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9화 (29/281)

29. 추가 효과

광수대 형사 안성준은 박춘석의 청부폭력조직이 전멸한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따로 알아보던 사건들과 현장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관할 경찰서의 형사가 정보를 하나 던져줬다.

“그 사건 조금 전에 한강공원 주차장에서 일이 좀 있었어. 누군가 거기서부터 추적해서 춘석이파의 사무실까지 찾아왔나 보더라.”

“주차장이면 블랙박스에 찍혔겠네?”

“블랙박스 영상은 각도가 맞게 나온 게 없어. CCTV가 멀리서 찍은 것만 하나 건졌다. 그거라도 볼래?”

“당연하지.”

안성준은 주차장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이전에 있었던 비슷한 사건에서는 몽타주를 얻지 못했다. 그저 범인들의 진술을 기반으로 조사 대상자의 대략적인 체형만 유추해냈다.

영상 속 선우현의 모습은 흐릿했지만, 체형을 알아볼 수는 있었다. 안성준이 모은 자료 속 인물과 비슷한 체형이었다.

‘역시 이 사람이 그 사람일 거야.’

확실한 정보는 하나도 없는데도 막연히 그런 확신이 들었다.

동기 형사가 설명했다.

“박춘석 패거리가 이 차의 바퀴를 조작해서 교통사고라도 일으키려고 했나 봐. 그걸 이 사람이 발견하고 덮친 거지.”

“여기 이 차는 소유주가 누구야?”

“구하니.”

안성준이 눈을 껌뻑였다.

“응? 설마….”

“어. 가수 구하니 맞아.”

“아니, 이 새끼들이? 그럼 차에 손을 댄 목적은?”

“작은 교통사고를 내게 하려고 했나 봐.”

“구하니의 연예인 이미지에 타격이 가게 하려고?”

“몰라. 박춘석도 목적은 모른다더라.”

안성준이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주차장 사건은 기사화된 게 없네?”

동기 형사가 영상 속 다른 인물을 가리켰다.

“이 사람이 기사화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자고 주장했거든.”

“왜?”

“구하니한테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이 사람이 누구인데?”

“JHC 테크 사장 최종훈.”

안성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기술 연구와 라이센스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중견기업이야. 그 회사 기술력이 대단하다더라.”

안성준이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최종훈은 이 사람과 무슨 사이일까?”

“본인은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하긴 하더라.”

“알 것 같은데….”

***

선우현은 이튿날 JHC 테크 사장 최종훈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장소가 선우현의 옥탑방 옥상이었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현지 협력자 후보를 집으로 부르는 건 전례가 없습니다만?

“전에는 인공위성 궤도로 오라고 할 수 없으니까 초대를 못 한 것뿐이야.”

- 하지만 최종훈은 아직 후보잖습니까?

“어제 통화했는데, 공원 주차장 일을 깔끔하게 잘 처리했더라. 다른 조건을 봐도 이만한 적합자가 없다. 그래서 그냥 확정 지으려고.”

- 알겠습니다. 어차피 월세 옥탑방인데, 문제가 생기면 이사 가시면 되죠. 이사비는 금괴 녹여서 금반지 만들어 파시면 되고요.

“응? 금반지? 어…. 지금이라도 장소를 바꿀까?”

- 늦었습니다. 최종훈의 차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

최종훈은 비서인 김찬혁과 함께 왔다. 김찬혁이 선우현의 옥탑방이 있는 건물을 보며 말했다.

“사장님. 저기는 언덕 위 판잣집 느낌인데요?”

“4층 건물이 어떻게 판잣집이냐?”

“4층 건물인데 5층으로 오라고 했다면서요? 거기 산다고. 그럼 옥탑방일 텐데요?”

“그렇…겠지?”

“거기다 언덕 꼭대기에 있으니까, 느낌은 언덕 위 판잣집인데요?”

“괜한 소리 하지 말고 넌 여기서 대기해. 난 올라갔다 올 테니까.”

김찬혁이 걱정했다.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경호원으로 같이 갈까요?”

“음…. 너도 어제 공원에서 그놈들 봤지?”

“예. 봤죠. 아주 박살이 나 있던데요. 그래서 제가 같이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싸움이 나면 네가 이길 자신은 있고?”

김찬혁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저는 차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사장님이 잘 아는 분이신데 제가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말이나 하지 말지 그랬냐?”

“그러게요. 말이나 하지 말걸요.”

그 4층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최종훈은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낸 후에 건물 계단을 통해 5층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출입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다.

선우현이 문을 열어주었다. 최종훈이 옥상에 올라왔다.

옥상 한쪽에는 옥탑방이 있었다. 최종훈은 옥탑방을 보며 생각했다.

‘혹시 기적의 약을 만들려고 전 재산을 연구비로 쓴 건가? 그래서 옥탑방에 사나?’

그런 의문을 굳이 입 밖에 꺼낼 필요는 없다. 대신에 그는 옥상의 장점을 찾아냈다.

“이야아. 전망이 정말 좋은 옥상이군요. 하하하.”

