 많이 빈티지해 보입니다. 하, 하하.”
“누더기 깡통 드론이죠.”
“드론이요? 설마 이게 하늘을 실제로 난다는 겁니까?”
“아니요. 제어 모듈을 버려진 드론에서 뜯어왔는데, 기존 제어 프로그램이 이 날개와 안 맞아서 못 납니다.”
“아. 그렇군요. 일반 드론의 제어 모듈이라면 당연히 프로펠러를 제어하는 방식이겠죠. 이런 날개가 아니라.”
최종훈은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럼 이건 제작 기술 연구용이군요. 그런데 이거, 와아….”
“와아?”
최종훈이 날개와 동체를 살펴보며 말했다.
“항공 역학을 이렇게 적용할 줄이야.”
“어…. 좀 볼 줄 아십니까?”
“항공 관련 프로젝트를 몇 번 진행한 적이 있어서 보는 눈은 좀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떠신지?”
“잘하면 진짜 날겠는데요? 생긴 게 정말 느낌이 좋습니다.”
선우현이 버드형 드론을 책상 위에 도로 올려놓고 날개를 활짝 펴놓았다.
“이건 테스트용으로 만들어본 겁니다. 그래서 누더기처럼 보이죠. 나중에 정식으로 만들면 때깔부터 달라질 겁니다.”
“대단하십니다.”
“이 정도야 기본이죠. 하하하.”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그 정찰드론은 방금 터졌는데요? 그것도 전원 넣자마자.
최종훈이 동체 아래쪽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뭔가 검은 게 묻어 있….”
선우현이 얼른 제안했다.
“옥탑방에 가야 한다면서요? 이건 여기 놔두고 얼른 가시죠.”
“아. 그럴까요?”
***
두 사람은 선우현의 옥탑방 앞 옥상으로 이동했다. 최종훈은 선우현이 갈아준 활력 토마토 주스부터 마셨다.
“크으. 역시 좋네요. 맛도 좋고 기운도 나고.”
그가 옥상 한쪽에 있는 화분들을 보았다.
“토마토도 잘 익은 게 많습니다. 홍보용으로 쓸 건 제가 챙길까요?”
“알아서 골라가세요.”
“몇 개나….”
“다 익은 것 중에 반 정도 가져가시죠.”
“헉. 절반이나요?”
“내일이 되면 그만큼이 또 잘 익을 테니까.”
최종훈은 일반적인 토마토의 성장 기간을 모른다. 그는 선우현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최종훈이 잔뜩 가져온 작은 상자에 잘 익은 토마토를 하나씩 담았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 상자는 어디서 난 겁니까?”
“동대문에 있는 액세서리 상가에서 제일 좋은 걸 샀습니다. 이건 일단 임시로 쓰고, 정식 포장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제대로 의뢰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런 건 최 사장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디자인 의뢰비는 어떻게 할까요? 최고의 디자이너를 섭외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토마토를 좀 줘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주세요.”
“잘 협상하겠습니다.”
최종훈이 토마토를 다 챙긴 후에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사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나사요? 무슨 나사요? 미항공우주국?”
김수선이 말했다.
- 현재 지원위성의 카모플라쥬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NASA의 능력으로 우리 선체를 탐지했을 확률은 낮습니다.
최종훈이 말했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 NASA 말고, 볼트와 너트 같은 나사말입니다.”
“당연히 농담이었습니다.”
“오늘 연구소에서 나사를 좀 만드셨다면서요?”
“만들었죠. 연구소에서 보신 드론에 쓸 커스텀 부품을 좀 만들었는데, 그걸 조립하려면 독자 규격의 나사가 필요해서요.”
“굉장히 빨리 만드셨는데도 품질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연구원들이 있더군요.”
“아. 그거는….”
선우현이 멈칫했다. 그가 작게 말했다.
“어? 수선아. 그 나사는 탐사대 지원 기술로 만든 거잖아.”
- 당연합니다. 정찰드론 조립용으로 만든 나사니까요.
“그 나사라도 팔까?”
