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33화 (33/281)

33. 활력 토마토

길성의 회장 박길성은 동네 철공소로 시작한 사업을 수십 년 동안 성장시켜 계열사 몇 개 가진 중견기업으로 만들었다.

그 회사는 JHC 테크의 기술을 많이 산 중요한 파트너이다.

회장실에서 백발이 성성한 박길성이 물었다.

“최 사장 다리는 이제 다 나았다며?”

“예.”

“다행이야. 걱정 많이 했는데.”

박길성이 다리를 손으로 주무르며 말했다.

“나는 이제 체력이 예전 같지가 않아. 너무 오래 일했나 봐. 요즘은 몸에 기운이 없어.”

박길성은 젊었을 때 무리해서 일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큰 병이 난 건 아니지만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최종훈도 안다. 그래서 선물을 가져왔다.

그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거 드셔 보시죠. 몸에 좋은 겁니다.”

“음? 보약인가? 혹시 산삼이야? 하하하. 최 사장이 어떻게 병이 나았나 했더니 산삼을 먹고….”

박길성이 상자를 열어보고 살짝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토마토네?”

상자에는 잘 익은 토마토가 들어 있었다.

“최 사장. 이거 무슨 뜻이야?”

“몸에 좋은 겁니다.”

“토마토가 몸에 좋은 건 알지. 김 박사도 토마토를 권하더라고. 아니,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서 주는 게 겨우 토마토 하나…. 에잉. 난 산삼이라도 주나 했지.”

“그거 산삼보다 귀한 토마토입니다.”

“그래. 그래. 최 사장은 토마토 많이 먹고 다리가 나았나 보군. 이거 유기농이지?”

“농약 한 번 안 친 겁니다.”

박길성은 최종훈이 토마토 하나로 무슨 생색을 이렇게 내나 싶었다.

“사람 참. 오랜만에 봤더니 농담이 늘었어. 알았어.”

박길성은 비서실에 연락해 토마토를 씻어오게 했다.

비서실 소속 박서윤 대리가 토마토를 가져가 잘 씻은 후에, 예쁘게 썰어서 접시에 담아왔다. 그냥 썰어서 접시에 담기만 했는데도 플레이팅이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았다.

박길성이 말했다.

“내가 미식에 취미가 있잖아. 젊었을 때 일만 하느라 아무렇게나 먹고 다녔더니, 이제는 맛있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

토마토의 조각 하나하나마다 이쑤시개 크기의 막대가 꽂혀 있었다. 박길성이 그중 하나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우리 박 대리가 요리를 배웠는데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겨우 토마토 하나만 가지고도 이런 그림을 만들 정도로 잘…. 어?”

박길성이 토마토 한 조각을 먹고 나서 감탄했다.

“이거 진짜 맛있는데?”

“몸에도 좋습니다.”

“토마토는 원래 몸에 좋다니까. 그런데 정말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정성을 다해 키웠다더군요.”

최종훈은 오늘 토마토 맛만 보여주러 온 게 아니다. 지난 일 년간 손을 놓았던 회사 일을 다시 하면서, 두 회사 사이의 기존 거래와 앞으로의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서 왔다.

두 사람은 서류를 펼쳐놓고 회의를 시작했다. 박길성은 토마토를 한 조각씩 먹으며 업무를 협의했다.

토마토를 반쯤 먹었을 때, 박길성은 몸의 변화를 깨달았다.

“이상한데? 묘하게 기운이 나는데?”

최종훈이 씩 웃었다.

“몸에 좋다니까요.”

“아니,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라….”

그는 최종훈이 토마토를 주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 그거 산삼보다 귀한 토마토입니다.

최종훈이 접시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효과가 괜찮지요?”

그도 한 조각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접시가 그의 손에서 스르르 멀어졌다.

박길성이 접시를 당겨 자기 앞에 놓았다.

“박 회장님?”

“최 사장은 이거 많이 먹었지?”

“여기 오기 전에 먹긴 먹었습니다만….”

“그럼 그만 먹어.”

박길성에게 이제 회의는 뒷전이 됐다. 그는 남은 토마토를 아껴가며 한 조각씩 맛을 음미했다.

“맛있어. 이렇게 맛있는 토마토는 귀하지. 맛만으로도 훌륭한데, 이렇게 몸에 좋다니.”

박길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책상 위의 버튼을 눌렀다. 작은 모터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렸다. 블라인드만 열린 게 아니라 유리로 된 창문 전체가 열렸다.

그가 창가에 섰다. 바람이 불었다.

“기분이 참 상쾌해. 이런 좋은 기분, 오랜만이야.”

그가 잠시 바람을 즐기다가 최종훈을 쓱 돌아보며 물었다.

“최 사장. 이거 어디서 샀어? 나도 좀 사자. 좋은 거는 같이 먹어야지?”