그건 진심이었다. 전망 하나는 최종훈의 한강 고급 아파트 못지않게 좋았다.

게다가 최종훈의 아파트는 창문을 통해 밖을 보는데, 여기는 사방은 물론이고 하늘까지 트여 있다. 바람도 솔솔 불었다.

“전망이 우리 집보다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를 골랐죠.”

“아. 역시.”

‘이유가 있어서 여기 사는 거…. 아니, 그렇게 보기엔 교통 환경도 안 좋고 건물도 좀 허름한데? 여기는 전망만 좋은데?’

김수선도 말했다.

- 계실 곳이 그 옥탑방밖에 없었잖습니까?

“전망이 좋아서 눌러앉은 거 맞아. 오천 년을 좁은 곳에서 지냈더니 이젠 여기처럼 넓은 곳이 좋아.”

옥상에는 선우현이 밥을 먹거나 일을 할 때 쓰는 테이블이 있다. 지금은 의자를 하나 더 갖다놓았다.

선우현이 물었다.

“커피?”

“좋죠.”

선우현이 물을 끓이고 커피믹스를 타는 동안 최종훈은 옥상에서 키우는 식물들을 보았다.

“이야아. 채소가 참 잘 자랐네요.”

“고기 먹을 때 싸먹으면 맛있습니다. 역시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그는 어제 박춘석 패거리의 사무실을 털어 돈과 금괴를 챙겼다. 금괴는 당장 현금화하기 곤란했다. 돈은 그리 많이 들어 있지는 않았지만, 삼겹살 정도는 실컷 먹어도 표가 나지 않을 정도는 됐다.

최종훈이 얼른 제안했다.

“그럼 제가 강남으로 모실까요? 거기 한우가….”

“쌈은 역시 삼겹살이죠.”

“제주산 흑돼지 삼겹살 전문점으로 모시겠습니다.”

“나중에요.”

“아, 네.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선우현이 커피를 타는 동안 최종훈은 상추를 가만히 보았다. 그런데 상추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사람이 먹는 채소는 원래 벌레도 잘 먹지 않나?’

옥상에는 벌레 먹은 채소가 단 하나도 없었다.

최종훈은 다른 작물도 살폈다.

“토마토도 키우시네요. 와. 열매가 진짜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때깔이 이거….”

‘토마토의 붉은 색에서 깊이가 느껴질 정도인데? 마치 온실에서 분재를 키우듯이 공을 들여 하나하나 키운 것 같아.’

최종훈이 그걸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맛있겠다.”

선우현이 머그잔 두 개를 가져왔다. 그가 머그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토마토 좋아하시나 보다.”

최종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요즘은 딱히 찾아서 먹지는 않습니다. 요리에 섞여 나오는 거나 좀 먹죠. 그런데 이렇게 나무에 매달린 걸 보고 있으니까, 옛날에 집에서 먹던 토마토가 생각나네요. 맛있어 보입니다. 하하하.”

“그냥 하나 따 드세요.”

“아. 그럴까요?”

김수선이 말렸다.

- 선장님. 급속성장촉진제로 키운 토마토는 지금까지는 건물 관리인과 선장님만 드셔 봤습니다만?

“촉진제의 안정성은 원래부터 확실하잖아.”

- 지구연합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죠. 그런데 우리 촉진제 제작에 사용한 레드 포션에는 원래는 없던 추가 효과가 있습니다만?

촉진제는 여러 가지 원료를 사용해 만든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원료는 소량의 레드 포션이다.

“에이. 괜찮아. 최 사장님은 레드 포션을 다리에 직접 맞아도 멀쩡했잖아. 촉진제로 키운 토마토 좀 먹었다고 설마 배탈이라도 나겠어?”

- 알겠습니다. 이미 먹기 시작했으니 결과나 보겠습니다.

최종훈이 토마토를 하나 따서 손으로 쓱쓱 닦았다. 그런 후에 덥석 물었다.

“음?”

생긴 것도 토마토이고 맛도 토마토다.

맛이 있을 거라는 예상도 했다. 때깔만 봐도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설탕을 뿌린 것처럼 달고 맛있었다.

그가 토마토를 먹으며 베어 문 부분을 눈으로 확인했다. 색이 더 진하고 모양도 잘 나오긴 했지만, 외형은 전형적인 토마토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분명히 토마토 맞는데?’

그가 방금 딴 것이니 설탕을 뿌렸을 리도 없다.

최종훈이 물었다.

“이 토마토는 품종이 뭡니까?”

“씨앗을 사다가 키운 건데, 포장지는 이미 버려서 어디 건지는 모르겠군요.”

“그 씨앗은 어디서 수입하셨습니까?”

“저 아래 천냥샵이요.”

“예?”

“거기서 토마토 씨앗도 팔고 상추 씨앗도 팔고 여러 종자를 팝니다.”

최종훈도 그런 종류의 소매점에서 식물 씨앗을 판다는 것을 안다.

“그럼 평범한 씨앗이라는 건데, 토마토가 왜 이렇게 달고 상큼하죠?”

