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36화 (36/281)

36. 박서윤

송덕선은 박길성과 갈라선 후에 사업가와 재혼했다. 재혼한 남편이 죽은 후에는 사업체를 그녀가 경영했다.

박길성 회장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송덕선이 가지고 있는 회사. 이름은 아는데, 관심이 없어서 현재 상태까지는 모르겠군.”

비서실장이 설명했다.

“회사의 규모는 우리 길성의 계열사 하나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길성에는 계열사가 몇 개 있다.

“경영은?”

“위기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 자식들이 힘을 썼지. 그건 알아. 알면서 못 본 척했으니까.”

“예. 최근에는 회사가 큰 문제 없이 유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길성이 인상을 구겼다.

“결국 우리 길성 덕분에 안 망한 거잖아. 그런데 감히 나한테 칼을 겨눠?”

비서실장이 말했다.

“회장님. 납치범들이 박서윤 대리를 협박해 정보를 캐내려고 한 것 말입니다.”

“내 약점이겠지.”

“제가 박서윤 대리와 따로 이야기해봤는데, 아닙니다. 왜 길성에 들어왔는지, 어떻게 비서실에 들어왔는지 같은 걸 물었답니다.”

박길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채용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나?”

비서실장이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닙니다. 박서윤 대리는 우리 회사에 공채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신입사원이 비서실에 발령된 건…. 제가 결정했습니다. 입사 성적도 좋지만, 미모가 탁월해서 손님이 왔을 때 자랑 좀 하려고….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아. 비서실 직원이니까 김 실장이 골라야지.”

비서실장이 내놓은 서류는 입사 지원서와 사원 정보였다.

길성은 비서실 직원에 대한 신원조회를 다른 직원보다 훨씬 더 철저히 했다. 그 신원조회 서류도 같이 있었다.

“입사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습니다. 박서윤 대리도 놈들이 왜 그런 걸 물어봤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알았어. 김 실장은 나가서 계속 조사해.”

비서실장이 나간 후에 박길성이 신원조회 서류를 펼쳤다.

“졸업하자마자 입사해서 이제 겨우 2년을 채우고 막 대리를 단 애한테 도대체 뭘 알아내려고….”

서류를 보던 박길성의 표정이 굳었다.

“어?”

***

송덕선은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화를 벌컥 냈다.

“어떻게 그런 간단한 일을 망쳐? 진짜 이럴 거야?”

송덕선의 회사 비서실 실장이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람을 때려서 정보를 뽑아낸다는 놈들을 일부러 찾아서 의뢰했는데….”

“그런데 왜 실패해!”

“그 여자에게 경호원이 붙어 있었습니다.”

송덕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경호원? 박길성이 붙인 거야?”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녀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다. 박길성의 책상에 있는 것과 똑같은 박서윤의 신원조회 서류였다.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잘 보면 박길성이 젊었을 때와 닮은 부분이 있어. 성도 박 씨야. 게다가 신입사원이 비서실에 발령이 났어. 고아 출신에 대졸 신입사원이 길성 비서실에 가는 게 말이 돼?”

“소문으로는 예뻐서 뽑았을 거라고….”

“아니야. 내가 의심한 게 맞았어. 경호원까지 붙여줬으면 이제 확실해!”

송덕선이 박서윤의 사진이 붙어 있는 서류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이년은 박길성이 숨겨둔 딸이야. 틀림없어!”

“하지만 사모님. 박서윤은 나이가….”

박서윤은 이십 대 중반이다. 그런데 박길성과 송덕선이 이혼한 건 거의 삼십 년 전이다.

송덕선이 도끼눈을 떴다.

“지금 그게 중요해? 지분이 중요하잖아! 내 아들들이 상속받을 길성의 지분이!”

***

박길성이 박서윤의 신원조회 서류를 보며 탄식했다.

“송덕선. 그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나 했더니….”

회장이 사원의 신상정보까지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박서윤의 신원조회 서류를 오늘 처음 봤다.

그 서류에 박서윤의 어머니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과 옛날에 깊은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박서윤의 어머니는 그녀가 열두 살일 때 사고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박서윤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대학은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대학생 때 생활비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벌었다.

그 내용이 모두 비서실 직원 신원조회 서류에 적혀 있었다.

“송덕선은 이 서류를 보고 박 대리가 내 딸이라고 의심하나?”

박길성은 그 의심을 비웃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 대리는 처음 봤을 때부터 정이 많이 가기는 했는데….”

