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5화 (15/281)

15. 협력자 II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타고 춘천으로 가면서 말했다.

“하니 씨 말이야. 사람이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맞장구쳤다.

- 그러게 말입니다. 어떻게 우리 일당을 백만 원이나 떼어먹습니까?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릅니다.

“잠깐. ‘우리’ 일당이라니?”

- 앞으로는 전투 지원 없이 선장님 혼자 일하시게요?

“우리 일당 맞지. 암.”

- 다시 생각해보니 그날 해준 일에 비해 일당 백만 원은 너무 쌉니다. 레드 포션으로 구하니의 목 관통상을 치료해 목숨도 구해주고, 목소리도 전성기 때로 돌려줬잖습니까?

“포션으로 목만 치료했는데 목소리까지 회복될 줄은 우리도 몰랐잖아.”

- 어쨌든 더 많이 받으셔도 됩니다.

“엄청 많이 받아도 되겠지. 레드 포션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면 말이야.”

- 현지 협력자도 아닌데 그건 곤란하죠. 부담 가지지 말고 더 많이 뜯어내도 된다는 말입니다.

“에이. 너무 그러면 내가 없어 보이잖아.”

- 옥탑방 월세 낼 돈은 충분하신지?

“어…. 돈 더 받아야겠네. 하니 씨는 공연장에 도착했어?”

- 10분 전에 공연장 주변을 관찰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오늘 행사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단 가서 만날 방법을 고민하시죠.

“정 안되면 그냥 뚫고 들어가려고. 내 돈 달라고 가는 건데 뭐 어때?”

농담을 따먹던 김수선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변했다.

- 선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세웠다.

“왜? 선체 장비가 또 고장 났냐?”

-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외벽에 금이 간 거야? 지금 보유한 자원으로 수리가 가능한 수준이야? 선체의 다른 부분을 또 뜯어다 때워야 하는 거 아니지?”

- 선체에 뭔가 고장 나서 수리하는 거야 어디 하루 이틀 일입니까? 여기가 아니라 지상에 문제가 있습니다.

“난 또 뭐라고. 무슨 문제인데?”

- 매복 추정 상황을 발견했습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주변을 확인했다.

“나를? 우리 원래 세계에서 적이 넘어왔나?”

- 설마 그러겠습니까?

“아니야?”

- 오천 년 동안 아무도 못 넘어왔는데 당연히 아니죠. 설사 적이 넘어왔다 해도 오천 년이나 지났는데 선장님을 노릴 리가요.

“매복이라며?”

- 선장님의 주변을 확인하던 중에, 전방 1km에서 수상한 트럭을 발견했습니다.

탐사대 지원위성에 탑재된 카메라 중에 제대로 작동하는 건 딱 하나뿐이다.

그 카메라는 탐색 범위를 바짝 좁히면 사람의 얼굴을 구분할 정도로 정밀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탐색 범위를 넓게 잡으면 해상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 범위를 1km 정도로 넓히면 사람의 얼굴은 구분할 수 없다.

대신에 도로의 상태나 차량의 종류는 확인할 수 있다.

“판단 근거는?”

- 트럭 주변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굳이 그곳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차를 세워놓고 잠을 자는 거라면?”

- 지금 선장님이 계신 그 도로를 지나가는 차를 들이받기 딱 좋은 위치에 서 있습니다.

“나를 노리고 매복했을 수도 있네?”

- 위치만 보면 그렇습니다.

선우현이 불평했다.

“와. 진짜 억울하다. 난 아무 일도 안 하고 진짜 조용히 지냈는데 누가 날 노리는 거야?”

- 놀고먹으신 건 맞는데 조용히 지낸 건 아니죠. 최근에도 청부업자들을 처리하셨으니까요.

“아. 그놈들한테 의뢰한 놈이 나를 노릴 수도 있겠네.”

- 전에 식당에서 잡은 놈들 말입니다. 두목이 조폭 출신 칼잡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그 조직에서 누굴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조직이 어디인지 알면 확 다 쓸어버릴 텐데.”

- 주먹으로요?

“아니. 폭탄으로.”

선우현이 세워뒀던 오토바이에 다시 올라탔다.

“어쨌든 내 앞에서 매복하고 있다는 거지? 뭐 하는 놈인지부터 확인하자.”

***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은 춘천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푸념했다.

“그 사고만 아니었어도 내 삶이 이렇게 망하진 않았….”

갑자기 그의 차 앞쪽으로 오토바이가 튀어나왔다. 차 내부에서 충돌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최종훈은 기겁했다. 차량의 긴급 회피 장치와 비상 정지장치가 충돌 위험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작동했다. 브레이크가 콱 걸렸다.

최종훈도 반사적으로 운전대를 꺾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의 차는 오토바이를 겨우 피했다.

최종훈이 욕을 내뱉었다.

