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24화 (24/281)

24. 현지 협력자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말했다.

- 공연 직관은 VR 장비로 보는 것과 비슷하잖습니까?

“VR 장비가 남아 있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이 지구에 TV가 개발되기 한참 전에 없어졌잖아.”

그 장비는 지금은 없다. TV 전파를 지원위성에서 처음 수신했을 때도 없었다.

오천 년이나 된 선체를 유지하려면 외벽만 수리해야 하는 게 아니다. 내부의 중요 장비도 유지보수를 해줘야 기능이 유지된다.

더 중요한 장비를 고쳐야 하는데 자재가 부족하면, 덜 중요한 장비를 하나씩 분해해서 쓰는 수밖에 없다.

VR 장비는 우선순위가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제일 높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은 분해돼 선체 여기저기에 수리용 부품으로 흩어져 있다.

“엠투도 오래전에 사라졌고.”

M2는 옛날에 지상에 투입한 정찰모듈이다. 정찰모듈이 있으면 건물 내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M2와의 통신 연결은 이미 오래전에 끊겼다.

팔찌형 통신기는 슬립 모드에 들어간 후에도 현재 위치를 아주 가끔 발신했다. 그래서 산속 식당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M2는 그런 신호조차 없다.

- 엠투는 이미 오래전에 파괴됐습니다.

“어쨌든 공연은 직관이 최고야. VR보다 직관이 훨씬 더 좋아. 이건 가상이 아니라 리얼이거든.”

선우현이 손에 든 막대기를 흔들었다.

“핫바도 맛있다.”

- 그렇게 매일매일 놀고먹으면서 예산을 태우고 있다는 건 아시죠?

“아직 돈 남았어.”

- JHC 테크 사장을 구해주고 받은 천만 원이 이제 백만 원도 안 남았습니다만?

“옥상에 방어 포탑 만드는 데 썼잖아.”

- 벌레나 잘 잡는 그걸 방어 포탑이라고 불러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금괴는 꽤 남아 있어.”

- 금괴는 깎거나 녹여서 돌 반지를 만들어야 팔 수 있는데, 반지는 만들고 계시는지?

“어…. 그게 너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더라고.”

- 우주왕복선이 보고 싶습니다.

“수선아. 오천 년 만에 처음 내려온 지상인데 너무 서두르지 마.”

- 이러려고 내려보낸 게 아닌데 말이죠.

선우현이 핫바를 먹으며 공원을 돌아다녔다. 포스터가 한 장 보였다. 그가 말을 돌리려고 포스터 이야기를 꺼냈다.

“이 공원에 곧 두 개의 탑을 만들 거라네?”

포스터에는 철탑 두 개와 그 사이를 연결하는 흔들다리 그림이 있었다. 그림 속에서 흔들다리 위를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두 개의 탑이라고 하니까 옛날 생각난다. 작전 지역 중에도 두 개의 탑이 있는 곳이 있었는데.”

- 그 이야기 이미 많이 하셨습니다.

“많이 들었으니까 한 번 더 들어도 되겠네. 그때 내가….”

김수선이 선우현의 말을 끊었다.

- 선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뭔데? 선체에 또 구멍이 났냐?”

- 지금 계신 곳 근처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했습니다.

김수선은 지구 주변의 인공위성 궤도에서 선우현의 주변을 보고 있다.

“위치는?”

- 7시 방향 주차장입니다.

선우현이 주차장을 돌아보았다.

“나를 노리나?”

- 선장님이 누군지 알고 노린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상황이라고 봐야죠. 정체가 노출됐다는 건데요.

“그건 아니구나.”

- 당연히 아닙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생겼다고 한 거야?”

- 지난번에 봤던 구하니의 차량에 문제가 생길 예정입니다.

“아. 하니 씨의 차…. 응? 그 차가 여기 있어? 그거 지난번에 봤을 때는 꽤 망가졌었는데?”

- 다 고쳤나 봅니다.

“그래? 그러면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우리가 하니 씨 노래를 좋아하잖아.”

- 그건 그렇습니다.

선우현이 주차장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며 지시했다.

“상황 설명해.”

***

마스크를 쓴 남자가 구하니의 차 주변에서 망을 보았다.

그 차 아래쪽에는 다른 놈이 누워 있었다. 그 남자는 주차된 차의 바퀴 안쪽에 손을 집어넣고 끙끙댔다.

망을 보던 남자가 물었다.

“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냥 대충 빵꾸라도 내면 되는 거 아냐?”

밑에 누워 있는 놈이 설명했다.

“이 차는 공기압 센서가 있어서 빵꾸를 내면 바로 걸립니다. 운전자가 눈치 못 채고 다니다가, 나중에 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사고가 나게 해야죠.”

“그런 사고가 나게 손보는 거 쉬운가?”

누워 있는 남자가 자랑했다.