송덕선이 의심한 이유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아니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확인을 해야겠어.”

송덕선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다. 친자검사를 하면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비서실장을 부르려다가 멈칫했다.

‘비서실 직원 신원조회 정보는 회사 기밀 서류인데, 이게 송덕선의 손에 넘어갔다?’

그는 비서실장을 신뢰한다.

그런데 송덕선은 그의 아들들의 어머니다. 그의 아들 두 명은 길성에서 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요즘은 차기 회장 자리를 노리고 심하게 경쟁하는 중이다.

친자검사를 회사 내부에서 처리하면 어디서 정보가 샐지 알 수 없다.

회사 내부를 믿을 수 없으면, 외부의 믿을만한 사람에게 처리를 맡겨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박길성이 최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사장. 지금 시간 되면 잠깐 만나자.”

***

길성 본사 근처 공원에서 박길성이 물었다.

“최 사장네 회사 연구소에서 유전자 검사 할 수 있지?”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이 자랑했다.

“기술을 개발해서 라이센스 판매로 먹고사는 회사인데 당연하죠. 최고의 유전자 분석 장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친자검사도 되나?”

“물론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검사는 길성의 연구소에서도 가능할 텐데….”

박길성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 샘플을 줄 테니까, 누군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검사 한 번만 해줘. 가능한 한 빨리.”

최종훈은 길게 묻지 않았다.

‘사정이 있으시겠지.’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연구소로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

검사 결과는 금방 나왔다.

최종훈이 박길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전화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박길성이 회장실에서 창밖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나왔어?”

- 친자관계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부녀관계입니다.

“그렇군. 고마워.”

- 박 회장님. 누구를 검사하신 건지 묻지 않겠습니다.

“짐작은 하고 있지?”

박길성은 박서윤 납치 사건을 조사한다면서 활력 토마토를 하나 얻어갔다. 그리고 바로 그날 친자검사를 의뢰했다.

- 저는 모르는 거로 하려고요. 검사 자료는 전부 폐기했습니다.

“그래. 고마워.”

통화를 마친 후에 박길성이 탄식했다.

“송덕선이 괜한 의심을 한 게 아니었어.”

박서윤이 노크를 한 후에 회장실에 들어와 보고 서류를 회장실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가져오라고 한 서류였다.

박길성이 박서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정이 많이 가는 아이였는데, 진짜 내 딸이어서 그런 거였어.’

그동안은 있는지조차 몰랐던 딸이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서류를 다시 보았다.

박서윤은 어려서 어머니를 사고로 잃고 보육원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런데 지금은 길성에 입사해서 비서실에서 일한다.

박길성이 서류를 정리하는 박서윤을 보며 물었다.

“박서윤 대리는 왜 우리 회사를 선택해서 들어왔지?”

“어릴 때 엄마가 우리 회사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엄마가 좋아한 사람이 우리 회사에 다녔대요.”

“그래. 그렇구나.”

박서윤이 정리를 마치고 나간 후에 박길성이 닫힌 문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박서윤의 어머니와 헤어진 건 박길성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죄를 너무 크게 지었어. 다 내 탓이야.”

박길성은 그 자리에 서서 후회하고, 괴로워하고, 미안해했다.

그는 한 시간을 그렇게 서서 탄식하다가 비서실장을 불렀다.

비서실장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 박길성이 말했다.

“김 실장. 나랑 일한 지 참 오래됐다. 그렇지?”

“회장님이 은퇴하시면 저도 쉬려고요.”

박길성은 철공소를 지금의 길성으로 키울 만큼 사업 수완이 좋았다. 하지만 아들들은 능력이 고만고만했다.

게다가 회사의 기밀 서류가 송덕선에게 넘어갔다. 아들 중 누군가가 넘겼다는 뜻이다.

이제는 박서윤이 그의 딸이라는 걸 알았다. 고생을 많이 하면서 어렵게 자란 딸이다.

‘송덕선은 이대로 끝낼 여자가 아니지.’

송덕선은 그의 아들들의 어머니다. 지금 당장 망하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시는 박서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 방법은 있다.

‘다시 건드리면 송덕선은 물론이고 그 회사까지 다 날아간다는 걸 깨닫게 해줘야 해.’

그러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박길성이 회장 자리를 실질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박길성이 결론을 내렸다.

“은퇴 그거, 아무래도 못하겠어. 김 실장도 계속 다녀.”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다만, 회장님의 건강이 상할까 걱정됩니다.”

“오늘 나를 봐. 충분해.”

