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미행
오늘 한강공원 공연에는 구하니와 걸그룹 은하소녀, 보이그룹과 남자 가수도 한 명이 나온다.
은하소녀에게 구하니는 잘나가는 선배이면서 선망의 대상이자 쫓아가고 싶은 목표다. 멤버 중에는 구하니의 팬도 있다.
그들은 대기실로 사용하는 대형 텐트에서 공연 시간을 기다리면서 잡담했다. 그러다 무술 이야기가 나왔다.
은하소녀 멤버 오민하가 자랑했다.
“제가 본 그분은 진짜 완전 무술 고수예요.”
구하니도 그런 사람을 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더 강할걸? 혼자서 서너 명쯤은 가볍게 이긴다던데.”
“어머. 제가 본 오빠는 네다섯 명도 이기는데.”
“내가 아는 사람은 칼을 든 놈들도 때려잡는다더라.”
오민하가 구하니의 말에서 빈틈을 찾아냈다.
“근데요. 선배님이 싸우는 걸 직접 보신 건 아닌가 봐요?”
“응? 그야….”
구하니는 선우현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다. 친한 동생인 방송 작가 안유정이 하도 많이 이야기해서 본 것처럼 느껴지긴 했다.
“본 건 아닌데….”
오민하가 씩 웃었다.
“저는 봤는데.”
“응?”
“제가 사건에 휘말려서 로드 매니저랑 같이 납치된 적 있잖아요. 그때 그 오빠가 구해주셨거든요.”
구하니도 그 사건 뉴스를 봤다. 가수가 피해자인 사건이라 기억에 확실히 남았다.
“아…. 그 사건이 있었지. 너 이제 괜찮아?”
오민하가 활짝 웃었다.
“그럼요. 그 오빠가 나쁜 놈들을 일방적으로 때려잡는 걸 보니까, 너무 통쾌했거든요. 그때부터는 그 나쁜 놈들이 되게 하찮게 느껴져서 하나도 겁 안 나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잘 아는 사이인가 봐?”
“네?”
“오빠라며. 일부러 너를 구해주러 온 거야?”
“웅…. 그건 아닌데….”
구하니는 그런 일을 겪은 오민하를 굳이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
‘강한 오빠 덕분에 마음이 편해진 거라니까.’
“네 그 오빠가 더 센 거로 하자.”
“네?”
“내가 진 거로 할게.”
오민하가 입술을 삐죽였다.
“으…. 이겼는데 이긴 거 같지가 않아요.”
구하니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그녀는 아직 매니저를 구하지 못해 직접 일을 처리한다. 그래서 요즘은 모르는 번호라도 전화는 받는다.
“여보세요?”
- 3887 차주 되시죠?
구하니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작위로 거는 스팸이라면 전화가 올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전화를 건 사람은 그녀의 차 번호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녀는 차에 전화번호를 남겨놓지 않았다. 연예인이 차에 본인 휴대폰 번호를 남겨두면 팬에게 대놓고 공개하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
고참 형사가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3887 차주 되시죠?”
구하니가 잠깐 조용해졌다가 물었다.
- 네. 맞아요. 그런데 제 번호를 어떻게 아셨죠? 이런 식으로 나오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제가 경찰입니다.”
- 네?
구하니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 아니, 경찰이 왜 제 차 번호를….
형사가 현재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런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가 후배 형사에게 말했다.
“차주가 이 근처에 있대. 곧 온단다. 그런데 목소리가 되게 익숙하네. 누구지?”
젊은 후배 형사가 말했다.
“차적을 조회해보니까 차주 이름이 구하니인데요? 가수 구하니는 아니겠죠? 흐흐흐.”
고참 형사가 손뼉을 쳤다.
“아! 구하니 씨 목소리였구나!”
젊은 형사는 당황했다.
“네? 아니, 왜 진짜 구하니 씨예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이놈들이 알겠지.”
젊은 형사가 기절한 두 놈을 보며 말했다.
“그러면 이놈들의 청부 목표가 구하니….”
최종훈의 비서 김찬혁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이 청부업자 새끼들이 구하니 씨를 노린 겁니까? 이 나쁜 새끼들! 너희들은 사형이다!”
“아니, 저기, 선생님. 진정하시고요.”
“이게 어떻게 진정할 일입니까!”
최종훈이 옆에서 설명했다.
