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40화 (40/281)

40. 구조 결함

선우현이 말했다.

“현지 협력자인 최 사장님을 통해 기술을 팔긴 팔아야 하는데 말이야.”

선우현이 옥상에서 토마토를 보며 말했다.

“이 토마토 재배용 급속성장촉진제 기술을 팔 수 있으면 대박인데, 이건 팔 방법이 없다.”

지구연합에서 사용하는 양산형 촉진제는 식물이 빨리 자라고 열매도 빨리 맺히는 효과만 있다.

“레드 포션 오천 년 숙성의 추가 효과가 이럴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레드 포션은 그들이 지구연합에서 이 지구로 넘어올 때 기준으로 개발된 지 100년이 안 된 물건이다. 그때만 해도 이런 효과는 예상할 수 없었다.

- 레드 포션이 소량이라도 들어가야 하는 급속성장촉진제는 팔 수 없습니다. 탐사대 지원 기술 중에 팔 수 있는 걸 찾아야 합니다.

“아쉽단 말이야. 우리에게는 남아도는 게 레드 포션인데….”

- 재고가 많기는 하죠. 유통기한이 오천 년이나 지났지만요.

그 포션을 다시 사용하려면 재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 재처리할 자원과 에너지가 없으니까 포션은 못 팝니다.

“우주 쓰레기를 대박으로 하나 건지면, 촉진제 정도는 넉넉하게 만들 수 있잖아. ”

- 유기물 재처리 합성장치는 무리해서 돌리면 터질 겁니다. 선장님. 토마토를 팔아서는 우주왕복선을 못 합니다. 자꾸 꼼수 쓰려고 하지 마시고 탐사대 현장 활동 지원용 기술을 파시죠.

“야. 나도 탐사대 기술을 팔려고 했어. 진짜야.”

지구연합은 탐사대의 원활한 현장 활동을 위해 여러 가지 기술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중 어떤 건 이미 이 지구에서도 개발됐다. 현재 지상의 기술과 장비로는 만들 수 없는 것도 있다.

선우현은 그중에서 특허를 낼 수 있고 양산도 가능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탐사대 현장팀 장비 제작 기술 중에 적당한 게 있을 거야.”

- 있으면 좋겠네요.

“야. 왜 갑자기 약한 소리야?”

- 있긴 있겠죠. 지상에서 직접 만들어보고 테스트하는 작업을 선장님이 하셔야 한다는 게 걱정이지만요.

“수선아. 나 그냥 확 놀까? 난 그래도 하나도 안 불편한데. 요즘 되게 편한데.”

- 선장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선장님 믿고 있는 거 아시죠?

“알겠냐?”

***

최종훈이 JHC 테크 연구소장 이백현을 만났다. 그들이 만난 장소는 회사가 아니라 사업 초기에 자주 들렀던 시내 식당이다.

최종훈이 말했다.

“연구소와 협업 연구 하나 해야겠다.”

이백현은 남들 앞에서는 최종훈을 깍듯하게 사장님으로 대하지만, 밖에서 따로 만날 때는 옛날처럼 이야기했다.

이백현이 물었다.

“혹시 형이 직접 연구하게?”

“나? 하고 싶긴 한데, 난 이제 까먹은 게 많아서 안 돼. 연구에서 손을 놓은 지 너무 오래됐어.”

“그럼 대학 연구실인가?”

“아니. 개인 회사야.”

“아. 연구 전문 중소기업이구나.”

“개인 회사라니까? 직원 없이 사장 혼자야.”

이백현은 당황했다.

“응?”

“대신에 실력은 확실해.”

이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러니까 학계에서 유명할 정도로 연구 실적이 확실한 분인데 독립한 거구나?”

최종훈이 머뭇거렸다.

“어…. 실적은 없을걸?”

“응? 실력이 확실하다면서?”

“그건 맞아. 확실해.”

이백현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최종훈을 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회사가 아니라 옛날에 그들이 곧잘 오던 식당이다.

김찬혁이 같이 밥을 먹고 있지만 다른 손님들은 그들의 대화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백현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종훈이 형. 그러니까 그 사람을 형이 꽂아주는 거지?”

“내가 꽂으면 내일 당장 시작할 수 있냐?”

