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언덕 위의 요새
김수선은 투덜대면서도 안티 버그 레이저 포탑 제작을 지원했다.
- 아, 네. 그렇…. 그러는 거 아닙니다. 그 옆 붉은 선에 연결하세요.
“됐다.”
- 붉은 선입니다!
“이것도 빨갛잖아.
- 그건 주홍색이고! 납땜을 잘못하셨습니다! 폭탄 해체할 때 그러면 터진다던데!
“이건 포탑이지 폭탄이 아니잖아?”
- 말이 그렇다는 거죠.
선우현이 납땜용 전기인두와 실납을 보면서 말했다.
“장비가 나빠서 그래. 수선아. 프로그래밍 가능한 휴대용 레이저 용접기 하나만 보내….”
- 선체가 쪼개지는 걸 레이저 용접기가 없어서 구경만 하는 꼴을 보고 싶으시군요?
“이걸로 어떻게든 해볼게.”
포탑을 만들려면 제어장치와 레이저 발생장치 외에도 필요한 게 많다.
목표물을 포착하려면 포탑에 다양한 센서를 달아야 한다.
“이 제어장치가 광학 이미지 센서를 제대로 지원할까?”
- 지구연합은 탐사대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습니다. 우리 탐사대 지원위성을 만들 때도 모든 부품을 최고만 사용했습니다.
“너무 오버 스펙이라고 욕을 먹을 정도였지. 그래서 선체가 오천 년을 안 터지고 버텼나 봐.”
- 방어 포탑의 독립 제어장치는 스펙만 높은 게 아니라 호환성도 굉장히 좋습니다. 신형은 물론이고 구형, 심지어 원시적인 형태까지 정말 다양한 종류의 센서를 지원합니다.
“그럼 되겠네.”
- 아마 될 겁니다.
“응? 아마?”
-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이 일치하진 않으니까요. 지구연합에서 만든 포탑 제어장치가, 이 지구에서 만든 그 센서의 신호를 해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해결 방법은?”
- 호환되는 부품을 찾을 때까지 센서를 계속 새로 사서 붙여봐야죠.
“역시 무대뽀 김수선.”
- 제가 어디 선장님만큼 무대뽀겠습니까?
센서는 목표물을 탐지하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
그렇게 파악한 목표물을 조준해서 레이저로 요격하려면, 포신이 움직여야 한다.
“스탭 모터 여섯 개…. 이렇게 붙이면 되는 거 맞아?”
- 제가 탐사대 전진기지 방어용 간이 포탑의 설계도면을 찾아서, 선장님의 환경에 맞게 변형했습니다. 시뮬레이션도 돌려봤습니다. 아마 될 겁니다.
“그래. 이번에도 아마구나.”
- 이번에 안 돼도, 오류를 수정하다 보면 언젠가는 될 겁니다.
탐사대 간이 포탑의 설계도는 구조가 간단해서 제어장치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 도면대로 만들려면 지금 지구에서는 파는 곳이 없는 부품이 들어가야 한다.
선우현은 없는 부품은 직접 만들기로 했다.
부품의 구조는 복잡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작을 하려면 특별한 합금이 필요했다. 그 합금도 파는 곳은 없다.
다행히 선우현에게는 그 합금을 대체할 수 있는 자재가 있다.
“금반지 만들려고 산 용해로를 이제야 써먹네.”
선우현은 금이나 은, 구리 등의 금속을 녹일 수 있는 쥬얼리 제작용 소형 전기 용해로를 한 대 샀다.
그 용해로는 소형 석유 난로만큼 작았다. 가격은 몇십만 원 정도였다.
그 개인용 용해로를 쓰면 금괴를 녹여 금반지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는 금반지를 만들기 귀찮아 사놓기만 하고 쓰지는 않았다.
“수선아. 이런 부품을 금으로 만들면 원래 성능은 안 나오지 않나?”
- 거기에 대체품이 있는데 선체 수리용 합금을 보내드릴 순 없습니다만?
“눈치챘구나.”
- 지금은 금을 섞어서 만드는 게 최선입니다. 포탑이 작동은 할 겁니다.
그 부품을 순금으로 만드는 건 아니다. 다른 금속도 같이 녹여 합금을 만든 후에 가공해야 한다.
선우현은 금과 다른 금속을 녹여 부품을 직접 제작했다.
이튿날 선우현이 선언했다.
“드디어 포탑 완성!”
그가 손을 비빈 후에 전원을 켰다.
“자. 된…. 안 되는구나.”
- 안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괜찮아. 될 때까지 하면 돼. 일단 이 광학 센서는 인식을 못 하네. 이거 다른 거로 바꿔봐야겠다.”
안티 버그 레이저 포탑을 완성하는 데는 사흘이 걸렸다.
“이번엔 된 거 같지?”
- 작동은 하니까, 제대로 설치해서 테스트해보시죠.
선우현은 레이저 포탑을 옥탑방 지붕에 설치했다. 그런 후에 옥상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다.
“난 안 쏘네. 내가 사람은 공격하지 않게 만들었구나.”
