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명품
최종훈이 서류를 들고 선우현이 사는 건물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옥상까지 가려면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건물 유리창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4층은 아예 통째로 비어 있었다.
“여기는 정말 전망만 좋은 건물이구나.”
최종훈이 옥상에 올라갔다.
선우현이 커피믹스로 아이스커피를 만들어주었다.
“이거 좀 드시죠. 달달하고 시원해서 맛있습니다.”
최종훈이 커피를 홀짝이며 서류봉투를 평상 위에 올려놓았다.
“저번에 계획한 대로 일단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경기도의 그 창고로 했습니다.”
선우현이 봉투를 열어보며 말했다.
“이야아. 순식간에 회사를 뚝딱 만드셨네요.”
“연구소와 연구 협력 관계를 맺는 건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그것도 서둘러 진행하겠습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시간 많으니까요.”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선장님은 시간이 많으시겠죠. 저는 오늘도 선체에 금이라도 가지 않았나 점검하고 있지만요.
선우현이 김수선의 잔소리를 피하려고 최종훈에게 말했다.
“커피만 드시긴 그렇죠? 다른 거 뭐 좀 드릴까요? 마트에서 산 쿠키가 어디 있더라….”
최종훈이 얼른 말했다.
“토마토요.”
“예?”
최종훈이 옥상 한쪽에 있는 큼지막한 화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토마토가 먹고 싶습니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다양한 토마토를 먹어봤지만 저렇게 맛있는 건 없었다. 저만큼 몸에 좋은 느낌이 드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 토마토를 먹으러 이 옥상에 올라왔다.
선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오겠….”
“제가 따겠습니다!”
최종훈이 벌떡 일어나 토마토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토마토를 노려보았다. 열매는 물론이고 잎조차 벌레 먹은 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제일 잘 익은 거. 제일 큰 거.’
기왕이면 가장 좋은 걸 먹고 싶었다.
그가 토마토를 노려보다가, 그중 하나를 골라 땄다. 그런 후에 그 자리에서 입에 넣고 한 입 깨물었다.
예상대로 달고 상큼하고 맛있었다.
옥상에 부는 바람이 마치 들판에 서 있는 때처럼 시원하고 청량하게 느껴졌다.
“그래. 이 맛이야.”
지난 며칠 동안 다양한 종류의 토마토를 먹어봤지만 이런 만족감을 주는 건 없었다.
최종훈은 그 자리에 서서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조금씩 먹었다. 그러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공기에 신선한 향기가 섞여 들어왔다.
몸에 활력이 도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지. 역시 내 착각이 아니었어.’
그가 화분에 있는 잎을 가만히 보았다. 다시 봐도 벌레 먹은 자국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벌레를 완전히 없애려면 독한 약을 쳐야 하는 거 아닐까?’
문득 방금 토마토를 씻지도 않고 그냥 먹었다는 게 생각났다.
그는 사고 후 일 년이나 고생한 경험 때문에 건강에 예민하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이 토마토를 키울 때 어떤 농약을….”
“농약은 안 씁니다.”
“전혀요?”
“단 한 방울도 안 씁니다.”
“여기서 키우는 식물들은 벌레 먹은 자국이 하나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벌레는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있습니다.”
옥상으로 날벌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옥탑방 지붕에 설치한 안티 버그 레이저 포탑의 제어장치가 날벌레를 감지하고 추적했다.
날벌레가 옥상의 경계를 넘어오자마자 포탑이 레이저를 발사했다. 인마 살상용 레이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날벌레 한 마리 정도는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요격당한 날벌레가 조용히 추락했다.
그 레이저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발사될 때 소리가 나지도 않는다.
날벌레가 요격되는 순간에는 명중한 위치에 불빛이 살짝 보이고 작은 소리가 나긴 했다. 하지만 그 빛은 한낮의 햇빛 아래에서 구분될 정도로 밝지는 않았다.
게다가 제어장치는 사람이 포탑이나 요격 대상 지점을 보고 있을 때는 벌레를 잡지 않는다. 선우현이 포탑 제어장치의 설정을 은밀 요격 모드로 세팅했기 때문이다.
최종훈은 방금 레이저가 발사된 것도, 날벌레 한 마리가 요격된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선우현이 물리적으로 제거한다고 말한 걸 다르게 이해했다.
‘벌레를 일일이 손으로 잡나 보다.’
며칠 전에 연구원들과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분재를 키우듯이 정성을 다했을 거라더니.’
최종훈은 감탄했다.
“손이 많이 가겠군요.”
그런데 식물을 정성을 다해 키운다고 해서 열매 하나 먹었다고 몸에 활력이 생기진 않는다.
“혹시 직접 만드신 그 식물 영양제 말입니다. 거기에 뭔가 특별한 게 들어가진 않습니까?”
