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재크와 콩나무 II
선우현은 식물 급속성장촉진제를 사용해 옥상에서 토마토를 키웠다. 그 촉진제의 원료 중에는 소량의 레드 포션도 있다.
이번에 사용한 촉진제는 지원위성에서 새로 만든 것이다. 원료용 레드 포션은 선체에 오천 년 동안 보관한 것을 재처리해 사용했다.
선우현이 조난 초기에 지원위성에서 토마토를 키웠을 때를 떠올렸다.
“이번엔 너무 빨리 자라긴 했지?”
- 옛날에 자동 재배장치에서 키웠을 때보다 성장 속도가 훨씬 더 빨랐습니다.
옛날에 보급품으로 적재된 급속성장촉진제를 지원위성에서 썼을 때도 식물이 빨리 자라긴 했다.
그런데 이번에 만든 촉진제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식물을 빨리 성장시켰다.
“콩나물도 이렇게 빨리 자라진 않아.”
- 재크가 키운 콩나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대나무 죽순이 대충 이 속도로 자라나?”
- 아니요. 죽순보다는 느리게 자랐네요.
선우현이 얼른 말했다.
“그래? 그럼 다 정상이네?”
- 아닐 걸요?
“이미 더 빨리 자라는 식물이 있잖아.”
- 토마토 나무는 죽순이 아닌데요?
선우현이 신나리를 쓱 돌아보았다. 그녀는 토마토를 고르고 있었다.
급속성장촉진제로 키우긴 했지만 모든 토마토가 다 잘 익은 건 아니다. 어떤 건 아직 작았고, 어떤 건 크기는 꽤 큰데 덜 익어서 파란색이었다.
신나리는 그중에서 제일 잘 익은 토마토를 딱 골라서 땄다.
“이게 최고네요. 아. 제가 제일 잘 익은 걸 따서 좀 그런가요? 이건 오빠가 먹….”
선우현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아니야. 네가 먹어.”
“히히. 그럼 사양하지 않고.”
그녀가 토마토를 옷에 쓱쓱 닦더니 한 입 깨물었다. 그녀가 묘한 소리를 냈다.
“음?”
선우현이 얼른 물었다.
“왜? 맛이 이상해? 혀가 마비된다든지, 아니면 숨이 안 쉬어진다든지….”
김수선이 따졌다.
- 먹어도 괜찮을 거라면서요!
“당연히 괜찮지. 그런데 만약 안 괜찮으면 해독제를….”
신나리가 눈을 감으며 토마토를 씹었다.
“으으음!”
“왜? 앞이 안 보여?”
“맛있어요.”
“응?”
신나리가 토마토를 다시 한 입 깨물었다.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잘 익은 배보다 시원하게 달았고, 딸기나 사과, 귤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새콤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토마토 특유의 맛은 잘 살아 있었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선우현을 돌아보았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선우현의 표정이 펴졌다.
“그래? 이야아. 다행이다.”
“이렇게 맛있는 토마토 진짜 처음 먹어봐요. 오빠 진짜 농사의 신인가 봐.”
선우현이 자랑했다.
“내가 원래 키우는 걸 잘해.”
- 일을 키우는 걸 잘하시죠.
신나리가 큼지막한 토마토 하나를 부지런히 먹으며 말했다.
“와. 이건 진짜 꿀토마토네. 아니, 그냥 달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무슨 토마토에서 이런 달콤하고 상큼한 맛이 나요?”
선우현도 모른다.
“어…. 그게 말이야.”
김수선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 급속성장촉진제로 키운 과일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키운 것보다 그렇게 엄청나게 맛있진 않습니다만?
“엄청 맛있다는데?”
- 예의상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닐까요?
선우현이 잘 익은 토마토를 하나 땄다. 김수선이 말렸다.
- 급속성장촉진제에 뭔가 이상한 효과가 추가된 것 같습니다. 관리인의 상태를 좀 더 보시죠?
선우현이 신나리를 보며 물었다.
“너 괜찮냐?”
그녀는 꽤 큰 토마토 하나를 어느새 다 먹어치웠다.
“네? 뭐가요?”
“괜찮네.”
그녀가 입맛을 다셨다. 방금 먹은 토마토의 맛과 향이 입안에 남았다. 부족했다.
“저 하나 더 먹어도 돼요?”
“어. 그래. 하나가 아니라 많이 먹어.”
“아싸아!”
신나리가 신나서 토마토를 하나 더 따먹었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선우현은 방금 딴 토마토를 유심히 살폈다.
“겉보기엔 그냥 토마토인데.”
신나리가 손가락을 옆으로 흔들었다.
“진짜 잘 익은 토마토죠. 크기도 크고, 때깔은 아주 예술이잖아요. 색이 꼭 루비 같은 보석 느낌이에요.”
그 토마토는 과일가게에서 흔히 파는 것보다 더 고급스러운 느낌의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모양도 균형 잡힌 깔끔함이 있었다.