- 선체의 방어 포탑은 원래 사람에게는 레이저를 발사하지 않습니다. 아군 오인사격을 막기 위해서지요. 도둑놈을 쏘려면 인간도 공격하도록 세팅을 바꿔야 합니다.
“아. 그래서 날 안 쏜 거구나!”
- 선장님?
“알고 있었는데 까먹은 거야.”
- 아, 네. 이런 분이신 걸 제가 잠깐 까먹었습니다.
갑자기 포탑의 포신이 옆으로 휙 움직였다. 선우현이 그걸 보며 신나서 말했다.
“수선아! 봤어? 움직인다! 벌레를 포착했나 보다!”
옥상으로 파리가 한 마리 날아왔다. 파리는 잘 익은 토마토를 향해 접근했다.
포탑이 파리를 포착하고 포신을 움직여 조준했다. 곧바로 레이저가 발사돼 파리의 한가운데에 정확히 꽂혔다.
“명중! 하긴 했는데….”
파리는 레이저에 맞자마자 요란하게 날아다녔다.
포탑에 설치된 제어장치는 목표물 조준과 지속 추적 능력이 탁월했다. 제어장치는 심지어 포탑을 움직이는 모터의 반응 딜레이까지 미리 계산해 발광하는 파리를 향해 레이저를 발사했다.
파리는 레이저를 맞자마자 몇 초 동안 이리저리 요란하게 비행했다. 그런데도 레이저는 잠시도 빗나가지 않고 정확히 파리의 한가운데에 레이저를 꽂았다.
제어장치의 성능은 완벽했다. 포탑의 추적과 조준, 사격 능력도 완벽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있었다.
“어…. 저게 안 죽네?”
파리는 레이저를 맞으며 3초 동안 날뛰다가 옥상 밖으로 도망쳤다. 포탑은 파리가 경계 범위를 벗어나자마자 사격을 멈추었다.
김수선이 말했다.
- 파리 한 마리에 레이저를 3초나 쐈는데도 격추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조준은 확실히 했잖아. 3초 동안 날뛰는 파리를 정확히 공격했다고.”
- 안 죽었습니다만?
“대신에 쫓아는 냈지?”
- 그럼 도둑놈은요? 기별이나 가겠습니까?
“화력을 높여야겠다.”
***
레이저 포인터를 개조해 포탑으로 쓰는 건 실패했다. 레이저의 출력이 너무 낮아서 벌레를 잡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이걸로는 날파리 정도나 겨우 잡겠다.”
선우현은 더 강한 레이저를 쓰는 장비를 샀다.
소형 레이저 각인기는 개인이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 장비의 레이저 출력은 가죽이나 나무의 표면을 살짝 태워 글자나 그림을 새길 정도는 된다.
“나무에서 연기가 나게 할 정도니까 벌레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
선우현은 각인기의 레이저 모듈을 분해해 포탑에 설치했다.
지금까지 작업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큰 실수는 하지 않았다.
각인기에서 추출한 레이저 부품을 한 번 태워 먹긴 했다. 그래서 각인기를 하나 더 사서 부품을 뽑아내야 했지만, 포탑 자체를 날려 먹진 않았다.
선우현은 출력이 강화된 포탑을 작동시킨 후에 장담했다.
“이번엔 진짜로 잘 될 거야.”
- 거기 들어간 시간과 예산과 자원이 얼마인데 당연히 잘 돼야죠.
지금은 밤이다. 한밤중에 모기 한 마리가 옥상으로 날아왔다.
안티 버그 레이저 포탑은 그 모기가 옥상 근처에 접근할 때부터 위치를 파악했다.
“수선아. 포탑이 움직인다. 옥상으로 뭔가 침입한다.”
- 포탑은 지난번에도 목표 탐색과 조준은 잘했습니다. 위력이 안 나와서 문제였죠.
모기가 옥상 난간을 슬쩍 넘어왔다.
갑자기 포탑의 포신이 그쪽으로 휙 돌아가면서 레이저가 발사됐다.
지난번에 만들었던 포탑은 파리 한 마리에 레이저를 3초나 명중시켰는데도 잡지는 못했다.
이번엔 달랐다.
출력이 강화된 레이저가 모기의 몸통에 정확히 꽂혔다. 즉시 모기의 몸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모기가 불타며 터지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모기 한 마리가 옥상 경계를 넘어오자마자 격추돼 바닥으로 추락했다.
선우현이 자랑했다.
“수선아. 봤냐? 모기 정도는 쏘자마자 죽어.”
- 아, 네. 선체 방어 레이저 포탑의 제어장치로 참 대단한 걸 만드셨습니다.
“세팅만 조정해 주면 토마토 나무에 붙어 있는 벌레도 잘 잡을걸? 이제 진딧물 다 뒤졌어.”
삼십 분 후에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그런데 말이죠. 포탑이 모기를 참 잘 잡네요?
“그치. 모기도 잘 잡지.”
- 그래서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을 때 편안하세요?
선우현은 지금 옥상에서 불판을 펼쳐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 중이다. 불빛과 냄새에 이끌린 온갖 날벌레들이 옥상으로 계속 날아왔다.
