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9화 (19/281)

19. 트럭 킬러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보고했다.

- 카모플라쥬 시스템이 완전히 정지하기 전에 비상 교란 장치를 대신 가동했습니다. 자원 소모가 증가했습니다.

선우현은 걱정했다.

“설마 카모플라쥬 시스템이 다 터진 건 아니지?”

카모플라쥬 시스템 덕분에 탐사대 지원위성은 지구의 위성 감시 체계에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장치에 문제가 생겼다.

정체불명의 대형 인공위성이 갑자기 우주 감시망에 대놓고 포착되면 여러 나라에서 난리가 날 게 뻔하다.

- 에너지 공급 모듈만 터졌습니다. 비상 교란 장치가 과부하로 타버리기 전에 수리해야죠.

“다행이다.”

- 어디가요?

“수리할 수 있을 만큼만 날아갔으니까.”

- 그 수리를 제가 해야 하는데요?

“수선아. 내가 너 믿고 있는 거 알지?”

-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마시죠.

“나는 모르는데 너는 혹시 아나 싶었지.”

김수선이 투덜댔다.

- 선장님이 지상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는 동안 저는 여기서 뺑이나 치겠습니다.

선우현은 큰소리쳤다.

“나만 믿어. 내가 얼른 돈 벌어서 자원 보내줄게.”

- 천만 원으로 위성 궤도까지 화물을 보낸다? 어디서 약을 파십니까?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러겠다고.”

- 그러려는 분치고는 너무 노시는데요?

“기다려 봐. 탐사대가 현지를 조사할 때 사용하려고 준비한 기술들이 있잖아. 그중에 팔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 바로 그 기술 판매 문제 때문에 현지 협조자가 필요합니다만?

“그래서 현지 협조자로는 진짜 최종훈이 딱이었는데 말이야.”

- 그러게 말입니다.

선우현이 슬그머니 물었다.

“그래서 내 새 레드 포션은?”

- 비상용 교란 장치는 에너지 효율을 무시하고 작동하는 방식이라 자원 소모가 많습니다.

“그래서 언제….”

“고장 난 카모플라쥬 시스템 수리에도 자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내 레드 포션은 천천히 해. 그 말 하려고 했어.”

- 이미 재처리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수리가 다 끝나야 다시 진행할 겁니다.

“역시 김수선. 현장에서 활동하는 내 안전은 관심이 없지.”

- 관심 많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크게 다치지는 마십시오. 지금 상황에서 총에 맞으면 답이 없습니다.

“한국은 총기 사용 금지 국가잖아. 괜찮아. 괜찮아.”

“이미 총을 쏘는 놈을 두 번이나 만나셨는데요?”

“총은 안 맞으면 괜찮더라고.”

***

선우현이 춘천 공연장 근처에 도착했다. 도시 행사에 포함된 야외 공연이라 사람이 많았다.

오늘 공연에는 초대가수로 구하니가 나온다.

선우현이 다짐했다.

“최종훈한테는 먹튀를 당했지만, 하니 씨한테는 반드시 그날 일당을 받아낼 테다.”

- 더 받아내도 됩니다.

“월세는 이제 해결됐잖아. 없어 보이게 굳이 그럴 필요 있나?”

- 선장님. 거기는 없어 보이는 게 문제군요. 여기는 있는 게 없습니다만?

“더 받아내 볼게. 일단 하니 씨를 만날 방법을 찾….”

김수선이 급히 보고했다.

- 11시 방향 50미터 위험인물 발견.

선우현이 일부러 그쪽을 보지 않고 물었다.

“적이냐?”

- 트럭 킬러입니다.

“응? 누구?”

- 최종훈을 공격했던 트럭 기사를 찾았습니다.

선우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이야아. 그놈 놓친 줄 알았는데 찾았구나!”

- 제가 이렇게 일을 잘합니다.

선우현이 트럭 기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놈은 사람 많은 곳을 일부러 찾아왔나 보다. 여기서 인파에 섞이면 종적을 감추기 좋으니까.”

- 그렇다고 여기서 잡으시면 안 됩니다. 목격자가 많습니다.

“알아. 그런데 저놈이 범인인 건 확실하지?”

- 어….

“야?”

김수선이 상황을 설명했다.

- 아까 트럭을 운전할 때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아까는 운전석에만 있어서, 여기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저놈이라고 한 거야?”

- 핸들을 잡을 때 사용한 장갑과 같은 것을 손에 끼고 있습니다. 장갑 위에 묻은 얼룩이 일치합니다.

“그걸 용케 봤다.”

김수선이 자랑했다.

-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수상해 정밀 관측을 했거든요. 제가 이렇게 추적을 잘합니다.

“그러면 백 프로란 말이지.”

김수선이 말을 조금 바꾸었다.