“오늘이 아니라 며칠 뒤에 사고 나게 하는 게 어렵죠. 그러니까 이게 진짜 기술 아니겠습니까?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전문기술이라 배우기 어렵다니까요.”

“하긴. 내가 배울 필요는 없지.”

망을 보던 남자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야.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기술자는 망꾼은 쳐다도 안 보고 말했다.

“지금 하고 있는데요?”

“이거 말고 다음 일. 내가 방금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

기술자가 작업을 멈추고 바닥에 누워서 망꾼을 보며 물었다.

“돈 되는 아이디어인가요?”

“당연하지.”

망꾼이 입맛을 다시며 설명했다.

“자동차 보험 사기를 크게 치는 거야.”

“에이. 자해 공갈을 크다고 할 것까지야….”

“이건 공갈이 아니야. 고속도로에서 차 사고가 나서 운전자가 죽어야 하니까.”

“예?”

“그래야 생명보험금이 많이 나오잖아. 한 십억 정도는 한 방에 땡길 수 있어.”

기술자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다 좋은데요. 누가 죽는데요? 난 죽기 싫은데요?”

“우리가 왜 죽어? 대신 죽어줄 놈은 이제부터 찾아야….”

선우현이 두 사람의 대화에 쓱 끼어들었다.

“난 어때?”

망꾼이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네가…. 으헉! 누구냐!”

망꾼은 보험 사기 계획을 떠드느라 망을 보는 걸 조금 소홀히 했다. 그러는 동안 선우현은 망꾼의 뒤쪽에서 느긋하게 접근했다.

선우현이 차를 슬쩍 가리켰다.

“나? 그 차 주인하고 아는 사람.”

망꾼이 눈알을 굴렸다.

‘젠장. 방심했다.’

현장에서 걸렸다고 해서 순순히 인정할 놈이면 이런 짓을 하지도 않았다.

망꾼이 얼른 말했다.

“우리는 그냥 여기에 서 있던 것뿐이다.”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기술자의 다리를 툭툭 찼다. 기술자가 얼른 차 옆에서 일어나며 손을 털었다.

“휴우. 휴대폰이 차 밑에 떨어져서 꺼내느라 고생했네. 형. 찾았어. 이제 가자.”

“그래. 가자.”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갈 때 가더라도 손모가지 정도는 놓고 가야지?”

- 선장님. 21세기 한국에서는 그러는 거 아닙니다.

“손이 죄를 지었으니까 손을 자르면 되는 거잖아.”

- 아닙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많이 했는데.”

- 그건 진짜 옛날 방식이네요. 그 근처 차량에 아마 블랙박스가 있을 겁니다.

“아. 블랙박스. 그게 문제구나. 여기선 그러면 안 되겠네.”

- 선장님? ‘여기선’이라니요?

망꾼이 표정을 굳혔다. 그는 선우현이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인상을 구겼다.

“너. 그냥 못 본 척해라.”

그가 손을 슬쩍 꺼냈다. 손에는 잭나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손잡이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탁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괜히 끼어들면 너 여기서 죽는다.”

선우현이 말했다.

“네가 나를 죽이려 했으니까, 나도 너를….”

김수선이 재빨리 말렸다.

- 죽이지는 마세요! 거기는 사방이 노출된 주차장입니다!

“알아. 운 좋은 놈들이네.”

망꾼도 이런 노출된 장소에서 칼을 휘두를 생각은 없었다.

그는 선우현이 칼을 보면 움츠러들 줄 알았다. 그러라고 일부러 칼날을 주차된 차의 지붕보다 낮은 높이로 들고 있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칼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선우현이 겁을 먹지 않았다.

망꾼은 당황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걱정도 들었다.

‘우리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려 했는지 들키면….’

그들은 며칠 뒤에 교통사고가 나게 하려고 이 차의 하부에 수작을 부리던 중이다.

‘지금 잡히면 뉴스에 날 거야. 그러면 빵에서 몇 년은 썩어야 해.’

그는 거물이 아니다. 이런 사건으로 뉴스에 나면 무죄나 집행유예는 꿈도 꿀 수 없다.

그가 생각을 바꾸었다.

‘차라리 이놈을 칼로 위협해서 납치하자.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가서 해결해야겠어. 여기서 시간을 끌면 나만 엿 돼.’

망꾼이 선우현에게 쓱 다가갔다. 그가 선우현의 배에 칼을 들이밀며 말했다.

“같이 가자.”

“난 공연을 봐야 해서.”

선우현이 망꾼의 오른팔을 손으로 덥석 잡았다.

망꾼이 반사적으로 오른팔을 앞으로 밀었다. 칼을 조금 찔러서 선우현을 제압할 생각이었다.

“이건 네가 자처…. 어?”

망꾼은 당황했다. 오른손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곧바로 망꾼의 팔이 나무젓가락 부러지듯이 뚝 부러졌다. 저절로 비명이 터졌다.

“으아악!”

망꾼의 손에서 잭나이프가 빠져나와 툭 떨어졌다.

