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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34화 (34/281)

34. 향기

박서윤은 당황했다. 그녀를 도와주러 온 줄 알았던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면 곤란해진다고 말했다.

‘왜?’

그녀가 선우현을 보았다.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녀를 납치한 놈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서로 말하는 걸 보면 한패는 아닌데 왜?’

회색 마스크가 선우현의 뒤쪽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가 실실 웃으며 물었다.

“진짜 지나가던 사람인가? 혼자네?”

선우현이 투덜댔다.

“이런 놈들은 왜 다들 내가 혼자 온 걸 보고 좋아할까?”

- 선장님이 만만해 보이나 봅니다.

“내가 착하게 생기긴 했지.”

- 그건 아닙니다만?

회색 마스크가 이죽거렸다.

“이상한 소리가 좀 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지 그랬어? 그러면 험한 꼴 안 당했을 텐데.”

“상황이 궁금하더라.”

“호기심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

회색 마스크가 부하에게 명령했다.

“여유를 부리는 걸 보면 주먹 좀 쓰는 놈이겠지. 저놈에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가르쳐줘라.”

김수선이 위성궤도에서 말했다.

- 하늘 위에 하늘이면, 내 이야기인가?

부하 하나가 선우현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면서 삼단봉을 꺼내 옆으로 쫙 펼쳤다.

“타핫!”

기합은 부하가 질렀다. 선우현은 발을 내질렀다. 삼단봉보다 발이 적의 다리를 걷어차는 게 빨랐다. 달려오던 적이 옆으로 휙 자빠졌다.

선우현이 자빠지는 놈을 축구공 차듯이 걷어찼다.

“케엑!”

적이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회색 마스크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

방금 날아간 부하는 검도 2단이다. 그런데 삼단봉을 제대로 휘둘러보기도 전에 당했다.

선우현은 한 놈을 날려버리고 나서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다른 부하는 당황한 얼굴로 삼단봉을 꺼냈다. 선우현이 경고했다.

“그거 다 뽑으면 너도 저 꼴 난다.”

그놈은 삼단봉을 뽑지는 못하고 회색 마스크를 쳐다보았다.

회색 마스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순식간에 두 번이나 걷어찼어. 파워도 엄청나. 강한 놈이다. 둘이 같이 덤벼도 못 이길 것 같아.’

회색 마스크는 승산을 계산하자마자 태도들 바꾸었다. 그가 두 손을 슬쩍 들어 손바닥을 보였다.

“진정하시죠. 우리도 나쁜 뜻으로 이런 건 아닙니다.”

“나도 나쁜 뜻으로 너희들을 패는 게 아니야. 저 아가씨를 구하려는 거야. 뜻이 참 좋지?”

박서윤은 이제 선우현이 적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고마워요!”

회색 마스크가 둘러댔다.

“우리도 그냥 비즈니스였습니다. 뭘 좀 물어보려던 것뿐입니다. 이렇게 우리 얼굴을 가린 건 일이 끝나면 풀어주려고 그런 겁니다.”

“흐음. 그런가?”

회색 마스크는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고 반색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알았어. 비즈니스라는데 이해는 해야지.”

“말이 통하니까 좋군요. 저희는 이만 가겠습니다.”

“응? 가다니?”

“예?”

“정산부터 해야지.”

“무슨….”

선우현이 박서윤을 가리켰다.

“저 아가씨가 한 대 맞았으니까 너희도 한 대 맞자.”

“이미 맞았습니다만? 그것도 두 대나요.”

부하 하나가 선우현에게 맞아 기절했다.

“저건 대충 한 대로 치고, 너희들도 한 대씩 맞아야 공평하지.”

회색 마스크가 기절한 부하를 보았다. 팔과 다리가 하나씩 꺾여 있었다.

회색 마스크가 삼단봉을 꺼내 휙 펼쳤다.

“씨발! 쳐!”

선우현이 공중으로 점프했다. 회색 마스크가 공중을 향해 특제 삼단봉을 크게 휘둘렀다.

선우현이 적의 삼단봉을 공중에서 발로 걷어찼다. 금속 삼단봉 끝이 아니라 손잡이 근처를 찼다. 그 발차기에 선우현의 체중까지 실렸다. 삼단봉이 옆으로 날아갔다.

회색 마스크의 눈에 자신의 팔이 꺾인 게 보였다. 방금 받은 충격으로 손목이 비틀리고 팔꿈치가 빠졌다. 고통이 뒤늦게 밀려왔다.

“끄아악!”

선우현이 방금 걷어찬 반동을 이용해 몸을 다시 공중으로 띄웠다.

마지막 놈이 황급히 삼단봉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선우현은 삼단봉이 아니라 적의 팔을 걷어찼다.

“아악!”

부하가 옆으로 나자빠졌다.

선우현이 박서윤의 근처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는 그녀를 묶고 있는 끈을 풀어주며 물었다.

“다친 곳은?”

