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옥상 II
선우현이 화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보기에는 저래 보여도 그냥 막 키우는 거 아닙니다.”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그냥 막 키우시는데요?
선우현이 하는 일은 화분에 비료를 넉넉히 넣어두고 급속성장촉진제를 가끔 사용하고 물만 주는 정도다. 벌레는 안티 버그 포탑이 레이저를 쏴서 제거한다.
“그러니까 달빛의 정수….”
- 선장님?
“같은 건 당연히 아니고, 정성을 다해 키웠습니다. 직접 만든 특별한 영양제도 썼고요.”
박길성이 사과했다.
“아. 비법을 묻는 실례를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안 가르쳐줄 거니까요. 그래서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박길성이 진지하게 말했다.
“활력 토마토를 사고 싶습니다.”
“이미 주스로 만든 거 한 잔 드셨는데?”
“이번 한 번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사고 싶습니다.”
“흐음….”
선우현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박길성이 얼른 설명했다.
“내가 요즘 기력이 많이 딸립니다. 그런데 저 토마토만 먹으면 하루 정도는 예전처럼 힘이 나더군요.”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우리는 토마토의 활력 증가 수치에 관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선우현이 물었다.
“예전이라면 몇 년 전을 말씀하시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그렇지만, 한 이삼십 년 전, 그러니까 대충 마흔 살쯤으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그러시구나.”
- 그 정도면 활력 효과가 문제를 일으킬 수준은 아닙니다.
옆에서 최종훈도 한마디 했다.
“저는 스무 살로 돌아간 것 같던데요. 왜 저랑 차이가 날까요?”
박길성이 대답했다.
“최 사장은 아직 마흔도 안 됐잖아. 내 나이에 갑자기 스무 살 체력이 된다는 게 말이 되나? 그건 기적이지.”
“그 기적을…. 아닙니다.”
최종훈은 이미 기적을 경험했다. 그의 다리는 레드 포션 한 방에 나았다.
박길성이 말했다.
“활력 토마토가 얼마나 귀한 보약인지는 최 사장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매일 먹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박길성이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일주일에 하나만 팔아주십시오. 그래야 회사와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선우현이 박길성의 뒤에 서 있는 박서윤을 보았다. 그는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른다.
‘저 아가씨가 습격당한 것과 관계가 있나?’
보안실 직원들이 본사 주변을 조사하는 건 직접 봤다. 김수선도 길성 직원들이 어제와 달리 굉장히 분주히 움직였다고 말했다.
선우현이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그냥 일주일에 두 개로 하시죠.”
“헉! 저 귀한 걸 두 개나!”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같이 온 여자가 예뻐서 두 개씩 파시나요?
“그런 거 아니야. 기왕 개입한 일이니까 조금 거들어주는 거야.”
- 예. 그러시겠죠.
“수선아. 오늘따라 까칠하다?”
- 오해이십니다.
박길성은 활력 토마토를 예상보다 두 배로 확보했다. 그는 대규모 거래 계약을 성사시켰을 때보다 지금이 더 기뻤다.
‘일주일에 이틀이면 회사에서 허튼수작 부리는 놈들을 찾아 밟아버리고 서윤이도 지킬 수 있어. 그동안 못 해준 것도 챙겨줄 수 있어.’
박길성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맙습니다.”
“뭘요. 돕고 살아야죠.”
최종훈이 옆에서 말했다.
“선우현 씨. 아직 활력 토마토의 가격을 안 정하셨는데, 한 개에 얼마나….”
박길성은 사업가다. 그가 얼른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이건 일이 년으로 끝낼 거래가 아니야. 일주일에 두 개면 매년 백 개가 넘어. 십 년이면 천사십 개야. 적당한 가격이 될 때까지 내 모든 협상 기술을 동원….’
선우현이 말했다.
“개당 백만 원?”
박길성은 당황했다. 그가 생각하던 가격보다 훨씬 저렴했다. 잠시 혼란이 왔다.
“백만 원으로 괜찮겠습니까? 더 받으셔도 되는데….”
선우현이 말했다.
“이 정도가 딱 적당합니다.”
거래 조건은 간단히 합의됐다. 일주일에 활력 토마토 두 개를 개당 백만 원에 넘기기로 했다.
다만 기간은 일단은 일 년으로 제한을 걸었다. 기간 연장은 일 년 후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박길성은 일 년이면 급한 불은 충분히 끈다고 판단했다. 그가 말했다.
“선우현 씨. 난 신세 진 건 잊지 않습니다. 내 힘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만 하십시오.”
박길성은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 옥상을 떠났다.
박서윤이 선우현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워요.”
그녀가 인사를 남기고 박길성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떠난 후에 최종훈이 말했다.
