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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8화 (28/281)

28. 파밍

청부조직 두목 박춘석은 조금 전에 책상에 처박혔을 때는 오른팔이 부러졌다.

방금 걷어차였을 때는 갈비뼈가 나갔다.

선우현이 말했다.

“야. 잔금이 퀵으로 오면 청부대금을 준 놈을 어떻게 추적하란 거야?”

박춘석이 황급히 대답했다.

“퀴, 퀵 배달 기사를….”

“물어보면 누가 보냈는지 주소라도 알려줄 거 같아?”

“그, 그게….”

“이걸 그냥 확!”

“히익!”

김수선이 제안했다.

- 선장님. 아는 게 없는 놈입니다. 더 패봐야 나오는 것도 없습니다.

“없기는 왜 없어?”

- 파밍 하시게요?

“당연하잖아. 우리도 남는 게 있어야지.”

선우현이 박춘석에게 물었다.

“그럼 돈은?”

“예? 무슨 돈….”

“잔금은 퀵으로 받을 예정이었다며? 그럼 선금은? 의뢰한 놈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선금도 안 받았다고 하면 진짜 산에 묻어버릴 거다.”

박춘석이 다급히 말했다.

“받았습니다! 의뢰인의 정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만큼 많이 받았습니다!”

“은행에 있는 거 말고.”

“이 일은 원래 현금 장사입니다! 저 금고에 있습니다!”

선우현의 표정이 확 펴졌다.

“열어.”

“예!”

박춘석이 절뚝거리며 금고로 걸어갔다. 다리는 삐었고 오른팔은 부러졌다. 갈비뼈도 나가서 왼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살고 싶으면 움직여야 한다. 그는 왼손으로 금고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그럼 혹시 돈 때문에 오늘 저희를 치셨….”

“전문용어로 파밍이라고 하지.”

박춘석이 금고의 문을 열며 말했다.

“미리 말씀하셨으면 이렇게까지 안 하셨어도 돈을 드렸을…. 케엑!”

선우현이 박춘석을 걷어찼다.

“거짓말하면 죽는다니까 이게 또 거짓말을 하네?”

박춘석은 옆으로 날아가 책상에 처박혔다. 이번에는 다리까지 부러졌다.

“끄아악!”

그 충격으로 책상이 밀리면서 옆에 있던 캐비닛을 건드렸다. 철제 케비닛이 넘어지며 박춘석을 덮쳤다.

“케엑!”

박춘석은 결국 기절했다. 부하 일곱 중에도 깨어난 놈은 없었다.

선우현이 금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자. 이 상자에는 어떤 보물이 있….”

안에는 돈이 있었다. 그런데 현금은 많지 않았다.

선우현이 기절한 박춘석을 돌아보았다.

“돈 많다며? 저걸 확 그냥.”

- 돈이 없습니까?

“돈은 조금밖에 없어. 나머지는 금괴네.”

박춘석은 의뢰비 선금을 금괴로 받았다. 현금은 사무실 경비로 쓰던 것 조금밖에 없었다.

- 또 금괴가 나왔군요.

“왜 이런 놈들은 골드만 뱉을까?”

- 작은 공간에 많이 보관할 수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자기들끼리 금괴로 거래하면 경찰이 추적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놈들은 서부 시대도 아닌데 21세기에 돈이 아니라 금으로 거래하네. 나라가 망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 그거라도 챙기시죠.

“또 금반지나 만들게 생겼어.”

- 장비만 사놓고 안 만드시잖아요.

“만들 거야. 나중에.”

- 아, 예.

선우현이 근처에서 가방을 하나 찾아 금고 속에 있는 것들을 챙겼다. 약간의 현금과 여러 개의 금괴를 가방에 옮기고 났더니 금고가 거의 비었다.

이제 금고 안에는 장부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선우현은 장부는 펴보지도 않았다.

김수선이 물었다.

- 현장 뒤처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 전문가 누구 말입니까? 현지 협조자 후보 최종훈은 최종 테스트 중입니다만?

선우현이 기절한 박춘석의 몸을 뒤져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쪽 전문가 말고.”

도성태는 오늘 낮에 납치됐다. 박춘석 패거리는 도성태를 폭행하고 협박했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선우현이 쳐들어와서 박춘석 패거리와 싸웠다.

도성태는 의자에 묶인 채로 벽을 보고 있어서 싸우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대신에 비명과 사무실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도성태가 아무것도 못 본 건 아니다. 박춘석의 부하 하나가 날아와 그의 앞쪽 벽에 처박히는 건 봤다.

도성태는 공포에 질렸다. 비명은 계속 들리는데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니까 더 무서웠다.

나중에는 너무 무서워 기절 직전 상태까지 갔다. 그래서 선우현과 박춘석의 대화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 누가 그의 뒤로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성태는 몸을 격렬히 비틀었다. 의자를 흔들어서라도 조금이라도 앞으로 가려고 했다.

“읍! 읍!”