- 예? 나사가 얼마나 한다고 그걸 팝니까? 나사 한 상자를 만드는 것보다 활력 토마토 몇 개 키우는 게 훨씬 더 많이 남을 텐데요.
“나사 자체가 아니라 만드는 기술을 파는 거지. 우리에게 현지 협력자가 필요한 이유가 그거였잖아.”
- 아…. 선장님이 어쩐 일로 일을 다 하시려나 했더니, 직접 할 필요가 없어서군요?
“나사 제작 기술의 라이센스를 팔면 돈은 조금이라도 꾸준히 들어오겠지.”
- 많이 팔려야 그렇죠. 아예 안 팔릴 수도 있습니다만?
“괜찮아. 파는 건 내가 아니니까.”
선우현이 주머니를 뒤졌다. 쓰고 남은 나사가 한 개 나왔다. 크기는 새끼손가락 정도였다. 나사치고는 꽤 컸다.
- 필요한 것보다 크게 만드는 바람에 남아버린 거군요.
“처음 만든 거니까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지.”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제안했다.
“이게 오늘 만든 나사입니다. 사실 오늘은 이 나사를 개발하던 중이었습니다. 드론은 겸사겸사 테스트용으로 만들어본 거고요.”
“예? 나사를 굳이 왜 개발….”
“일반 나사와 볼트 너트 타입이 있습니다. 이 나사를 JHC 테크에서 팔 수 있겠습니까?”
최종훈은 당황했다.
“아, 저기…. 우리 회사는 기술 라이센스 판매가 전문이지 나사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서….”
“당연히 나사 제작 기술을 팔자는 거죠. 이거 품질이 꽤 좋습니다. 생산도 쉽고요.”
생산하기 쉽다는 건 오늘 직접 만들어봤기 때문에 안다.
최종훈은 망설였다.
‘이런 건 팔아본 적이 없는데….’
그의 눈에 활력 토마토가 보였다.
그는 기존에 받았던 토마토 중 일부를 홍보용으로 뿌렸다. 대상은 기력이 부족해질 나이가 된 기업 사장들이었다.
한 사람에게 하나씩만 줬는데도 먹어본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 토마토는 선우현만 재배할 수 있다.
최종훈의 다리를 고쳐준 레드 포션은 너무 귀해서 아직 구경도 못 하고 있다.
최종훈이 활력 토마토를 다시 보았다.
‘가격은 개당 백만 원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가가치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크지. 나사 같은 사소한 건 남는 게 없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그냥 진행하자.’
최종훈이 결정을 내리고 큰소리쳤다.
“알겠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이 나사 제조 기술을 팔아보겠습니다.”
선우현이 활짝 웃었다.
“이야아. 역시 최 사장님은 화끈하시네.”
- 우리가 현지 협력자를 참 잘 뽑았습니다.
최종훈이 말했다.
“다만, 이 기술을 팔려면 나사의 품질이 확실해야 합니다. 생산성도 좋아야 하고요. 기존 기술보다 경쟁력이 없으면 아무리 우리 회사가 열심히 해도 아예 팔 수가 없습니다.”
나사 자체를 파는 경우라면 덤핑이라도 쳐서 물량을 소진할 수 있다. 그런데 JHC 테크가 파는 건 기술이다. 그런 기술은 경쟁력이 없으면 아예 팔 수가 없다.
선우현이 새끼손가락 크기의 나사를 내밀었다.
“품질은 이 나사를 가져가서 테스트해보시죠. 결과가 잘 나오면 제조법은 제가 문서로 잘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제조법 문서를 어떻게 작성하시게요?
“네가 제작 지침서 가지고 있잖아. 그걸 적당히 옮겨적으려고.”
- 날로 먹는군요.
“아니면 네가 만들어서 강하 캡슐로 보내주던가.”
- 방법이 신선하단 뜻이었습니다.
***
최종훈은 활력 토마토와 나사를 가지고 회사로 돌아갔다.
그는 토마토만 봐도 배가 불렀다.
