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7화 (7/281)

7. 레드

충청북도에 있는 소도시에서 지역 행사가 열렸다.

KMTV 방송국이 그 지자체와 협의해 그 행사를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쓰기로 했다.

방송국에서는 가수를 세 명 섭외해 그 행사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 가수들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행사에서 노래도 할 예정이다.

가수 구하니도 그 행사에 초대됐다.

구하니가 차를 직접 운전해 그 소도시로 향했다.

“높이 올라갔다가 추락하는 거, 정말 순식간이네.”

그녀는 현재 소속사가 없다.

원래는 있었는데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서 손을 털고 나왔다.

예전의 구하니라면 메이저 기획사들이 줄을 서서 와달라고 할 텐데, 지금은 메이저 중에는 그러는 곳이 없었다.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동안 하도 행사를 많이 뛰는 바람에 목 상태가 나빠졌다. 목소리가 전성기 때보다는 못하다는 소리도 종종 들었다.

그러다 일 년 전에 사고를 당했다. 그때 가수의 생명인 목을 다쳤다. 그 후유증으로 음색이 나빠지고 고음도 예전만큼 내기 어려워졌다.

그녀의 이름값이 있으니 다른 기획사에서 전속계약을 제안하려면 좋은 조건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목소리가 변한 후로 행사의 반응이 예전만 못했다. 후유증 때문에 신곡을 내는 것도 부담스럽다. 목 상태는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없다.

게다가 기존에 갈라선 기획사의 방해도 있었다.

그래서 대형 기획사들은 그녀와 손잡는 걸 포기했다.

중소 기획사 몇 곳에서 접근했지만, 모두 그녀의 이름값을 팔아 한 몫 챙기려는 곳이었다. 그걸 눈치채고 다 거절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은 소속사도 없고 매니저도 없다. 괜히 며칠 전에 선우현에게 임시 매니저를 제안했던 게 아니다.

“빨리 사람 구해야겠다.”

아무나 구할 수는 없다.

예전 소속사 사장은 스파이를 매니저로 보내거나, 아니면 그녀의 새 매니저를 매수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대형 기획사 경력직 매니저 자리와 두툼한 돈 봉투를 이용하면 새 매니저 매수가 불가능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믿을만한 사람을 찾는 중이다.

그녀가 한적한 도로를 운전하며 선우현을 떠올렸다.

“그 사람이 매니저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도와줬으면 참 좋았을…. 앗!”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었다. 그녀의 차는 승용차인데 상대편 차는 트럭이다. 그대로 충돌하면 그녀가 죽을 수도 있다.

구하니가 황급히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차 두 대가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고 차 옆면이 죽 긁혔다.

갑자기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하악!”

일 년 전에 겪은 사고가 생각났다. 몸이 덜덜 떨렸다.

그녀가 겨우 차를 세운 후에 몸을 더듬었다. 다친 곳은 없었다.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자동차 유리를 내리고 트럭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운전 똑바로 해!”

스쳐 지나간 트럭은 도로 중간에 정지한 상태였다.

그녀가 트럭의 번호판을 보았다. 흙이 잔뜩 묻어 있어서 번호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저대로 뺑소니치면 잡지도 못하겠다.”

그 트럭이 한적한 도로에서 천천히 방향을 돌렸다.

“그래도 사과는 하러 오나 봐? 미안한 줄은 알….”

방향을 바꾼 트럭이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속도를 높였다. 트럭이 정확히 구하니의 차를 향해 달려왔다.

“왜, 왜 이쪽으로…. 꺄악!”

트럭이 그녀의 차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그녀의 차가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가 경사로에 처박혔다.

트럭에서 사람이 내렸다. 얼굴은 마스크로 가리고 있었다.

그는 도로 위에서 경사로 아래에 처박힌 구하니의 차를 보며 말했다.

“죽지는 않았겠네.”

남자는 곧바로 트럭을 타고 현장을 떠났다.

구하니는 너무 아파서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구급차를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기울어진 룸미러에 그녀의 목이 보였다. 목 한가운데에 기다란 막대가 박혀 있었다.

그건 차 앞쪽에 올려둔 장식품의 부속이다. 사고 순간에 그 가느다란 막대가 날아와 목에 꽂혔다.

목이 뚫린 상태라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수는 못 하겠다.’

지금 상처는 일 년 전 사고 때보다 심각했다.

목이 너무 아팠다. 게다가 여기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다.

‘나, 이렇게 죽나?’

그동안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정신이 흐려졌다.

***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보고했다.

- 지금 계신 도로의 2km 전방에서 차량 충돌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교통사고냐?”

- 습격입니다. 승용차 한 대가 도로 바깥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공격한 트럭은 도주했습니다.