소용없었다. 발소리가 바로 옆까지 왔다.

도성태는 이제 자기 차례라고 생각했다.

선우현이 도성태의 입에서 테이프를 떼었다.

도성태가 눈동자를 옆으로 조금 움직였다. 옆쪽에서 사람 윤곽이 슬쩍 보였다.

그는 즉시 눈을 감으며 소리를 질렀다.

“저는 선생님의 얼굴을 못 봤습니다! 진짜입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궁금하면 봐도 되는데.”

그 말이 더 무서웠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살려주고 있잖아요.”

“네?”

“구하러 왔다고요.”

도성태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깨닫지 못하다가, 뒤늦게 환한 얼굴로 눈을 떴다.

“지, 진짜요? 경찰이십니까!”

선우현이 그의 몸에 묶인 줄을 자르며 말했다.

“경찰은 지금부터 부르셔야지.”

“예?”

“경찰 아니라고요.”

도성태가 다시 눈을 꽉 감았다.

“저는 선생님이 누구신지 전혀 모릅니다!”

선우현이 도성태의 손에 두목의 스마트폰을 쥐여주며 말했다.

“눈 떠요.”

“아닙니다! 감고 있겠습니다!”

“눈을 뜨고 스마트폰을 봐야 신고를 하지.”

“예?”

“경찰에 신고하시라고.”

“예? 아! 예!”

도성태가 눈을 살짝 뜨고 스마트폰을 보았다. 주변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런데 화면이 잠겨 있었다.

“어? 이거 잠…. 아닙니다!”

화면이 잠겨도 112 같은 긴급 전화는 걸 수 있다. 그는 112에 전화를 걸려다가 멈칫했다. 마음에 크게 걸리는 게 있었다.

도성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경찰에 전화하면 심각한 문제가….”

“평소에 경찰하고 사이 나쁜 일을 하나?”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저놈들이 제 가족사진을 보여주면서 협박했습니다. 오늘 여기서 당한 걸 신고하면 우리 딸과 아내를 가만 안 두겠다고….”

선우현이 도성태의 의자를 잡고 뒤로 휙 돌렸다.

“여기에 그럴 수 있는 놈이 있어 보입니까?”

도성태는 이제야 사무실 내부가 모두 볼 수 있었다. 집기들은 박살이 나고, 조직원들은 팔다리가 부러진 채로 여기저기 처박혀 있었다.

“헉!”

그의 눈에는 이 사무실이 마치 전쟁터의 폐허처럼 보였다.

“설마 다 죽….”

“죽지는 않았을 걸요?”

“아. 그렇….”

“아마.”

“예? 아, 아마….”

“어쨌든 저놈들은 이제 남을 협박하기엔 멀쩡한 팔다리가 좀 부족할 겁니다.”

“그, 그러네요?”

선우현이 제안했다.

“그래도 불안하시면, 직접 다 쓱싹 하시던가.”

“예? 쓱싹이 무슨 뜻….”

“협박의 원인을 직접 제거하는 거죠.”

도성태가 다시 바짝 긴장하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아, 아닙니다! 당장 신고하겠습니다!”

도성태는 황급히 112에 전화를 걸었다. 선우현 쪽으로는 시선을 조금도 돌리지 않았다.

경찰이 전화를 받았다. 도성태가 상황을 설명했다.

“저기, 여기에요. 그러니까….”

선우현이 도성태의 어깨를 툭 쳤다. 갈 테니까 뒷일은 알아서 잘하라는 뜻이었다.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도성태는 선우현의 손이 닿자마자 겁먹은 비명을 질렀다.

“히익!”

전화기에서 경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위급한 상황입니까?

“위, 위급하긴 하죠. 그게….”

도성태의 눈에 여기저기 처박혀 있는 조직원들이 보였다.

“제가 위급한 건 아니고요.”

선우현은 도성태가 신고하는 모습을 보며 작게 말했다.

“수선아. 뒷일은 경찰에 맡기면 돼.”

- 처음부터 저놈들이 구하니의 차에 수작을 부렸다고 경찰에 신고했으면, 뒤에서 느긋하게 구경이나 하실 수 있었는데요. 꼭 직접 하셔야 했습니까?

“직접 해야 골드라도 챙기잖아.”

- 저 목격자가 선장님에 대해 떠들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스크 쓰고 장갑도 꼈어. 그리고.”

선우현이 도성태에게 말했다.

“나는 못 본 겁니다?”

신고를 마친 도성태가 얼른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저는 실제로 선생님의 털끝 하나도 못 봤습니다!”

“이 가방도 못 본 거고.”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었습니다!”

“현명하시네.”

***

광역수사대 형사 안성준이 청부조직 박춘석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미 현장에는 관할 경찰서의 형사들이 와 있었다.

안성준의 동기인 형사가 그를 발견하고 물었다.

“광수대가 왜 여기를 와?”

“이 사건이 궁금해서 혼자 온 거야. 공식적으로 온 건 아니다.”

“그래? 이 사건은 어떻게 알고?”

