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39화 (39/281)

39. 꿈

선우현이 화분에 지지대를 꽂으며 말했다.

“개꿀이지. 비료 넣고 급속성장촉진제 좀 쓰면 하나에 백만 원짜리 토마토가 알아서 잘 자라니까.”

토마토를 노리는 해충은 안티 버그 레이저 포탑이 자동으로 잡는다.

- 화분에서 계속 키우려면 흙의 상태도 신경 써야 할 겁니다.

“그래야겠지. 탐사대 지원 매뉴얼에는 촉진제를 쓸 때는 어떻게 하라고 나와?”

- 아직 안 찾아봤는데요?

“역시 대충 하는 데는 선수인 김수선.”

- 챔피언이신 선장님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급속성장촉진제 매뉴얼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촉진제는 양산형과 달라서 추가 효과가 있는데…. 에이. 괜찮겠지.”

- 괜찮겠죠.

“토마토도 더 키우고, 다른 과일도 새로 좀 키워볼까?”

급속성장촉진제 덕분에 토마토는 매일 따도 이튿날이면 다시 열린다. 하지만 토마토만 먹고 싶지는 않았다.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지. 그래. 딸기가 좋겠다. 수선아. 촉진제 더 만들자.”

- 선장님. 촉진제를 지상으로 보낼 때 사용하는 강하 캡슐은, 자원을 소모해야 만들 수 있습니다만?

“요즘은 우주 쓰레기 주운 거 없어?”

- 있었는데요. 거기서 뽑은 자원은 선체 수리하는 데 써서 이제 없습니다. 지금 있는 촉진제는 토마토 생산량을 늘리는 데 쓰시고, 딸기는 가게에서 사서 드시죠?

“우주 쓰레기를 좀 더 주울 때까지는 그래야겠다.”

***

비서 김찬혁이 운전석에서 말했다.

“사장님. 오늘은 모처럼 정시에 퇴근하시는데, 댁으로 모실까요?”

김찬혁의 집은 최종훈의 집에서 가깝다. 최종훈이 지금 집에 가면 김찬혁도 10분 뒤에는 집에 도착한다.

최종훈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바로 거기로 갈 거면 왜 내가 활력 토마토를 네 개나 가져왔겠냐? 민영이한테 가자.”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오늘도 토마토 드셨습니까?”

최종훈이 입맛을 다셨다.

“아까 옥상에서 얻어먹었어. 갈아서 주스로 만드니까 활력 포션처럼 느껴지더라.”

김찬혁은 당황했다.

“예? 선우현 씨가 옥상에서 사장님께 토마토를 갈아서 줬습니까?”

“어. 아까 옥상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한 잔씩 마셨다.”

“아니, 그럼 저도 부르시지….”

“으, 응?”

“저 진짜 서운합니다.”

“어…. 옜다. 이거 너 주려고 챙겨둔 거다.”

최종훈이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아닌 거 같은데요? 이건 선우현 씨의 옥상이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가져오신 것 같은데요?”

“먹기 싫다고?”

“잘 먹겠습니다!”

“민영이한테 가기 전에 토마토부터 먹어.”

“네? 나중에 여자친구랑 나눠 먹….”

“확 도로 빼앗을까?”

“지금 먹으려고 했습니다.”

***

최종훈은 띠동갑인 여동생이 있다. 동생이 어렸을 때는 그가 업어 키우곤 했다.

최종훈이 최민영에게 액세서리 가게에서 산 목걸이를 주며 말했다.

“오다가 주웠다. 너 해라.”

최민영이 목걸이를 받으며 물었다.

“뭐지? 이걸 왜 주지? 오빠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

“평소에 이것저것 많이 사줬는데 왜 의심하냐?”

“목걸이를 사준 적은 없잖아. 수상한데.”

“눈치가 빨라졌구나.”

그 목걸이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토마토 포장 서비스를 받으려고 샀다. 마침 그때 눈에 보이는 액세서리 중에서 그게 제일 비쌌다.

