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10화 (10/281)

10. 프린세스

제작진은 관객들이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건 일반 공연이 아니라 지역 행사라서 막는 건 불가능했다.

피디는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이 예능 방송의 본체는 어차피 노래가 아니다. 그래서 게스트로 참가한 가수들이 노래하는 모습이 방송 전에 인터넷에 돌아다녀도 상관없을 줄 알았다.

신곡을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많이 부르던 노래를 하는 것이니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다.

피디가 생각했다.

‘어차피 노래 대결에서 누가 이겼는지는 따로 촬영하니까, 인터넷에서 누가 이겼는지 궁금해하고 추측하는 게 시청률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디는 구하니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아…. 이거 본방에서 터트렸어야 했는데.”

조연출이 옆에서 말했다.

“피디님. 구하니 씨 노래 진짜 장난 아닌데요? 지난 일 년간 목소리가 좀 변했었는데, 지금은 완전 전성기 때인데요?”

“전성기 때보다 더 좋은 거 같다. 마치 한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질러대는데, 그게 진짜 듣기 좋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마치 스무 살의 에너지와 현재의 노련함이 합쳐진 것 같은 공연이네요.”

“설마 MR에 보이스를 입혀서 온 거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죠. 완전 생음악입니다.”

노래하면서 제일 놀란 사람은 구하니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예전 기량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노력했거나, 그동안 치료를 잘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 의사는 현대 의학으로는 그녀의 목 상태가 나빠지는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게 한계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그녀가 제일 놀랐다. 그렇지만 실수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프로다.

‘왜 내 목소리가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질렀다.

‘이유가 뭐가 중요해? 난 지금 만족해!’

구하니의 노래가 끝났다. 관객들이 박수를 쳤다. 앵콜 요청도 쏟아졌다.

방송 콘셉트 때문에 앵콜은 불가능했다. 그녀의 오늘 공연은 여기까지다.

선우현이 그녀의 공연을 본 후에 조용히 말했다.

“수선아. 구하니 씨의 목소리가 되게 좋다?”

- 제가 지금 과거 방송 영상을 녹화해둔 걸 찾아서 들어봤는데요. 구하니의 목소리가 스무 살 때보다도 좋아 보입니다.

“일 년 전부터 목 상태가 나빠졌을 텐데?”

- 지금은 완벽합니다.

선우현이 찜찜한 얼굴로 말했다.

“그동안 잘 치료받아서 나은 거겠지?”

- 당연히 선장님 때문입니다만?

“역시 그런가? 아니, 왜?”

- 아까 구하니가 목을 다쳤을 때 선장님이 레드 포션을 목에 사용하셨습니다. 레드 포션의 부수 효과일 확률이 높습니다.

“구하니의 목이 맛이 간 건 일 년 전일 텐데, 그것까지 회복시켰다고?”

레드 포션은 부상자의 현재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다. 과거에 이미 치료된 상처를 다시 회복시키지는 않는다.

- 상처의 종류나 사용자의 체질에 따라 효과가 약간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일 년 전 상처까지 회복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 그러게 말입니다.

“장기간 보관으로 변질된 포션의 재처리 과정에서 다른 이펙트가 생긴 걸까?”

- 사실, 오천 년이나 보관한 포션을 재처리했기 때문에 원래 상태와 똑같다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번에 내가 다쳐서 썼을 때는 괜찮았는데.”

- 다칠 때마다 바로 레드 포션을 사용해서 치료했으니까, 일 년이나 된 상처가 남아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만?

“그래. 그래서 포션이 변질됐다고, 아니, 충분히 숙성됐다고 하자. 레드 포션이 오천 년쯤 숙성되면 이런 효과가 생긴다는 거…. 밝혀진 적 없지?”

- 레드 포션을 오천 년이나 숙성시킨 사례가 있을 리가 있습니까? 지구연합 기준으로 레드 포션이 발명된 지 백 년도 안 됐는데요.

“그러면 관련 이론도 없을 테고.”

- 레드 포션을 만드는 방법과 치료 효과에 관한 이론은 다양하게 있습니다. 하지만 원료로 사용된 핵심 물질의 원리를 명확하게 밝혀낸 사람이 없습니다.

“소재에서 핵심 물질을 추출해서 레드 포션을 제작할 수는 있지만, 그 물질을 합성하는 기술은 없으니까.”

지구연합은 레드 포션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변질된 포션을 재처리해서 원상태로 복구하는 기술도 있다.