“소문 듣고.”

안성준이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와…. 그런데 이건….”

조직원 몇 명이 팔다리가 부러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형사가 설명했다.

“이게 다가 아니야. 몇 명은 이미 구급차에 실려 갔어.”

“어떻게 된 거야?”

형사가 한쪽에 흥분한 얼굴로 앉아 있는 도성태를 슬쩍 가리켰다.

“저 사람이 여기 붙잡혀 있었어. 납치 감금이지.”

“많이 맞았네. 사채?”

“아니. 청부폭력. 저 사람이 재개발사업 관계자인가 봐. 이놈들에게 끌려와서 서류를 고치라는 협박을 당했대.”

“사람을 저렇게 패서 서류를 조작할 정도면…. 이놈들 악질이네.”

“그렇지.”

“재개발 쪽이면 뒤 봐주는 놈이 있을 테고.”

“여럿 있어. 그런데 이놈들은 재개발 전문은 아니고, 일 시키면 아무거나 다 해주는 청부조직이야.”

“아무거나 다?”

“어. 살인까지 저질렀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놈들이더라.”

“뒤를 봐주는 놈이 힘이 센가 봐? 압력이 들어올 수도 있겠네.”

형사가 피식 웃었다.

“이번 건은 함부로 나서지 못할걸?”

“왜?”

“금고에서 장부가 나왔거든.”

“응?”

“우리가 왔더니 금고가 활짝 열려 있더라. 거기 장부가 딱 하나 놓여있는 거야. 마치 경찰이 꺼내보라는 듯이.”

“혹시 뇌물장부?”

“어. 펴보니까 이놈들 뒤를 봐주는 놈들에게 돈을 언제 얼마나 줬는지가 적혀있는 장부더라.”

안성준은 뇌물 장부가 있는데도 흐지부지 넘어간 사건을 몇 개나 안다.

“장부에 적혀있는 사람들이 인정할까?”

“힘 있는 놈은 당연히 인정 안 하겠지. 대신에 수사에 압력을 가하기도 어려울걸? 손을 쓰더라도 조용히, 표 안 나게 자기만 빠져나가게 쓰겠지.”

형사가 박춘석 패거리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놈들은 완전히 끝났어.”

안성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만약 살인까지 저질렀으면 교도소에서 아주 오래 살아야겠네.”

“그렇게 만들어야지. 팔다리가 다 부러진 놈들이니까, 병실에 처박아놓고 차근차근 물어보려고.”

“그러면 되겠네.”

“문제는 누가 이놈들을 이렇게 완벽하게 박살 냈느냐인데….”

관할 경찰서 형사팀장이 다가왔다.

“어이. 안성준이. 넌 이거 누구 짓인지 알지? 전에 이런 케이스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잖아.”

안성준이 현장을 다시 보았다. 범인들의 팔다리가 부러진 모습이 사진으로 본 다른 현장과 비슷했다.

‘이건 그 사람이 한 일이다. 확실해.’

안성준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아니요. 저도 모릅니다. 모르니까 개인 시간 빼서 와봤죠. 그리고 이 현장과 제가 보던 사건이 외형만 비슷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진짜 누가 이랬는지 몰라?”

안성준이 말을 돌렸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팀장님도 이놈들을 수사하느라 바쁘게 되면, 누가 납치된 피해자를 구출했는지까지는 따로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는 거고요.”

팀장이 안성준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네 반응을 보면, 다른 조직이 벌인 짓은 아닌가 봐?”

안성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팀장이 피식 웃었다.

“그거면 됐지 뭐. 알았다. 우리도 그 사람을 찾아는 볼 텐데, 너도 누군지 알게 되면 정보나 공유해.”

“누군지 봐서요.”

“아. 그렇지. 알면 불똥이 튀겠다 싶은 사람이면 공유하지 마라.”

***

옥탑방 옥상 상공에서 불똥이 튀었다.

옥상에 켜진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날벌레들이 안티 버그 포탑의 레이저에 맞아 계속 격추됐다. 그때마다 불빛이 반짝였다.

선우현은 옥상 한복판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 고기를 산 돈은 박춘석의 금고에서 나왔다.

“좋은 일 하고 돈도 벌고 고기도 먹고. 개꿀이네.”

김수선이 타박했다.

- 선장님. 그런 푼돈으로 우주왕복선은 언제 삽니까?

“그거야 천천히…. 어? 잠깐만. 내가 오늘 뭔가 할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 돈을 본격적으로 벌어들이려면 현지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아까 유력한 후보 최종훈에게 연락하기로 하셨죠.

“아…. 그렇지. 내가 까먹은 게 그거구나.

- 선장님. 우주왕복선이 갖고 싶습니다.

“지금 연락할게. 내일 당장 최종훈 씨를 만나야겠다.”

- 오늘은 왜 안 되는 걸까요?

“지금은 밤이 늦은 데다가, 삼겹살이 많이 남았잖아. 나는 아직 더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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