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기체
다양한 요리가 중식당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선우현은 그 요리 하나하나를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
그들은 주변 일을 대화 소재로 삼았다. 구하니의 다음 행사 이야기도 하고, 안유정이 막내 작가로 일하는 예능 방송 이야기도 했다.
그러면서 일주일 전 무장강도 사건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선우현은 그런 이야기에 대충 반응하며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가 맛을 보는 모습이 너무 진지했다.
안유정이 슬쩍 호구조사를 들어갔다.
“혹시 요식업계에 계세요?”
“아닙니다.”
“그럼 요즘 무슨 일 하시는데요?”
“세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이 시간에 이렇게….”
“그렇죠.”
“노시는구나.”
김수선이 말했다.
- 지상에 내려간 첫날 잠깐 일하고 나서 일주일 내내 놀고 계십니다.
선우현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죠. 놀고 있습니다.”
옆에서 음식을 깨작대던 구하니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무술 실력이 그렇게 대단하시다면서요?”
안유정이 신나서 말했다.
“언니. 이분 실력은 진짜라니까? 혼자서 칼을 든 다섯 놈을 진짜 쾅쾅 때려잡으셨어. 힘이 얼마나 세신데.”
구하니는 방금 선우현이 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가 슬쩍 제안했다.
“혹시 제 매니저를 잠깐 하실 생각 있으세요?”
“없습니다.”
구하니는 이렇게 단칼에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인기 가수의 매니저 자리를 모든 사람이 원하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그렇다고 이 상황이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우리 업계 사람이 아니니까 생각도 안 해보고 거절한 거겠지.’
그녀가 얼른 설명을 추가했다.
“아. 정식 매니저 말고요. 방금 저희끼리 이야기한 공연이요. 그날 임시 매니저가 필요해서요. 제가 사례는 확실히 할게요.”
지금 먹는 밥은 안유정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사는 것이다. 이걸 먹는다고 해서 다른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일을 너무 오래 해서, 이제 놀 겁니다.”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따졌다.
- 선장님이 언제 일을 하셨다는 겁니까?
선우현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오천 년을 휴가도 없이 일했잖아.”
- 생명유지장치에서 보내신 시간은 빼셔야지요?
“활동한 시간을 다 더하면 백오십 년이야.”
- 깨어있을 때는 불평만 하면서 노셨습니다만?
“외딴섬에서 혼자 등대지기를 하면 거기 있는 것 자체가 근무하는 거야. 오천 년 동안 일한 거 맞아. 그것도 추가근무수당이나 격오지근무수당도 없이.”
- 월급도 오천 년째 못 받았는데 그런 수당이 어디 있습니까?
“이 지구에는 그런 제도가 있더라. 그러니까.”
선우현이 구하니에게 말했다.
“난 그냥 놀 겁니다.”
***
선우현과 구하니, 안유정은 결국 밥만 먹고 헤어졌다.
구하니가 차에서 말했다.
“저 사람 말이야. 내가 부탁하는데 하루 도와주는 것도 안 된다고 하잖아. 나 이제 이렇게 끗발이 안 사나?”
안유정이 운전하며 말했다.
“에이. 일반인한테 매니저를 하라고 하니까 그러지.”
“사례는 확실히 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드리려고 했는데?”
“돈도 넉넉히 드리고, 식사도 한 번 더 대접하고.”
차가 신호등에 걸렸다. 안유정이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뭐지? 언니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드디어 이 언니 시집가나?”
“이년이 미쳤나?”
“어허. 고운 말. 고운 말. 남들은 언니 이런 사람인 거 몰라. 팬이 들을까 무섭다.”
“나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거 몰라? 내가 지금 스캔들 터지면 벼랑 아래로 굴러떨어져. 오는 남자도 다 쳐내야 할 판이야.”
“아니, 그러면 왜 식사까지 하면서 그분을 붙잡으려는 건데?”
“무술 진짜 잘한다며. 알고 지내면 든든할 거 같아서.”
***
선우현이 사흘을 더 지상의 문화를 즐겼다.
맛있는 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먹는 것만 즐긴 건 아니다.
위성 궤도에서 지상을 보면서 지내는 동안 하고 싶었던 게 많았다. 모니터로만 보던 각종 공연과 축제도 이제 현장에서 볼 수 있다.
“아. 맞다.”
공연과 축제가 겹친 게 하나 생각났다.
“구하니 씨가 매니저 맡아달라던 그 행사 말이야. 그거 보러 갈까?”
- 노신다면서요?
“그러니까 공연만 보려고.”
- 구하니는 단독 공연도 아니고 지역 행사에 잠깐 나가는 겁니다만?
“현장에서 보면 좋잖아. 그리고 그날 워낙 잘 얻어먹어서 모른척하기 조금 그러네.”
