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현지 협력자 II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타박했다.
- 선장님? 말을 잘해야 한다니까요?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은 당황했다.
“폭력 전과라니요?”
선우현이 물었다.
“어? 혹시 있습니까?”
“아니요. 저한테 폭력 전과가 왜 있겠습니까?”
“그럼 다른 전과는요?”
“운전하다가 딱지는 몇 번 떼 봤습니다만….”
“음주는 아니시고?”
“당연히 아닙니다.”
선우현이 활짝 웃었다.
“잘됐군요.”
김수선의 목소리도 밝아졌다.
- 이제 이번 일을 대신 뒤집어써 달라고 하십시오. 목숨도 구해줬는데 한 번쯤은 들어줄 겁니다.
선우현이 말했다.
“지금 문제가 좀 생겼거든요.”
최종훈이 바닥에 쓰러진 놈들을 보며 물었다.
“싸움이 난 건 봤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선우현이 구하니의 차를 가리켰다.
“이놈들이 차 하부에 수작을 부리더군요. 주차장에서는 괜찮다가 도로를 달릴 때 사고가 나게 하려는 겁니다.”
“예? 사고라니요? 어떤….”
사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선우현도 모른다. 교통사고를 내는 게 목적이었다는 건 아는데, 어떤 규모로 나게 하려고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걸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선우현이 대충 대답했다.
“차량 전복으로 탑승자를 다 죽이려고 했을 겁니다.”
팔이 부러진 망꾼은 쓰러지면서 머리를 차에 부딪혀 기절했다. 바퀴 안쪽을 조작하던 기술자는 도망치다가 다리가 부러지면서 엎어지다가 기절했다.
지금 선우현이 뭐라고 말하든, 그리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반박할 놈은 없다.
최종훈은 깜짝 놀랐다.
“헉! 이 새끼들 진짜 나쁜 놈들이군요!”
“그런데 이놈들을 잡다 보니, 실수로 한 놈은 팔을 부러뜨렸네요? 다른 놈은 다리가 부러졌고요.”
김수선이 독촉했다.
- 저번에 최종훈의 목숨도 구해주고 다리도 낫게 해줬으니까, 대신에 이번 일을 덮어써 달라고 하십시오. 표정을 보니까 말만 잘하면 들어줄 거 같습니다.
최종훈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잘 해결하길 원하시는군요!”
“그렇죠. 그러니까 제일 확실한 해결 방법은….”
최종훈이 두 놈을 보았다. 두 놈 다 기절해 있었다.
최종훈이 물었다.
“혹시 저 두 놈이 많이 다쳤습니까? 그러니까 혹시 생명이….”
“둘 다 그냥 팔다리 하나씩만 부러졌습니다. 저 정도로는 안 죽습니다.”
“역시 안 죽었군요!”
최종훈이 큰소리쳤다.
“그러면 제가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선우현이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어? 깔끔하게요? 땅을 혼자 깊게 파려면 힘드실 텐데?”
김수선도 감탄했다.
- 최종훈이 보기보다 터프합니다.
최종훈은 비서 김찬혁에게 전화를 하느라 뒷말은 듣지 못했다.
김찬혁이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네. 사장님.
“찬혁아. 너 일 하나 해야겠다.”
- 네? 사장님. 오늘은 쉬라면서요? 저 아직 자는 중입니다.
“법무팀에 연락해서 사고 하나 처리해.”
갑자기 김찬혁의 목소리가 커졌다.
- 헉! 사장님 또 어디 다치셨습니까!
“아니. 나는 아니고, 내가 아는 분이.”
- 아…. 사장님은 괜찮으시구나.
김찬혁이 긴장 풀린 목소리로 조언했다.
- 사장님. 오늘 토요일인 데다가, 회사와 관계된 일이 아닌데 법무팀을 동원하면 나중에 혹시 골치 아픈 일이….
“필요한 비용은 회사가 아니라 내가 댈 거야. 넌 쉬어야 하니까 다른 사람을 보내. 보너스 준다고 하면 비서실에도 할 사람이 있….”
김찬혁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조금 전보다 더 컸다.
- 제가!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싹 다 처리하겠습니다!
“넌 오늘 쉰다며?”
- 보너스 주신다면서요?
“월급도 많은 놈이…. 알았다. 보너스 줄 테니까 와서 처리해.”
- 옙! 어디로 갈까요?
“내 집 앞 한강공원.”
-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김찬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런데 사장님. 무슨 사건인가요? 혹시 심각한 사건인가요?