선우현이 그 칼을 잡으려고 했다.

김수선이 재빨리 말렸다.

- 잡지 마세요! 칼에 저놈 지문만 남겨놔야죠!

“칼은 칼로 돌려줘야….”

- 그 장소를 피바다로 만들 셈입니까!

“안 되겠지?”

- 당연히 안 됩니다!

“쳇. 부러뜨린 거로 끝내야겠네.”

- 혀는 또 왜 차십니까?

“내가 옛날 현지 협력자에게 한 말이 있는데, 오늘따라 그게 생각나서.”

- 무슨 옛말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십니까? 그 옛날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알았어.”

선우현이 팔이 부러진 망꾼을 툭 밀었다.

망군이 뒤로 밀려나다가 바닥에 나자빠졌다. 나자빠질 때 머리를 차에 세게 부딪혔다.

“켁!”

- 지금 일부러 그러신 거죠?

“응.”

차의 바퀴를 조작하던 기술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보았다.

“어….”

기술자는 망꾼이 칼을 얼마나 잘 쓰는지 안다. 그래서 같이 일할 때는 감히 개길 생각을 하지 않고 말을 잘 들었다.

그런데 칼잡이인 망꾼의 손이 너무 쉽게 잡혔고 팔도 너무 간단히 부러졌다.

기술자도 망꾼이 경계했던 것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여기서 잡혀서 뉴스에 나가면 엿 된다.’

거기까지는 같은 생각을 했지만, 대응방법은 달랐다.

망꾼은 칼을 꺼냈는데, 기술자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후다닥 도망쳤다.

“으아아!”

선우현이 지시했다.

“수선아. 저놈이 어디로 가는지 추적해.”

- 근처에 지하철이 있습니다. 그걸 타면 추적이 어렵습니다.

“그럼 그냥 잡자.”

바닥에는 기술자가 떨어뜨린 소형 스패너가 하나 있었다. 선우현이 스패너를 발로 찼다.

스패너가 바닥을 낮게 떠서 화살처럼 날아가다가, 도망치는 놈의 다리를 때렸다.

“켁!”

기술자는 앞으로 엎어지며 이마를 땅에 찍고 그대로 기절했다.

선우현이 바닥에 엎어진 기술자를 보며 말했다.

“대충 찼는데 그게 맞네? 수선아. 나 나중에 축구선수라도 할까?”

- 아니, 선장님?

“왜? 잡았잖아. 물론 운도 좀 좋았긴 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각도로 날렸으니까 명중….”

- 그게 아니라요. 근처에 있는 차의 블랙박스는 어쩌려고 그렇게 막 저지르십니까?

선우현이 모자를 슬쩍 눌러쓰며 말했다.

“음…. 다 부술까?”

- 차를 부수는 모습까지 찍히면 빼도 박도 못합니다. 다른 방법을 써서 수습해야 합니다.

선우현이 은근히 기대하며 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구나? 역시 김수선!”

- 제가 원래 다 잘합니다.

“그래서 방법이 뭐야?”

- 현지 협력자 후보였던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을 발견했습니다.

“어?”

- 최종훈이 5시 방향에서 선장님을 발견하고 달려오는 중입니다. 저 사람에게 한 달 전에 목숨을 구해준 값을 받으시죠.

선우현이 최종훈 쪽을 돌아보며 손뼉을 쳤다.

“아! 저 사람 차로 이놈들을 산으로 옮겨서 같이 파묻자고 하면 되겠구나!”

- 저 사람이 설마 그런 걸 하겠습니까!

“안 할까?”

- 안 할 겁니다.

“그럼 뭘 도와달라고 하라는 거야?”

김수선이 제안했다.

- 저번에 최종훈의 목숨을 구해주고 다리도 고쳐줬잖습니까? 그러니까 그 대신에 이번 일 한 번만 뒤집어써 달라고 하십시오.

“하려고 할까?”

- 최종훈은 초범이고 유명 변호사를 고용할 재력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좋은 뜻으로 한 일이잖습니까? 대신 뒤집어쓰고 체포돼도, 알아서 잘 빠져나올 겁니다.

“하긴.”

- 현재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그런데 그 계획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근데 초범 맞아?”

- 어….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에 최종훈이 그곳에 도착했다.

그가 선우현을 보며 숨을 헐떡였다.

“헉헉. 여기, 여기서 선생님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최종훈은 다리가 불편할 때도 물리치료를 충분히 받아서 근력이 딱히 부족하지는 않았다. 지난 한 달은 헬스클럽을 꾸준히 다니며 운동을 열심히 했다.

선우현이 최종훈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이야아. 이제 잘 뛰시네요.”

최종훈이 활짝 웃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하하하!”

김수선도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선장님 덕분인 걸 아는군요. 이제 말을 잘해야 합니다.

선우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최 사장님. 마침 잘 만났습니다. 폭력 전과는 없으시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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