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8화 (8/281)

8. 회복

선우현이 다른 이유도 꺼냈다.

“우리가 구하니 노래를 좋아하잖아.”

-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살려야지.”

- 알겠습니다. 레드 포션의 복원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변질된 포션의 복원 작업에 에너지를 많이 쓰면 처리 속도는 빨라진다. 지금까지는 에너지 절약 모드를 써서 복원 속도가 느렸다.

- 레드 포션의 복원이 끝나는 대로 소형 강하 캡슐에 담아 보내겠습니다. 포션 재처리는 물론이고 캡슐 만드는 것도 다 자원을 소모하는 건 당연히 아시지요?

“그렇게 부담 안 줘도 당연히 알지. 새 레드 포션은 완성되자마자 보내. 나도 비상용으로 하나는 있어야지.”

- 지구의 대공 감시 시스템을 피하려면 캡슐 강하에 최소한 10시간, 확실히 회피하려면 24시간이 필요합니다.

선우현도 안다.

“내가 내려올 때는 착륙 캡슐이 커서 이틀이나 걸렸지. 10시간이면 빠르네.”

강하 캡슐의 크기가 크면 지구의 감시 시스템에 감지될 위험도 커진다. 소형 캡슐은 상대적으로 걸릴 위험이 낮지만, 그래도 내려보내는 데 시간은 필요하다.

- 선장님은 그때까지 다치지 마십시오. 포션 없이 다치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 내가 병원에서 CT나 MRI를 찍을 순 없으니까.”

선우현은 김수선과 대화하며 구하니의 상태를 조사했다.

구하니의 목에는 차량 실내에 있던 가늘고 긴 막대가 꽂혀 있었다.

“피는 거의 안 나네.”

그렇다고 괜찮은 건 아니다. 그 막대가 목에 꽂힌 상태로 출혈을 막아주기 때문에 피가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목을 막대기가 관통했는데 내부가 멀쩡할 리가 없다.

게다가 이 상태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벌써 터질 조짐이 보였다.

“그래도 늦진 않았어.”

선우현이 레드 포션이 들어 있는 작은 원통을 포션 주입 장치인 다른 원통에 연결했다.

“그런데 이거 고장 난 건 아니겠지?”

선체 외부의 장비를 분해하거나 수리하다 보면 다치는 일이 가끔 생긴다. 그가 가장 최근에 다친 건 근거리 방어 포탑을 분해할 때였다.

“저번에 썼을 때는 고장 났었잖아.”

그때는 이 휴대용 포션 주입 장치가 고장 난 상태였다.

어차피 선체에는 더 우수한 주입 장치가 있다. 그래서 그때는 휴대용 장치가 고장 나도 문제가 되진 않았다.

- 잘 수리했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또 고장 났으면?”

- 오늘이 구하니의 제삿날인 거지요.

“주입기가 또 고장 났으면 레드 포션을 깨서 부어야지. 그러고 구급차를 부르면 죽지는 않겠지. 목이 뚫렸으니 가수 생명은 끝나겠지만.”

포션 주입 장치는 가늘고 긴 원통처럼 생겼다. 그 장치에는 내부의 약물을 환자의 몸 적당한 곳에 침투시키는 기능이 있다.

포션은 액체라서 일반 주사기로도 환자의 몸에 넣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러면 특정 부위에 포션이 더 집중되거나, 혈관을 타고 몸의 다른 부위로 퍼지면서 희석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 상황을 피하고 포션의 효과를 최대한 끌어내려면 이 주입 장치를 사용해야 한다.

선우현이 사용하는 주입 장치는 바늘 하나에서 약물이 나오는 일반 주사기와 다르다. 이 장치를 사용하면 약물을 다양한 부위에 적절한 형태로 주입할 수 있다.

선우현이 원통형 포션 주입 장치의 세팅을 구하니의 목에 맞게 설정했다. 현재 상황에 맞춰 설정해야 할 게 몇 가지 있었다. 그런 건 그가 판단해서 직접 해야 한다.

선우현이 순식간에 설정을 마친 후에, 원통형 포션 주입기의 끝을 구하니의 목에 댔다.

“잘 돼야 될 텐데.”

그가 장치의 주입 버튼을 눌렀다. 즉시 미세관 수십 개가 장치에서 튀어나와 구하니의 목으로 파고들었다.

붉은색 포션이 곧바로 미세관 수십 개를 따라 피부를 통과했다.

포션은 구하니의 목 부분에 집중적으로 퍼졌다. 붉은색 액체는 신체 다른 부분으로 연결된 굵은 혈관은 피하면서 목 부분 신체 조직에 스며들었다.