“우리 김 비서가 구하니 씨 팬입니다. 얼마나 팬인지 운전할 때 구하니 씨 노래만 틀다가 혼난 적도 있습니다.”
“아니, 그래도 지금 상황이….”
최종훈은 현재 상황을 선우현 없이 수습해야 한다. 그러려면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놈들이 위험한 범죄자여야 한다.
최종훈이 일부러 대답을 요구했다.
“이제 이놈들이 청부업자라는 제 말을 믿는 거지요?”
“음…. 그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자세한 건 조사해봐야 알겠지만요.”
“청부업자가 확실하다니까요. 제가 다 봤습니다.”
형사가 물었다.
“그런데 이놈들을 잡은 분은 누구입니까? 그분 증언이 필요한데요.”
최종훈이 잠시 생각했다.
‘구하니가 피해자라는 게 알려지면 이 사건은 뉴스에 나겠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경찰이 알면 언젠가는 개인정보가 유출될 거야. 일을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난 기적의 약을 더 구하기 어려워질 테고.’
결론은 간단히 났다.
“모릅니다.”
“네?”
최종훈이 되는대로 둘러댔다.
“지나가던 사람이 청부업자들만 잡아놓고 조용히 떠난 겁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더군요.”
“진짜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 뉴스에 나가지 않게 잘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김 비서?”
김찬혁이 형사에게 말했다.
“이 시대의 의인은 당연히 우리가 보호해야죠.”
“아니, 그래도 이 사건이….”
“기사화되지 않는 데 필요한 조치는 우리 회사에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형사님들만 그분에 대한 건 비밀로 해주시면 됩니다.”
형사는 어이가 없었다.
“비밀로 하고 말고 할 게 있습니까? 우리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릅니다만?”
“말이 통하시네요. 역시 민중의 지팡이는 입이 무겁군요! 하하하!”
“그러니까 누구인지도 모른다고요.”
***
선우현은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달렸다.
김수선이 길 안내를 맡았다.
- 200m 전방에서 좌회전하십시오.
“그놈은 아직도 도망가고 있냐?”
- 넓은 도로를 벗어나 이면도로로 들어간 걸 보면 목적지가 멀지 않았나 봅니다.
“거리는?”
- 선장님과 적 차량 사이의 거리는 500m 정도입니다.
선우현은 위성 궤도에 있는 김수선의 지원을 받아 미행하는 중이다. 그러니 추적 대상자와의 거리는 더 멀어도 상관없다. 시야 밖에서 추적 중이라 당연히 상대가 미행을 눈치챌 수도 없다.
“배고픈데 식당에 들러서 밥이라도 먹고 계속 미행할까?”
- 시끄럽습니다.
***
구하니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외투도 입은 상태로 야외 주차장에 나타났다.
범인들은 이미 구급차에 실려 갔다.
그녀는 차 바로 앞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형사를 만났다. 최종훈과 비서 김찬혁도 같이 있었다.
그녀가 마스크를 벗자마자 김찬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헉! 진짜 구하니다! 팬입니다!”
“고맙습니다.”
“구하니 씨가 그 지역 행사에서 노래하시는 영상을 진짜 여러 번 봤습니다. 정말 끝내주게 좋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무리하셨나 봅니다. 한동안 쉬니까 예전 목소리가 돌아온 걸 보면요.”
구하니는 그래서 목소리가 회복된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무리한 스케줄로 그녀의 목 상태가 안 좋아지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목소리가 맛이 간 건 일 년 전 사고 때문이었다.
목소리가 최고의 상태로 돌아온 건 한 달 반 전에 다쳤을 때 선우현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다.
그녀는 선우현의 얼굴을 알고 같이 밥도 먹고 오토바이도 같이 탔지만, 연락처가 없다.
‘내가 너무 멍청했어. 그때 번호를 땄어야 했는데.’
그녀가 선우현 생각을 잠깐 하다가 형사를 보았다.
형사가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사건을 듣다 보니 조금 오싹해졌다.
“그러니까 누가 또 저를 노렸다는 건가요? 그것도 또 차 사고로 위장해서요?”
형사가 급히 물었다.
“또라니요?”
“한 달 반 전에는 도로에서 차를 몰다가 습격을 당했어요.”
“예?”
“신고는 했으니까 자세한 건 확인해보시면 아실 거예요.”
형사가 심각해졌다.
“그러면 저놈들은 진짜 청부업자라는 말이군요. 이거 사건이 커지겠습니다.”