박서윤은 선우현이 싸우는 모습을 입을 떡 벌리면서 구경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네? 아! 없어요! 고맙습니다!”

“코피가 났네요. 내가 휴지가… 없지.”

“저한테 있어요!”

그녀의 핸드백은 바로 옆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백을 집으려다가 얼른 돌아서서 선우현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허리 숙이다가 코피 더 날라. 일단 닦아요.”

“네!”

선우현이 박서윤을 챙기는 동안 두 놈은 기절한 동료를 잡아끌면서 창고에서 도망쳤다.

창고 바로 앞에 세워둔 차에 타자마자 검은 마스크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에 빨리 가야 합니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먼저야! 저 새끼가 쫓아오면 우린 다 죽어!”

선우현은 납치범들이 도망가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잡지 않았다. 그가 작게 말했다.

“수선아. 저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추적해.”

- 이미 추적 중입니다.

그는 저 셋이 왜 하필 박서윤을 노렸는지가 궁금했다.

“누구를 만나는지 보면 누가 왜 시켰는지도 알 수 있겠지.”

박서윤은 이 창고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창고 밖으로 걸어갔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긴장이 갑자기 풀리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녀가 비틀거렸다.

선우현이 얼른 그녀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조심해요.”

“고맙습니다.”

김수선이 불평했다.

- 선장님이 이렇게 친절한 분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내가 원래 친절해.”

- 예쁘긴 하네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 퍽이나요.

박서윤은 선우현의 부축을 받으며 당황했다. 신체 접촉 때문이 아니다.

‘이 향기는….’

선우현의 몸에서 낮에 만진 토마토와 같은 향기가 났다.

그녀는 다른 토마토와는 차원이 다른 상큼한 그 향기를 기억한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그녀가 그 토마토를 직접 썰었기 때문에 어떤 향인지 잘 알았다.

그 향기가 선우현의 몸에서 느껴졌다.

선우현은 이곳에 오기 전에 토마토를 먹고 있었다. 옷에 조금 묻기도 했고, 급히 오느라 손을 씻지도 못했다.

박서윤이 선우현을 돌아보았다. 하얀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왜 그 토마토 향기가….’

선우현이 박서윤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내가 집에 데려다줄 수는 없는데….”

“아! 경찰에 신고할게요! 그러니까, 지금 말고 여기 안 계실 때요!”

“그러면 나는 근처에서 보고 있다가 경찰이 오면 갈게요.”

“네!”

“내가 누군지는 말하지 말고.”

“누구신지 모르는데….”

“잘하네요. 경찰이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해요.”

“그러니까 진짜 모르….”

그녀가 멈칫했다. 선우현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도 모른다.

그런데 그 토마토의 향기가 다시 느껴졌다.

***

선우현은 박서윤이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만나는 걸 멀리서 보았다.

“일단 저 아가씨는 구했네.”

- 경찰에 위치만 알려줘도 구할 수는 있었습니다.

“왜 우리 토마토를 만져본 사람을 납치했는지 궁금해서 직접 나선 거야.”

- 이유는 알아내셨습니까?

“토마토 때문은 아니었더라. 놈들은 처음부터 저 아가씨가 목표였어. 뭔가 알아내려는 것 같은데, 저 아가씨는 그게 뭔지 전혀 모르는 눈치야.”

- 모르는 것처럼 연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회사 다닐 게 아니라 배우 해도 되겠네. 저 얼굴에 그런 연기력까지 있으면 대성하겠어.”

- 역시 예뻐서 친절하게 대하신 거군요.

“아니라니까.”

선우현이 말을 돌렸다.

“도망친 놈들은? 다른 놈을 만나러 갔나?”

- 아니요. 병원부터 가던데요.

“누구를 만나는지 알아내야 해. 그놈이 시켰을 테니까.”

- 차종과 자동차번호판을 확인했습니다. 계속 추적하면 사는 곳도 확인될 겁니다.

“그럼 위치를 놓쳐도 집에서부터 다시 추적하면 되겠네?”

- 제가 이렇게 유능합니다.

“내가 너 믿는 거 알지?”

- 아니요.

***

박서윤을 납치했다가 선우현에게 걸려 박살 난 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나는 팔다리가 하나씩 부러져 혼자서는 걸을 수 없었다. 다른 둘은 팔이 하나씩 부러지고 갈비뼈에 금이 갔지만 돌아다닐 수는 있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와 차에 탔다.

오른팔만 부러진 부하가 물었다.

“그놈은 정체가 뭘까요?”

회색 마스크가 인상을 썼다.

“지나가다 들렀다는 건 말이 안 돼.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고수잖아.”

“그러면 그 여자와 한패일까요? 아니면 경호원?”

“몰라. 그 여자 정체는 우리도 모르니까.”

“어쨌든 이렇게 위험한 일이란 말은 없었잖습니까?”

회색 마스크가 짜증을 냈다.

“나도 몰랐어, 이 새끼야. 그래도 우린 살아서 빠져나왔잖아.”