- 지방 공연입니다. 거리가 멉니다.
“차가 있으면 멀리 다니기 편하겠지? 한 대 사야겠어.”
- 사십시오. 현금이 충분히 있으면.
“어…. 지갑에 카드가 있더라.”
- 카드 한도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일단은 차 말고 오토바이로 하자.”
***
선우현이 동네 오토바이 가게를 방문했다.
바퀴가 작고 배기량도 작은 스쿠터나 125cc 오토바이 중에 저렴한 물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저렴했다. 싼 건 상태가 안 좋았다.
가게 주인이 저렴한 오토바이를 추천했다.
“도시100. 1리터로 100키로를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비가 좋죠.”
“50킬로미터도 가기 전에 분해될 것 같은 상태인데요?”
“기계 좀 볼 줄 아시나 보네요?”
“오랫동안 기계를 수리했으니까요.”
“하하. 그러시구나. 에이. 그럼 아시겠네. 세상에 싸고 좋은 기계가 어디 있습니까?”
김수선이 한마디 했다.
- 예산이 부족합니다. 그거라도 사십시오.
“그래도 이건 아니지.”
가게 주인이 말했다.
“기계를 잘 아신다니까, 싸고 좋은 게 하나 있긴 있는데….”
가게 주인이 구석에 덮여 있는 천을 치웠다. 그 밑에서 250cc짜리 오토바이가 나왔다.
“이게 상태는 좋은데 많이 쌉니다. 제가 매입한 건 아니고 판매를 부탁받은 건데, 이건 어떠십니까?”
“세상에 싸고 좋은 기계는 없다면서요? 이건 문제가 뭡니까?”
“그게…. 사고가 났는데 이게 오토바이다 보니까 운전자가 많이 다쳤습니다. 그래서 싼 겁니다. 주인이 재수 없다고 싸게라도 팔아달라고 해서요.”
“이거로 하죠.”
“그런데 사실, 그런 사고가 주인이 바뀔 때마다 나서….”
“몇 번이나요?”
“세 번이요. 재수가 없는 오토바이라니까요.”
“음…. 그러면, 헬멧은 서비스?”
“예?”
“재수가 없는 물건을 팔아버리시는 건데, 서비스는 주셔야죠.”
선우현은 멀쩡해 보이는 중고 250cc 오토바이를 백만 원에 샀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 가격으로 살 수 없는 오토바이지만, 사고가 반복된 물건이라 헐값에 넘겨받았다.
김수선이 경고했다.
- 오토바이는 자동차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옛날에 내가 조종했던 기동장비 중에는 스트라이크 바이크도 있었어. 난 에이스 오브 에이스였지.”
- 스트라이크 바이크에는 탑승자를 보조할 주행 안전장치가 있잖습니까?
“오염지역 전술 침투용은 그런 거 없다.”
- 그래도 탑승자를 물리적으로 보호할 외부 장갑 정도는 있지요. 지금 산 그 중고 오토바이에는 탑승자의 몸을 보호할 게 아무것도 없고요.
“말 탄다고 생각하자. 말. 옛날에 말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하늘에서 카메라 렌즈로 보면서 부러워했잖아. 광활한 초원을 나도 달리고 싶었다고.”
-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토바이의 상태는 제대로 확인하셨습니까?
“너 나 못 믿냐? 난 오천 년이나 된 낡은 탐사위성 선체도 수리하는 사람이야.
- 저나 선장님이나 주로 자동 수리모듈을 사용합니다만?
“자동 수리모듈도 내가 보고 판단하고 세팅해야 하잖아. 그리고 자동으로 안 되는 건 직접 했다고. 그리고 또, 내가 선체 외부에 나가서 수리한 시간이 다 모으면 몇 년이냐?”
- 지금은 선체 수리에 쓰던 장비를 하나도 안 갖고 계시는데요?
“괜찮아. 자동 수리모듈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어.”
- 아. 그러니까 지구연합이 최첨단 과학기술로 총력을 기울여 제작한 탐사대 지원위성의 자동 수리모듈의 기능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셨다고요?
“안 믿는구나?”
- 네.
“지구연합의 기술력도 별거 없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조난됐잖아.”
- 우주 이상 현상에 휘말렸기 때문이잖습니까?
과거에 그들이 살던 지구 근처의 우주 공간에 다른 우주와 연결되는 구멍이 뚫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구멍 너머로 똑같이 생긴 지구가 보였다. 망원경으로 관측해 보면 지형이 같았다.
지구연합에서는 탐사대 파견을 결정했다.
그런데 지구연합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함선은 사람이 선장을 맡아야 한다. 그게 규정이다.