“그래. 그냥 토마토보다 훨씬 더 맛있어 보이긴 하네.”
선우현이 토마토의 냄새부터 맡았다. 좋은 향기가 났다.
“향도 좋고.”
그가 토마토에 입에 대고 한 입 깨물었다.
“음….”
- 이상합니까?
“진짜 맛있는데? 열심히 키운 보람이 느껴진다.”
- 며칠이나 키우셨다고….
그 토마토는 선우현이 먹어도 맛있었다.
그는 지상에 내려온 후에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과일을 다양하게 먹어봤다.
“여기서 먹어본 과일 중에 이 토마토가 최고로 맛있어.”
- 그럼 예전에 먹었던 것과 비교하면요?
“예전 언제?”
- 조난 초기에 직접 키워서 먹었을 때나, 지구연합에 있었을 때 먹었던 것과 맛이 다른가요?
“그건 너무 옛날이라 맛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안 나. 그래도 이게 더 맛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 현지 가게에서 산 것과는 얼마나 차이가 나나요?
“그냥 커피와 탑 오브 탑의 차이?”
김수선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말했다.
- 저도 먹을 줄 압니다.
“어….”
선우현이 하늘을 슬쩍 보며 말했다.
“보내줄 방법이 없잖아. 내가 네 몫까지 먹을게.”
- 빨리 우주왕복선 회사를 손에 넣으라고요!
“어. 그래. 기다려.”
두 번째 토마토를 다 먹은 신나리가 세 번째 토마토를 고르며 물었다.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칼로리가 높은 건 원래 맛있어.”
신나리가 멈칫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토마토는 많이 먹어도 살 안 찌는 거 아니에요?”
“과일은 칼로리가 좀 있어야 더 맛있어. 토마토도 그냥 먹을 때보다 설탕을 뿌린 게 더 맛있지?”
“그렇죠?”
“이 토마토는 달지? 왜 달겠냐?”
신나리가 머뭇거리다가 토마토를 휙 땄다.
“에잇! 오늘은 그냥 먹을래요!”
“그래. 많이 먹어라. 토마토는 계속 열릴 테니까.”
- 급속성장촉진제와 충분한 양의 비료를 쓰면 열매는 계속 열릴 겁니다. 왜 그렇게 맛있는지가 문제입니다만.
선우현도 두 번째 토마토를 따 먹으며 말했다.
“오천 년 동안 숙성된 레드 포션에 추가 효과가 생겼잖아.”
지금 탐사대 지원위성에 쌓여 있는 레드 포션에는 일 년 전에 생긴 후유증까지 치료하는 추가 효과가 있다. 그건 원래 레드 포션에는 없던 효과다.
그들은 그 효과가 레드 포션을 오천 년이나 숙성시킨 덕분에 생겼다고 추측했다.
“숙성 레드 포션이 급속성장촉진제의 원료로 사용되면, 그 추가 효과가 더 맛있어지는 효과로 바뀌나 보다.”
- 더 빨리 자라게도 하고요.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까 말이 되잖아.”
신나리가 토마토를 먹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토마토만 이렇게 많이 키워요?”
“토마토가 제일 빨리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화분에서 사과나무를 키우면 언제 따 먹겠냐?”
“아아. 그쵸. 사과나무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날 심는 거라던데.”
“야. 그건 아니고.”
***
신나리는 토마토를 실컷 먹고, 잘 익은 것만 골라서 다섯 개나 가져갔다.
상관없었다.
이튿날이 되자 잘 익은 토마토가 다시 주렁주렁 달렸다. 맛도 좋았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촉진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선우현이 토마토 나무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수선아. 왜 맛있는 과일에는 벌레가 꼬일까?”
- 벌레가 먹어도 맛있으니까요.
옥상의 토마토 화분을 노리는 해충들이 있었다. 처음 몇 마리는 선우현이 눈으로 확인하고 제거했다.
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그는 토마토가 먹고 싶은 거지 농사를 짓고 싶은 게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김수선은 간단한 해결법을 제시했다.
- 농약을 치시죠. 팍팍. 벌레 따위는 다 죽을 겁니다.
“에이. 그건 아니지. 나는 기왕이면 친환경 토마토를 먹고 싶어. 씻지 않아도 그냥 먹을 수 있게 농약은 한 방울도 안 쓰고.”
- 이젠 몸에 좋은지까지 따져서 드시게요?
“기왕이면 친환경이 좋잖아.”
- 여기선 칼로리바를 잘만 드시더니요?
“거기는 먹을 게 칼로리바밖에 없었으니까 그랬지. 하도 오래 그것만 먹어서 그런지 이젠 먹는 걸 더 따지게 되네?”
- 그럼 계속 벌레가 보이는 족족 직접 잡으시던가요.
“아니야. 벌레잡이 장치를 설치해야겠어.”
- 공원에 벌레 포집기가 많던데요. 그런 걸 하나 사시죠.
