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3화 (13/281)

13. 헬멧

경찰이 수갑을 찬 오민하를 보며 물었다.

“신분증이 없다고요?”

오민하가 얼른 대답했다.

“있어요. 차에.”

“차는 어디 있습니까?”

“몰라요. 저 나쁜 놈들이 어딘가에 버렸나 봐요.”

“우리한테 총까지 쏜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더 수상한데….”

그녀가 눈웃음을 쳤다.

“어머. 저 오민하예요.”

“예. 성함은 오민하. 주민등록번호는요?”

“저 은하소녀인데요?”

“우주에서 왔다고 해도 안 통합니다. 주민등록번호 말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아이돌인데요? 걸그룹 은하소녀 모르세요?”

“어….”

경찰이 오민하를 가만히 보았다.

촬영 현장에 가기 전에 예쁘게 했던 화장은 이미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납치될 때 바닥을 몇 번 구르면서 옷과 머리카락도 엉망이 됐다.

대충 보면 아이돌이 아니라 거지꼴로 보였다.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진짜예요! 인터넷에 검색하면 사진 나와요!”

경찰이 미심쩍은 얼굴로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걸그룹 은하소녀는 인기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인터넷에 이름을 치면 사진과 프로필 정도는 나온다. 오민하는 예능 방송에 가끔 출연하기 때문에 사진이 더 많이 나왔다.

“어? 진짜 연예인이네요? 저 연예인 처음 봅니다.”

“사인 해드려요?”

“아니요. 주민등록번호부터 부르세요.”

“아, 네.”

경찰은 그녀의 신분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소속사에도 연락했다.

소속사 사장 박대석은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기겁했다.

- 우리 민하 살아 있지요? 살아는 있는 거지요?

“물론이죠. 아주 멀쩡합니다. 경찰한테 총을 쏠 정도로요.”

- 예?

사장 오경훈은 그사이에 로드 매니저에게 다시 연락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했다.

오경훈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회사에 있는 직원에게 지시했다.

“당장 기자들에게 연락 돌려!”

현장에 출동한 형사들은 오민하와 로드 매니저를 일단 경찰서로 데려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형사들은 두 사람이 보고 들은 모든 걸 알고 싶어 했다.

오민하는 그녀가 본 걸 열심히 이야기했다. 선우현이 어떻게 납치 청부업자들을 무찔렀는지 말할 때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철문이 진짜 휴지처럼 구겨져서 안으로 날아오더라고요. 그걸로 먼저 한 놈 딱 처리하셨죠.”

“아. 철문이랑 같이 쓰러져 있던 놈이 그래서 그 꼴이었군요.”

“그분이 차에서 쓱 내리신 후에는 어땠는지 알아요?”

“모르니까 묻지요?”

“헬멧 앞에 이거 있죠? 유리 아니고 이거요. 차에서 내린 후에 왼손으로 이걸 쓱 올리시는데, 끼야아아! 진짜 영화였다니까요?”

“예. 헬멧을 쓰고 들어왔군요.”

“진짜 등장할 때부터 화려하게, 정말 화려하게 등장하셨다고요.”

“예, 예.”

“다음 놈은 그분이 하늘을 붕 날아서 발로 걷어차셨어요.”

“예? 하늘을 날아요?”

“네! 그건 분명히 에어 워크였어요.”

“아. 농구선수 출신일 수도 있겠군요.”

오민하는 선우현이 다른 놈들도 얼마나 화려하게 박살 냈는지 설명했다. 그러다 두목이 권총을 꺼냈을 때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쇠파이프를 던졌는데요. 그게 땅땅땅 튕기면서 창고 안을 한 바퀴 돌더니 두목 놈의 등을 정확히 때렸어요. 진짜 완벽한 샷이었죠.”

형사가 멈칫했다.

“예?”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건 한마디로 예술 그 자체였다니까요.”

“잠깐만요. 쇠파이프를 던졌는데 그게 실내를 한 바퀴 돌아서 도로 날아와 두목의 등을 때려요? 그게 말이 됩니까?”

“되던데요?”

형사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노트북 모니터를 보았다.

‘뻥이 너무 심한데? 앞에 한 진술은 믿어도 되는 거야?’

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르는데요?”

“아는 사이 아닙니까?”

“오늘 처음 봤어요.”

형사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납치범들을 무찌르고 두 분을 구해줬다고요?”

오민하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제가 보기엔 그 사람에게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좀 하죠.”

신나게 자랑하던 오민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가 얼른 손을 흔들었다.

