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6화 (16/281)

16. 협력자 III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 트럭이 나를 죽이려던 건 아닐 겁니다. 그 정도로 지독한 원한을 쌓은 기억은 없습니다.”

“내가 세상을 오래 살아보니까, 별것 아닌 원한으로도 자객을 보내는 놈들이 있더군요. 돈 때문에 자객을 보내는 놈은 더 많고요.”

“예? 자객이요?”

“어…. 아니, 그러니까 청부업자요.”

“세상을 오래 살았다고 할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김수선이 슬쩍 끼어들었다.

- 모를 겁니다.

최종훈이 말했다.

“그리고 일 년 전 사고는 저를 노리고 일으켰을 리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다친 대형 사고인 데다가, 저는 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니까요.”

선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니면 다행이고요. 그럼 방금 그 트럭은 그냥 뺑소니겠군요.”

“물론이죠.”

선우현이 작은 소리로 지시했다.

“수선아. 그 트럭 추적해.”

- 당연히 추적 중입니다. 겨우 하나 건진 현지 협력자 후보를 공격한 놈이니까요. 최종훈이 엄한 놈한테 당하면 이런 후보를 어디서 또 찾겠습니까?

김수선은 이미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트럭과 이 현장을 번갈아 보는 중이다.

선우현이 물었다.

“그럼 최 사장님은 이제는 회사 일을 거의 안 하는 겁니까?”

최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무리하면 다리에 극심한 발작성 통증이 오거든요. 그때는 강한 진통제 써도 아픕니다. 평소에 진통제를 너무 먹어서 간이 버틸지 걱정될 정도죠.”

“그런 몸으로 운전은 어떻게 합니까?”

최종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왼쪽 다리가 아픈 거지 오른쪽은 괜찮거든요. 그리고 발작이 오기 전에 전조증상으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먼저 듭니다. 그러니까 운전하다가 갑자기 사고가 나진 않습니다.”

그런데 최종훈은 조금 전에 다리 통증을 느꼈다. 선우현이 물었다.

“이미 그 전조가 있었는데요?”

“전조가 있다고 다 발작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넘어갈 때가 더 많습니다.”

그가 왼쪽 다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사실은요. 이런 몸이 됐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운전 정도는 직접 합….”

그의 표정이 굳었다. 다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이 다시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통증이 강했다.

“왜 2차 전조증상이 벌써….”

갑자기 왼쪽 다리가 잘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본격적인 발작이었다.

이 고통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끄으으윽!”

최종훈이 운전대를 오른손으로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 고통은 매주 찾아온다. 요즘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도 온다.

발작은 오기 전에 전조증상이 두세 번 있어서 미리 대비할 수 있고 일상생활도 가능하다.

하지만 삶의 질은 이미 바닥에 처박혔다.

게다가 발작은 겨우 끝나도 며칠 뒤면 다시 온다. 고통이 반복해서 온다는 걸 알기 때문에 평소에도 정신이 피폐해졌다.

더 큰 문제는, 이 고통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가 찾아간 한국과 미국 의사 모두 이 병은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없다고 했다.

‘발작 간격이 더 짧아졌어.’

지금 겪는 고통은 평소보다 더 심했다. 마치 다리가 진짜로 잘리는 것 같았다. 목과 이마에 핏대가 섰다.

최종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내, 내가 이래서….”

회사 일은 물론이고 사는 것도 의욕을 잃어가던 중이다.

첫 전조 후에 미리 진통제를 몇 알이나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마약성 진통 주사는 사고 후 초반에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그건 병원에 가야 맞을 수 있다. 그나마도 너무 많이 맞아서 이제는 처방을 받기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진통제의 약발도 잘 듣지 않았다.

그의 삶의 질은 이미 나락에 떨어졌다. 치료법이 없으니 희망이 없다. 절망만 남았다.

미국에서 그를 진찰한 의사는 이대로 가면 고통 때문에 쇼크로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다 죽을 거면, 그냥, 세상 다 망해 버렸으면…. 끄아아악!”

선우현이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최종훈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수선아. 이 사람 많이 아픈가 보다.”

- 여기서도 보입니다. 많이 아프겠네요.

“그렇다고 세상이 망하길 바라는 건 아니지.”

- 우울증이 오고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사람을 현지 협력자로 삼아도 되나?”

- 선장님도 세상 다 망해버리라고, 궤도 폭격으로 지구를 다 쓸어버리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신 적이 있습니다만?

선우현이 잡아뗐다.

“내가? 기억이 안 나는데?”

- 100번은 확실히 넘었습니다만?

“그래도 궤도 폭격은 안 했잖아.”

- 우리 선체에는 궤도 폭격 무기가 없으니까요. 탐사대 지원위성에 그런 무기가 왜 있겠습니까?

