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4화 (14/281)

14. 협력자

은하소녀는 중소 기획사 폴라시 소속 아이돌 그룹이다.

폴라시 사장 박대석이 경찰서가 있는 곳까지 차를 몰고 와서 그녀를 태웠다.

박대석이 운전하며 말했다.

“민하야. 최 피디한테 네 상황을 설명했다.”

최 피디는 오늘 오민하가 참여하기로 한 예능 방송의 감독이다.

오민하가 물었다.

“그럼 우린 집으로 돌아가나요? 아니면 회사로 가요?”

“아니. 촬영 현장으로 바로 간다.”

“네?”

오민하가 항의했다.

“저 오늘 납치됐다가 살아났는데 스케줄을 소화하라고요? 와. 사장님.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피도 눈물도 없었어. 친조카 아니라고 이래도 돼요?”

오민하는 박대석이 아는 누나의 딸이다.

“이 상황에서 방송 촬영을 왜 해? 회사가 욕을 바가지로 먹을 일 있냐? 그리고 나도 너희 엄마에게 멱살 잡히기 싫다.”

“그럼 왜 거기로 가는데요?”

“넌 촬영 현장을 배경으로 그 앞에서 기자회견만 해. 그것만 해주면 그 예능 다음 회차에서는 게스트로 너만 부를 거야. 최 피디랑 이미 이야기 끝냈어.”

오민하는 원래는 오늘 다른 게스트 여러 명 사이에 섞여서 출연할 예정이었다. 그것도 스케줄을 빵꾸 낸 사람 대신에 땜빵으로 들어가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게 다음 회차 단독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솔깃한데요?”

***

은하소녀가 인기 걸그룹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예인이 납치됐다가 구출된 건 큰 사건이다.

촬영 현장은 경찰서에서 가까웠다. 그곳에는 이미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오민하가 오늘 있었던 납치 사건을 신나게 설명했다.

기자가 물었다.

“그런 일을 겪으셨는데 겁이 안 나세요? 이상하게 좀 신나신 것 같….”

“어머! 저 지금 진짜 무서운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거예요. 여기 제 손 좀 보세요. 손이 막 떨리는 거 보이시죠?”

사장 박대석이 얼른 오민하의 옆에 섰다.

“민하가 책임감이 워낙 강해서 이곳까지 왔습니다만, 보시다시피 촬영은 무리 아니겠습니까?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시죠.”

최 피디도 나섰다.

“오민하 씨는 다음에 다시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오늘 촬영은 저희끼리 잘 만들어볼 테니까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

오민하가 돌아오는 차에서 방긋 웃었다.

“사장님. 아까 나 손 떠는 연기 봤어요? 나 배우도 해볼까요?”

“배우는 안돼.”

“왜요?”

“네 얼굴로 배우랑 경쟁하는 건 무리야.”

“쳇.”

박대석이 걱정했다.

“근데 너 정말 괜찮은 거냐? 왜 그렇게 멀쩡해? 겁 안나?”

“저도 모르겠어요. 워낙 압도적인 걸 봐서 그러나?”

“응? 압도적인 거라니?”

***

강력사건 전문 기자 오경훈은 병원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그런 후에 형사팀장에게 기자 명함을 주며 대놓고 말했다.

“실종자들이 더 있다는 거 알고 왔습니다.”

형사팀장이 얼굴을 구겼다.

“어디서 들었습니까?”

“아까 병실 앞에서 큰소리로 말씀하시던데요. 정보 좀 주시죠.”

“내가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수사 정보를….”

“이게 지금 기사화되면 실종자들이 위험해질 수 있잖습니까.”

오경훈이 손가락으로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저한테 독점을 주시면 기사는 며칠 기다렸다가 쓰겠습니다.”

팀장이 손을 흔들었다.

“독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기사를 내든 말든 맘대로 해요.”

“예?”

팀장이 돌아서며 말했다.

“실종자는 모두 구출했으니까 맘대로 하라고요. 어디서 뒤늦게 찾아와서 뒷북이나 치고 말이야.”

오경훈이 팀장을 쫓아가며 다급히 물었다.

“잠깐만요! 그럼 실종자를 어떻게 찾았는지 그거라도 말씀해주시죠. 납치 피해자가 더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

경찰이 납치된 사람 세 명을 추가로 구출했다는 기사가 여러 언론사에서 나왔다.

[구출된 피해자들은 지역 재개발 문제로 조합과 다툼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익명의 제보자가 피해자들의 신분증을 경찰서로 보내줬다는 기사도 있었다.

오민하는 자기가 나온 기사를 찾다가 그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와…. 그놈들 그냥 나쁜 놈들이 아니었어.”

그녀가 납치 사건을 겪고도 빨리 안정을 찾은 건, 선우현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청부업자들을 때려잡는 모습을 직접 본 덕분이다. 선우현과 비교하니 청부업자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그런데 청부업자들이 저지른 다른 범죄 기사를 보니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 진짜 위험했었나 봐.”

기획사 사장 박대석이 물었다.

“괜찮겠어? 다음 회차 촬영은 미룰까?”