“기존에 활토 샘플을 돌렸던 곳에는 한 개씩 추가로 팔고, 나머지는 다시 홍보용 샘플로 쫙 뿌리자. 그러면 소문나는 건 금방일 거다.”
비서 김찬혁은 오늘 회사에 남아 있었다. 그가 물었다.
“사장님. 토마토는 알겠는데요. 손에 들고 계신 그건 뭔가요?”
최종훈은 나사를 들고 있었다.
“연구소에 보내서 테스트할 거야. 이 나사의 품질이 경쟁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나사를 왜요?”
“이걸 만드는 기술을 우리가 팔아야 돼.”
“예? 우리 회사는 나사를 연구하는 곳이 아닌데….”
“이거 선우현 씨가 개발한 나사다.”
“꼭 팔아야겠네요.”
***
선우현이 말했다.
“탐사대 지원 기술 현지화 작업은 저 나사가 팔릴 때까지 연기다.”
- 선장님? 그 핑계를 만들려고 나사를 넘긴 겁니까?
“아니야. 기술을 팔려고 넘긴 거야.”
- 수상합니다.
“어쨌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다른 거 해야지.”
- 또 놀고먹으실 겁니까?
“이번엔 일하려고.”
- 정말입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선우현은 탐사대 위성에 있을 때는 옷에 대해서는 딱히 불만이 없었다. 거기서는 재생하기 쉽고 입기 편한 옷이 최고였다.
그래서 그는 지상에 내려와서 동네를 돌아다닐 때는 추리닝을 즐겨 입었다. 차려입어야 할 때는 청바지 정도만 입었다.
하지만 먹는 건 달랐다.
“내가 거기서 워낙 오랫동안 칼로리바만 먹고 살았잖아.”
칼로리바에는 각종 영양소가 충분히 들어 있어 식량으로 써도 문제는 없다. 대신에 맛과 식감은 진짜 음식보다 떨어졌다. 게다가 칼로리바 하나만 계속 먹으면 당연히 물린다.
김수선이 말했다.
- 그래서 지상에 내려가신 후에는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서 사시잖습니까? 아예 맛집을 찾아 돌아다시던데.
“이번에는 돈도 벌도 맛있는 것도 먹는 걸 잠깐 하려고.”
- 그런 게 있습니까?
선우현이 노트북으로 인터넷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보여주었다.
옥상에서 노트북 화면을 펼쳐놓으면 위성에서도 내용을 볼 수 있다.
“이거 하려고.”
- 파라파크 호텔 파티 알바? 내일 하루짜리 일에, 일당이 많은 것도 아닌데 왜 그 알바입니까?
“이 파티에서 알바를 하면서 이 호텔 요리를 실컷 먹으려고. 공짜로.”
- 놀면서 맛집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낫네요. 일당이라도 받으니까.
“당연하지. 이거 내가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고 진짜 열심히 검색해서 겨우 찾아낸 알바야.”
- 그 노력으로 다른 걸 하시라고요.
***
길성의 박길성 회장이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박서윤을 불러 물렀다.
“내일 호산정밀 최 사장 둘째가 결혼하지?”
“예. 종로 파라파크 호텔에서 결혼합니다. 혹시 참석하실 생각이시면 준비하겠습니다.”
“박서윤 대리가 나 대신 참석해.”
박서윤은 멈칫했다.
“예? 제가요?”
박길성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박 대리가 나 대신에 다른 기업 사람들을 만나서 얼굴이라도 익혀.”
“저는 비서실 말단 직원인데 그런 일을 어떻게….”
“가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와라. 그 호텔이 음식 하나는 참 잘해.”
박서윤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고 혼자 힘으로 대학을 다녀서 예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도 월급을 받으면 원룸 월세와 필수 생활비 외에는 대부분 저축한다. 그래서 맛있는 걸 참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요리를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
가수 구하니는 연예계 친구가 보내준 청첩장의 날짜를 확인했다. 결혼식 장소는 파라파크 호텔이었다.
“얘 결혼식이 벌써 내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