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춘석파
청부조직 두목 박춘석은 당황했다.
“어?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선우현이 사무실의 문을 잠근 후에 말했다.
“오늘 여기서 아무도 못 나간다고.”
박춘석이 부하에게 소리를 질렀다.
“밖에 누가 더 있는지 빨리 보라고 했잖아! 짭새 기동대라든지, 아니면 봉고차 몇 대라든지!”
창가에서 밖을 확인한 부하가 대답했다.
“아무도 없는데요? 여기 앞길은 텅 비어 있습니다.”
“그래? 혼자 왔단 말이지?”
선우현이 말했다.
“왜 이런 놈들은 꼭 혼자 왔냐고 물어볼까? 그게 뭐 중요하다고.”
- 그러게 말입니다.
박춘석이 나강인을 만만하게 보며 물었다.
“너 뭐냐?”
“선장.”
“새우잡이 배? 선원이 필요해? 그래서 찾아온 거냐?”
김 부장이 옆에서 얼른 말했다.
“제가 꼬리를 밟힌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박춘석이 짜증을 냈다.
“아니긴. 이 멍청한 새끼야. 너 쫓아온 거 맞아.”
김수선도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 지구연합이 막대한 예산과 최고의 기술로 만든 탐사대 지원위성을 새우잡이 노예선과 비교하다니. 선장님. 다 쓸어버리시죠.
선우현이 말했다.
“다 죽으면 목격자는 없지?”
- 물론입니다.
“그런데 누가 붙잡혀 있네?”
- 네? 누가요?
“몰라. 의자에 묶여 있어.”
- 왜 그런 놈들은 다들 인질을 잡고 있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그럼 다른 것도 비슷한가?”
선우현이 혹시나 해서 박춘석에게 물었다.
“야. 너 혹시 총 있냐?”
선우현은 이미 총을 가진 조직을 둘이나 잡아봤다. 두 번째로 잡은 놈이 가지고 있던 건 2연발 사제 권총이었지만, 그래도 총알은 잘나갔다.
박춘석은 움찔했다.
“뭐, 뭐냐? 너 총 있냐? 진짜 짭새….”
“난 공무원이 아니라서 총 없는데?”
박춘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이 새끼가 사람 놀라게 하고 있어!”
“넌 사람은 아닌 것 같다만.”
“이 새끼가 진짜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박춘석이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사무실에는 박춘석과 부하 일곱 명이 있었다. 부하 여섯이 선우현의 좌우로 천천히 이동했다. 덩치가 좋은 놈 하나는 어깨 근육을 풀며 선우현의 정면으로 다가갔다.
박춘석이 여유를 되찾고 물었다.
“누가 보냈냐?”
“짐작해봐라.”
짐작이 가는 곳이 있긴 했다.
“창수? 덕수? 설마 덕구파는 아니겠지?”
“피해자 쪽으로 생각해야지?”
두목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사이가 나쁜 경쟁 조직이나 평소 신경을 쓰던 조직을 꼽으라면 몇 개는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그동안 누가 돈만 주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청부폭력을 저질러 왔다. 피해자가 너무 많아서 누구 하나를 떠올리기 어려웠다.
‘나한테 복수하고 싶어 하는 놈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는 선우현의 정체를 추측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당한 놈이 복수하려고 너를 고용이라도 했다는 거냐?”
선우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거 맞다. 복수. 난 지금 복수하려는 거야.”
- 무슨 복수 말입니까? 선장님이 피해 보신 건 1도 없는데요?
“팬으로서 보복하는 거지.”
- 구하니의 노래를 자주 듣긴 하셨지만, 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시잖습니까?
“저놈은 그걸 모르잖아.”
- 아, 네.
선우현이 두목에게 질문을 던졌다.
“난 복수하러 온 거야. 몇 대 쥐어박으러 온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잘 생각해서 대답해라. 누가 시켰냐?”
박춘석이 인상을 썼다.
“뭘 말이냐?”
“하도 짚이는 데가 많아서 혼란스럽냐?”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가장 최근 것부터 시작해보자. 제일 최근에 한 일이 뭐야?”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부하들이 선우현을 포위했다. 잭나이프는 기본이고 쇠파이프를 든 놈도 둘이나 있었다.
박춘석은 포위가 끝난 걸 보고 씩 웃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우리 애들을 제끼고 나서 물어봐라.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으면 내가 대답을….”
선우현이 앞으로 툭 튀어나가며 발을 내질렀다. 앞차기가 정면에서 다가오던 덩치의 배를 깊게 파고들었다.
“케엑!”
덩치는 몸이 반으로 접히며 뒤로 날아갔다. 그런데 뒤쪽에는 박춘석이 있었다.
120kg짜리 덩치가 박춘석의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 뒤쪽 책상에 처박혔다. 책상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박춘석이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부하가 당하는 걸 보면서도 반응하지 못했다. 선우현의 발차기가 너무 빨랐다. 게다가 덩치가 한 방에 날아갈 정도로 힘도 강했다.