“사장님이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면 어떻게 해요? 당연히 빨리 찍어야죠!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

형사들은 실적을 올렸다. 오민하는 예능 방송 한 회차에 다른 게스트 없이 단독으로 출연할 기회를 얻었다.

선우현도 금괴는 좀 챙겼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번 일로 즐거워진 건 아니다.

그 지역 건설사 사장 이상만이 화를 벌컥 냈다.

“야! 김 실장! 넌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왜 내 금괴가 사라져!”

“죄송합니다. 그 청부업자들이 배신할 줄은….”

“이런 중요한 일은 네가 직접 처리했어야지!”

“만에 하나라도 제가 노출되면 사장님도 노출되니까, 일부러 아는 동생을 시켰는데 그만….”

“씨발. 박 의원이 금괴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상만은 정치인에게 뇌물로 보내려던 금괴는 청부업자가 중간에 가로챘다가 선우현의 손에 넘어왔다.

김 실장이 변명했다.

“청부업자 놈들이 잔금을 받다가 금괴를 봤나 봅니다. 그래서 눈이 돌아간 거 아닐까요?”

“그놈들은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감히 내 금괴에 손을 대?”

“원래 내일이 없이 사는 놈들이잖습니까? 오죽하면 평소에 하는 일이 납치겠습니까?”

“젠장. 경찰 수사는? 나까지 걸리는 건 아니겠지?”

“경찰 쪽에 힘을 좀 써보시는 게….”

“그 힘을 써줄 사람이 박 의원이라고! 자기한테 불똥이 튈 텐데 나서주겠냐? 어? 넌 이거 어떻게 해결할 거야!”

김 실장이 대안을 제시했다.

“사장님. 이번 일을 맡긴 녀석은 믿으셔도 됩니다. 나중에 뒤만 잘 봐주시면 입을 꽉 다물 겁니다.”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돈만 주면 입이 무거워지는 녀석입니다.”

이상만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젠장. 돈이 또 나가겠네. 근데 내 금괴를 통째로 가져간 그 새끼는 도대체 누구야? 어떤 새끼인데 감히 내 금을 슈킹하냐고!”

***

선우현이 옥상 구석 창고에 던져둔 금괴를 보며 투덜댔다.

“저건 열전도가 잘 되니까 라면 받침대로도 못 쓰겠네.”

- 심심할 때마다 조금씩 녹여서 금반지나 만들어보시죠.

“그렇게 해서 저걸 언제 다 팔아?”

- 어차피 그런 놈들을 털어서 생기는 돈으로는 우주왕복선을 못 삽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수선아. 현지 협력자 리스트부터 확보해.”

김수선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말했다.

- 선장님?

“왜?”

- 여기선 인터넷이 안 되는데요? TV에 나오는 사람만 보고 현지 협력자를 고를까요?

“어…. 일단 내가 현지 협력자 후보 리스트를 찾아볼 테니까, 넌 거기서 지상 관측 카메라로 대상자를 따라다니면서 인성 같은 거라도 좀 알아봐.”

- 알겠습니다.

“아. 근데 구하니 씨는….”

- 현지 협력자로 선정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만?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라….”

***

형사가 가수 구하니를 찾아왔다.

“구하니 씨. 어제 교통사고 당하셨죠?”

그녀가 조금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머. 수사 진행 상황을 직접 찾아와서 설명해주시는 거예요? 연예인 특별 대우를 이런 식으로 받아보긴 처음이에요.”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구나.”

형사가 설명했다.

“구하니 씨가 당한 사고는 청부업자가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저지른 겁니다.”

구하니는 깜짝 놀랐다.

“네? 청부요? 그럼 살인청부….”

“그 정도는 아니고,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만 다치게 하라고 했다더군요.”

구하니가 흥분했다.

“아니, 어떤 새끼가요?”

“네?”

“앗! 제가 원래 욕을 막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떤 강아지가요?”

“어…. 그것도….”

“욕 아닌데요.”

“아, 네. 누가 의뢰했는지는 청부업자도 모른다더군요.”

“그 말을 믿으세요?”

“당연히 아니죠. 그런데 돈만 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을 저지르는 놈들이라서,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형사가 설명을 계속했다.

“구하니 씨가 습격당하신 일은 언론에 나가지 않게 입단속 하고 있습니다. 그걸 청부한 놈은 이번에 체포된 놈들이 누구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아! 청부한 놈을 잡으려고 저에 대한 건 비밀로 하는 거군요?”

“물론이죠.”

그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도 주변에 입단속 시킬게요. 어제 그 사건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있긴 있다.

“한 명밖에 없거든요.”

형사가 질문을 계속했다.

“현장에서 납치 피해자들을 구출하고 사라진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지 찾고 있는데 혹시 짐작 가는 게 있으십니까?”

“네? 그 사람을 왜 찾는데요?”

“현장에서 증거품을 좀 가져갔거든요. 그걸 노리고 일부러 습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냥 인질들을 구하러 간 것일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진짜 의도가 뭔지는 찾아서 확인해야죠. 혹시 짐작 가는 사람 있으신지?”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니요. 전혀.”

