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7화 (17/281)

17. 레드 포션

선우현이 포션 주입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만큼 작은 화면에 진행 표시가 떴다. 수십 개의 미세관이 주입기에서 튀어나와 최종훈의 다리에 꽂혔다.

그 관을 통해 평행세계 지구연합 기술의 결정체인 레드 포션이 최종훈의 왼쪽 다리 곳곳에 스며들었다.

김수선이 말했다.

- 결국 지르셨군요.

“너도 찬성했잖아.”

- 선장님이 결정하셨으니까요.

선우현이 피식 웃었다.

“아니다 싶으면 계속 반대하면서 무슨. 지난달에도 내 결정에 반대했으면서.”

- 고장 난 우주복을 입고 선체 밖으로 나가 수리하겠다는 걸 어떻게 찬성합니까? 선장님은 자동 수리모듈이 아닙니다. 그러다 죽습니다.

“안 죽었잖아.”

- 예. 예. 그때는 운이 참 좋았죠.

포션 주입은 금방 끝났다.

선우현이 주입기를 챙기며 말했다.

“레드 포션이 일 년이나 지난 후유증에도 효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 그러게요.

갑자기 최종훈이 비명을 지르며 발작했다.

“으아악!”

“이야아. 아픈 가 보다.”

최종훈이 선우현을 향해 손을 뻗으며 욕을 했다.

“이 새끼야! 내 다리에 무슨 짓을…. 아아악!”

“우리 현지 협력자 후보는 욕을 참 잘해.”

레드 포션을 쓰면 어지간한 상처는 순식간에 낫는다.

대신에 상처가 치료되는 동안은 굉장히 아프다. 상처가 심해 치료될 게 많으면 더 많이 아프다.

“사, 살려…. 아아악!”

“많이 아픈 거 보니까 치료가 잘 되나 보다.”

- 아프면 오른손을 들라고 했는데, 안 드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 현지 협력자 후보는 말도 참 안 들어.”

최종훈은 계속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와. 후유증의 원인이 심각한 거였나 보다. 엄청나게 아파하네.”

- 방치했으면 조만간 죽었겠는데요?

“아. 포션 효과가 거의 다 됐다.”

최종훈의 비명이 조금씩 작아졌다.

“끄으으….”

레드 포션은 상처를 치료할 때만 고통을 일으킨다. 치료할 상처가 얼마 남지 않으면 고통도 줄어든다. 완전히 치료하면 고통은 사라진다.

최종훈의 뒤집혔던 눈동자가 서서히 돌아왔다. 그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허어억!”

최종훈의 반쯤 나갔던 정신도 겨우 돌아왔다. 그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나 살아 있는 건가?”

“여기가 천국은 아니니까요. 아. 지옥도 아니고.”

최종훈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다리를 만졌다. 지독하던 다리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2차 발작이 겨우 끝났…. 어? 이번에는 왜 통증이 갑자기 완전히 사라졌지?”

이 발작의 통증은 평소에는 더 천천히 사라진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역시 레드 포션. 효과 하나는 확실하단 말이야.”

- 우리 세계 지구연합 과학기술의 결정체니까요.

“하지만 일 년 전 후유증까지 회복시키는 건 원래 포션에 있던 효과가 아닌데?”

- 레드 포션은 핵심 원료의 상처 치료 원리가 정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습니다. 포션으로 만들 수 있고 효과가 탁월하니까 그냥 쓰는 거죠.

“지구연합의 기술은 알고 보면 구멍이 많단 말이야.”

- 적을 이기려면 쓸 수 있는 건 다 써야 하니까요.

“그야 그렇지. 수선아. 포션이나 하나 더 재처리해놔. 내가 쓸 건 있어야지.”

- 이미 작업 시작했습니다. 지상 투하용 캡슐 제작용 자재가 빠듯합니다만, 선체 수리를 늦추고 진행하겠습니다.

최종훈은 몸이 진정이 되자 지팡이를 잡고 일어나며 사과했다.

“이거 미안합니다. 흉한 꼴을 보였습니다.”

“흉하긴 하더라고요.”

“그 정도였습니까?”

“내 멱살이라도 잡겠던데. 그래도 지금은 멀쩡해졌으니 괜찮습니다.”

최종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일단 겨우 괜찮아졌지만, 발작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진짜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건지….”

“이제 안 그래도 되죠.”

“이제 해볼 수 있는 건 다리를 잘라서 원인을 없애버리는 것뿐입니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지만요.”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다리를 자른다고 해서 발작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허리까지 잘라도 소용없을 거라고 하는 의사도 있었다.