궤도 폭격 무기는 처음부터 없었다.

근거리 레이저 포탑 같은 선체 방어 무기는 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방어 무기는 이쪽 지구의 위성 궤도에서는 쓸모가 없다.

중요도가 낮은 레이저 포탑은 이미 대부분 분해해서 수리용 부품으로 썼다.

아직 남은 방어 포탑이 있긴 있지만, 근접 방어용이라 지상 공격용으로는 쓸 수 없다.

선우현이 얼른 둘러댔다.

“알지. 궤도 폭격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걸 아니까 그냥 해본 소리였어.”

- 저 사람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해보는 소리일 겁니다.

“그런가?”

- 아마 그럴 겁니다.

최종훈은 고통으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선우현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 사람 이러다 죽는 거 아냐?”

- 오늘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쇼크로 사망할 것 같습니다. 옛날에 그런 경우를 많이 보셨잖습니까?

위성 궤도에서 지상의 중요 사건을 관찰하다 보면, 전쟁터에서 쇼크로 죽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래. 오래는 못 버틸 것 같긴 해.”

- 최종훈의 상태가 조금 좋아졌나 봅니다. 고비는 넘겼습니다.

최종훈의 신음이 줄어들었다.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 같던 통증이 점점 줄어들었다.

“으으….”

선우현이 물었다.

“좀 괜찮습니까?”

최종훈의 상태는 아직 정상이 아니었다.

“괜찮냐고요? 아니요.”

여전히 다리가 아프다. 그래도 이제 대화가 가능할 정도는 되었다.

“발작이 또 올 겁니다. 요즘은 한 번으로는 안 끝나니까. 씨발. 처음에는 그래도 한 번 아프면 일주일은 괜찮았는데….”

“발작이 또 오면 쇼크로 죽을 수도 있겠던데.”

“알아요. 압니다. 의사도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젠장. 진짜 성공한 인생인 줄 알았는데, 일 년 전에 그 사고만 아니었어도….”

선우현이 땀에 젖은 최종훈을 보며 작게 물었다.

“수선아. 레드 포션을 쓰면 이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까?”

- 원래는 일 년이나 지난 상처의 후유증까지 치료하진 못합니다만.

구하니가 목을 관통당해 죽어갈 때 선우현이 레드 포션으로 치료했다. 그런데 그때 일반 레드 포션에는 없던 효과를 처음 발견했다.

그런 효과가 생겼다는 걸 이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

과거에 현지 협력자에게 레드 포션을 보냈을 때는, 포션을 주입기 없이 상처에 직접 뿌려야 했다. 그렇게 해도 목숨은 건질 수 있지만 치료 효과는 떨어진다.

레드 포션은 포션 주입기를 써야 그 효과를 완전히 끌어낼 수 있다.

선우현은 선체를 수리하다가 다치면 레드 포션을 바로 사용해 치료했다. 그래서 일 년 전 상처라는 게 없었다.

- 구하니에게 레드 포션을 썼을 때는, 일 년 전에 다쳐 상태가 나빴던 성대까지 회복됐습니다.

그들은 레드 포션에 그런 추가 효과가 생긴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레드 포션이 지구의 인공위성 궤도에서 오천 년이나 숙성된 것이 원인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 최종훈이 다리를 다친 시기가 일 년 전이니까, 레드 포션이 그때 생긴 다리 후유증에 효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역시 그렇지?”

- 그런데 말이죠. 선장님은 이번에도 레드 포션을 딱 하나만 가지고 있습니다만?

처음 지상에 내려올 때 가져왔던 레드 포션은 구하니를 살리는 데 썼다. 그 후에 김수선이 새로 복원한 레드 포션 하나를 강하 캡슐에 담아 보냈다.

그래서 지금 선우현의 주머니에는 레드 포션이 딱 하나 있다.

“포션이야 네가 하나 더 재처리하면 되지. 포션 재고는 쌓여 있잖아.”

탐사대 지원위성에는 현장 요원을 지원하기 위해 가져온 레드 포션이 대량으로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그 레드 포션은 모두 변질된 상태라 사람에게 사용하려면 재처리 단계를 거쳐야 한다.

- 에너지와 자원이 부족해 포션 재처리 작업은 시간이 걸립니다.

레드 포션을 재처리해 복원하는 작업은 오래 걸린다. 에너지와 자재도 제법 소모된다.

에너지와 자원을 쏟아부으면 포션의 재처리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김수선은 자원 낭비를 싫어한다.

“부족한 자원은 우주 쓰레기를 좀 더 찾아서 수집해 봐.”

- 아무 쓰레기나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필요한 소재가 들어 있어야죠. 그리고 지금은 선체를 수리할 자원도 부족합니다.

“이 사람 놔두면 진짜 죽을 거 같아. 죽게 놔둘 수는 없잖아.”