형사는 질문을 좀 더 하고 돌아갔다.

혼자 남은 구하니가 곰곰이 생각했다.

“어제 청부업자들을 때려잡고 사람들을 구출한 남자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었다면….”

선우현도 어제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그녀를 구해주었다.

그녀는 선우현의 무술 실력이 혼자서 칼잡이 몇 명쯤은 순식간에 때려잡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걸 안다.

“선우현 씨가 또 해결한 거겠지.”

***

선우현이 말했다.

“그런데 구하니 씨는 일일 매니저 일당을 왜 안 보내주는데?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일당을 떼어먹으려고 그러나?”

- 계좌번호는 주셨습니까?

“어?”

- 연락처는요?

“아하! 그래서….”

- 선장님?

선우현이 얼른 말했다.

“수선아. 네가 구하니 씨 전화번호라도 좀 알아봐.”

- 여기서 어떻게 말입니까?

“구하니 씨가 전화를 받을 때 스마트폰 액정을 훔쳐보면?”

- 액정의 글씨를 식별할 정도로 자세히 보려면 촬영 범위를 아주 좁게 잡고 집중해야 합니다. 물론 대상자는 야외에 있어야 하고요. 언제 전화번호가 뜰 줄 알고 그걸 보고 있겠습니까? 현지 협력자 후보를 관찰할 때도 그렇게는 안 봅니다.

“안 되겠구나.”

- 안 됩니다.

***

일주일이 지났다.

구하니는 선우현이 먼저 연락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그날 일당을 보내야 하는 거야? 소속사에 연락…. 아. 난 이제 소속사가 없지.”

소속사는커녕 매니저도 없다.

“선우현 씨가 임시 매니저라도 맡아주면 좋을 텐데.”

선우현의 무술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들어서 알고 있다. 같이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았다.

그런데 연락할 방법이 없다. 구하니가 불평했다.

“그 남자는 왜 그날 먼저 가버려서 번호를 못 따게 하는 거냐고.”

***

선우현이 인터넷으로 현지 협력자 후보를 검색하며 투덜댔다.

“옛날에는 날씨 정보만 알려줘도 현지 협력자를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 그런 수법은 옛날에나 통했죠.

“한 이천 년 전까지는 잘 통했어.”

- 지금은 기상 위성이 있어서 여기서 파악한 날씨 정보의 가치가 예전처럼 대단하지 않습니다.”

“국지 날씨 예측은 지금도 우리가 더 정밀하게 하는데 말이야.”

- 맞습니다. 좁은 지역의 기상 정보는 우리가 더 잘 보죠. 그런데 지금 시대에 그런 정보로 어떻게 현지 협력자를 구합니까? 내일 현지 협력자가 있는 지역에 비가 온다고 예언하는 수법은, 몇천 년 전에나 통했습니다.

“음…. 구하니 씨를 현지 협력자로 하는 건 어때? 레드 포션까지 써서 살려줬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 선장님이 저와 함께 지원위성에 있을 때는 예술가를 현지 협력자로 선정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상에 가셨잖습니까? 왜 가셨습니까?

“땅 위에서 두 팔을 활짝 펴며 자유를 외치….”

- 우주왕복선 회사를 만들어서 여기로 보급품을 보내러 가셨죠. 구하니는 가수니까 분야가 너무 다릅니다.

“알았다고.”

선우현이 인터넷을 검색해 인물 정보를 하나 띄웠다.

“그럼 이번에는 이 사람 어때? JHC 테크 사장 최종훈.”

- 지난 며칠간 선장님이 후보로 찾은 사람들은 모두 인성에 문제 있었다는 거 아시죠? 어떻게 그런 사람만 골라서 찾아내시는지 참 신기합니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사람 인성까진 알 수가 없잖아. 어쨌든 JHC 테크는 국제특허를 다수 보유한 기술 전문 회사야. 이번 현지 협력자 조건에 딱 맞아.”

- 일단 며칠 정도는 여기서 최종훈이 어떤 사람인지 지켜보겠습니다. 그 후에 다시 이야기하시죠.

“그럼 나는 내일은 구하니 씨나 만나러 가야지.”

- 연락처를 알아내셨습니까?

“아니. 대신 이걸 찾아냈지.”

선우현이 다른 홈페이지 화면을 띄웠다.

“내일 춘천에서 하는 행사에 구하니 씨가 나오네? 직접 만나서 내 일당 내놓으라고 하려고.”

***

이튿날 JHC 테크 사장 최종훈이 차를 몰고 춘천으로 가면서 고민했다.

“차라리 은퇴를 할까….”

회사는 잘 나간다.

그가 만든 회사는 작은 연구소로 시작해 이제는 기술을 세계 여러 기업에 판매하는 중견기업이 되었다. 돈이 되는 특허도 여러 개 보유하고 있고, 연구 중인 것 중에는 결과가 기대되는 게 꽤 있다.

삼십 대인 나이에 그런 회사의 사장이 된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았다. 최종훈도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자랑 깨나 하고 다녔다.

그런데 일 년 전 사고로 모든 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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