최종훈이 방금 선우현에게 들은 것과 직접 본 것을 간단히 설명했다.
김찬혁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제안했다.
- 사장님. 청부업자에게 암살당할 뻔한 차 주인과 연락하면 일 처리가 더 쉬울 겁니다.
“차에 전화번호가 없는데?”
- 경찰을 통하면 연락할 수 있습니다. 아! 전화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이거 꼭 제가 하겠습니다!
최종훈은 통화를 마친 후에 선우현을 보며 씩 웃었다.
“차주와 잘 이야기해서 이놈들을 처넣겠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쁜 놈들과 싸우신 거잖습니까? 이놈들이 어디 좀 부러졌다고 해도 다 수습할 수 있습니다. 우리 김 비서가 유능합니다.”
선우현은 감탄했다.
“이렇게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 있군요.”
김수선도 동의했다.
- 그러게 말입니다. 최종훈이 생각보다 일을 잘합니다.
“좀 맛이 간 줄 알았더니 이런 면이 있네.”
최종훈이 선우현을 보며 말했다.
“사실은, 제가 선생님께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긴 하겠네요.”
“예. 제 다리를 낫게 한 약 말입니다. 그 약을 파실 생각은 없는지….”
“물론 없습니다.”
최종훈은 당황했다.
“네?”
“만들기 굉장히 어려운 약입니다. 굉장히 희귀한 원료가 사용되거든요.”
새 레드 포션의 원료는 위성 궤도에서 오천 년동안 보관하면서 숙성되거나 변질된 레드 포션이다. 그 원료는 지원위성에는 많지만 지상에는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최종훈이 물었다.
“혹시 그 원료만 있으면….”
“원료가 있다 해도 제조하는 데 오래 걸립니다.”
김수선은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고 아껴서 포션을 재처리한다. 그러려면 처리 시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
“그래도 대형 제약회사에서 연구하면….”
“대량생산을 기대하신 거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거의 불가능….”
“아예 불가능합니다.”
“아….”
최종훈은 그 말을 믿었다.
‘기적의 약을 개발한 사람의 말이니까 확실하겠지.’
그래서 고마웠다.
“그런 귀한 약을 한 달 전 그날 저한테 쓰셨군요.”
“사람은 살려야 했으니까요.”
“정말 훌륭하십니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수선아. 최 사장님이 좀 맛이 간 것 같아서 현지 협력자 후보에서 제외했는데, 오늘 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겠다는 걸 보니까 생각이 좀 바뀐다.”
- 저도 그렇습니다. 어차피 다른 현지 협력자 후보는 아직도 찾지 못하셨잖습니까?
“찾아봤는데 이만한 사람이 없더라고.”
탐사대 지원위성에 물자를 공급하려면 그걸 우주로 보낼 수단이 있어야 한다.
“자재를 대량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보내려면 우주왕복선이 필요합니다.”
화물의 정체를 숨기려면 왕복선을 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우주왕복선 회사를 손에 넣어야 한다.
그런데 우주왕복선 회사는 고사하고 그냥 인공위성용 로켓만 한 번 쏘는 데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선우현이 김수선에게 물자를 보내려면 그 돈을 벌어야 한다. 평범한 일을 해서는 단기간에 그런 거액을 벌 수 없다.
김수선이 제안했다.
- 최종훈을 현지 협조자로 삼아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역시 이 사람이 최선이겠지?”
- 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
선우현이 최종훈을 보며 말했다.
“그 약은 대량생산이 안 되지만, 다른 좋은 게 있는데 말이죠.”
최종훈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다른 좋은 약이 있습니까?”
“약은 아닙니다.”
“예? 그럼 어떤….”
김수선이 말했다.
- 탐사대가 현장에서 쓰려고 준비한 기술 중에, 이 지구에서 팔아먹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을 겁니다.
지구연합은 이쪽 지구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정보부터 수집하려고 탐사대 지원위성을 먼저 보냈다.
그런데 만약 그 지원위성이 이쪽 지구의 지적생명체의 손에 넘어간다면, 컴퓨터에 담긴 정보도 통째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임무와 상관없는 고급 과학기술이론은 위성의 컴퓨터에 저장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지원위성의 컴퓨터에는 탐사대가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기술에 관한 정보만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기술도 수준이 낮지는 않았다.
“탐사대를 위해 엄선한 기술인데 당연히 팔 수 있는 게 있겠지.”