“그거 파는 거 아닙니다.”

“응?”

“제가 아는 분이 손으로 벌레를 잡아가며 아주 소량만 귀하게 키우는 겁니다.”

“그래도 팔긴 할 거 아냐?”

“아직은 안 팝니다.”

“음…. 돈을 많이 주면?”

“돈만 많이 주면 되는 거라면 제가 이미 싹 다 사들였겠죠.”

박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최 사장도 돈은 많지.”

“귀한 거라서 저도 지금까지 몇 개밖에 못 먹어봤습니다. 먹기만 하면 몸에 활력이 생기는 걸 보고 박 회장님이 생각나서 가져온 겁니다.”

“고마워. 내가 최 사장과 오래 알고 지낸 보람이 있네.”

JHC 테크는 조그마한 회사일 때부터 길성과 거래했다. 거래하기 전에도 사적인 인연이 있었다.

그래서 최종훈은 박길성을 제일 먼저 찾아왔다.

박길성이 옷걸이로 성큼성큼 걸어가 외투를 들었다가, 그대로 내려놨다.

“밖으로 나가지. 오늘 회의는 걸으면서 이야기하자고.”

두 사람이 회장실을 나오자마자 측근들이 따라붙었다.

최종훈은 비서인 김찬혁만 데리고 움직였다. 박길성의 뒤에는 세 명이 따라붙었다.

박길성은 회사 밖으로 나가 최종훈과 함께 청계천을 걸었다.

“이렇게 걷는데도 숨이 차지 않고 다리에 힘이 빠지지도 않아. 좋군. 좋아. 이렇게 좋은 걸 그동안 최 사장 혼자만 먹었단 말이야?”

“그래도 박 회장님한테 제일 먼저 드리는 겁니다.”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던 길성의 직원들이 소곤거렸다.

“회장님이 오늘은 기운이 넘쳐 보이시는데요?”

“예전 모습 보는 것 같아서 좋네.”

“보약이라도 드셨나?”

“좋은 거 있으면 나도 좀 먹고 싶다.”

“김 이사님이요?”

“나도 요즘 기력이 딸려. 나중에 회장님께 뭘 드셨는지 슬쩍 여쭤봐야겠어.”

“정보 얻으시면 저도 좀….”

“넌 왜?”

“요즘 와이프가 발동이 걸려서 밤마다….”

“아아. 근데 회장님이 드시는 보약이면, 비쌀걸?”

“많이 비쌀까요?”

“어.”

최종훈이 회의를 마치고 길성을 떠나기 전에 박길성이 물었다.

“그거 말이야. ‘아직은’ 안 판다고 했지? 그럼 나중에는?”

“이제부터 잘 설득해보려고요. 판매 여부는 제가 아니라 토마토 명인이 결정하는 거라서요.”

“결정하면 나한테 제일 먼저 팔 거지?”

“얼마에 사시게요?”

“팔게 되면 제시해봐. 억 소리 나는 가격만 아니면 살 테니까.”

***

박길성은 회장실에 돌아온 후에 비서실장을 불렀다.

“내가 남긴 토마토는?”

그는 일부러 한 조각을 먹지 않고 남겨놓았다.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음식물쓰레기로 버렸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회장님이 손짓하시는 걸 보고, 박서윤 대리에게 잘 보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미리 약속된 수신호가 아닌데도 비서실장은 회장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박길성이 슬쩍 웃었다.

“역시 우리 김 실장이 일을 잘해.”

“회장님을 모신 기간이 30년인데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연구소에 보내서 성분 분석해.”

길성도 자체 연구소가 있다.

“샘플의 크기가 작습니다. 모든 검사를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떤 쪽에 중점을 두고 분석하라고 할까요?”

“몸에 좋은 성분과 해로운 성분을 찾아. 혹시 약 성분이 있으면 아무리 소량이라도 찾아내고.”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순위는 어떻게 할까요?”

“빨리 결과를 보고 싶군.”

“연구소의 최우선 과제로 처리하라고 하겠습니다.”

***

길성 본사 비서실 직원 박서윤 대리가 밤늦게 퇴근했다.

그녀가 집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피곤하다.”

오늘 박길성은 몇십 년은 젊어진 것처럼 활기차게 일했다. 미뤄뒀던 일도 몇 개 진행했다. 당연히 비서실도 바쁘게 돌아갔다.

“그래도 회장님이 기운을 차리셔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건강하시면 좋겠다.”

비서실장은 밤 아홉 시에 비서실 직원들을 모두 퇴근시켰다. 지금 비서실에는 실장 혼자만 남아 있다.

“너무 피곤해. 빨리 침대에 쏙 들어가고 싶….”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그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어두운 밤에 골목길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

‘아니야. 내 착각일 거야. 그냥 지나가는 좀 이상한 사람일 거야.’