“저 새끼 뭐야! 죽으려고 환장….”

갑자기 그의 차 옆쪽에서 대형 트럭이 나타났다. 그 트럭은 차의 앞부분을 조금 치고 그대로 지나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의 범퍼가 떨어져 날아가고 앞쪽 철판이 구겨졌다.

최종훈의 눈에 범퍼가 날아가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다가, 갑자기 모든 게 빨라지며 차가 빙글빙글 돌았다.

최종훈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으아악!”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다. 차가 도로 위를 빙글빙글 돌며 미끄러지다가 길을 벗어나면서 겨우 정지했다.

트럭은 차를 치고 그대로 도로를 달려 멀어졌다.

최종훈은 뺑소니차량을 보면서도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일 년 전에 당한 사고가 갑자기 생각났다. 겁이 나서 손이 덜덜 떨렸다.

“으으으….”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왜 또….”

선우현이 다가와 물었다.

“괜찮습니까?”

최종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금 전에 선우현의 오토바이가 그의 앞으로 끼어들어서 사고가 날 뻔했다. 게다가 결국 트럭과 사고가 났다.

화낼 곳이 생기니 몸이 움직여졌다.

최종훈이 떨리는 손으로 차 문을 열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 뭐야? 미쳤어? 오토바이를 그따위로 몰면 어쩌자는 거야! 피하다가 죽을 뻔했잖아!”

“아. 이런.”

“아 이런? 이 사람이 지금!”

“상황파악이 안 되나 본데.”

“상황파악 다 했어! 당신 거기 기다려! 내 차 블랙박스에 저 오토바이 번호판 다 찍혔어! 내가 당신 콩밥을….”

선우현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었다.

“내가 안 끼어들고 직진했으면, 트럭이 당신 차 정통으로 들이받았어.”

“어?”

최종훈은 정신을 차리고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 때문에 차량의 안전장치가 작동해 진행 방향이 바뀌고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걸렸다.

그 직후에 트럭이 그의 차 앞부분을 치고 지나갔다. 트럭이 스치듯이 친 덕분에 차가 조금 부서지는 정도로 끝나긴 했다.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만약 저 오토바이가 먼저 끼어들지 않았으면, 나는 대형 트럭에 옆을 정통으로… 들이받혔나? 아예 트럭 밑에 깔릴 수도 있었고?’

“어어? 그럼….”

선우현이 말했다.

“딱 봐도 죽을 각이라서, 급히 뛰어들어서 살려줬더니 화를 내네?”

최종훈도 이제야 상황판단이 됐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는 얼른 태도를 바꾸었다.

“제가 예전에 사고를 크게 당한 적이 있어서요. 그래서 잠깐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그가 조수석에 놓아둔 지팡이를 들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그는 왼쪽 다리에 문제가 있어서 지팡이가 필요했다.

최종훈이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알면 됐습니다.”

최종훈이 도로를 돌아보았다. 그대로 직진했으면 어떤 사고가 났을지가 눈에 선했다.

‘진짜 죽을 뻔했어.’

그는 이번에는 선우현의 오토바이를 쳐다보았다.

최종훈은 차만 좀 부서졌지 몸을 다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동차였다면 접촉사고로 끝날 사고도 오토바이의 경우는 탑승자를 죽인다.

최종훈은 자기가 조금 전에 선우현에게 한 행동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가 급히 사과하며 명함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큰 실례를 했습니다. 혹시 오토바이나 몸에 이상이 생기시면 이리로 연락 주십시오.”

선우현이 명함을 받았다. 어제 인터넷으로 찾아본 회사 마크가 보였다.

“어? JHC 테크?”

게다가 이름도 익숙했다.

“최종훈?”

“예. 제가 사장입니다.”

- 현지 협조자 후보입니다.

선우현이 작게 말했다.

“알아. 어제부터 관찰 대상에 올려놨잖아. 네가 계속 보고 있던 거 아니었냐?”

- 선장님이 외부 활동을 하는 동안은 최종훈을 관찰 대상에서 해제했습니다. 관찰한 거지 추적조사를 하던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관찰 결과는? 어떤 사람이야?”

- 최종훈은 외부 활동이 적어 관찰한 게 많진 않습니다.

“역시 대충 김수선.”

- 제가 어디 선장님만 하겠습니까? 어쨌든 인성 문제를 보인 적은 없습니다.

“그게 어디냐. 지난 며칠 동안 관찰한 다른 후보들은 인성 문제가 바로 나왔잖아.”

- 그건 그렇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만 콕 집어서 후보로 올리셨으니까요.

“걸러냈으면 됐지. 게다가 이번에는 이렇게 만나 연락처도 알아냈고, 내가 목숨도 한 번 구해줬네?”

- 지금으로써는 최종훈이 현지 협력자 조건에 가장 가깝습니다.