- 안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넘겨도 결국은 고통받다가 죽겠지.”

- 선장님의 정체를 의심받을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최종훈에게 다시 발작이 찾아왔다.

“으아악!”

이번엔 진짜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워했다.

“끄아아아악!”

“이러다 진짜 죽으면 찜찜하니까, 일단 살리고 보자.”

- 레드 포션의 효과를 어떻게 설명하시게요?

“현지 협력자 후보잖아. 그쪽으로 진행해야지.”

- 그 사람으로 결정하신 겁니까?

“지금 상황에선 이 사람이 제일 나아.”

김수선이 순순히 동의했다.

- 알겠습니다. 쓰세요. 레드 포션은 새로 정제해야죠. 선체를 수리하려던 자원으로는 물자 수송용 소형 강하 캡슐을 만들겠습니다. 자원까지 새로 수집하려면 허리가 휘겠네요.

“네가 허리가 있다고?”

- 포션 재처리 장치가 갑자기 고장 날 것 같네요?

“수선이 허리는 개미허리!”

- 저 멕이는 건가요?

“표 나?”

- 장비를 정지합니다.

“야. 그건 아니지.”

- 현지 협력자 후보나 살리십시오. 그러다 죽겠습니다.

“안 죽을 것 같다더니.”

- 사실 죽을 것 같긴 했습니다. 선장님의 안전이 더 중요하니까 반대한 거죠.

선우현이 최종훈에게 말했다.

“최종훈 씨. 제안 하나 합시다.”

“끄으윽. 지금 사업 제안이나 할 때입니까? 아까 날 살려준 건 고맙고 내가 꼭 보답할 테니…. 으아악! 씨발! 그냥 119나 좀 불러!”

“나한테 당신 다리를 한 방에 치료할 방법이 있는데.”

최종훈은 극심한 고통 때문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게다가 이런 신세가 된 자기 처지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선우현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화가 치밀었다.

“당신 지금 나 놀려? 씨발! 내가 지금 이러고 있다고 날 우습게 보냐고! 뭘 노리는 거야? 내 돈이야? 차 사고도 당신이 일부러 일으킨 거야?”

“아. 이런. 갑자기 살려주기 싫어지는데?”

- 살려주신다면서요?

“넌 살리지 말자며?”

- 리스크가 크니까 망설인 겁니다. 이미 살려주겠다고 결정하셨으니까, 구하셔야지요.

최종훈은 고통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다. 그의 말투가 바뀌었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끄아악! 뭐, 뭔데요! 방법이 뭐냐고요!”

선우현이 작은 원통 두 개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중 하나는 투명한 표시창을 통해 붉은색 액체가 슬쩍 보였다.

“이 약을 쓰면 그 고통이 사라진다니까?”

“마약이야? 그거라도 놔줘! 이 고통만 없…. 으아악!”

“약은 약인데 마약은 아니야. 그런데 말이야. 이게 출처가….”

- 선장님. 현대인에게 레드 포션을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옛날에 써먹던 ‘붉은 달이 뜰 때 그 달빛을 모아 만들었다’는 말은 이제 안 통할 텐데요.

“이거 내가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서 비밀리에 개발한 약이야. 이걸 맞으면 아픈 게 낫는다니까?”

“몰래 만든 약이면 마약 맞…. 으아아악!”

“친절하게 설명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네?”

-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입니다. 그러다 죽겠습니다.

김수선은 위성 궤도에서 초고배율 관측 카메라로 최종훈의 상태를 보고 있다. 음성은 선우현이 가진 통신 중계기를 이용해 들었다. 그 두 가지 정보를 조합하면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 제가 볼 때, 쇼크로 인한 사망 확률이 10%는 넘어 보입니다.

“안 죽을 확률이 90%는 되겠네? 아직 괜찮구나.”

“으아아악! 해! 씨발 뭐든 하라고!”

- 선장님. 지금 최종훈이 자꾸 욕을 하니까 기분 나빠서 일부러 시간 끄는 건 아니죠?

“에이. 아니지.”

- 진짜 아니죠? 그렇죠?

이미 최종훈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눈동자도 허옇게 뒤집혀가고 있었다.

선우현이 최종훈 바지 왼쪽 다리 부분을 북 찢었다. 그런 후에 레드 포션 캡슐을 주입기에 결합하고 설정을 최종훈의 다리에 맞게 세팅했다.

그가 포션 주입기를 다리에 갖다 대며 말했다.

“아프면 오른손을 들어요.”

- 네? 포션이 상처를 회복시킬 때는 당연히 엄청나게 아픈데, 손은 왜 들라고 하세요?

“포션이 이 후유증에도 효과가 있는지 보려고.지금보다 더 아프면 뭔가가 치료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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