“박 회장님은 지금 좀 특별한 상황이셔서, 개당 천만 원을 불러도 사셨을 겁니다. 천만 원이 일주일에 두 번이면 일 년에 십억사천만 원입니다. 박 회장님은 그 정도는 충분히 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십억으로는 우주왕복선을 못 삽니다.”
“예?”
“박 회장님처럼 상황이 급하면 천만 원에 팔고, 급할 게 없는 사람에게는 적당히 백만 원에 팔고…. 그러면 비싸게 산 사람들은 불만이 생기겠죠.”
이 토마토를 팔아서 얻을 수 있는 건 돈이 다가 아니다.
“그냥 가격을 통일시키는 게 낫습니다.”
“개당 백만 원이면, 토마토 구매 경쟁이 예상보다 훨씬 더 치열해지겠군요. 고객을 제 인맥의 인맥으로 넓혀가다 보면 우리나라 여러 분야에서 정말 많은 사람이 원할 텐데, 생산량이 워낙 적으니까요.”
“토마토야 더 많이 키우면 되죠.”
최종훈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아! 생산량을 늘리실 겁니까?”
“그러려고요.”
“하지만 그 특별한 식물 영양제는 많이 못 만든다고….”
“당연히 대규모 토마토 농장은 못 만들지만.”
선우현이 옥상의 화분들을 가리켰다.
“화분 몇 개보다는 많이 키울 수 있습니다.”
“이야아. 진짜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면 저도 박 회장님처럼 일주일에 두 개씩 살 수 있을까요? 일 년에 일억 정도는 저도 낼 수 있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요?”
“저한테 몸이 약한 동생이 있어서요.”
“최 사장님은 그냥 가져가서 드시죠. 앞으로 일 많이 하셔야 하니까요.”
김수선이 맞장구쳤다.
- 맞습니다. 현지 협력자의 체력 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 방에 훅 가면 우리가 곤란해집니다.
최종훈이 활짝 웃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럼 이번 주부터 일주일에 두 개….”
“하루에 두 개.”
“예? 어….”
최종훈이 화분을 보았다.
“그러면 팔 게 부족해질 텐데….”
“제가 키우는 토마토는 최 사장님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자랍니다. 열매도 많이 맺히고요.”
***
박길성은 회사에 도착한 후에 박서윤을 회장실로 불렀다.
박서윤이 보고했다.
“오늘 가져온 활력 토마토는 투명 보호 케이스에 넣어 냉장 보관했습니다.”
선우현은 옥상에서 토마토를 두 개 따서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그래. 그 귀한 걸 비닐봉지에 계속 담아둘 수는 없지.”
“토마토 전용 냉장고와 보안장치를 비서실에 추가로 설치할 예정입니다.”
“그런 건 알아서 하고…. 그런데 아까 말이야.”
“예. 회장님.”
박길성이 진지하게 물었다.
“왜 그 토마토 명인을 보고 놀란 거냐?”
“선우현 씨에게서 향기가 났습니다.”
“응? 향기라니?”
“제가 납치됐을 때 저를 구해준 분이 있습니다.”
“들었다. 누군지는 경찰에서도 모른다면서?”
“예. 그런데 그때 그분에게서 났던 특별한 향기와 선우현 씨의 활력 토마토 향기가 같았습니다.”
“허….”
박길성이 물었다.
“박 대리를 구해준 사람이 단순히 그 토마토를 가지고 있던 것뿐일 수도 있어. 하지만 박 대리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네.”
“내가 확인해주지.”
박길성이 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사장.”
최종훈이 밝은 목소리로 생색을 냈다.
- 박 회장님. 오늘 저 덕분에 대박 나신 겁니다. 하하하.
“알지. 그런데 내가 물어볼 게 하나 있어. 혹시 선우현 씨가 운동 좀 하나? 그러니까 격투기 같은 거 말이야.”
- 와…. 그게 그냥 딱 보면 보입니까? 역시 박 회장님 눈썰미는 대단하십니다.
“잘하나 보군.”
- 무술고수입니다.
“국가대표급인가?”
최종훈은 한강공원 주차장 사건 때 선우현이 청부업자 두 놈을 잡는 모습을 직접 봤다. 그날 청부조직을 혼자 찾아가 쓸어버린 사람이 있다는 것도 형사를 통해 들었다.
- 제가 알기로는 세계 챔피언급입니다.
“그래. 알았어.”
박길성이 전화를 끊고 박서윤에게 말했다.
“오늘 만난 선우현 씨가, 어제 너를 구해준 그 사람이 맞나 보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참 신세를 많이 지는구나.”
“네. 저도요.”