“일단 가보자.”

선우현이 가속 레버를 당겼다. 굉음과 함께 오토바이의 속도계 바늘이 휙 돌아갔다.

그 도로는 폭은 중앙선 양쪽으로 한 차선씩밖에 없을 정도로 좁았다. 게다가 한적해서 지나다니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더 가속했다. 250cc 오토바이의 속도계 바늘이 점점 높은 숫자를 가리켰다.

도로는 직선이 아니라 굽어 있었다. 작은 언덕 너머는 보이지 않았다. 이 속도로 그 커브를 돌았는데 맞은편에 중앙선을 침범하는 차라도 있으면 바로 대형사고가 난다.

김수선이 위성 궤도에서 도로의 앞쪽 상황을 살피며 말했다.

- 맞은편에서 접근하는 트럭이 중앙선을 절반가량 침범했습니다. 지금 코스로 가면 코너를 도는 도중에 트럭과 충돌합니다.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오른쪽으로 붙이며 옆으로 눕혔다. 오토바이가 코너 안쪽을 빠르게 타고 돌았다. 타이어가 미끄러지지 않고 버티는 한계 속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고 달렸다.

코너를 돌던 트럭이 깜짝 놀라 휘청였다. 선우현은 트럭 옆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 트럭이 정지했습니다. 운전석에서 사람이 머리를 내밀고 뭔가 외치고 있습니다.

이미 선우현의 위치에서는 그 트럭이 보이지 않는다.

“욕이겠지.”

그런데 조금 전에 본 게 있다.

“저 트럭, 앞이 조금 찌그러져 있더라.”

- 승용차를 공격한 트럭입니다. 트럭이 다시 출발했습니다.

“공격당한 승용차의 상황은?”

-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부터 확인하자.”

오토바이는 2km 정도는 순식간에 주파했다. 도로변 경사로 아래에 승용차가 처박혀 있는 게 보였다.

선우현이 브레이크를 콱 당겼다. 오토바이가 타이어 타는 소리를 내며 도로변에 정지했다. 아스팔트 위에 검은색 줄이 두 개 생겼다.

선우현이 경사로를 뛰어 내려갔다.

운전석 창문 유리는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운전석에 목에 가느다란 막대가 꽂힌 사람이 보였다.

그런데 얼굴이 익숙했다.

“어? 구하니?”

- 예? 구하니가 왜 거기 있습니까?

“이쪽으로 가면 구하니 씨가 공연하기로 한 지역 축제가 있잖아.”

선우현도 구하니의 노래를 직접 들으러 그곳으로 가던 중이다.

“가던 길에 공격당했나 보다.”

선우현은 사건 발생 보고를 듣자마자 2km 거리에서 고속으로 달려왔다. 구하니가 사고를 당하고 이제 겨우 일 분이 지났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목에 막대까지 꽂힌 구하니에게 일 분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그녀는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사람이 나타난 걸 보고 입을 뻐끔거렸다.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을 다쳐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 일 분 동안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았다. 몇 번이나 정신이 나갈 뻔했지만 겨우 버텼다.

그러다 선우현의 얼굴을 보았다. 아는 사람을 본 그녀가 마음을 아주 조금 놓았다.

그녀는 더 버티지 못하고 기절했다.

선우현이 지원위성에 있는 김수선에게 지시했다.

“그 트럭이 어디로 가는지 추적해.”

김수선은 지구의 위성 궤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트럭이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눈을 피할 수 없다.

- 이미 추적 중입니다.

지원위성에 제대로 작동하는 다목적 카메라는 한 대뿐이다. 선우현과 트럭을 동시에 관찰하면 탐지해야 하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게 된다. 탐지 범위를 넓힐수록 사물을 정밀하게 보는 성능은 떨어진다.

- 트럭에 집중해서 추적할까요?

“구하니 씨의 상태도 확인해야 하니까 교대로 봐.”

- 알겠습니다. 선장님의 위치와 트럭의 위치를 교대로 관찰하겠습니다.

선우현이 구하니의 상태를 확인했다.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다. 충격은 꽤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얼굴은 멀쩡했다.

문제는 목이다. 목에 꽂힌 막대의 위치가 심상치 않았다.

“젠장. 이거 위험한데?”

- 119에 전화하십시오.

“부상 부위가 안 좋아. 지금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보낸다고 해도 살린다는 보장이 없어.”

다른 문제도 있다.

“설사 산다고 해도….”

선우현이 의사는 아니지만, 사람이 어디를 어떻게 다치면 무슨 결과가 생기는지는 잘 안다.

그가 구하니의 목에 꽂힌 가느다란 막대를 보며 말했다.

“목소리를 잃을 거야.”