탐사대 지원위성에도 그 장비가 있다. 재처리 장치는 생존을 위한 필수 장비라 계속 유지보수를 했다.

하지만 지구연합조차도 레드 포션의 핵심 원료는 합성하지 못한다. 여러 연구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하고 여러 이론을 내놨지만, 합성에 성공한 곳은 없다.

“우주에서 오천 년이나 숙성시킨 게 저 현상의 원인이 아닐까 싶지만, 정확한 이유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거네.”

탐사대 지원위성에는 분석이나 재처리, 합성장비가 탑재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장비로 이 현상의 답을 찾아내긴 어렵다. 그건 지구연합이 작정하고 연구해도 못한 일이다.

선우현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뭐, 어쨌든 손해 본 사람은 없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 적극 찬성입니다. 계속 그 현장에 머무실 겁니까?

“촬영이 끝날 때까지만 여기 있어 주기로 했잖아. 그래야 일당을 받지.”

- 끝나자마자 바로 튀십시오. 그래야 그냥 넘어가기 좋습니다.

“당연하지. 구하니를 만났다가 오늘 사고에 관해 질문이라도 받으면 할 말이 없으니까.”

***

구하니는 공연이 끝난 후에 피디를 만났다.

피디가 활짝 웃었다.

“하하하. 구하니 씨. 목은 이제 완전히 나았나 봅니다.”

“아. 그게….”

“완치 선언을 이렇게 우리 방송에서 노래로 해 주시다니. 진짜 고맙습니다. 제가 이 신세 진짜 안 잊겠습니다. 하하하.”

스태프 중 한 명이 다가와 쪽지를 내밀었다.

“매니저분이 먼저 간다면서 이거 전해달라던데요.”

구하니가 쪽지를 받아 확인했다. 짧은 문장 하나만 적혀 있었다.

[촬영 끝났으니까 오늘 일일 매니저는 여기까지.]

“아….”

왜 문자가 아니라 쪽지를 남겼는지는 안다. 선우현은 구하니의 휴대폰 번호를 모른다. 구하니도 그의 번호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선우현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선우현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양미나가 달라붙었다.

“하니야. 목에 좋은 거 뭐 먹은 거 있어? 있으면 나도 좀 먹자. 어디서 샀는지만 가르쳐줘.”

구하니가 양미나를 쓱 쳐다본 후에 대답했다.

“좋은 거를 워낙 많이 먹어서 뭐가 효과가 있었는지 나도 몰라.”

병원에서는 목소리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는 없어서, 사람들이 목에 좋다고 하는 건 거의 다 먹어보았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목소리가 좋아졌다.

그녀가 양미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꾸준히 먹었던 게 드디어 효과를 본 거겠지.”

***

구하니는 집으로 돌아올 때 양미나의 차를 얻어타고 왔다. 양미나는 구하니가 그동안 먹었던 것들을 계속 물어보았다.

구하니는 굳이 숨길 이야기가 아니라 순순히 대답했다.

양미나가 그녀가 말하는 것들을 적다가 멈칫했다.

“굼벵이? 그것도 먹어야 해?”

구하니는 목에 좋다는 건 이것저것 많이 먹었지만, 굼벵이는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

그녀가 말했다.

“어. 굼벵이. 구워도 먹고, 끓여서도 먹었어.”

양미나가 갈등하다가 결심했다.

“알았어. 굼벵이도 추가. 네가 먹은 거 나도 다 먹어보면 그중 하나는 효과가 있겠지.”

***

구하니가 양미나의 차에서 내렸다. 양미나가 창문을 열고 말했다.

“진짜 내가 그거 다 먹어볼 거다!”

“그래. 꼭꼭 씹어먹어라.”

구하니가 집에 도착했다. 어둡던 집안이 환해졌다.

그녀가 옷을 벗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어떻게 된 걸까?”

오늘 노래는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훌륭했다. 일 년 전에 목을 다친 후로 이런 날이 없었다.

혹시 우연히 어쩌다 한 번 목소리 상태가 괜찮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부터 그 걱정이 자꾸 들어서 말은 해도 노래는 하지 않았었다.

그녀가 거울 앞에 섰다. 그 상태로 숨을 고르고 가벼운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노래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부르던 노래였다.

아까 공연했을 때처럼 아름다운 목소리가 너무 쉽게 입에서 나왔다.

“아….”

의심이 사라졌다.

“진짜로 목이 나았어.”

그녀가 거울 앞에서 손으로 목을 만져보았다.