선우현이 김수선과 대화하는 소리는 하도 작아서 최종훈에게 들리진 않았다. 그저 혼잣말을 작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최종훈은 목숨을 구해준 사람을 의심한 게 미안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어쨌든 제가 위험한 사고를 당하지 않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우현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사고 아니던데.”

“예?”

“그 트럭, 일부러 최 사장님을 노리고 달려들던데.”

“그게 무슨….”

“내가 왜 갑자기 최 사장님 차 앞으로 뛰어들었을까요? 그 트럭이 최 사장님 차를 노리고 돌진하길래 일부러 끼어든 겁니다.”

최종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그 트럭이 서 있는 위치가 하도 수상해서 잠깐 보고 있긴 했습니다. 누가 무슨 원한이 있어서 공격당하나 싶었는데.”

원래는 선우현을 노리고 매복한 트럭인가 싶어서 잠시 보고 있었다.

선우현이 최종훈의 명함을 흔들었다.

“잘 나가는 회사 사장이 목표면, 원한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군요.”

최종훈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궁금합니다. 이런 사고를 왜 또 당하….”

문득 일 년 전 사고가 떠올랐다. 갑자기 왼쪽 다리에 송곳으로 찔리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그가 급히 다리를 손으로 잡았다.

“크윽.”

선우현이 물었다.

“왜 그럽니까?”

“다리가, 큭!”

다리를 찌르는 고통은 잠깐 오다가 사라졌다.

최종훈이 차 문을 활짝 연 채로 운전석 시트에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그는 왼쪽 다리를 차 밖으로 내놓고 주머니에서 진통제를 몇 알 꺼내 삼켰다.

“일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아주 큰 사고였죠. 그때 이 다리를 다쳤는데, 후유증이 남더군요. 그래서 가끔 이렇게 통증이 옵니다.”

지금은 통증이 금방 사라져서 그나마 견딜만했다. 본격적인 발작이 일어날 때의 고통은 훨씬 더 심했다. 그럴 때는 죽고 싶었다.

선우현이 물었다.

“치료를 받았는데도 그래요?”

최종훈이 한숨을 푹 쉬었다.

“국내 병원은 물론이고 미국 최고의 병원도 찾아가 봤습니다만, 원인 불명 판정이 났습니다. 원인을 모르니 치료도 불가능하죠.”

“많이 아픕니까?”

“발작이 제대로 올 때는 누가 칼로 푹푹 찌르는 것 같습니다. 며칠에 한 번씩 칼에 찔리는 기분이죠.”

“아. 그 기분 저도 압니다. 저도 옛날에 많이 찔려봤거든요.”

“예? 찔려요?”

“아니, 다쳐봤다고요.”

선우현은 지구연합에서 적과 싸울 때 많이 다쳐봤다.

최종훈은 이런 이야기를 평소에는 남에게 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말할 이유가 더 없다.

그런데 지금은 평소와 상황이 달랐다. 그는 방금 죽을 뻔했다. 놀란 마음이 아직 다 가라앉지도 않았다. 목숨을 구해준 선우현이 같은 편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상대가 공감까지 해주니 이야기가 더 잘 나왔다.

최종훈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평생 이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괴롭습니다. 이것 때문에 회사 일은 대부분 손을 놓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결정만 제가 하지요.”

“아하. 그러니까 논다는 거군요. 나도 노는 거 좋아합니다.”

“하하. 그거야 다들 그렇죠.”

“그런데요. 아무리 사장이라도 그렇게 놀면 안 잘립니까?”

“제가 지분 60%를 가지고 있거든요.”

“와. 부럽다.”

“제 지분이 많긴 하죠?”

“놀아도 안 잘리는 게 부러운 건데요. 난 잔소리꾼이 있어서.”

김수선이 한소리 했다.

- 잔소리해도 노시잖아요.

최종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쨌든 이런 저를 누군가가 굳이 제거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지금 회사 일은 직원들이 알아서 하는데요.”

선우현이 잠깐 생각하다 물었다.

“일 년 전에는 열심히 일하셨죠?”

“당연하죠.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그러면 일 년 전 사고가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닐 수도 있겠군요.”

“예?”

“그때 실패한 누군가가 의심받지 않으려고 일 년쯤 기다렸다가, 이번에 또 노렸을 수 있잖습니까?”

“설마요.”

선우현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수선아. 혹시 일 년 전 그 사고가 일어날 때 현장을 직접 봤냐?”

- 당연히 못 봤습니다. TV를 끼고 지냈더니 뉴스로는 봤습니다만.

“자동 녹화된 영상은?

- 찾아봐야 하지만 당연히 없을 겁니다. 지구가 얼마나 넓은데 그 순간에 딱 맞춰서 거길 촬영했겠습니까?

“하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