최민영이 목걸이를 상자에서 꺼내 흔들며 말했다.

“혹시 여자 주려고 샀다가 까이고 나한테 넘기는 거야?”

최종훈은 총각이다. 여자친구도 없다.

예전에는 회사를 키우느라 바빠 연애할 시간이 없었다. 지난 일 년은 사고 후유증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나도 이제 여자친구 사귀려고.”

“내 친구들은 안돼. 나랑 친한 언니들도 안돼.”

“너는 바깥 활동을 거의 안 하는데 친구가 왜 그렇게 많아?”

최민영이 손가락을 뻗었다.

“앗! 왜 아니라고 안 하지? 누구를 노리는 거얏!”

최종훈이 불평했다.

“옛날에, 한밤중에 내가 공부하고 있으면 말이야. 자다 일어난 네가 내 다리에 매달려서 무서운 꿈을 꿨다고 훌쩍이던 거 기억나냐? 그때 너 참 귀여웠는데, 왜 이렇게 됐냐.”

“일곱 살 때 일을 언제까지 우려먹을 건데?”

“그 귀엽던 애가 왜 이렇게 까칠한 애로 컸을까? 내가 잘못 키웠지?”

최민영이 목걸이를 목에 걸며 말했다.

“우리 오빠가 시비 걸려고 오셨구나?”

최종훈이 화실을 보며 물었다.

“요즘은 어떤 그림을 그려?”

“그냥 이것저것. 어렸을 때 꾼 꿈들도 가끔 그려.”

“아. 네 그 이상한 꿈들….”

최종훈은 최민영이 어렸을 때를 생각했다. 그녀는 같은 꿈을 며칠씩 반복해서 꾸곤 했다.

‘같은 꿈을 한 달 동안 반복해서 꾼 적도 있었는데….’

최민영이 말했다.

“이상한 꿈이 아니라 신기한 꿈이라고.”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무리하지는 마라.”

“난 오빠랑 달리 어디가 특별히 아픈 건 아니잖아. 이제 괜찮아.”

최민영은 어릴 때부터 체력이 많이 약했다. 명확히 정의되는 병이 아니라 치료제도 없었다.

최종훈은 그의 다리가 나았을 때 몸이 약한 동생 생각을 했다.

하지만 레드 포션은 보약이 아니다. 체질 개선제도 아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다.

게다가 그가 직접 확인한 정보나 선우현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레드 포션은 너무 오래된 상처는 고치지 못한다.

‘기적의 상처 치료제라 해도 민영이처럼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겠지.’

무턱대고 최민영에게 레드 포션을 사용해볼 수도 없다. 그래도 되는지도 모르는 데다가, 아직 레드 포션을 단 한 개도 구하지 못했다.

대신에 오늘은 대안을 가져왔다.

최종훈이 작은 상자 세 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도 오다가 주웠다.”

이미 활력 토마토를 먹어보고 효과를 본 사람이 여럿 있다. 연구소에서는 몸에 해로운 물질이나 약물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이건 약이 아니라 과일인 토마토다.

‘기력을 잃으셨던 박 회장님이 드셔도 괜찮을 정도지.’

최민영이 상자를 보며 물었다.

“응? 뭔데? 우리 오빠가 액세서리를 세트로 주지? 오늘 무슨 날인가? 내 생일은 아닌데?”

“그건 액세서리가 아니라….”

최민영이 상자를 하나 열었다. 안에는 토마토가 들어 있었다.

“응? 이거 꼭 토마토처럼 생겼네?”

그녀가 혹시 토마토 모양 장식품인가 싶어 손가락으로 찔러 보았다.

“진짜 토마토네?”

그녀가 설마 하며 다른 두 개의 상자도 열었다. 잘 익은 토마토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뭐지? 역시 시비를 걸려고 온 건가?”

“그거 몸에 좋은 거야.”

“토마토는 원래 몸에 좋아.”

“진짜 좋은 거라니까?”