안티 버그 포탑이 발사한 레이저가 옥상으로 날아드는 날벌레들을 계속 격추했다. 그때마다 옥상 경계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거렸다.
“어. 진짜 쾌적해. 와. 이 좋은 걸 왜 이제 만들었지? 진작 만들었으면 고기 편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 선장님?
“응?”
- 혹시 고기를 편하게 구워 먹으려고 여기서 포탑 부품을 뜯어가서 거기에 포탑을 만드신 건가요?
“눈치챘어?”
- 우리 지원위성에는 왜 궤도 폭격 무기가 없을까요? 있으면 때려줄 텐데.
“참 다행이지?”
***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이 선우현을 만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최종훈은 한 달 동안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지난 일 년간 움츠려 지냈던 것에 대해 반발이라도 하듯이 쉬지 않고 일했다.
회사 내의 파벌이 한 달 만에 사라진 건 아니다. 김충식 본부장이 맡은 영업 및 마케팅과 이백현 연구소장이 맡은 개발은 평소에도 상대편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대신에 양쪽 파벌은 최종훈이 없을 때처럼 대놓고 차기 사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지 않았다. 최종훈이 은퇴하지 않기로 했으니 이제 그런 경쟁은 해봤자 의미가 없다.
오히려 지은 죄가 있는 김충식 본부장과 이백현 연구소장, 그리고 양쪽 파벌의 이사들은 충성 경쟁을 했다.
그 결과 JHC 테크는 지난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굴러갔다. 미뤄졌던 사업이 추진되고 영업은 새 일감을 따왔다. 연구소는 불이 꺼질 줄 몰랐다.
김찬혁은 사장 최종훈의 비서다. 지금은 비서실에 직원이 여러 명 있지만, 옛날에는 비서가 김찬혁밖에 없었다.
최종훈이 업무차 외부로 나갈 때는 요즘도 어지간하면 김찬혁이 수행했다.
김찬혁은 오랜 기간을 최종훈의 옆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다른 직원들이 하기 어려운 종류의 조언을 하곤 했다.
최종훈이 복귀하고 한 달이 지난 후에, 김찬혁이 다른 직원들 대신에 총대를 메고 말했다.
“사장님.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이메일을 확인하던 최종훈이 물었다.
“누가 죽어?”
“계속 이렇게 강행군하면 직원이 몇 명쯤 죽어 나갈지도 모릅니다.”
“왜? 52시간 근무는 지키잖아. 수당도 다 챙겨주고.”
“영업 쪽은 밖에서 뛰는 시간을 일일이 계산하기 힘드니까 52시간을 그냥 넘깁니다. 연구소는 블라인드 쳐놓고 몰래 일하고 있습니다.”
“응? 몰래 일하면 야근수당도 안 나올 텐데 왜?”
“사장님이 일주일에 80시간은 일하시니까요.”
“어? 내가 그랬나?”
“정상 근무시간인 주 40시간의 두 배를 일하시고, 이사들은 그걸 보고 또 충성 경쟁이 붙어서 더 일합니다. 그러면 밑에 직원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
김찬혁이 진지하게 조언했다.
“사장님. 업무 강도를 좀 낮추시죠. 기적적으로 건강해지셨는데, 이렇게 무리하다 다시 몸에 탈이 나실까 무섭습니다.”
최종훈이 김찬혁을 보았다.
그가 일하면 비서인 김찬혁 일해야 한다. 김찬혁의 눈이 퀭한 게 보였다. 계속 일하면 사장보다 비서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최종훈도 몸이 다시 고장 나는 건 무서웠다. 지난 일 년은 지옥이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최종훈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그래. 쉬자. 너도 내일은 연차 쓰고 쉬어.”
“내일 토요일인데요?”
“어…. 일요일까지 푹 쉬어.”
“일요일도 원래 쉬는 날입니다. 쓰시는 김에 며칠 더….”
“월요일에 보자.”
“아, 네.”
***
최종훈은 이튿날 아침에 평소처럼 눈이 떠졌다.
“안돼. 더 자야 돼. 오늘은 쉬기로 했잖아.”
눈을 다시 감았더니 잠이 왔다. 그런데 그것도 10시가 한계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고급 아파트의 통짜 유리 창문 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오늘은 쉬어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잠자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지난 한 달은 일만 하느라 바빴다. 그 전에는 일 년이나 움츠려 지냈다. 그러다 보니 사적인 약속은 잡힌 게 하나도 없었다.
다리를 다치고 후유증에 시달릴 때는, 한강공원이 집에서 가까운데도 그곳에는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너무 부러워서였다.
그런데 다리가 나았다. 이제는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한강공원에 무대가 설치된 게 보였다.
“오늘 무슨 공연이라도 하나?”
최종훈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강공원이나 가자.”
***
선우현은 한강공원에서 핫바를 사 먹으며 공연을 기다렸다.
“역시 가수의 공연은 현장에서 직관하는 게 제일 좋아. 지원위성에서 TV 전파를 수신해서 볼 때하고는 느낌이 다르단 말이야.”
- 구하니를 만나서 못 받은 일당을 받아내려고 거기 가신 줄 알았는데요?
“아차. 그걸 까먹고 있었네.”
- 선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