“사장이 꽂고 소장이 미는데 당연히 가능하지.”

“진행해.”

“어디까지? 연구소에서 직원도 붙여줘야 해?”

“아니. 장비 빌려주고, 연구할 공간만 있으면 돼.”

“그럼 쉽네. 연구 공간은 비어있는 곳이 있으니까 내일부터 쓸 수 있어. 다만…. 이렇게 꽂으면 말이 나올 수 있는 건 알지?”

“연구 협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내 돈으로 다 낸다. 장비 대여료까지 모두.”

“어?”

“그러니까 다들 닥치라고 해.”

***

이튿날 아침에 최종훈이 선우현을 찾아가 자랑했다.

“연구 협업 문제는 제가 싹 다 처리했습니다. 당장 오늘 오후부터 연구소에 나가시면 다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선우현이 활력 토마토 주스를 최종훈의 앞에 놓았다.

“잘됐네요. 그만 놀고 뭔가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니까.”

이번에는 김찬혁도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김찬혁이 말했다.

“연구소에서 협업하실 때 장비 대여에 차질이 생기면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제가 싹 다 해결하겠습니다.”

선우현이 김찬혁의 앞에도 주스가 담긴 잔을 내려놓았다.

“대접할 게 이것밖에 없어서.”

“감사합니다!”

김찬혁이 얼른 잔을 들고 주스를 홀짝였다.

“크으. 맛도 맛이지만 몸에 활력이 차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최종훈이 물었다.

“주스가 입에 들어가자마자 활력 효과가 나지는 않을 텐데?”

“기분이 그렇다는 거죠. 기분이.”

***

JHC 테크 연구소는 대학 연구실 같은 외부 기관과 연구 협력 관계를 자주 맺는다. 외부에서 연구소로 사람을 파견할 일이 있으면 사무실을 하나 내주기도 한다. 연구소 장비는 신청하면 쓸 수 있다.

선우현도 그런 사무실을 하나 얻었다.

사무실의 크기는 열 평 남짓이었다. 방에는 책상이 하나 더 있는데 지금은 사람이 없었다.

선우현이 텅 빈 책상에 노트북 하나 얹어놓고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수선아. 장비는 빌리면 되는데, 뭘 만들어야 할까? 아직 그것도 안 정했네.”

- 탐사대 지원 기술을 지금부터 하나씩 시험해보시죠. 그중에 그 연구소에서 구현할 수 있는 게 있겠죠.

젊은 여자가 방에 들어왔다가 선우현을 보고 멈칫했다.

“누구…. 아! 오늘 오후부터 오신다던 벤처 분이시구나. 저는 한국대에서 온 박선희예요.”

박선희는 대학원생이다. 그녀가 말했다.

“이 연구소에는 우리 대학 연구실에 없는 장비가 많아서, 그걸 빌려 쓰려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와요. 저는 어젯밤부터 실험했어요. 그런데 성함이….”

“선우현입니다.”

“이름이 현 씨?”

“우현입니다.”

“아. 우현 씨구나. 반가워요.”

처음 만난 사이라 통성명 외에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

그녀는 들고 온 부품을 구석에 있는 상자에 넣은 후에 들려고 했다. 상자에는 이미 금속 부품이 많아서 꽤 무거웠다.

“아. 이거 버리려면 카트 빌려와야겠다.”

선우현이 물었다.

“버리다니요?”

“실험하다 망쳤거든요. 폐기해야죠.”

“그러니까 그걸 버린다고요?”

“네.”

“어휴. 그 좋은걸.”

“예?”

선우현이 입맛을 다셨다.

“어디에 버린다는 겁니까?”

“당연히 연구소 폐품 적치장이죠.”

“거기가 어디입니까? 제가 들어다 드리죠.”

이 연구소에는 폐품 적치장으로 쓰는 창고가 하나 있다.

그곳에 일반 쓰레기는 없다. 그 적치장은 망가진 부품이나 너무 구형이라 쓸모가 없는 장비를 버리는 곳이다.

선우현이 수북하게 쌓인 폐기 부품과 장비들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야아. 수선아. 나 지금 알리바바의 동굴을 보는 기분이다.”