“그놈이 살려준 거죠.”

“어쨌든 살았잖아!”

***

박서윤은 경찰서에 들러 납치 사건에 대해 진술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녀는 7평짜리 원룸에 산다. 원룸 건물 1층 현관에는 디지털 도어락과 CCTV가 있었다.

그녀가 침대에 누웠다. 왼쪽 뺨이 아파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누굴까?”

선우현이 부축해줄 때 맡았던 토마토 향기가 생각났다.

“궁금하다.”

***

길성은 JHC 테크의 기술만 사다 쓰는 게 아니다. JHC가 우위에 있는 기술은 사다 쓰지만, 길성 연구소에서 직접 개발해서 쓰는 것도 많았다.

회장의 특별 지시를 받은 길성 연구소는 토마토 한 조각을 철저히 분석했다.

그 결과는 이튿날 아침에 회장의 책상에 올라왔다.

박길성이 복잡한 숫자와 그래프가 가득한 보고서를 펼쳤다.

그걸 다 볼 필요는 없었다. 첫 장에 핵심 요약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마약이나 각성제 성분이 나온 건 아니다?”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예. 제가 토마토를 분석한 팀의 팀장과 통화했습니다. 어떠한 약물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네. 그런데 왜 그런 효과가 날까?”

박길성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젯밤에는 잠을 참 잘 잤어. 아침에는 참 개운하더라. 이렇게 푹 잔 건 오랜만이야.”

박길성은 불면증이 좀 있다. 약을 먹으면 잘 수는 있는데, 그러면 이렇게 개운하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기운이 넘치고, 오늘은 이렇게 개운해. 어제보다 힘은 덜 나는 것 같지만, 잘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참 좋아. 이게 평범한 토마토 하나 먹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인가?”

“연구소에서 그 샘플로 할 수 있는 분석은 다 했습니다만, 수상한 약물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두 토마토에 원래 있는 성분이었습니다.”

박길성이 보고서의 첫 페이지를 더 확인했다.

“어디 보자. 몸에 좋은 성분은…. 일반 토마토의 몇 배가 들어 있군.”

박길성이 입맛을 다셨다. 어제 먹은 토마토가 생각났다.

“최 사장이 산삼보다 좋은 토마토라더니, 진짜였나 봐. 그걸 어디서 구했을까?”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식물 전문가 중에 아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래. 빨리 알았으면 좋겠군.”

“즉시 조사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어디 토마토 요리 잘하는 곳으로 가자.”

“그러실 것 같아서 예약해뒀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박길성이 회장실을 나갔다. 비서실 직원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어제 납치당했다가 구출된 박서윤도 있었다.

그녀는 반차를 내고 병원에 들렀다가 조금 전에 출근했다. 그래서 오전에는 박길성과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는 어제 납치범의 주먹에 얼굴을 맞았다.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자고 일어났더니 얼굴 한쪽이 퉁퉁 부어 있었다. 멍도 심하게 들어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본 박길성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박 대리. 얼굴이 왜 그래?”

“죄송합니다.”

“왜 박 대리가 죄송해? 어떤 놈 짓이야?”

“모르겠습니다.”

박길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걸 왜 모르…. 아니, 후우. 어떻게 된 일이야?”

“제가 어제 납치….”

“뭐? 지금 납치라고 했나!”

“그 직후에 구출됐습니다. 범인들은 도주했는데, 경찰이 찾는 중입니다.”

박길성이 비서실장을 휙 돌아보았다.

“김 실장! 자네는 부하 직원에게 그런 일이 있는데 왜 보고를 안 해!”

“박 대리가 오전에 반차를 내서, 저도 지금 들었습니다.”

박길성이 박서윤에게 물었다.

“그래서 얼굴은 어때? 병원은? 얼마나 다쳤어?”

박서윤이 대답했다.

“오전에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타박상이라 치료만 받으면 나을 겁니다.”

“흉터는?”

“상처가 난 건 아니라서 흉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알았어. 김 실장. 나 좀 보자.”

박길성이 회장실로 도로 들어갔다. 비서실장이 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길성의 회장 박길성이 으르렁댔다.

“어떤 새끼 짓인지 알아내.”

“알겠습니다. 우선순위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 당장!”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우선으로 조사하겠습니다.

비서실에서 직원들이 말했다.

“어우. 우리 회장님 화 많이 나셨네.”

“옆에서 모시는 직원이 납치됐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당연히 화가 나시겠지.”

박서윤이 말했다.

“과장님. 겨우 살아난 건 아니에요. 저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어요. 세 놈 다 얼굴을 가리고 있었거든요. 그때 구출되지 못했다면 계속 맞았겠지만요.”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어떻게 구출된 거야? 경찰이 바로 찾아낸 거야?”

“아뇨. 지나가던 분이 구해줬어요.”

“어? 누가?”

박서윤이 특별했던 향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저도 진짜 궁금해요. 그분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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