선우현이 발을 내리며 말했다.
“제낀다는 거 말이야. 이렇게 하면 되는 거냐?”
당황한 박춘석이 부하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빨리 쳐 이 새끼들아!”
이미 한쪽에 세 놈씩 양옆에 여섯 놈이 선우현을 포위했다. 그중 넷은 잭나이프를, 둘은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선우현을 공격하려면 조금 더 다가가야 한다.
선우현은 적이 접근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바로 옆에 책상이 있었다. 그가 책상을 강하게 걷어찼다.
얇은 철판과 합판으로 만든 사무용 책상이지만 그래도 무게가 상당히 나가고 크기도 컸다. 그런 게 날아오면 손에 쥔 작은 잭나이프 따위로는 막을 수 없다.
선두에 있던 놈은 날아오는 책상 상판에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그러고도 책상이 날아가는 걸 멈추지 못했다. 그 뒤에 있던 놈도 같이 휩쓸렸다.
제일 뒤에 있던 놈이 쇠파이프를 앞으로 밀어 날아오는 책상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한 방에 적 셋이 쓸려나갔다.
“으아악!”
그러는 사이에 선우현의 오른쪽에 있던 놈들이 기회를 잡았다. 제일 앞에 있는 놈은 한강공원 주차장에 갔다 온 김 부장이다.
김 부장이 선우현을 향해 칼을 내지르며 소리를 질렀다.
“죽어!”
책상이 날아가면 의자가 남는다. 이 사무실 의자는 접이식 철판 의자였다.
선우현이 그 의자를 잡고 옆으로 크게 휘둘렀다. 칼보다 의자가 빨랐다.
접이식 철판 의자가 김 부장의 몸통을 후려쳤다. 의자의 철판이 꺾이고 구겨졌다.
김 부장은 아예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오른팔은 철제 의자에 맞아 부러졌고 왼쪽 어깨는 벽에 충돌할 때 부러졌다.
김 부장의 뒤에는 잭나이프를 든 놈이 하나, 쇠파이프를 든 놈이 하나 남았다.
그 두 놈은 당황했다. 동료들이 너무 빠르게 당했다.
“어, 어떻게….”
두목 박춘석이 소리를 질렀다.
“빨리 쳐! 치라고!”
선우현이 남은 두 놈을 향해 움직였다.
잭나이프를 쥔 놈이 반사적으로 칼을 앞으로 뻗었다.
선우현이 적의 손을 쳐내며 앞으로 전진해 목을 콱 잡았다.
“켁!”
선우현이 적의 목을 잡은 채로 그 뒤에 있는 놈을 향해 걸어갔다. 적이 질질 끌려갔다.
마지막 놈은 겁을 먹고 쇠파이프를 되는대로 휘둘렀다.
선우현이 목을 잡은 놈을 앞으로 밀어 방패 대신 사용했다. 적의 쇠파이프가 목을 잡힌 놈의 어깨를 때렸다.
“끄악!”
선우현이 계속 전진했다. 쇠파이프를 든 놈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그놈의 뒤에는 책상이 있었다. 더 물러날 수가 없다.
목을 잡힌 놈은 이미 맛이 가서 눈이 허옇게 변했다.
선우현이 그놈을 벽 쪽으로 던져버리고 마지막 놈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잘 노리고 덤벼봐. 혹시 아냐? 내가 실수로 맞아줄지.”
적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순식간에 박살 난 동료 여섯이 보였다.
적이 쇠파이프를 손에서 놓으며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십쇼!”
“어. 그래.”
선우현이 적의 턱을 걷어찼다. 적의 고개가 덜컥 젖혀졌다.
“켁!”
그 한 방에 턱뼈가 쪼개진 적이 뒤로 자빠졌다.
책상과 함께 날아간 세 놈 중 하나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욕과 함께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이 새끼….”
다른 두 놈도 신음은 흘렸지만 많이 다쳐서 일어나지는 못했다.
선우현이 바로 앞에 있는 책상을 두 손으로 잡았다가 마치 원반을 던지듯이 옆으로 크게 회전시키며 뒤로 던졌다.
책상이 사무실을 가로지르며 날아가 조금 전에 처박힌 세 놈의 위에 떨어졌다.
“케엑!”
겨우 정신을 차린 놈이 다시 책상에 얻어맞고 기절했다. 밑에 깔려있던 두 놈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서 있는 놈은 두목밖에 없다.
선우현이 박춘석을 향해 돌아섰다.
“야. 다 제꼈으니까 이제 물어보면 대답해 주냐?”
박춘석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 어, 어떻게….”
“봤잖아. 어떻게 하는지.”
선우현이 박춘석을 향해 걸어갔다. 박춘석의 눈에는 사신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박춘석은 청부조직을 운영하며 폭력으로 돈을 벌었다. 그는 약자 앞에서는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약했다. 지금처럼 압도적으로 강한 폭력 앞에서는 형편없이 나약했다. 다리가 저절로 후들후들 떨렸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래서 대답은?”