레드 포션이 소량 들어간다.
선우현이 도로 물었다.
“어?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최종훈은 몸에 힘이 나게 하는 약을 좀 알고 있다.
‘비타민이나 타우린은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되지. 카페인도 그렇고.’
매일 마시는 커피 속 카페인에도 각성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활력이 생기려면 그런 평범한 게 아니라….’
그는 사람이 피로를 잊게 하거나 밤에 잠을 안 자도 견디게 하는 약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약을 사용하면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최종훈은 살짝 긴장했다.
‘설마 마약 성분이 들어 있나?’
그러면 그가 느낀 활력 효과가 설명된다.
‘약을 타서 이렇게 맛있는 건가?’
최종훈은 마약을 한 적이 없다. 마약을 하면 평소와 다른 상태가 된다는 말만 들었지,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다.
‘이 놀라운 식물 영양제의 정체가 설마 마약인가?’
대놓고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다. 그건 살려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렇다고 안 물어볼 수도 없다. 이건 그에게 무척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종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첨가제로 키운 식물에 몸에 안 좋은 성분이….”
급속성장촉진제로 키운 식물을 탐사대가 먹었다가 대원의 몸에 탈이 나면 임무를 망칠 수 있다. 그런 사태를 피하려면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지구연합은 비용과 상관없이 제일 안전하고 품질이 좋은 촉진제를 선정해 탐사대에 보급했다.
보급된 촉진제는 워낙 비싸서 지구연합에서도 일반 농사에는 쓰지 않는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촉진제에 레드 포션이 소량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급품으로 가져온 식물 급속성장촉진제는 아주 옛날에 모두 소모했다.
선우현이 이 토마토를 키울 때 사용한 건 보급품과 같은 조합법으로 최근에 새로 만든 촉진제다. 원료 중 하나인 레드 포션은 오천 년 동안 숙성된 걸 사용했다.
탐사대 지원위성에는 유기물 재처리 합성장치가 있다.
다른 장비는 필요하면 분해해서 선체 유지보수에 썼지만, 그 장비는 뜯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합성장치가 고장 나면 다른 장비를 뜯어서라도 수리했다.
합성장치가 고장 나면 칼로리바를 만들 수 없다. 먹을 게 없으면 굶어 죽는다. 그러니까 선체가 쪼개지는 상황이 벌어져도 합성장치는 반드시 사수해야 했다.
그런데 그 합성장치는 칼로리바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것들도 만들 수 있다. 그중에는 농업용 급속성장촉진제도 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이 지상에 내려가셔서 합성장치 가동에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식물용 촉진제나 만들 줄이야.
“나도 밥은 먹어야지. 후식도 먹고.”
- 지상에는 먹을 게 많을 텐데요? 그것도 아주 맛있는 것으로요.
“그래도 과일은 직접 재배한 게 최고야. 가게에서 산 건 이 맛이 안 나.”
최종훈은 촉진제로 키운 식물에 몸에 안 좋은 성분이 있냐고 물었다.
선우현이 토마토를 하나 따서 먹으며 대답했다.
“몸에 나쁜 게 들어갈 리가 있나요. 건강을 생각해서 키우는 건데.”
최종훈은 그 말을 믿었다.
그는 레드 포션의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안다. 그 기적을 몸으로 직접 경험했는데 모를 수가 없다.
‘선우현 씨는 생명공학의 천재니까, 본인도 먹는 과일은 당연히 안전하게 키웠겠지.’
어느새 손에 든 토마토 하나가 사라졌다.
맛있었다. 몸이 건강해지는 맛이었다.
‘더 먹고 싶다.’
최종훈은 선우현이 직접 손으로 벌레를 잡아가며 토마토를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키웠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더 달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최종훈이 머뭇거리는 걸 보고 선우현이 물었다.
“맛이 마음에 드나 봅니다.”
최종훈이 다른 토마토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제가 살면서 먹어본 모든 과일 중에서 최고입니다.”
“필요하시면 좀 가져가시죠.”
최종훈이 선우현을 휙 돌아보았다. 표정은 활짝 펴졌다.
“그래도 됩니까?”
“토마토야 또 열리겠죠.”
“그럼 다 따면….”
“되겠습니까?”
“안 되죠.”
최종훈은 토마토를 열 개를 땄다. 그런데 담을 곳이 없었다.
선우현이 집안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찾아서 가져왔다.
“여기에라도 담아가시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최종훈이 비닐봉지에 토마토를 조심해서 담았다.
***
최종훈이 차로 돌아왔다. 비서 김찬혁이 물었다.
“회사로 갈까요?”
“포장 잘하는 가게부터 가자.”
“예?”