“진짜 내 목소리가 돌아왔어.”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목은 깔끔했다. 작은 상처 하나 없었다.

그런데 반쯤 벗은 옷의 옷깃에 뭔가가 묻어 있었다.

그녀가 거울에 가까이 다가가 옷깃을 자세히 살폈다. 아주 작은 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이게 뭐지?”

갑자기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가 발신자부터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평소에는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는데, 오늘은 기다리는 전화가 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를 건 사람은 선우현이 아니라 경찰관이었다.

- 아니, 전화가 너무 안 되던데요. 차가 길가에 처박혔는데 신고만 하고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죄송해요. 촬영 시간이 빠듯해서요. 촬영 때문에 휴대폰을 꺼놨었어요.”

- 예? 촬영…. 어? 그럼 설마 진짜 가수 구하니 씨?

“네.”

- 아! 그냥 이름만 같은 분인 줄 알았는데….

“죄송해요. 제가 빠지면 촬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요.”

경찰관은 그녀가 구하니라는 말을 듣고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 아유. 그럴 수도 있죠. 아무도 안 다치고 부서진 것도 구하니 씨의 차뿐이니까, 방송부터 해결하셔야죠.

경찰관은 사건에 대해 굉장히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구하니는 설명을 집중해서 들은 후에 질문했다.

“그럼 제 차를 받으려고 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못 찾았다는 거죠?”

- 최선을 다해서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그 근처에는 CCTV가 전혀 없어서 조사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범인이 일부러 그런 장소를 고른 걸까요?”

- 일부러 사고를 일으켰다는 단서는 아직 없습니다만, 그것도 고려해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구하니가 손으로 목을 만졌다.

“그러면 혹시, 무슨 신기한 현상은 없었어요?”

- 신기한 현상이라니요?

“아니, 아니에요. 내가 무슨 말을….”

이번에는 형사가 물었다.

- 구하니 씨. 현장에서 다른 이상한 걸 혹시 보셨습니까? 그게 뭐든 단서가 될 수 있어서요.

구하니가 거울 속으로 옷깃을 비춰보았다. 옷깃 안쪽의 붉은 색이 핏자국처럼 보였다.

그녀가 그 자국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아니요. 그런 거 없었어요.”

***

구하니의 오늘 공연은 지역 행사에 방송국 예능 제작진이 끼어들어 진행한 것이다. 방송 촬영이 아니라 행사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공연 촬영을 막을 수 없었다.

공연을 보던 사람 중에는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가수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린 사람도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판에 구하니가 지역 행사에서 노래한 영상의 링크가 걸렸다.

고등학생 김인혁이 게시판을 돌아다니다가 그 글을 보고 링크를 눌렀다.

“구하니가 예전엔 노래 참 잘했는데, 이젠 맛이 갔….”

첫음절부터 목소리의 느낌이 달랐다.

“어?”

김인혁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노래를 들었다. 그는 영상이 끝난 후에 감탄을 터트렸다.

“와….”

눈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달아놓은 댓글로 향했다.

- 내가 지금 뭘 들은 거냐?

- 노래 쩐다.

- 역시 구하니!

그 영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 에이. 립싱크겠지.

그렇게 의심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구하니의 목소리가 너무 맑고 힘이 넘쳤다. 최근의 구하니의 목소리와는 꽤 달랐다.

그렇다고 안 믿을 수도 없다. 곧바로 반박이 붙었다.

- 누가 봐도 직접 부른 겁니다. 분위기 따라 마이크 흔들고 관객 목소리 들어가고. 저게 어떻게 립싱크입니까?

- 목소리가 맛 가기 전에도 저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러죠.

- 제가 듣기에도 조금 다르긴 합니다. 그렇다고 구하니가 예전에 저런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 노래는, 신인 시절 목소리와 전성기의 기교가 하나가 된 느낌?

구하니의 팬들은 그 영상을 보고 환호했다.

- 공주님께서 돌아오셨다!

- 빼앗긴 왕국을 되찾으셨다!

***

구하니가 교통사고를 당한 곳과 공연을 한 곳은 충청남도다. 그런데 선우현은 전라북도로 이동했다.

그의 앞쪽에는 낡은 건물이 있었다. 단층 건물인데 크기가 제법 커서 공장이나 창고로 쓰기 적당해 보였다.

- 구하니를 습격하고 도주한 트럭은 저 건물 옆쪽에 주차되어 있습니다.

“주변에 다른 집이 없네?”

- 그래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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