- 구십 프로로 하시죠. 백 프로는 조금….

“알았어. 그놈 맞는지 내가 확인해볼게.”

- 어떻게 확인하시게요?

선우현이 남자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그가 남자를 불렀다.

“야. 너.”

남자가 선우현을 돌아본 후에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선우현이 계속 말했다.

“트럭을 거기다 버리고 오면 되겠냐? 트럭이 무슨 쓰레기야?”

트럭 이야기를 듣자마자 남자의 고개가 선우현 쪽으로 휙 돌아갔다. 표정은 이미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

“아까 네가 차 들이받기 전에 칠 뻔한 오토바이가 나다 이 새끼야! 내 블랙박스에 네 얼굴 다 찍혔어!”

김수선이 물었다.

- 오토바이용 블랙박스는 언제 샀습니까?

“안 사도 있잖아.”

- 어디에요?

“우리 선체에 있는 관측 카메라.”

- 아, 네. 지구연합이 예산을 쏟아부어 만든 초고성능 관측 카메라를…. 비교할 걸 비교하셔야지.

남자가 주변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그들의 대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가 물었다.

“혼자 왔냐?”

“왜 다들 혼자 왔냐고 묻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니다.”

“아니기는. 내가 다 봤는데.”

- 저도 봤습니다.

남자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뛰어서 도망쳤다.

선우현이 그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야. 너 도망 못 쳐. 내가 많이 빠르거든.”

남자는 근처 주택가 골목으로 쓱 들어가 사라졌다. 선우현도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선우현이 골목에 들어가자마자 안쪽에서 잭나이프 칼날이 튀어나왔다.

남자가 선우현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죽어!”

선우현이 그런 남자의 손을 탁 잡아챘다. 잭나이프가 순식간에 남자의 손에서 빠져나와 선우현의 손에 들어갔다.

남자가 놀란 얼굴로 자기 손을 보았다. 손이 비어 있었다.

선우현이 빼앗은 칼을 손등 위로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야. 트럭 킬러. 일부러 목격자가 없는 곳으로 왔나 본데, 그러면 나야 고맙지.”

“어, 어떻게….”

“내가 많이 빠르다고 했잖아. 손도 빨라.”

트럭 킬러는 골목에서 기습했는데도 오히려 칼만 빼앗겼다. 게다가 칼은 이제 선우현의 손에 있다. 전투 능력이 너무 크게 차이 났다.

그가 눈알을 굴리다가 갑자기 몸을 뒤로 돌려 도망쳤다.

‘여기서 빠져나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들어가야….’

갑자기 트럭 킬러의 다리가 앞으로 푹 꺾였다. 선우현이 뒤에서 발차기를 날렸기 때문이다.

트럭 킬러가 엎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이게 어디서 튀려고. 너 때문에 먹튀를…. 아. 그건 이놈 때문은 아닌가?”

- 아니죠.

“그냥 다 이놈 때문인 거로 하자.”

- 역시 선장님이십니다. 그곳을 빨리 벗어나기나 하십시오. 비명을 듣고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기다려 봐. 파밍은 해야지.”

***

JHC 테크 사장 최종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춘천 지역 경찰서 형사가 건 전화였다.

형사가 자기 신분을 먼저 밝힌 후에 물었다.

- 오늘 교통사고 신고하셨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입니다. 교통사고일 수는 있는데, 어쩌면 킬러의 짓일 수도 있습니다.”

최종훈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괜히 킬러 이야기는 했나 싶었다.

‘중2병처럼 들리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상대의 대답이 그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 네. 그렇게 신고하셨죠. 그런데 범인이 청부업자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 아! 그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저도 확실히 믿는 건 아닌….

- 용의자가 잡혔거든요.”

“네?”

- 단순 뺑소니 사고였다고 잡아떼고 있습니다만.

“방금 청부업자라고…. 잡아떼고 있다면서 왜 제 말을 믿으신 겁니까?”

- 트럭은 도난 트럭이고, 관련 혐의로 전과가 있거든요. 바로 옆에 칼도 있었고요. 그리고 금괴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는데, 보통 사람이 금괴를 왜 가지고 다니겠습니까?

“청부대금인 겁니까?”

“그럴 수도 있어서, 진짜 최종훈 사장님을 노린 건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최종훈은 감탄했다.

“우리나라 경찰 수사 능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 제 차를 치고 도망친 청부업자를 벌써 잡아서 거기까지 수사가 진전됐군요.”

- 아. 그놈을 저희가 잡은 건 아니고요.

“네?”

- 잡은 사람은 현장에서 사라져서 못 찾았습니다.

“아…. 어? 잠깐만요. 그러면 그놈이 저를 노렸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 현장에 쪽지가 남겨져 있더라고요.

“쪽지요?”