“아무리 몸에 좋아도 이게 보약은 아니잖아. 알았어. 기다려. 썰어서 접시에 담아 올게. 목걸이 줬으니까 내가 그 정도는 해준다.”

최종훈이 깜짝 놀라 손을 흔들었다.

“안돼!”

“어? 왜? 먹으라고 가져온 거 아니야?”

“산삼보다 귀한 거니까 썰지 말고 너 혼자 먹어.”

“토마토인데? 비료로 홍삼 엑기스라도 썼어?”

“내 말 믿고 너만 먹어. 진짜 귀하고 몸에 좋은 거야.”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한 번에 다 먹지 말고, 하루에 하나씩만 먹어. 칼로 썰면 칼에 묻은 거 아까우니까 그냥 물에 씻기만 하고 먹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데?”

최종훈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거 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난다.”

“뭐야. 그게.”

최민영이 피식 웃으며 토마토 하나를 꺼내 싱크대에서 씻었다.

“오빠 성의를 봐서 하나 먹을게.”

그녀가 토마토에 입술을 대고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즙부터 빨아 먹는 타입이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음!”

“어때?”

그녀가 과육도 조금 씹어 먹었다.

“이거 진짜 맛있어! 세상에 이런 토마토가 어떻게 있지?”

최종훈이 활짝 웃었다.

“그래. 그래. 어서 먹어라. 꼭지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 거기도 뭔가 좋은 성분이 있을지 몰라.”

“그래도 어떻게 꼭지를 먹냐?”

“나는 먹었는데….”

최민영이 토마토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와. 이거 진짜 맛있어. 하나 더 먹어야겠다.”

최종훈이 손을 들어 말렸다.

“어허! 하루에 하나씩 먹으라니까?”

“아니, 오빠는 돈도 많은 사람이 겨우 토마토가 아까워서 그래? 나 혹시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아니면 나 아기 때 어디 마트에서 할인하는 거 샀어? 그런 거야?”

“구하기 어려운 거라서 그래. 워낙 조금 생산되는 거라서 돈 주고도 못 구해. 나니까 구한 거다.”

최민영이 과즙이 묻은 손가락을 혀로 살짝 핥으며 말했다.

“진짜 맛있긴 하지만 돈으로 못 구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최종훈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제 슬슬 효과가 느껴지지?”

“무슨 효과?”

“호랑이 기운이 생기지?”

“아니?”

“어? 몸에 활력이 가득 차야 하는데….”

“아닌데?”

“피곤이 싹 사라진다든지….”

“평소랑 똑같아. 난 항상 피곤해.”

최종훈은 실망했다.

‘민영이한테는 효과가 없나? 왜 효과가 없지?’

그는 몸이 약해 바깥 활동을 별로 하지 못하는 동생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 토마토에 기대를 많이 했다.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건 아닌가 보다.’

그가 실망한 표정을 감추며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나가다가 들른 거니까 난 갈게. 그거 다 먹지 말고 하루에 하나만. 알았지?”

“알았다고.”

***

최종훈이 차로 돌아가 궁리했다.

“나와 찬혁이는 물론이고 나이가 훨씬 많으신 박 회장님도 활력 효과를 확실히 봤는데, 왜 민영이만 효과가 없을까….”

김찬혁이 운전하며 물었다.

“사장님. 민영 씨한테 주려고 저한테 먼저 그 토마토를 또 먹여서 테스트한 거군요. 그러면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지.”

최종훈의 눈썹 끝이 위로 올라갔다.

“민영 씨? 너 내 동생한테 관심 가지면 가만 안 둔다.”

“네? 저 여자친구 있는데요? 아니, 박 회장님도 그렇고, 다들 왜 내가 여자친구가 없다고 생각하시지?”

“거울을 봐.”

“와. 팩트로 패시네요. 그럼 저도 팩트로 반격해도 되겠습니까?”

“뭔데? 해봐.”

“사장님께서 그렇게 싸고도시니까 민영 씨가 아직도….”