“빨리. 이거 무르거나 터지면, 아니, 흠집만 나도 곤란해.”
최종훈은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을 찾아가 포장을 의뢰했다.
사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매장에서 산 물건도 아닌데 포장만 하는 건 좀….”
최종훈이 매장에 전시된 목걸이를 가리켰다. 가격표에 백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 목걸이를 사겠습니다. 그러면 서비스로 포장해 주실 수 있지요? 물론 추가 포장비는 따로 드리겠습니다.”
“보석을 다루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포장하겠습니다.”
사장은 액세서리를 담는 고급 종이 상자 열 개를 가져왔다. 거기에 완충재로 감싼 토마토를 하나씩 개별 포장했다.
최종훈이 열 개의 작은 상자를 더 큰 상자에 담아 차에 돌아왔다.
작은 상자는 더 큰 상자에 아홉 개를 넣으면 딱 맞게 들어갔다. 그래도 하나가 남아서 상자 위에 얹어서 가져왔다.
김찬혁은 운전석에서 기다리다가 최종훈이 차에 탄 후에 물었다.
“사장님. 그 토마토가 그렇게 맛있습니까? 포장까지 따로 할 정도로….”
“음….”
최종훈이 잠시 망설이다가, 큰 상자에 들어가지 않은 마지막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 토마토, 너도 하나 먹어라.”
“저는 괜찮습니다. 토마토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귀한 거니까 그냥 먹어. 너니까 주는 거야.”
“예.”
김찬혁이 작은 상자를 받아 옆에 내려놓았다.
최종훈이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왜 안 먹어?”
“지금이요?”
“어. 지금.”
“흘리면 시트에 묻을 수가 있어서….”
“괜찮아. 닦으면 되지.”
김찬혁이 상자를 열고 토마토를 꺼냈다.
‘이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때깔이 다르긴 하네.’
그가 그걸 한 입 깨물었다.
‘토마토는 좋아하진 않지만, 사장님이 왜 그렇게 이 토마토를 찾는지 맛이 궁금하긴 했….’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음?”
최종훈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때? 맛있지?”
김찬혁이 방금 문 것을 씹어 삼킨 후에 대답했다.
“진짜 맛있는데요? 신선하고 상큼하고, 달기도 하고…. 토마토가 왜 이렇게 달죠? 아. 혹시 이게 스테비아 농법으로….”
“아니야. 그거랑은 맛이 완전히 달라. 이쪽이 훨씬 더 진하고 깔끔한 단맛이야.”
김찬혁이 토마토를 부지런히 먹었다. 어느새 하나가 사라졌다. 부족했다.
‘더 먹고 싶다.’
김찬혁이 뒤를 보았다. 최종훈의 옆자리에 놓인 큰 상자에는 아직 아홉 개가 더 들어 있다.
그 눈빛을 느낀 최종훈이 얼른 상자 뚜껑을 손으로 눌렀다.
“하나로 만족해. 나도 어렵게 얻은 거야.”
“아, 예.”
“그래서 어때?”
“예?”
“맛만 있고 끝이야? 막 호랑이 기운 같은 게 생기지는 않아?”
그는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김찬혁에게 하나를 나눠주었다.
“사람 몸인데 호랑이 기운이 왜 나겠습니까?”
“이상한데….”
김찬혁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차에서 대기하느라 몸이 찌뿌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그러고 보니까 몸이 개운해진 느낌인데요? 기운도 나는 것 같고요.”
최종훈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그치? 나만 느끼는 게 아니구나? 누가 먹어도 같은 효과구나?”
김찬혁은 며칠 전에 최종훈이 기운이 넘쳐서 자정을 넘길 때까지 일한 것이 생각났다.
“예? 그럼 지금 이 기운이 혹시 방금 먹은 토마토 때문에….”
“당연하지.”
“사장님. 혹시 저를 실험 대상으로….”
“으, 응? 어…. 야. 이거 나도 먹었어. 내가 먹어보니까 몸에 굉장히 좋아서 준 거야.”
최종훈이 상자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 토마토는 산삼보다 몸에 좋은 보약이야. 왜냐하면, 이건 약이 아니라 과일이니까 자주 먹어도 되거든.”
“산삼보다 맛도 좋으니까 매일 먹어도 되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이 토마토는 생산량이 적어. 아주 조금만 나오지.”
최종훈은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그가 장담했다.
“두고 봐라. 이건 앞으로 인맥이 없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못 구하는 명품 중의 명품이 될 테니까.”
“혹시 따로 포장하신 이유가 소문을 내려고….”
“당연하지.”
중견기업 사장 최종훈이 씩 웃었다.
“우선은 길성의 박 회장님부터 시작하자. 요즘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다니까, 맛을 좀 보여줘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