“너를 구해준 일은 본인이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소문은 내지 않아야겠지.”
박서윤이 미소를 지었다.
“저만 알고 있으면 돼요. 아. 회장님도요.”
***
최종훈은 JHC 테크 연구소에 토마토를 하나 보내 정밀 분석을 맡겼다.
그는 활력 토마토를 일단은 기업을 경영하며 알게 된 사람들에게 팔 계획이다. 그런데 그의 인맥에는 유기농만 먹는 기업가가 여럿 있다.
그런 사람에게 출처가 불분명한 먹을 걸 팔 때는, 위험한 성분이 없다는 분석 데이터가 있어야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 길성 연구소에서도 그 토마토를 분석했다. 그런데 그때는 샘플이 겨우 한 조각이라 분석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JHC 테크 연구소는 토마토 하나를 다 사용해 분석했다.
JHC는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곳이라 각종 분석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제약회사가 아니라 의약품을 개발하지는 않지만, 과일의 성분 분석 정도는 간단히 할 수 있다.
분석 결과는 보고서로 작성돼 최종훈에게 전송됐다.
최종훈은 모니터 화면 속 보고서를 확인했다.
“몸에 나쁜 성분은 전혀 없어. 농약도 검출되지 않았다네? 역시 친환경으로 키운 거야.”
비서 김찬혁이 말했다.
“저는 약이라도 탄 줄 알았습니다. 아직도 몸이 개운한 것이, 어제 먹은 토마토의 효과가 좀 남은 느낌입니다.”
분석 보고서에는 다양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일반 토마토보다 단맛이 강해. 그렇다고 칼로리가 높은 것도 아니야.”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이 참 좋아하겠네요.”
“식사 대신 먹어도 될 만큼 많이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겠네요.”
“몸에 좋은 성분도 많아. 평범한 토마토보다 몇 배가 많아. 그러니까 이렇게 몸에 좋지.”
김찬혁이 의문을 제시했다.
“사장님.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은 거는요. 평범한 토마토를 몇 개 더 먹으면 결과는 똑같은 거 아닐까요?”
“그렇게 따지면 비싼 산삼 하나 대신에 싼 인삼을 몇 뿌리 먹으면 되겠네?”
“어…. 그러게요.”
최종훈이 나름대로 추측했다.
“활토와 일반 토마토 사이에는 산삼과 인삼 같은 차이가 있는 거겠지.”
“신기하네요.”
“어디 보자. 활력 효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석했는지….”
최종훈이 화면을 넘겨 보고서의 다른 페이지를 읽었다.
“우리 회사 연구소에서는 활력이 생기는 이유를….”
“예.”
“모르겠다네?”
“예?”
최종훈이 씩 웃었다.
“그럴 거 같더라.”
최종훈은 다리 부상 후유증은 선우현의 레드 포션 주사 한 방에 치료됐다. 다리 MRI 영상을 보면 일 년 전 부상의 흔적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이미 그런 기적을 직접 경험했다. 그래서 활력이 생기는 토마토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천재가 직접 개발한 영양제를 쓰고 정성을 다해 키운 토마토라서 그래. 아. 분석하고 남은 토마토는?”
“분석하는 데 다 썼겠죠.”
“그거 이제 못 먹지?”
“먹으면 큰일 나죠. 온갖 약품으로 절여졌을 텐데요.”
“아깝네.”
“아까우시다면서 박 회장님한테는 두 개나 주셨습니까? 다른 회사 사장님들한테도 하나씩 돌리려고 하시잖아요.”
“그건 투자야. 투자. 아깝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너 같으면 남의 말만 듣고 활력 토마토의 효과를 믿겠냐?”
“당연히 안 믿죠. 저는 먹어봤으니까 믿는 건데….”
“다른 사람들도 똑같아. 딱 한 개라도 먹어봐야 믿을 거야.”
김찬혁이 제안했다.
“사장님. 실험을 더 하시죠.”
“무슨 실험?”
“사장님이 받아오신 토마토를 여러 사람이 조금씩 나눠 먹어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먹었을 때 활력이 생기는 효과가 나는지와, 체질에 상관없이 효과가 나는지를 구분할 수 있….”
최종훈이 물었다.
“혹시 그 실험 참가자 중 하나가 너냐?”
“저야 이미 먹어본 사람이니까, 딱 좋지 않습니까.”
“응. 아니야.”
***
선우현이 옥상에서 토마토 화분에 물을 주며 말했다.
“수선아. 이 토마토 한 개가 백만 원짜리다.”
화분 하나에 잘 익어 빨간 것부터 아직 익지 않아 파란 것까지 토마토 스무 개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옥상에는 그런 화분이 여러 개였다.
- 개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