“이거 진짜 자를까?”

“운전에 집중하겠습니다! 댁까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

선우현이 옥상에서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얼마 전에 건물 관리인 신나리가 치킨을 주고 토마토를 얻어갔었다. 치킨을 먹다 보니 그 생각이 났다.

“나리는 저 토마토를 먹어도 딱히 활력이 생기는 효과가 없었어.”

- 신나리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평소에도 활력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이미 활력이 가득 차 있으니 추가로 채울 게 없었을 겁니다.

“나도 차이를 못 느꼈단 말이야.”

- 선장님의 체력이나 활력은 평범한 사람 수준이 아닙니다만? 토마토를 박스로 먹어도 배만 부를 겁니다.

“음…. 다른 변수는 없겠지?”

- 저야 모르죠.

“역시 김수선.”

- 반사.

***

최종훈은 집으로 돌아와 씻고 소파에 앉았다.

배가 고팠다.

“활력 토마토를 먹으면 배가 더 고파진단 말이야.”

그가 스마트폰을 켜고 배달 앱을 실행했다.

“오늘은 치킨이 땡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최민영의 전화였다.

최종훈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왜?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올 걸 그랬….”

최민영이 평소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물었다.

- 오빠! 이 토마토 뭐야!

“무슨 소리야?”

- 지금 내 몸에서!

최종훈은 흥분했다.

“호랑이 힘 생겼냐!”

-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어?”

- 피곤한 느낌이 사라졌어. 힘이 나는 건 아닌데, 이번 달에는 지금이 컨디션이 제일 좋아.

최종훈이 활짝 웃었다.

“그치? 어쨌든 너한테도 효과가 있긴 있지?”

- 이 토마토에 무슨 약을 탄 거야? 도대체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오빠가 전에 사준 산삼을 먹었을 때도 이런 효과는 없었는데!

“나도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오늘 너한테 나눠준 거야.”

- 나눠줘? 더 있다는 거네?

“지금은 몇 개 더 있지.”

- 오빠! 쪼끔만 더 주세요! 그냥 더 주세요! 다 주세요!

“너만 먹냐? 나도 먹어야지.”

- 아니, 그러면 하나만 더…. 아니, 두 개만 더….

“이건 홍보용으로 써야 해서 남는 게 없어. 곧 구해줄 테니까 그때까지는 오늘 준 거 아껴 먹어라. 꼭 하루에 하나씩이다?”

- 오빠? 오빠님?

최종훈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선우현 씨는 천재야.”

최민영은 왜 효과가 늦게, 그리고 약하게 나타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게 뭐가 중요해? 민영이가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운이 나면 됐지.”

최종훈이 신이 나서 김찬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찬혁은 신호가 여러 번 간 후에 전화를 받았다.

- 예. 사장님. 저는 지금 퇴근해서 집이지만 사장님 전화는 언제나 기쁩니다.

“시끄럽고, 우리 연구소와 선우현 씨가 연구 협력하는 거 어떻게 됐어?”

선우현은 JHC 테크의 연구소 장비를 이용하기 위해 개인 회사를 하나 만들었다. 그 회사를 만드는 작업은 김찬혁이 대신 처리했다.

- 절차대로 진행 중입니다.

“상황이 변했다. 절차 건너뛰어.”

- 하지만 사장님. 그러면 외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말이 나올 겁니다.

“오늘 박 회장님이 선우현 씨를 만났다. 그런데 길성에도 연구소가 있지. 찬혁아. 선우현 씨가 우리 회사가 아니라 길성 연구소와 협업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냐?”

- 이제 토마토 못 얻어먹나요?

“길성에서 판매까지 맡으면 나는 몰라도 너한테 떨어지는 건 없겠지?”

- 이번 주 안으로 해결하겠습니다.

“너무 늦어. 내가 이백현 소장을 만나서 즉시 연구 협력 시작하게 할 테니까 준비해.”

- 예. 내일 스케줄….

“지금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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