“어, 없어요! 그분은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를 구해주러 오신 거라니까요?”

“모르는 사람이라면서요?”

“그러니까…. 이런 게 운명 아닐까요?”

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네에. 그럼 그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하시죠? 몽타주를 만들려면….”

그녀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얼굴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예?”

그녀가 잡아뗐다.

“생각이 안 나는 걸 어떻게 하라고요.”

두 사람은 일단 참고인 조사만 받고 경찰서를 나왔다.

그녀가 로드 매니저에게 물었다.

“거기서도 형사님이 몽타주 이야기를 했어요? 했죠? 뭐라고 했어요?”

“우리가 미리 이야기한 대로 기억이 안 난다고 했죠.”

“잘했어요. 내가 나중에 밥 한 번 살게요.”

“한우?”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김치볶음밥이요.”

“아…. 은하소녀는 가난하지.”

***

선우현은 기왕 전라북도까지 간 김에 전주에 들러 밥을 잘 먹었다.

그는 사람이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야외에서 가방을 열면 위성궤도에 있는 김수선도 볼 수 있다.

“이제 개봉하자.”

- 기대됩니다.

금속으로 만든 서류 가방은 번호키 방식으로 잠겨 있었다. 번호는 네 자리였다.

“그놈을 걷어차기 전에 번호라도 물어볼걸. 수선아. 이런 거 따는 법 아냐?”

- 당연히 모릅니다.

“그치? 우린 이런 거 안 쓰잖아. 전통적인 방식으로 열어야겠다.”

선우현이 근처에 굴러다니는 짧은 쇠막대를 주워 가방에 콱 꽂았다. 쇠막대가 잠금장치를 푹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상태로 힘을 주자 잠금장치의 단단한 금속이 우그러들다가 그대로 뜯겨 나왔다.

“자. 이제 엽니다. 열려라 참깨.”

선우현이 활짝 웃으며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휴대폰 크기의 금괴가 여러 개 들어 있었다.

“금괴다. 이야아. 금괴야.”

- 금괴네요.

“근데 왜 현금이 아니라 금괴지?”

- 그러게 말입니다.

선우현이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금괴는 돈으로 환전하기가 쉽지는 않겠지?”

- 금반지로 만들어서 조금씩 환전하면 되겠네요.

“이걸 다 금반지로 만들어 팔면 그게 더 이상하겠다.”

선우현이 툴툴댔다.

“젠장. 이걸 어디에 쓰냐.”

- 저한테 보내시면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탐사대 지원위성에는 금을 활용할 방법이 있다.

- 고장 난 장비 중에 금으로 수리할 수 있는 게 좀 있습니다. 소재가 달라서 원래 성능은 나오지 않겠지만, 수리가 된다는 게 어디입니까?

선우현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거기로 보내냐고.”

지상에서 우주로 뭔가 보내려면 인공위성용 로켓이라도 발사해야 한다. 지금 이 가방에서 나온 금만 우주로 보내는 건 배송 단가가 안 맞는다.

게다가 다른 회사의 로켓에 화물을 실어 보낼 때는 내용물이 뭔지 밝혀야 한다. 우주로 금괴를 쏘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은 없다.

- 역시 우주왕복선 회사를 손에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물을 마음대로 여기로 보낼 수 있습니다.

선우현이 가방을 확 뒤집었다.

“에이 씨.”

금괴가 땅바닥에 우르르 떨어졌다.

“이런 놈들은 털어봤자 돈이 안 되네.”

- 그러게 말입니다. 청부대금이 많을 거라더니 이게 뭡니까?

“현금이 없는 거지새끼들인 줄 누가 알았나.”

- 어쨌든 그거라도 챙기시죠.

“그래야겠지? 일단은 창고에 처박아놔야겠다.”

옥탑방 옆에는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작은 공간이 있다. 그들은 그곳을 창고라고 불렀다.

선우현이 금괴를 주워 가방에 다시 넣으려고 했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만. 이거 가방 두께가 좀 안 맞는데?”

그가 가방 안쪽 바닥을 손으로 누르다가 잡아 뜯었다. 바닥이 뜯겨나가면서 비밀공간이 나왔다.

그곳에 들어 있던 주민등록증 세 개가 땅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이건 또 뭐야?”

- 주민등록증이네요?

“여자 신분증도 있는 걸 보면 그놈들이 쓰려고 만든 위조는 아니겠어.”

- 그건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당연히 필요한 곳에 보내야지.”