폐품 적치장은 지붕이 덮여 있는 조립식 창고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지원위성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김수선이 물었다.

- 자원이 얼마나 있습니까?

“각종 부품과 금속, 물자가 몇 톤, 아니, 수십 톤은 되겠다.”

김수선이 안타까워했다.

- 그걸 손에 넣어야 하는데! 저는 지금 레이저 추출기가 말썽을 부려서 이걸 고치려면 또 뭘 뜯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데, 거기는 그 귀한 자원이 산처럼 쌓여 있다니!

“그러게 말이야.”

선우현이 폐기 부품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 귀한 게 이렇게 쌓여 있다니.”

관리 부서 직원이 물건을 버리러 왔다가 그 말을 들었다. 그가 말했다.

“귀하기는요. 쓸만한 부품은 이미 다 뺐고 보안 검사까지 마친 거라서 거기에는 귀한 게 없어요.”

“그러면 이걸 좀 써도 됩니까?”

박선희가 직원에게 선우현을 소개했다.

“외부 벤처에서 연구 협력 협약을 맺고 오신 분이래요.”

“아. 그러시구나.”

관리 직원이 대답했다.

“어차피 다 폐기할 거니까 뭐든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가져가서 쓰시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여기에 버리세요.”

김수선이 얼른 말했다.

- 선장님이 잘하시는 거 있잖습니까?

“나야 다 잘하지. 노는 걸 제일 잘하고.”

- 자원 재활용을 잘하시죠. 여기 있을 때도 망가진 부품의 마지막 나사 하나까지 재활용했잖습니까? 탐사대 기술의 현지 구현 작업은 익숙한 방식으로 하시죠?

“그럴까? 여기 있는 부품들로 적당한 걸 만들어볼까?”

- 선장님. 믿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

선우현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폐기장비 더미를 뒤졌다.

“좋은 게 너무 많다. 어휴. 이 전선들 좀 봐라. 피복까지 다 멀쩡한데 이걸 버렸다. 이야아. 이건 티타늄으로 만들었네? 아니, 티타늄을 왜 버려? 미친 거 아냐?”

- 티타늄이라니! 지금 똑 떨어진 게 선체 보강용 티타늄입니다! 그건 여기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여긴 진짜 보물이 쌓여 있네.

- 선장님. 우주왕복선은 언제 보내실 겁니까?

“으응?”

- 여기로 물자 보내러 내려가신 거잖습니까?

“어…. 기다려봐. 돈 많이 벌어서 우주왕복선을 사면 내가 이런 거로 화물칸 꽉꽉 채워서 보내줄게.”

- 그날이 오긴 올까요?

“온다. 꼭 온다.”

- 그럼 빨리 뭐라도 만들어보시죠.

선우현이 망가진 장비들을 뒤적이며 말했다.

“볼펜도 버렸네? 아. 그거 만들까? 볼펜형 지도 제작기.”

- 볼펜에 다리가 달린 거 말입니까?

“어. 평소에는 볼펜 모습인데 종이 위에 올려놓으면 다리가 나와서 움직이면서 정찰 지형을 그리는 그거.”

- 그걸 누구한테 팔게요?

“당연히 정찰 임무 수행 중에 영상 장비를 다 손실했을 때를 대비한 비상용…. 안 팔리겠구나.”

- 필요한 제작 기술 단계는 높은데 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거 만들면 왕복선은커녕 연료도 못 삽니다.

“알아. 어? 잠깐. 여기 뭐가 좀 있다. 이걸 모으면….”

- 이번엔 또 뭡니까?

“잘하면 정찰드론을 만들 수 있겠는데?”

- 탐사대 지원용 정찰드론 말입니까? 그게 되겠습니까?

선우현이 큰소리쳤다.

“나 모르냐? 내가 선체 수리 경력 오천 년의 개조 전문가야. 일단 만들어보자.”

선우현이 부품을 이것저것 챙긴 후에 빈 박스에 담았다. 그 박스는 대학원생 박선희가 버리려던 걸 얻었다.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걸 개조하려면 필요한 장비는….”

장비를 빌려야 하는데 절차를 하나도 모른다. 박선희는 이미 대학 연구실로 돌아가서 사무실에는 물어볼 사람도 없다.