비서실장은 활력 토마토에 대해 안다.

“오늘은 그 토마토를 드셔서 그렇습니다만….”

그 토마토는 구하기 어렵다.

박길성이 물었다.

“내가 매일은 아니라도, 일주일에 한 번만 오늘처럼 회사를 다 뒤집어주면 어떻게 되겠어?”

“당연히 회사의 모든 권력이 회장님에게 집중될 겁니다.”

“그래. 일주일에 한 번이야. 나는 이제 최소한 일주일에 하나는 활력 토마토를 얻어야 해.”

“하지만 전문가들도 그 토마토가 뭔지 모릅니다.”

“그래. 최 사장만 알지.”

박길성이 입맛을 다셨다.

“지금 나한테 정말 간절하게 필요한 걸 최 사장이 가져왔어. 최 사장이 사업 수완이 많이 늘었단 말이야. 내 아들놈들도 그랬어야 하는데.”

그가 아들들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해 보았다. 지금 회장 자리를 넘겨주면 회사를 유지할 수나 있을까 싶었다.

박길성이 비서실장을 보며 물었다.

“박 대리는 일하는 건 어때?”

“병원에 다녀와서는 평소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일하는 모습이 어떤지 물은 거야. 회사 서류에 적혀 있는 거 말고, 김 실장의 느낌을 말해봐.”

“굉장히 유능하고 똑똑합니다. 일 처리도 빠르고 특히 위기대응능력이 좋습니다.”

“이 서류를 보면 해외연수 한 번 간 적 없다며?”

“그런데도 외국어를 잘합니다.”

“부모에게서 좋은 머리를 물려받았을 거야. 그렇지?”

“그렇겠지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장한 것도 영향이 있을 테고요.”

“그래…. 역시 도전 자격이 있어.”

“예? 무슨 도전….”

“아니야.”

박길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한테는 활력 토마토가 꼭 필요해. 최 사장에게 부탁해서 활력 토마토를 만든 명인을 내가 직접 만나야겠어. 지금 당장.”

“제가 모시겠습니다.”

“음….”

박길성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오늘은 박서윤 대리도 같이 데려가지.”

“알겠습니다.”

***

최종훈이 옥탑방 앞 옥상에서 열정적으로 주장했다.

“저 활력 토마토를 팔아야 합니다!”

선우현이 여러 개의 화분에 열린 토마토를 보았다. 과일 가게에서 파는 토마토의 가격도 생각해보았다.

저걸 다 팔아봤자 얼마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귀찮게 무슨. 됐습니다.”

“예? 아니, 진짜 팔아야 합니다. 꼭 팔아주십시오!”

선우현이 토마토를 갈아서 만든 주스를 컵에 담아 최종훈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거 마시고 진정 좀 하시죠. 우리 최 사장님 너무 흥분하셨네.”

“어? 이건 혹시….”

“토마토 주스는 안 좋아하시나? 이거 백 퍼센트 생과일주스인데….”

“이 귀한 걸 저 싸구려 믹서기로 갈아….”

“그렇게 귀하진 않고요. 먹기 싫으시면….”

최종훈이 얼른 컵을 들고 주스를 마셨다. 그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려고 컵을 탈탈 털었다.

“캬아. 진짜 맛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최종훈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제 다리를 고쳐준 그 기적의 약 이름이 레드 포션이니까, 이 주스는 활력 포션이라고 부를까요?”

“겨우 주스 한 잔을 그렇게 과장해서 부를 것까지야….”

“활력이 생기니까 이름으로 활력 포션이 딱 맞지요!”

“예?”

최종훈이 두 팔을 위로 번쩍 올리며 말했다.

“벌써 몸에 활력이 차오르는 게 느껴집니다! 역시 주스로 만들어도 효과는 똑같군요!”

선우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수선아. 우리 현지 협력자가 또 맛이 가는 거 같다.”

- 그런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혹시 급속성장촉진제로 키운 토마토에 추가 효과가 더 있는 건 아닐까요?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물었다.

“그 활력이라는 게 토마토를 먹으면 생깁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이것만 먹으면 하루 동안 스무 살 때처럼 활력이 넘칩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추가 효과 맞네요.

“아니, 그런 효과가 왜 생겼지?”

- 식물 급속성장촉진제의 원료로 오천 년이나 방치, 아니, 숙성한 레드 포션을 써서겠지요.

최종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표정이 왜…. 혹시 모르고 계셨….”

선우현이 얼른 말했다.

“당연히 알지요. 전부 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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