- 구하니의 노래를 좋아하셨는데, 아쉽습니다.

“살리자.”

- 물론 살려야 합니다. 어서 119에 전화를….

“레드 포션을 써야겠어.”

김수선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 잘 못 들었습니다?

“HP-3을 써야겠다고.”

- 그걸 몰라서 한 말이 아닙니다만?

HP는 탐사대가 보유한 휴대용 다목적 외상 치료 키트의 모델명이다. 뒤에 붙은 3은 치료 효과가 레벨 3이란 뜻이다.

그 키트의 핵심인 치료제는 붉은색 액체 형태로 존재한다. 레벨에 따라 색의 진하기가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붉은색이었다.

그래서 선우현은 HP 시리즈를 레드 포션이라고 불렀다.

선우현이 안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상자를 꺼냈다. 상자 자체는 지상에서 만든 것이라 특별하지 않았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진짜였다.

선우현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작은 금속 원통이 두 개 들어 있었다.

“구하니가 다친 건 목이야. 다른 곳은 괜찮아 보여. 그러니까 목에 레드 포션을 쓰면 살릴 수 있어.”

레드 포션은 평행세계 지구의 부상자 치료에 혁명을 일으킨 기적의 치료제다.

그가 지상에 내려올 때 가져온 포션은 3레벨짜리다. 그걸 쓰면 가느다란 막대가 목을 관통한 부상 정도는 충분히 치료한다.

- 물론 살릴 수야 있겠죠.

김수선이 까칠하게 나온 건 레드 포션으로 그녀를 살릴 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살릴 수 있다는 건 아주 잘 안다.

그런데 선우현이 지금 소지하고 있는 레드 포션은 하나뿐이다. 김수선이 경고했다.

- 그 레드 포션은 선장님이 위험해질 때 쓰셔야 합니다.

“포션은 위에 남는 거 많잖아.”

탐사대 지원위성에는 원래는 다양한 보급품이 많이 탑재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대량의 레드 포션도 있다. 포션만이 아니라 다른 보급품도 많았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급품은 지난 오천 년 동안 지원위성의 선체를 유지 보수하는 데 소모했다. 식량은 이미 초반에 다 먹어치워서 그동안은 유기물 재처리 합성장치로 만들어낸 것만 먹어야 했다.

현대에 와서는 인류가 인공위성을 발사한 덕분에 우주 쓰레기가 생겨 자원 상황이 좀 나아지긴 했다. 그런데 그 전까지는 쓸 수 있는 건 다 뜯어 써야 했다. 보급품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다만, 레드 포션은 위성 수리용으로는 딱히 쓸 데가 없었다. 사람에게 쓰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포션은 생명유지장치를 가동할 때도 소량이 사용된다.

그래서 다른 보급품과는 달리 레드 포션은 그동안 일부만 소모하고 나머지는 처음 보급받은 그대로 보관된 상태였다.

문제는 포션의 재고량이 아니라 보존 기한이다.

김수선이 말했다.

- 선체에 보관 중인 레드 포션은 모두 변질된 상태입니다.

레드 포션의 보존 기한은 길지 않았다. 일 년만 지나도 보유한 모든 레드 포션은 변질돼 효능을 잃는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지구연합은 그 문제를 장비를 사용해 해결했다.

“포션은 하나 더 복원 중이잖아. 다음 레드 포션의 복원은 아직 안 끝났어?”

탐사대 지원위성에는 변질된 레드 포션을 재처리해 다시 만들어내는 장비가 있다.

그걸 재처리해 복원하려면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해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한 개의 비상용 레드 포션만 복원에 선체에 보관했다.

그런데 선우현이 지상에 내려오면서 그 레드 포션을 가져왔다.

이제 위성에는 사용 가능한 레드 포션은 남은 게 없다. 그래서 김수선은 선우현이 지상에 내려갔을 때부터 곧바로 다음 레드 포션의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 우리 장비로 변질된 포션을 재처리해 복원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아직 처리 중입니다.

선우현이 기절한 구하니를 보았다. 이대로 두면 죽을 게 뻔했다. 설사 산다 해도 목소리를 잃는다.

“내가 이 아가씨한테 밥을 얻어먹었어. 나한테 밥을 산 사람은 이 아가씨가 처음이야. 그러니까 살려야겠다.”

- 제가 그동안 선장님께 만들어준 밥이 얼마나 많은데, 그건 다 콧구멍으로 먹었습니까?

생명유지장치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신체 활동이 정지되니까 식량이 필요 없다. 하지만 일어나 활동할 때는 뭔가 먹어야 했다.

“그건 유기물 재처리로 만들어낸 칼로리바잖아.”

- 그걸 먹어서 안 굶어 죽었으니까 밥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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