그가 김찬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찬혁 씨. 이제 뭘 좀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장비를 어떻게 대여해야 합니까?”

- 아. 제가 담당 부서에 연락을…. 잠시만요. 사장님 바꿔드리겠습니다.

최종훈이 전화를 바꿔 받았다.

- 제가 지금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최 사장님이 직접 오실 필요까지야….”

- 마침 근처에 있습니다. 제가 연구소에 얼굴 한 번 보여줘야 앞으로 장비 대여가 수월해질 겁니다.

“얼른 오시죠.”

***

최종훈은 선우현이 할당받은 사무실에 들어왔다.

최종훈은 선우현이 책상 위에 쌓아놓은 부품들을 보며 당황했다.

“어…. 이게 다 뭡니까? 꼭 고물처럼 보이는데….”

선우현이 자랑했다.

“3번 적치장에 좋은 부품이 많더라고요. 거기서 챙겼습니다.”

“3번 적치장이면 폐품을 모아 놓은…. 아니, 왜 이런 쓰레기를….”

“쓰레기라니요. 잘 고쳐 쓰면 되는데.”

최종훈은 깊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

‘천재의 방식이 있겠지.’

그는 그가 도와줄 수 있는 걸 제안했다.

“제가 연구소를 안내할 테니까 같이 나가시죠. 저와 한 바퀴 돌고 나면 앞으로 장비 대여가 쉬워질 겁니다.”

최종훈은 연구소의 각종 시설을 자랑했다.

“저 레이저 용접기는 실험용 정밀 장비 제작에 사용합니다.”

“와. 레이저 용접기. 나도 저거 많이 썼는데.”

지원위성에 있을 때는 휴대용 레이저 용접기를 들고 선체 외부로 나가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뭔가 만들려면 전기인두로 납땜을 해야 한다.

최종훈은 당황했다.

“예? 저걸 어디서….”

“금 간 거 때우려고요.”

“예? 저걸로요?”

“아니, 뭐. 크기가 다르긴 한데, 기본 원리는 제가 쓰던 것과 비슷하니까요. 여기서 연구하면 저것도 빌려 쓸 수 있습니까?”

“그럼요. 제가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그러면 생각해둔 걸 더 쉽게 만들 수 있겠습니다.”

연구소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시설도 있지만, 사장과 함께라면 들어갈 수 있는 곳도 많았다.

두 사람은 그런 곳을 돌다가 한창 실험 중인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레이저로 금속을 녹이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최종훈이 그 모습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저건 소재 연구용 레이저 장비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개발한 장비인데, 지금은 테스트 단계….”

“저 장비 저렇게 만드는 거 아닌데.”

“예?”

“저렇게 하면 터지는데.”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저번에 우리가 쓰던 금속 추출용 레이저 장비 터진 거 말이야.

- 오천 년 동안 계속 수리하면서 쓰다가 결국 터졌죠. 터진 장비 도로 살리려고 쏟아부은 자원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중요한 장비가 고장 나면 덜 중요한 장비를 뜯어서라도 수리해야 했다. 금속 추출 장비는 사용 빈도가 높고 고장도 잦아서 수리할 일이 많았다.

부품이 여유가 있을 때는 자동 수리모듈을 이용해 완전히 고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은 부품이 부족해지는 시기가 왔다.

그때부터는 덜 중요한 다른 장비에서 부품을 뜯어내거나 아예 대체 부품을 만들어 써야 했다. 그런데 대체 부품은 만들 때마다 에너지와 자원이 많이 소모됐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모자랐다. 그때부터는 구할 수 있는 부품에 맞게 금속 추출 장비의 기능을 삭제하면서 수리해야 했다. 그렇게 수리할 때마다 성능 감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수리를 위해 개조할 때마다 장비의 구조는 단순해지고 성능은 떨어졌다. 나중에는 구조와 성능이 지구연합의 박물관에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터졌다.

“그때 그 장비가 터지기 직전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개조한 것과 똑같은 구조로, 이 연구소 사람들이 레이저 장비를 새로 개발했어. 그런데 그걸 지금 테스트하고 있네?”

- 그럼 곧 터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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