“에이. 그걸로 어떻게 벌레를 다 잡냐? 그런 건 벌레 숫자만 좀 줄여주는 거지.”
-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선우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선아?”
-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시려고요?
“선체 방어용 레이저 포탑 말이야.”
- 설마 아니겠지만, 말해보시죠?
“그거 별로 안 쓰잖아.”
- 선체 방어 포탑은 유성이나 우주 쓰레기가 위험한 각도로 날아올 때 미리 제거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만?
우주 쓰레기가 탐사대 지원위성과 같은 궤도,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면서 접근하면 그건 좋은 자원 획득 수단이 된다. 우주 쓰레기와 비슷한 속도로 접근해 포획하면 쓸만한 게 많이 나온다.
그런데 작은 파편이 위험한 각도로 선체를 향해 날아올 때가 있다. 그런 건 무리해서 회수할 가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하면 파편이 선체에 총알처럼 박힐 수 있다.
그럴 때는 회피 기동으로 피하거나 방어 포탑으로 요격해야 한다.
당연히 파편을 방어 포탑으로 요격하는 쪽이 에너지 소비가 훨씬 적다. 선체에 구멍이 나거나 금이 갈 위험도 피할 수 있다.
“에이. 당연히 선체 방어 포탑은 그냥 놔둬야지.”
- 당연합니다.
“그거 말고,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서 뜯어낸 포탑 있잖아. 예전에 레이저 포탑 하나 분해한 거 말이야.”
그렇게 분해한 포탑은 선체 수리에 쓰거나 다른 포탑의 수리 부품으로 사용된다.
- 있긴 있지요?
“그 포탑의 독립 제어장치가 멀쩡하더라.”
- 아아. 그러니까…. 선장님. 도르신?
“야. 그거 지금은 그냥 남는 부품이잖아.”
- 나중에 다른 포탑에 문제가 생기면 교체 부품으로 써야죠!
“설마 선체에 남은 방어 포탑이 다 고장 나겠어?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우주왕복선 보내줄게.”
- 아! 그러면 되겠군요!
“그치!”
- 그런데 선장님? 우주왕복선에 쓸 연료값이라도 버셨는지?
“그 연료를 수송할 트럭을 움직일 기름값은 벌었지.”
- 아, 예. 수송 트럭의 기름값….
“그럼 보내주는 거다?”
- 포탑 제어장치로 지상에서 뭘 만드시게요?
선우현이 당당하게 설명했다.
“안티 버그 레이저 포탑.”
- 네?
“레이저를 쏴서 벌레를 잡는 포탑을 만들려고.”
잠시 조용해졌다가 김수선이 물었다.
- 선체 방어용 레이저 포탑의 목표물 탐색, 분석 및 조준, 사격 기능을 통합 처리하는 고성능 독립 제어장치로, 벌레잡이를 만드신다고요?
“응. 내가 토마토 키우는 데 진심이잖아.”
- 선장님? 제가 무슨 말 할지 아시죠?
선우현이 다급히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니, 잠깐 기다려봐. 그걸 만들면 벌레만 잡는 게 아니야. 외부 침입자도 격퇴할 수 있어.”
- 그 옥탑방을 도대체 누가 왜 침입합니까?
“어…. 도둑놈?”
일단 말을 시작하니 다음 말은 술술 나왔다.
“지금 금괴도 좀 있고, 나중에 옥탑방에 기술 자료를 훔치려고 도둑놈이 들어올 수 있잖아. 미리 대비해야지.”
- 그러니까 옥상에 적의 침입을 막을 방어 포탑을 설치하는 거군요.
“어? 아! 그거야. 그거. 그게 내가 하려던 말이야.”
***
김수선은 결국 예비 부품으로 보관하고 있던 포탑 제어장치 모듈을 선우현에게 보냈다.
그런데 강하 캡슐에 들어 있는 건 포탑을 제어하는 두뇌에 해당하는 모듈뿐이다. 나머지 부품은 전부 지상에서 구해야 한다.
“이게 어디냐.”
- 어디냐가 아니라 그게 최선입니다.
선우현은 레이저 발사기는 돈을 주고 샀다.
문제는 포탑에 사용할 레이저의 출력이다.
김수선이 옥상에서 포탑을 만드는 선우현에게 물었다.
- 그러니까 포탑의 공격용 레이저 발생장치를 그걸로 대체한다고요?
“어. 이거 어렵게 구했다.”
- 그거 일종의 레이저 포인터 아닌가요? 회의할 때 쓰는 그거요.
“이게 그냥 레이저 포인터가 아니야. 수입품인데 출력이 너무 세서 판매가 금지된 물건이야. 중고로 구했어.”
- 위력은요?
“벌레 정도는 충분히 잡을 정도로 강하겠지.”
- 적의 침입을 막을 방어 포탑을 만드신다면서요?
“응?”
- 그따위 걸 쏘면 도둑놈이 잡히겠냐고요.
“열심히 쏘면 잡겠지?”
-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