박춘석은 선우현이 조금 전에 뭘 물어봤는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 가장 최근 것부터 시작해보자. 제일 최근에 한 일이 뭐야?
그는 그 와중에도 눈알을 굴리며 궁리했다.
‘너무 큰 걸 말하면 내가 위험해져.’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키면 선우현이 나중에 다시 찾아올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적당한 건수를 하나 털어놓았다.
“한 달쯤 전에 작게….”
선우현이 박춘석을 걷어찼다.
“케엑”
박춘석이 뒤로 날아가 책상을 부수며 처박혔다.
“살아 있어 봤자 민폐만 끼칠 놈들인데, 그냥 다 없애버릴까?”
- 그러려면 목격자가 없어야 합니다만?
“살아 있는 놈이 없으면 목격자도 없잖아.”
- 인질이 있다면서요.
“아차. 그렇지. 두목 저거 죽었으면 어떻게 하지?”
- 환장하겠네요. 왜 그러셨어요?
“거짓말을 하잖아. 그래서 툭 찼지. 저렇게 약할 줄 알았나.”
선우현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그리 작지 않았다.
박춘석은 그의 말 중에서 몇 마디를 알아들었다. 특히 살아 있는 놈이 없으면 목격자도 없다는 말이 귀에 박혔다.
박춘석은 겁에 질렸다. 하얗던 얼굴이 이제 새파랗게 변했다.
“제, 제발 살려….”
“응? 저거 안 죽었네?”
박춘석이 화급히 외쳤다.
“살아 있습니다! 오늘 일은 비밀로 할 테니까 제발 저만이라도 살려….”
선우현이 박춘석에게 다가가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너희가 한 달이나 공쳤다고? 그걸 믿으란 거냐? 너 날 바보 취급한 거지? 그거 되게 모욕적이다?”
- 바보에게 바보라고 욕하면 그건 진짜 욕이죠.
“수선아. 그거 내 이야기는 아니지?”
- 아닙니다. 아니고말고요.
“두 번이나 대답하는 게 묘하게 수상한데.”
선우현이 툴툴대며 박춘석을 노려보았다. 박춘석의 파래졌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바보 취급한 거 맞나 보네.”
“아, 아닙니다!”
“아니면 빨리 말해. 너희 조직이 가장 최근에 저지른 짓이 뭐야?”
박춘석은 더 머리를 굴릴 여유가 없었다. 그가 즉시 실토했다.
“오늘 교통사고 설계 한 건 하기로 했습니다!”
그건 선우현도 안다. 칼잡이와 기술자는 현장에서 잡았고, 그 두 놈을 고용한 이 사무실은 방금 쓸어버렸다.
그런데 아직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누가 시켰는데?”
“저, 저도 모릅니다.”
“왜 몰라?”
“얼굴을 못 보고 돈을 받아서….”
선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고객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겠다는 거구나. 이놈 보기보다 강단이 있네.”
박춘석은 그 말이 칭찬인 줄 알고 얼른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넌 무덤에 들어가야겠다.”
“예?”
“무덤까지 가져간다며. 내가 지금 보내줄게.”
박춘석의 입이 즉시 열렸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그 차가 주차장을 벗어나면, 도로를 달리다가 바퀴가 돌아가 사고가 나게 하려고 했습니다!”
“역시 교통사고가 목적이었어. 차는 뒤집히고 탑승자는 다 죽고. 그치?”
“예? 아, 아닙니다!”
“왜 아니야?”
“김 부장이 따라가다가, 사고가 적당히 나면 그 모습을 촬영해서 의뢰인에게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어? 그래?”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닌데?”
선우현은 누가 시켰는지를 물어봤었다.
“이메일 주소가 있습니다! 영상을 보내줄 이메일 주소요!”
“아…. 그 이메일을 추적해서 시킨 놈을 찾아라?”
“그렇습니다!”
선우현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수선아. 우리 컴퓨터로 이메일을 해킹할 수 있냐?”
김수선이 대답했다.
- 여기선 인터넷조차 안 되는데요? 해킹은 뭐 맨땅에 헤딩해서 하나요? 아. 여기는 맨땅도 없지.
“어…. 내가 요즘 인터넷을 자주 했더니 착각했다.”
- 부럽네요. 저도 하고 싶은데. 인터넷.
선우현이 박춘석을 향해 인상을 썼다.
“너 지금 나 놀리냐? 추적이 불가능한 이메일일 게 뻔하잖아.”
박춘석이 다급히 외쳤다.
“잔금! 잔금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추적하시면 됩니다!”
“잔금? 그건 언제 어디서 받기로 했는데?”
“영상을 보내주면 잔금은 의뢰인이 퀵으로 보내주기로…. 케엑!”
- 무슨 비명인가요?
“또 영양가 없는 소리만 해서 툭 찼어.”
- 살려는 두셨죠?
“어. 살아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