레드 포션의 양은 많지 않았다. 주입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몇 초면 충분했다.

작업이 끝나자마자 수십 개의 미세관이 주입 장치로 돌아갔다. 장치의 상태 표시창에 포션 주입이 끝났다는 표시가 떴다.

선우현이 원통을 그녀의 목에서 떼었다. 그녀의 목에는 미세관 때문에 생긴 붉은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선우현이 원통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 이 주입 장치는 레드 포션을 새로 장착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이제 포션은 썼으니까.”

이물질을 제거해야 한다.

- 시간을 끌면 그 상태로 상처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알아.”

선우현이 그녀의 목에 박힌 막대를 쑥 뽑았다.

막대가 사라지면서 목에 작은 구멍이 보였다. 그 자리에서 피가 나오려 했다.

선우현이 얼른 손가락으로 그 구멍을 막았다.

레드 포션은 지구연합이 탐사대원의 생존을 위해 지원위성에 탑재한 물자다.

레드 포션의 상처 치료 능력은 빠르고 강력하다. 레벨 3짜리로도 작은 부상에는 마법 같은 치료 효과를 보여준다.

그녀의 목에 난 구멍이 빠른 속도로 아물었다. 상처의 깊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치료 속도였다.

선우현이 잠시 기다렸다가 그녀의 목에서 손가락을 슬쩍 떼보았다.

목에 핏자국이 살짝 묻어 있었지만, 출혈은 멈췄다.

“효과 죽이네.”

- 레드 포션은 언제나 최고입니다.

선우현이 이 지구의 사람에게 레드 포션을 쓴 건 지금이 처음은 아니다. 옛날에도 현지 협력자에게 포션을 보내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다만 그때는 지원위성에서 치료 과정과 결과를 망원경으로 봐야만 했다.

그때는 현지 협력자에게 원통형 주입 장치는 제공하지 않았다. 그럴 때는 포션을 상처에 바르거나 부어야 했다. 그래도 그 당시 기준으로 치료 효과는 엄청났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손으로 직접 포션을 주입하고 그 결과를 눈으로 보고 있다. 망원경을 통해 모니터로 볼 때와는 감회가 달랐다.

“수선아. 이 손으로 사람을 직접 치료했더니 느낌이 다르다.”

- 이 지구의 현지 협력자에게 레드 포션을 한두 번 제공한 게 아닌데요?

“모니터로 볼 때랑 다르다고. 야. 자꾸 따질래? 불만 있어서 그러냐?”

- 딱 하나 가져가신 레드 포션을 써버리셔서, 불만 많습니다만?

“그래도 살려는 놔야지. 어떻게 죽게 놔두냐. 구하니 씨의 노래는 너도 좋아했잖아.”

- 알겠습니다. 새 레드 포션을 보내드릴 때까지 부상에 주의하십시오.

“당연하지. 난 큰 병원에는 못 가니까.”

다목적 외상 치료 키트 HP-3의 효과는 굉장했다. 막대가 목을 관통할 때 만든 구멍은 이제 완전히 막혔다. 살짝 남은 흔적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게다가 레드 포션은 미세 주입관이 남긴 아주 작은 상처들도 완전히 아물게 했다.

이제 그녀의 목은 매끈해졌다. 뭔가가 관통했던 흔적은커녕 바늘로 찌른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김수선이 물었다.

- 구하니에게 부상이 완전히 치료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어차피 기절했잖아. 자기가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를 거야. 대충 넘어갈 수 있어.”

- 상처 주변에 피가 묻었을 텐데요?

“피는 거의 안 흘렀어. 목에 박힌 막대가 출혈을 막아줬더라고. 그나마 다행이지.”

그래도 약간의 피는 묻어 있었다.

선우현이 차에서 물티슈를 찾아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닦아주었다.

“됐다. 완벽해.”

이제 구하니를 완전히 살렸다. 적어도 오늘 이 사고로 죽지는 않는다.

선우현이 급한 일부터 해결한 후에 다른 문제를 꺼냈다.

“구하니를 트럭으로 공격한 놈은?”

- 도주하고 있습니다.

“추적 중이지?”

“물론입니다. 현재 선장님이 계신 곳과 도주하는 차량을 번갈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 위성에 눈이 하나만 남아서 아쉽다.”

탐사대 지원위성에는 원래 여러 대의 지상 관측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카메라들을 모두 사용하면 지상 탐사팀의 주변은 물론 원거리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지원할 수 있다.

이 지구 궤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모든 카메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오천 년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카메라가 하나씩 고장 났다. 그들은 고장 난 카메라의 부품을 모으고 아끼고 다시 만들어서 겨우 한 대만 정상 상태로 유지했다.