최종훈은 구하니가 전에도 습격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가만. 이렇게 되면 묻어갈 수 있겠는데?’
형사가 구하니를 보며 물었다.
“혹시 누구 짓인지 의심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저번 사건을 맡은 형사님들이 벌써 해결하셨겠죠.”
“아. 하긴….”
이번에는 구하니가 물었다.
“그런데 범인들을 잡은 분은 누구신가요? 제가 사례라도 하고 싶은데요.”
“글쎄요. 저분이 목격자이신데, 저희도 얼굴은 못 봤습니다.”
구하니가 최종훈을 돌아보았다. 최종훈은 구하니의 팬은 아니지만, 비서 때문에 차에서 노래를 많이 들었다.
“반갑습니다. 최종훈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혹시 그분을….”
최종훈이 얼른 제안부터 했다.
“구하니 씨도 이런 일로 뉴스에 나는 건 바라지 않지요? 조용히 처리했으면 합니다.”
“아. 그럴 수 있으면 저야 좋지요.”
***
안성준 형사가 모니터에 띄워놓은 자료들을 보고 있었다. 동료 형사가 옆에서 물었다.
“그건 뭐야?”
“산속에 있는 식당 습격 사건. 여기서 방송국 예능팀 두 명이 구출됐어. 그리고 이건 연예인 오민하 납치 및 구출 사건. 역시 무사히 구출됐지.”
“아.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그게 왜?”
“공통점이 보여. 그래서 내 관심을 끌었지.”
“어떤?”
“범인들은 모두 중상. 누군지 무술 실력이 정말 대단해. 국가대표나 종합격투기 대회 챔피언급이야.”
“대단하긴 하네. 그런데 정보는 그게 다야?”
“두 사건 다 목격자들은 구출해준 사람을 봤어.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
“많이 고마웠나 보네. 붙잡힌 놈들은?”
“그놈들은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몇 군데씩 부러질 정도로 맞아서 그런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어떻게 생겼는지 진술한 놈은 많은데 모습이 다 다르거든.”
“어렵네.”
“그래도 공통점 몇 개는 뽑았어. 얼굴은 몰라도 체형은 짐작이 가. 그 체형이 일치하더라.”
“체형만 가지고 사람을 어떻게 찾냐?”
“그치. 못 찾지.”
동료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안성준은 모니터 속 자료를 보았다.
범인의 팔다리가 압도적인 힘에 당해 꺾여 있었다. 그런 사진이 많았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
박춘석은 범죄 청부조직의 두목이다.
그는 돈만 많이 주면 뭐든 다 한다. 의뢰가 복잡해 직접 처리할 능력이 없으면 범죄 기술자를 고용해서라도 한다.
한강공원 주차장에서 돌아온 부하가 보고했다.
“실패했습니다.”
박춘석이 얼굴을 구겼다.
“야. 김 부장. 그게 얼마짜리 의뢰인 줄 알아? 자세히 설명해 봐!”
“이번에 섭외해서 보낸 기술자랑 칼잡이 말입니다.”
자동차 사고 기술자는 구하니의 차에 수작을 부리기 위해 고용했다. 그 일은 기술자 하나만 있어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바닥 사람들은 돈만 먹고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박춘석은 칼잡이를 같이 고용했다. 칼잡이는 그 기술자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고, 망도 보고, 문제가 생겼을 때 힘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맡겼다.
“칼잡이가 망을 제대로 안 보다가, 현장을 들켰습니다.”
“누구한테? 짭새? 경호원?”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이 새끼가! 그놈들이 제대로 하는지 보라고 널 보낸 거잖아!”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목격자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거 같길래, 조용히 빠져나오느라 그놈 정체를 못….”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선우현이 사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와. 쥐새끼들이다. 많이도 모여 있네.”
안에 있던 조직원들이 선우현을 휙 돌아보았다.
김 부장이 선우현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가 그 새끼입니다!”
“무슨 새끼?”
“오늘 우리 일을 망친 그 새끼입니다!”
두목 박춘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 부장 너 이 새끼. 꼬리를 밟힌 거냐?”
“예? 그, 그게….”
박춘석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누가 나가서 바깥 확인해! 창밖도 봐! 저 새끼는 도망 못 치게 붙잡아! 빨리 움직여 이 새끼들아!”
선우현이 문을 잠그며 말했다.
“뭘 그렇게 서두르냐? 어차피 오늘 여기서 아무도 못 나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