“도난당한 트럭의 위치도 그래서 알았습니다. 쪽지에 자세한 건 최종훈 사장님에게 물어보라고 적혀 있더군요.”

최종훈의 눈이 커졌다.

‘범인을 제외하면, 그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두 명뿐이야. 나. 그리고 나를 구해준 그 사람.’

최종훈이 다급히 부탁했다.

“그 쪽지 남긴 사람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제발! 제가 꼭 알아야 합니다!”

- 네? 우리도 누군지 모른다니까요. 그래서 누군지 여쭤보려고 연락 드린 건데….

“아….”

***

선우현이 불평했다.

“아니, 왜 청부업자들은 매번 골드를 뱉어? 지폐를 내놔야 할 거 아냐!”

- 돌 반지나 더 만드시죠.

“그건 너무 귀찮잖아.”

- 아, 예.

“에이. 손해만 봤다. 골드 챙겨서 빠져나오느라 하니 씨 공연도 못 봤는데.”

그는 공연장 근처에서 청부업자를 잡았다. 범인이 지른 비명을 사람들이 듣고 모여드는데 계속 그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금괴를 챙기고 쪽지만 남긴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 공연 보러 간 게 아니라 못 받은 일당 받으러 간 거 아니었습니까?

“어? 어….”

- 선장님?

선우현이 얼른 말을 돌렸다.

“이건 전부 최종훈이 먹튀를 해서 생긴 일이야! 그치?”

- 아니요.

“아니구나. 나도 아니라고 생각했어.”

***

누가 청부했는지는 며칠 뒤에 밝혀졌다.

최종훈은 소식을 듣고 허탈해했다.

“누군지 압니다. 우리 회사에서 횡령으로 걸려서 교도소에 간 놈입니다.”

형사가 설명했다.

“그 사람이 교도소 감방 동기에게 청부했더군요.”

“제가 그날 거기를 지나갈 줄은 어떻게 알았답니까?”

“매년 그날 그 길을 지나가셨다면서요.”

“아…. 개인적인 다짐 같은 건데, 회사에는 그걸 아는 사람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노렸군요.”

형사는 청부한 범인에 대한 자료 수집차 최종훈을 찾아왔다. 최종훈은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추가 자료는 오늘 회사에 가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저, 그런데….”

“네. 말씀하시죠.”

최종훈이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청부업자를 잡은 사람은 찾으셨습니까? 찾으셨으면 연락처를 좀….”

“아니요. 저희도 누가 그랬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범인이 많이 다쳤거든요.”

“네?”

“혹시 얼굴을 보셨다든지….”

“아니요. 본 적 없습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

최종훈은 다리를 다친 후로는 회사에 거의 출근하지 않았다. 회의는 대부분 화상회의로 해결했다. 남에게 다리가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오늘처럼 그 화상회의조차 참석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JHC 테크는 내부에 양대 파벌이 있다. 자잘한 파벌이 몇 개 더 있지만, 김충식 본부장과 이백현 연구소장의 세력이 가장 강했다.

김충식은 회사의 영업과 마케팅 파트의 책임자다. 이백현은 기술 연구 책임자인 연구소장이다.

최종훈은 다리가 완치됐다는 걸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사들은 그의 건강이 더 나빠지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날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면 새 사장을 뽑아야 한다.

그 문제를 놓고 회의 탁자 양쪽에서 편을 나눈 이사들이 서로 삿대질까지 하며 싸웠다.

김충식 본부장과 이백현 연구소장이 맞은편에 앉아서 서로를 보고 있었다.

김충식 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이 소장이 경영을 뭘 안다 그래? 양보하지?”

다른 이사들은 즉시 조용해졌다. 이백현 연구소장이 피식 웃었다.

“우리 회사가 중소기업일 때부터 영업에서 말도 안 되는 계약만 따와서 우리 애들 피똥 싸게 하더니, 이제 사장도 하시겠다?”

“그런 계약이 남는 게 많았거든. 그걸 우리 애들이 땄으니까 지금 회사가 이렇게 큰 거야.”

“너희들이 계약서만 던져놓고 밤새 양주 먹을 때, 우리 애들이 컵라면 먹으면서 개발한 덕분에 회사가 이만큼 컸지. 그러니까 김 부장이 포기해.”

김충식 본부장이 실실 웃었다.

“어차피 이 소장 쪽에서 끌어모은 지분으로는 나를 못 이겨. 내가 백기사가 좀 많잖아?”

그 대화에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사장이 죽기라도 했나 봅니다? 백기사 백날 모아봐야 사장 지분에는 상대가 안 되는데.”

김충식 본부장이 짜증을 내며 회의실 출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누가 감히 우리가 대화하는 데 끼어드…. 헉! 사장님!”

오랜만에 출근한 최종훈이 회의실 문 바로 안쪽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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