JHC 테크는 기술 라이센스 판매에 특화된 기업이다. 그래서 최종훈이 현지 협력자 후보에 올랐다.
선우현이 말했다.
“최 사장님이 당첨되셨습니다.”
“네? 당첨이라니요?”
“이건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최 사장님에게만 제안하는 겁니다.”
김수선이 말렸다.
- 선장님. 너무 사기꾼처럼 말하고 계십니다.
“어? 좀 그런가?”
- 많이 그렇습니다.
최종훈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뭘….”
“옛날에는 예술적인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걸 참고해서 선정했습니다.”
과거의 현지 협력자는 다양한 조건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21세기니까.”
이제 이쪽 지구의 과학 문명은 탐사대의 기술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기술 라이센스를….”
김수선이 갑자기 보고했다.
- 선장님. 잠시만요.
“수선아. 나 지금 이야기 잘하고 있잖아.”
- 주차장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는 차를 발견했습니다.
“응?”
- 차량의 위치나 반응을 고려하면, 방금 잡은 놈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놈은 일단 네가 추적해도 되잖아.”
- 경찰차도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경찰이 왜 와?”
- 주차장에 있던 사람이 전화를 걸던데요. 신고한 거겠죠.
“아. 저 사람이구나.”
- 경찰은 최종훈에게 맡기고 일단 거길 뜨시죠.
“그럼 난 도망치는 놈이나 잡고 와야겠다.”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말했다.
“경찰이 오고 있을 테니까 저는 잠깐 어디 갔다 오겠습니다. 이따가 다시 하시죠.”
“알겠습니다! 저기, 그런데 연락처를….”
최종훈의 명함은 선우현이 가지고 있다. 선우현이 말했다.
“여기 상황이 잘 해결되는지 보고 최 사장님께 전화하겠습니다.”
최종훈은 그 말에 담긴 조건을 깨달았다.
“여기 일은 제가 우리 김 비서와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
비서 김찬혁의 집은 그 한강공원에서 멀지 않았다.
최종훈은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고 김찬혁은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 거리에 있는 평범한 오피스텔에 산다.
처음부터 김찬혁이 그렇게 가깝게 산 건 아니다. 오히려 전에는 거리가 제법 먼 곳에 살았다.
김찬혁이 이 근처로 이사 온 건 최종훈이 일 년 전에 사고를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게 된 후다.
오늘 선우현을 공격한 놈들은 팔다리가 부러지면서 비명을 지르다 기절했다. 그걸 본 사람이 112에 신고했다.
김찬혁은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왔지만, 형사들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 최종훈을 만났다.
최종훈은 형사들에게 당시 상황을 굉장히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놈들이 저 차의 바퀴에 수작을 부렸다는 겁니다. 고속도로에서 바퀴가 빠져서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켜 탑승자를 모두 죽이려던 거죠.”
형사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이놈들이 살인청부업자라는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형사님이 보기에도 청부업자처럼 보이죠?”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데 단순 목격자시라면서요.”
“예. 저는 목격만 했….”
“그런데 당시 상황을 이상할 정도로 잘 아시네요? 마치 바로 앞에서 본 것처럼….”
“어…. 저도 도와주려고 했거든요!”
“예?”
“제가 끼어들 틈도 없이 끝났지만요.”
“이상한데….”
김찬혁이 쓱 끼어들었다. 그는 형사들에게 명함을 돌리며 말했다.
“JHC 테크 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 이분은 저희 사장님이십니다.”
“아! JHC 테크.”
“우리 법무팀에서도 곧 올 겁니다.”
“예? 단순 목격자라면서 법무팀에서 왜….”
김찬혁이 자연스럽게 둘러댔다.
“남을 돕기 위해 싸운 그분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갈까 봐, 우리 회사 차원에서 법률 지원을 하려는 거죠.”
“아, 뭐. 저 사람들이 청부업자가 맞는다면 좋은 일을 하시는 거네요.”
“우리 회사가 원래 사회적 기여를 많이 합니다. 하하하.”
경찰이 단서를 달았다.
“청부업자가 아니라면 팔다리를 부러뜨린 그 사람은 처벌을 피하기 어렵겠지만요. 구급차는 왜 안 오는 거야?”
“청부업자가 확실하다니까요. 그러니까….”
김찬혁이 최종훈을 돌아보았다.
“사장님. 맞지요?”
“어…. 맞겠지?”
다른 형사가 다가왔다.
“차적 조회됐습니다.”
그 차는 구하니의 차다.
“차 주인 전화번호 줘봐. 내가 연락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