그녀가 다시 돌아섰다. 앞에도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도 똑같은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야?’

***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납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선우현은 옥상에서 야식으로 토마토를 먹던 중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놈이 내 집 앞에서 감히 납치를….”

- 거기가 아닙니다.

“응? 그럼 어디인데?”

- 성북구입니다.

선우현은 살짝 당황했다.

“수선아. 너 혹시 서울 전체의 범죄 상황을 관찰하는 중이냐?”

- 관측 카메라 한 대로 그런 게 가능할 리 있습니까?

“불가능하지. 그런데 성북구에서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알았어?”

- 오늘 현지 협조자가 된 최종훈이 뭘 하고 다니는지 잠깐 지켜봤습니다. 최종훈은 이곳을 떠나자마자 다른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 그 회사 주변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돼 현지 협조자를 위협하는 건 아닌지 추적하던 중입니다.

“최 사장님이 우리가 이렇게 안전에 신경 써준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 제가 신경 써주는 겁니다.

“어? 잠깐.”

선우현이 갑자기 옥탑방 계단으로 뛰었다.

“그럼 우리 하나밖에 없는 현지 협조자가 납치된 거야? 내가 그놈들을 당장!”

- 아닙니다.

“응? 아니야?”

- 납치된 건 젊은 여자입니다.

“내가 그 더러운 놈들을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겠어. 위치만 정확히 가르쳐주면 경찰이 그런 놈들을 잘 잡아.”

- 납치된 사람은 오늘 그 회사에서 우리 토마토를 칼로 썰었던 여자입니다. 창문 앞에서 그 작업해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

-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선우현이 계단을 내려가 오토바이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어디로 가는지 추적 중이지?”

- 물론입니다. 제가 인공위성 궤도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

박서윤은 얼굴에 복면이 씌워진 상태로 납치됐다. 복면이 벗겨졌다.

그녀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하악. 하악.”

그러면서 주변을 확인했다. 넓은 실내 공간이 보였다.

‘텅 빈 창고?’

실내에는 세 명이 있었다. 그중 두 명은 검은색 마스크와 모자,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아까 그녀를 납치할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박서윤의 앞에는 모자 없이 회색 마스크와 선글라스만 쓴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회색 마스크가 다리를 꼰 채로 말했다.

“박서윤.”

“저 박서윤 아니에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난 장님이 아니야. 그 얼굴을 어떻게 잘못 봐?”

“왜, 왜 이러세요?”

“왜 이러기는. 다 돈 때문이지.”

“적금 깨서 드릴게요! 월급 아껴서 일 년 동안 부은 거 있어요!”

“은행에 그거 찾으러 가면 뒤탈만 생겨. 그냥 묻는 말에나 순순히 대답해.”

“네? 네!”

“회장 비서실에는 왜 들어갔지?”

“네? 인사팀에서 거기로 발령을 냈으니까….”

“길성에 들어간 목적이 뭐야?”

“월급 받아서 먹고 살려고요.”

“이거 안 되겠군.”

회색 마스크가 손가락을 튕겼다. 검은색 마스크를 쓴 부하가 주먹을 쥐며 다가왔다.

회색 마스크가 말했다.

“편하게 가자. 진짜 목적을 말해.”

“뭐, 뭘 말하라는 건데요? 그것만 알려주면 제가 다 대답할게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겠다? 보기보다 강단이 있네? 하긴. 그러니까 길성에 입사해서 비서실까지 들어갔겠지. 어디 그 강단이 얼마나 가나 보자.”

“뭔지 알아야 대답을….”

“시작해.”

검은색 마스크가 박서윤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

“악!”

회색 마스크가 명령했다.

“대답할 때까지 계속 때….”

갑자기 창고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세 놈이 휙 돌아보았다.

선우현이 창고 문을 열고 안쪽을 보며 말했다.

“아. 조금 늦었나?”

- 그 여자가 이미 죽었습니까?

“아니. 살아는 있는데, 한 대 맞았어.”

- 칼에 맞았습니까?

“주먹에.”

- 선장님? 도대체 뭐가 늦었습니까?

선우현이 창고 안으로 걸어가며 박서윤을 보았다.

“어? 코피 난다. 와. 이 새끼들. 어떻게 사람을 피가 날 때까지 패냐.”

- 선장님? 겨우 한 대 맞았다면서요?

“피 나잖아.”

- 예뻐서 그런 거죠? 그렇죠?

“에이. 아니야.”

- 아니긴!

회색 복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뭐야?”

“나? 지나가던 사람.”

박서윤이 다급히 외쳤다.

“저 납치됐어요!”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너무 위험해요!”

“그건 아니고요.”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 해요!”

“신고하면 내가 좀 곤란해져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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