***

경찰은 납치 감금 사건이 벌어진 창고를 철저히 수색했다.

청부업자 다섯 명은 형사들이 연행했다.

그런데 청부업자들은 모두 심하게 다친 상태라서 경찰서가 아니라 병원부터 가야 했다.

형사들도 병원으로 따라갔다.

형사팀장이 병원 복도에서 말했다.

“나 때는 말이야. 범인을 잡으면 일단 취조부터 하고 치료했는데 말이야.”

“근데요. 저놈들은 당장 치료 안 하면 큰일 날 거 같은데요?”

“담당 의사 만나서 물어봤다. 죽지는 않을 거라더라.”

다른 형사가 다가왔다.

“팀장님. 우리 사무실로 퀵이 하나 왔다는데요.”

“퀵? 누구한테 온 건데?”

“수신자가 이 사건 담당 팀으로 되어 있답니다.”

“그래? 알맹이가 뭐야?”

“주민등록증 세 장이요.”

“저놈들 거야?”

“아닙니다.”

“에이. 괜히 기대했네.”

“그런데 그중 하나에 피가 묻어 있답니다.”

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단 신분증이 누구 건지 신원조회부터 해. 그리고 그 퀵 누가 보냈는지도 알아봐!”

***

신원조회 결과는 금방 나왔다.

전화로 결과를 들은 형사의 얼굴빛이 나빴다.

“최근에 실종된 사람들의 신분증입니다.”

팀장도 얼굴을 구기며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들 당장 끌어내서 조사해. 실종자들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

“지금 수술실에 들어간 놈도 있….”

“다 들어간 건 아니잖아! 저 새끼들 치료 다 받기를 기다리다가 그사이에 실종자가 죽으면 우리도 망해! 병실에 있는 놈들부터 다들 붙어서 조사해!”

***

형사들은 범인들을 따로 가둔 후에 눈앞에서 주민등록증 세 장을 흔들며 닦달했다.

금방 실토하는 놈이 나왔다. 납치된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곳은 기존 사건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곧바로 형사들이 그곳에 출동해 피해자들을 구출했다.

형사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구출했어. 사망자가 없는 건 다행인데….”

다른 고민이 생겼다.

“신분증을 퀵으로 보내준 사람은 찾았어?”

“아니요. 도저히 못 찾겠습니다.”

“그걸 배달한 퀵 기사는 뭐래?”

“그게, 정확히 말하면 퀵 기사가 아니라 배달 음식 기사인데요. 신호등에 걸려서 서 있는데 누가 불러서 봤더니, 배달비 만 원을 주면서 여기로 봉투를 전해달라고 했답니다.”

“얼굴은?”

“헬멧을 쓰고 있어서 못 봤다는데요.”

팀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청부업자들을 습격한 사람도 헬멧을 쓰고 있었지?”

선우현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청부업자들을 때려잡았다.

선바이저를 올려도 거리가 멀 땐 얼굴이 잘 안 보였다. 바짝 붙어서 싸울 땐 맞느라 바빠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역시 실종자의 신분증을 보내준 사람은, 그 연예인을 구출한 그 사람이야.”

형사가 말했다.

“헬멧 때문에 제대로 못 봐서 그런지 다섯 놈이 설명한 얼굴이 다 다릅니다. 이대로는 몽타주 못 만듭니다.”

“그때 현장에서 구출된 연예인만 그 사람 얼굴을 제대로 본 것 같은데, 도무지 협조를 안 하니 원.”

형사가 주변을 둘러본 후에 슬쩍 제안했다.

“그런데 팀장님. 그 사람은 못 찾아도 되지 않습니까? 범인도 아닌데.”

“그 사람이 가져간 가방에 금괴가 들어 있었다잖아.”

“상황을 보면 거기 금괴가 있었는지는 몰랐던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긴 해.”

“그 사람이 실종자들의 신분증을 바로 보내준 덕분에 모두 무사히 구출한 거잖습니까? 모르고 며칠만 지났어도 그 사람들은 생명이 위험할 뻔했습니다.”

“그야 그렇지.”

“처음 납치된 사람들을 구한 것도 그 사람이고요.”

“그것도 그…. 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러니까 그 사람은 놔두고, 우선순위가 높은 일부터 집중하는 게 어떨까요?”

“음. 지금 우선순위가 제일 높은 건?”

“밥이죠. 저희 모두 계속 돌아다니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형사팀장이 잠깐 생각하다가 날카로웠던 눈빛을 풀며 말했다.

“에라이. 됐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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