“정성을 담아서 잘 키웠으니까요.”

김수선이 말했다.

- 정성이 아니라 탐사대 지원용 식물 급속성장촉진제를 사용하셨습니다만?

급속성장촉진제를 써서 과일나무를 키우면 땅의 지력이 빠르게 소모된다. 그래서 촉진제를 쓸 때는 대량의 비료를 같이 사용해야 한다.

“화분은 내가 관리했잖아.”

지금처럼 화분에서 키울 때는 흙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 작업은 선체에 보관된 지원 메뉴얼을 참고해 진행했다. 매뉴얼을 찾아준 건 김수선이다.

최종훈의 손에 있던 토마토가 어느새 사라졌다. 그는 하나를 다 먹고 나서 감탄했다.

“이거 진짜 맛있습니다. 설탕을 뿌린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맛있네요. 그냥 달기만 한 게 아닙니다. 토마토에서 이런 상큼한 향이 날 줄은 몰랐는데….”

- 너무 감탄하는데요? 저러다 선장님을 의심하겠습니다.

“농사의 달인이신가 봅니다. 하하하.”

선우현이 피식 웃으며 작게 말했다.

“우리 현지 협조자가 하나도 의심 안 하는데?”

- 정말 훌륭한 현지 협조자입니다.

최종훈은 좋은 과일은 다양하게 먹어봤다. 그런데 이 토마토는 그가 먹었던 가장 맛있는 토마토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그는 선우현이 기적의 약을 만든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이 토마토에도 뭔가 특별한 처리를 했다고 추측했다.

“혹시 토마토에 뭔가 약을….”

- 눈치도 빠릅니다.

“제가 새로 만든 식물용 영양제를 좀 썼습니다.”

지원위성에서 급속성장촉진제를 새로 만들긴 했다.

- 제가 만들었습니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우리가 만들었지.”

최종훈은 이제야 속이 시원해진 얼굴로 했다.

“아아!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이렇게 맛있군요!”

최종훈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역시 생명공학의 천재! 기적의 약만 만든 게 아니라 최고의 식물용 영양제도 만들었구나!’

선우현이 말했다.

“원하시면 더 드시죠.”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최종훈이 토마토를 자세히 살펴보고 그중에서 제일 크고 잘 익은 놈을 땄다.

토마토만 따 먹고 있을 수는 없다. 여기 온 목적은 따로 있다.

그는 토마토를 탁자 옆에 잘 놓았다.

‘이건 가져가서 나중에 먹어야지.’

그가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만나자고 했는지 궁금했다.

선우현이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제가 돈이 필요합니다.”

최종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그렇습니까?”

‘내 다리를 치료한 약값을 더 달라는 이야기였군. 그러면 이야기가 쉽지.’

최종훈은 부자다. 그가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많이요.”

“상관없습니다. 제가 돈이 참 많습니다. 하하하.”

김수선이 말했다.

- 최종훈의 재산을 털면 위성 발사용 로켓을 몇 번은 쏠 수 있겠군요. 우주왕복선은 어림도 없을 테고요.

“제가 최 사장님 삥을 뜯으려는 건 아니고요.”

최종훈이 손을 흔들었다.

“네? 아니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냥 돈이 되는 걸 팔아서 벌겠습니다.”

최종훈은 쉽게 납득했다.

“하긴. 그 기적의 약을 판다면 돈이야 얼마든지…. 어? 잠시만요. 그건 만들기 어렵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리고 그건 비밀의 약 아니었습니까?”

“레드 포션이 아니라 다른 걸 팔려고요.”

“아. 그 약의 이름이 레드 포션이군요.”

“빨간색이라서 그냥 그런 별명을 붙였습니다. 어쨌든 다른 걸 팔고 싶은데요.”

최종훈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방금 먹은 토마토가 화분의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저 토마토를 파실 겁니까? 아니, 저 토마토를 키운 식물용 영양제를 파시겠군요. 이야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니요. 그 영양제는 대량생산이 불가능합니다.”

급속성장촉진제를 만들려면 소량이라도 레드 포션이 들어가야 한다. 지상에서 구할 수 있는 원료만으로는 만들 수 없으므로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그것도 못 팝니다.”

“아…. 아쉽습니다.”

최종훈은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전 세계 농업 시장을 아주 휩쓸어버릴 수 있었는데.”

“대량생산은 불가능하다니까요.”

최종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뭘 파시려는 건지….”

“기술을 좀 팔아보려고요. 그쪽으로 잘 아시는 것 같던데.”

최종훈이 활짝 웃으며 가슴을 두드렸다.

“물론입니다. 제가 사실 기술 라이센스 판매 분야에서 알아주는 전문가입니다. 팔려고 하는 기술은 어떤 겁니까?”

김수선이 말했다.

- 탐사대의 원활한 현장 활동을 위해 지구연합이 준비한 지원 기술 중에서, 지상에서 양산이 가능한 걸 찾아서 팔면 됩니다.

“어떤 기술을 찾아내서 팔지는.”

“예!”

“지금부터 연구해야죠.”

“예?”

“금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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