카메라가 없으면 지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자원을 끌어다 써서라도 카메라 한 대는 정상 상태로 유지했다.

“여기는 됐으니까 그놈 추적에 집중해.”

- 알겠습니다.

그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자동차 운전석에서 구하니가 정신을 차리며 신음을 흘렸다.

“으…. 아파. 목이 너무 아파.”

선우현은 살짝 당황했다.

“어? 뭐야? 왜 벌써 깨어나?”

- 레드 포션을 쓰셨잖습니까?

“목 부분에만 썼기 때문에 머리에는 영향이 없….”

다른 문제가 하나 생각났다.

“아. 맞다. 이거 진짜 아프지. 아파서 깨어나나 보다.”

- 처음 써보는 것도 아닌데 예상하지 못하셨습니까?

“너도 못했잖아.”

- 저는 도주하는 차량을 추적하느라 바빠서요.

“역시 김수선. 핑계가 떨어질 때가 없어. 그리고 이제 안 아플 텐데…. 낫는 동안만 아프지 다 나으면 통증이 사라지니까.”

구하니가 눈을 천천히 떴다.

“으…. 목이 잘려나가는 꿈을 꾼 것 같아. 진짜 아팠는데.”

이제 안 아프다. 그래서 그 고통이 꿈인가 싶었다.

그러다 사고 당시의 상황이 생각났다. 트럭이 달려들어 겨우 피했더니, 그 트럭이 유턴으로 돌아와 그녀의 차를 들이받았다.

“그 미친 새끼! 잡히면 가만 안….”

그녀는 운전석 바깥쪽에 누가 서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 트럭 기사?’

그녀가 다급히 운전석 문을 손으로 잡으며 외쳤다.

“너 누구야!”

선우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습니까? 아! 이거 혹시 기억상실? 야. 이거 일이 딱 좋게 풀렸….”

“어머! 선우현 씨?”

“아니구나. 아는구나.”

겨우 며칠 전에 본 사람인데 못 알아볼 리가 없다.

“선우현 씨가 여기 왜….”

“오늘 공연하는 거 구경하려고 가다가, 차 사고가 났길래 도와주러 왔습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이 구하니 씨인 줄은 몰랐지만요.”

그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만 말했다. 지원위성에서는 구하니의 얼굴이 차 지붕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선우현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녀가 사고를 당했다는 걸 몰랐다.

다만 사실을 다 말하지는 않았다. 범인을 추적 중이라는 것도 말하지 않았고, 그녀의 상처를 치료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구하니는 사고 직후의 상황이 생각났다. 목에 막대가 꽂혀 있는 걸 룸미러를 통해 봤었다.

그녀가 황급히 목을 만졌다.

“아! 나 여기….”

목이 말끔했다.

“여기 다쳤었는데….”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따졌다.

- 어디를 다쳤는지도 모를 거라더니, 다 알잖습니까?

“그러게.”

- 역시 선장님이십니다. 천 년 전에 우리 위성 궤도를 딱 맞게 지나가는 유성을 추적할 때도 선장님이 대충 하다가 결국 놓쳤잖습니까? 그때 그것만 잡아서 자원을 뽑아냈으면 장비 하나 정도는 더 유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거 고려 시대 때 이야기잖아. 그걸 왜 지금 따지냐?”

- 신라 시대 때 실수하신 이야기도 할까요?

구하니는 당황한 얼굴로 목을 만져보고 차에 내장된 화장 거울에도 비춰보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다쳤었는데. 여기 뭐가 꽂혔었는데.”

선우현이 구하니에게 말했다.

“멀쩡한데요? 사고 충격으로 착각했겠죠.”

“아닌데. 여기 봐요.”

그녀가 조수석에 굴러다니는 장식품을 가리켰다.

“이게 망가져 있잖아요. 그리고 여기 있던 막대가 하나 없어졌다고요. 그게 제 목에 꽂혔던 거 같았는데….”

“그건 창문 밖으로 날아갔을 겁니다. 창문이 열려 있었으니까요.”

구하니는 혼란에 빠졌다.

그녀는 사고를 당한 직후에 거울에 비친 목의 모습을 잠깐 보았다. 그때는 목에 가느다란 막대가 꽂혀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사고 충격으로 혼란에 빠진 상태라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목이 너무 멀쩡했다. 아무리 봐도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기억과 눈에 보이는 현실이 다르면, 보통은 현실 쪽을 믿기 마련이다.

“그런가?”

그녀는 일 년 전에도 사고를 당해 목을 다쳤었다.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또 사고가 나니까 목을 다친 것처럼 착각한 건가?’

그것 외에는 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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