과거에는 무인 기체가 적에 의해 오염돼 아군을 공격한 사건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 사태의 해결법으로 선택된 게 사람이 선장을 맡는 것이다.
게다가 정찰용 소형 무인 드론은 그 구멍을 통과할 수 없었다. 반발력을 견디며 통과하려면 함선의 크기가 어느 정도 규모는 되어야 했다.
지구연합은 선발대로 위성 궤도에서 활동하는 유인 지원위성을 먼저 보내기로 했다. 그 지원위성이 먼저 넘어가 지구 위성 궤도에 자리를 잡고 지상의 정보를 수집한 후에, 안전이 확인되면 탐사대 본대가 넘어가기로 했다.
선우현이 바로 그 지원위성의 조종사이면서 선장이다.
김수선이 말했다.
- 첫 번째 유인 우주선이 통과하자마자 포털이 닫힐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다시 열리기만 기다렸는데.”
- 오천 년을 기다렸습니다만, 포탈은 다시 열리진 않았습니다.
우주선용 생명유지장치 덕분에 거의 오천 년을 동면에 가까운 상태로 보냈다. 그러다 우주나 지상에 특이상황이 생기면 깨어나서 확인했다. 선체가 손상됐을 때도 일어나서 수리했다.
한 번 깨어나면 바로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위성에서 지상을 구경하며 꽤 긴 기간을 지내야 했다.
그런데 사람이 생명유지장치에서 동면에 가까운 상태로 있으면 세포가 아주 천천히 젊어진다. 오십 년 전부터는 그 회복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그래서 현재 그의 신체 나이는 오천 년 전과 차이가 없었다.
- 우리가 통과한 포탈이 우주 이상 현상이라는 걸 고려하면, 오만 년을 기다려도 다시 열릴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그렇다고 안 기다릴 수도 없잖아. 그 생각을 하니까 답답하네.”
- 지상에서 신나게 인생을 즐기고 계신 분이 답답하다니요?
“에이. 난 선체 상태가 한계라서 수리에 필요한 자재를 구하려고 내려온 거지.”
-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하시면 설득력이 없습니다.
선우현과 김수선은 오천 년 동안 탐사대 지원위성의 선체를 꾸준히 수리했다.
문제는 수리에 필요한 자재와 자원이다.
그동안은 선체 수리를 위해 덜 중요한 부분과 장비를 뜯어서 자원으로 소모했다. 그런데 이젠 더 뜯어낼 게 없다.
최근에는 위성 파편 같은 우주 쓰레기를 수집할 수 있게 됐지만, 이미 선체가 너무 낡아서 그것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선우현이 지상에 내려왔다. 지원위성을 제대로 수리하려면 지상의 물자를 우주로 보내야 한다.
“우리가 지상에서 우주선을 새로 만들 수 있었으면, 그동안 지상을 오가면서 물자를 챙겼을 거야. 사는 것도 지상에서 사람처럼 살았겠지.”
하지만 탐사대 지원위성에는 맨땅에서 우주선을 만들 기술이 없다.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이제야 겨우 지상에 내려왔잖아. 그래서 잠깐 즐기는 거야.”
그가 지상에 내려올 때 사용한 건 1회용 강하 캡슐이다. 그 캡슐은 낙하산처럼 아래로 내려가는 기능만 있다. 다시 우주로 올라가는 기능은 없다.
그래서 과거에는 위성에서 지상에 내려올 수 없었다.
고대는 물론이고 중세나 근대까지도 일단 지구에 내려가면 다시 위성 궤도로 올라갈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시대의 인류는 다시 위성 궤도로 올라가는 기술이 있다. 지금은 인공위성이 지구 어디선가 수시로 발사되는 시대다.
“내가 거기로 다시 올라가려면 돈이 많이 있어야 하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 물자부터 먼저 보내십시오. 선장님은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응?”
- 대량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우주왕복선부터 손에 넣으십시오.
그건 돈 좀 벌었다고 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장비가 아니다.
선우현이 방금 산 중고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아. 이 오토바이 말이야.”
- 일하라고 할 때마다 말을 돌리십니까?
“이거 설마 오염된 기체는 아니겠지?”
- 무슨 그런 재수 없는 말을 하십니까? 그리고 이쪽 지구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있습니까? 그런 건 오천 년을 관측해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구 전체를 본 건 아니잖아. 항상 좁은 부분만 봤으니까 혹시 모르지.”
- 쓸데없는 걱정이십니다.
“알았어. 그럼 안심하고 가자!”
선우현이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빠라바라바라밤!”
- 이상한 소리 내지 마십시오.
“내 입에서 난 소리가 아니야. 이거 경음기 소리가 이상해.”
- 당장 수리하십시오.
“공연부터 보고 나서. 내가 공연 직관 진짜 하고 싶어 했던 거 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