“오늘 고통은 너무 심해서, 이젠 진짜 다리라도 잘라보고 싶군요.”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 아무래도 최종훈이 상황파악이 안 되나 봅니다.

“그러게. 자기가 무슨 상황인지를 모르네.”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물었다.

“이미 치료가 끝났는데 다리를 왜 자릅니까?”

“예?”

“그 다리, 내가 한 방에 치료해준다고 했잖습니까? 그 말을 듣더니 뭐든 해달라면서요?”

“네?”

최종훈은 너무 심한 고통과 충격으로 조금 전 기억이 잠깐 날아갔다. 그러다가 선우현의 말을 듣고 나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생각났다.

그가 급히 다리를 확인했다. 고통의 진원지인 왼쪽 다리의 옷이 찢겨나가 있었다.

“설마….”

선우현이 씩 웃었다.

“내가 개발한 약으로 치료….”

“마약을 진짜 썼군요!”

“포션 부작용이 머리로 갔나? 왜 사람이 갑자기 또라이가 됐지?”

- 최종훈을 관찰한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현지 협력자로 삼아도 되는지 슬슬 불안합니다.

“그래. 역시 다시 생각해야겠다.”

최종훈이 다급히 말했다.

“비밀로 해줄 테니까 그 마약 나한테 팔아요!”

“아니, 마약이 아니라 내가 비밀리에 개발한 약으로 방금 최 사장님 다리를 치료했다니까요?”

최종훈은 믿지 않았다. 다리가 아프지 않은 건 강력한 진통 효과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마약을 개발했어도 괜찮습니다. 한 방에 통증이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지다니! 내가 중독자가 되더라도 난 그 약을 써야겠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최종훈은 간절했다.

“내가 다 살 테니까 제발!”

선우현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신 다리는 이미 다 나았다고!”

“거짓말!”

“속고만 살았나!”

선우현이 손을 내밀었다.

“에이. 안 되겠네. 그냥 돈이나 받고 끝냅시다. 얼마 있어요?”

“예?”

“다리 치료해준 약값. 그거 지금은 하나밖에 없던 약인데 설마 먹고땡 하려는 건 아니겠지?”

최종훈은 그의 다리가 치료됐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그는 선우현이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를 썼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 진통 효과가 너무 강했다. 마약처럼 정신이 나가는 느낌도 없었다.

‘나중에 무슨 부작용이나 중독 증상이 생길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는 그걸 따질 여유가 없다. 다음 발작을 막으려면 당장 그 약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최종훈이 다급히 물었다.

“약이야 더 만들면 되잖습니까?”

“그거 만들기 굉장히 어려운 약입니다만?”

“하지만…. 아….”

최종훈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아. 내가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마약을 사겠다고 이렇게 대놓고 요구하다니. 자괴감이 드는군요.”

“마약 아니라니까. 그리고 내 약에 대해서 어디 가서 이상한 소리 하고 다니지 마시죠. 소문내면 그 다리 원상태로 돌려놓을 겁니다.”

최종훈이 아쉬움에 한숨을 쉬었다.

“휴우. 내가 바보도 아니고, 몸에 마약이 들어왔다고 떠들 리 있습니까?”

“됐고, 치료비나 줘요. 얼마 있어요?”

“혹시 카드는….”

“현금만 받습니다만?”

최종훈은 오늘 받은 도움의 가치를 생각했다. 선우현이 목숨을 한 번 살려줬고, 약을 써서 다리의 통증도 사라지게 했다.

그가 차의 글로브박스를 열었다. 종이봉투에 오만 원짜리 두 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가 그 봉투를 내밀었다.

“천만 원입니다.”

선우현의 표정이 확 펴졌다.

“오! 돈 좀 있으시네! 역시 기업체 사장님!”

“갑자기 현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비상금입니다.”

“이거 받고 퉁 칠 테니까, 우리는 이대로 빠이빠이. 오케이?”

최종훈은 여기서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

“저, 저기 그 약이 더 있으면 제가 사겠….”

“만들어둔 게 딱 하나 있었는데 방금 썼습니다.”

“아….”

선우현이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오만 원짜리 두 뭉치가 들어 있었다.

“이야아. 이제 오토바이 졸업하고 차 사도 되겠다.”

- 옥탑방 월세부터 내셔야죠.

“오토바이는 더 타고, 오늘 저녁은 소고기 먹어야지.”

- 좋으시겠습니다. 혼자 많이 드시고 혼자 배 터지십시오.

“그러려고.”

선우현이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가 다시 경고했다.

“그 약에 대해서 남에게 이야기하면 화낼 겁니다.”

“당연히 마약에 대해서는 비밀로 할 겁니다.”

“마약 아니라니까.”

선우현이 투덜대며 그곳을 떠났다.

최종훈은 멀어지는 오토바이를 보다가 차의 앞쪽으로 걸어가 손상된 부분을 확인했다.

차의 앞쪽은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트럭이 그의 차를 스치고 지나간 순간이 생각났다.

“스치기만 했는데도 이 정도면, 정통으로 들이받혔으면 진짜 죽었겠어.”

그는 보험사와 112에 신고했다.

***

잠시 후에 경찰차가 도착했다. 장소가 워낙 외진 곳이라 보험사 직원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최종훈이 사고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뺑소니 교통사고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최종훈이 단순 교통사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물었다.

“JHC 테크라는 회사의 사장님이시라고요? 그 회사가 혹시 위험한 일을 하는 곳입니까?”

“아니요. 우리 회사는 정상적인 기술 개발 회사입니다.”

“그런데도 살인 미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다? 혹시 증거가 있습니까?”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만, 정황상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요.”

경찰이 도로 주변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 길은 원래 대형 트럭이 지나다닙니다. 뺑소니로 보이긴 합니다만, 말씀하신 범죄 의심 상황도 일단 보고는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시죠.”

최종훈이 인상을 썼다. 현장만 보면 차의 앞부분이 조금 부서진 게 다였다. 딱히 다친 사람도 없다.

이대로면 살인 미수라고 주장해도 무시당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최종훈도 이게 사건인지 아니면 사고인지 알지 못했다. 선우현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 신고는 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예. 뭐. 그 정도면 됩니다. 다만.”

최종훈이 지팡이를 들어 트럭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경찰관님. 그 트럭은 빨리 찾아야 합니다. 만약 킬러가 타고 있다면, 차를 어디로 치울지 모르니까요.”

“그 트럭이야 뺑소니를 쳤으니 당연히 찾아야죠. 그런데 이쪽은 CCTV가 별로 없고 작은 갈림길이 많습니다.”

“찾아보기도 전에 어렵다는 말부터 하면 어떻게 합니까?”

경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런데 선생님?”

“왜요!”

“그 지팡이는 왜 가지고 다니시는 겁니까?”

최종훈이 지팡이를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이 사람이 지금 장애인 놀리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지팡이를…. 어?”

최종훈이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방금 트럭이 사라진 방향을 지팡이로 가리키며 두 다리로 걸었다.

“어? 내 다리가 왜….”

그는 일 년 전부터 걸을 때는 지팡이를 사용했다.

그가 조금 더 걸음을 옮겨보았다.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고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어어?”

그가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어보았다.

“내 다리가?”

그가 공터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다리의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비록 일 년을 지팡이에 의지하긴 했지만, 그동안 재활 훈련을 꾸준히 받은 덕분에 다리의 근력은 괜찮았다.

최종훈이 활짝 웃으며 경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것 좀 봐요! 내 다리가 멀쩡합니다! 내가 이제 다리를 절지 않아요!”

경찰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의 다리는 제가 처음 봤을 때부터 멀쩡하셨거든요?”

“아니, 내가 원래 장애인인데….”

경찰이 최종훈의 차 앞유리를 슬쩍 보았다. 장애인 표지는 없었다.

“표지가 없으신데요?”

“아니, 그거야 내가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신청을 안 한 거고….”

“저기, 선생님. 교통사고로 충격이 크신 건 알겠는데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니, 진짜 답답하네. 내가 멀쩡하면 지팡이를 왜 가지고 다닙니까?”

“선생님이 남의 지팡이를 왜 가지고 다니는지 저한테 물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선물용인가?”

“이 지팡이 내 거라고요! 나는 이게 없으면 걷지를 못한다고!”

경찰이 한숨을 내쉰 후에 차 주변의 사진을 찍고 있는 동료에게 말했다.

“최 순경. 119에 연락해서 이분 좀 모셔가라고 해. 머리에 충격을 받으신 거 같다.”

“나 안 미쳤다고! 이건 기적이라고! 기적….”

최종훈은 선우현이 했던 말이 이제야 생각났다.

- 당신 다리는 이미 다 나았다고! 속고만 살았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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