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숨찐 옥탑방 억만장자-5화 (5/281)

5. 구하니

선우현이 상자를 챙겨 옥탑방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다른 선우현의 방이란 말이지. 실내는 처음 보는데….”

그가 지원위성에 있을 때 이곳에는 다른 선우현이 살았다.

“나랑 얼굴이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 오래 지켜봤는데.”

지원위성에 있는 다목적 카메라는 좁은 영역을 살필수록 더 선명하게 대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선우현의 얼굴이 그와 똑같다는 걸 안다.

“우리가 통과한 그 포탈은 평행세계로 오는 길이었을까?”

- 평행세계 이론은 탐사대가 출발하기 전에도 유력한 가설이었습니다. 멀리서 포탈을 통해 관측해야 했지만, 일단 지형이 똑같았으니까요. 다만, 역사는 많이 다릅니다.

“지형만 같은 게 아니라, 지금 시대에 나와 얼굴이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었잖아.”

그들은 위성에서 다른 선우현을 수시로 살펴보곤 했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어.”

- 위성 궤도에서 다른 선우현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현장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탐사대의 거주형 인공위성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선우현의 신분을 사용하기로 했다. 다른 선우현은 매장해 주고, 옷과 지갑 등은 챙겼다.

- 선장님은 어차피 지상으로 내려가셔야 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필수 장비들의 상태가 한계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선체와 장비를 수리하려면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합니다.

“나도 알아. 그래서 지상에 내려왔잖아. 강하 캡슐을 새로 만들 자원이 생겨서 다행이었지.”

- 사람들이 인공위성을 지난 50년간 부지런히 발사해준 덕분입니다.

선체에 원래 탑재되어 있던 강하 캡슐은 이미 옛날에 수리용 부품으로 소모했다. 자원을 구할 방법이 없어서 그거라도 써야 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지구에서 인공위성을 계속 발사하면서 상황이 조금 변했다. 위성 궤도에 우주 쓰레기가 꽤 생겼다.

그들은 그동안 그 우주 쓰레기를 조금씩 모아서 선체를 수리하고 지상 강하용 캡슐을 새로 만들었다.

지상의 관측장비로는 탐사대 지원위성의 위장막을 볼 수 없다. 지상에서는 추적하던 우주 쓰레기가 가끔 사라지는 현상만 관측할 수 있었다.

***

한국대학교 학생 윤하늘이 학교 앞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말했다.

“인공위성이 떠 있는 궤도에는 우주 쓰레기들도 날아다녀.”

같이 밥을 먹는 친구가 물었다.

“우주에 쓰레기가 왜 있어?”

“지상에서 발사한 인공위성에 문제가 생기거나 수명이 다하면, 지상으로 도로 추락하거나 먼 우주로 날아가거나 아니면 우주 쓰레기가 돼. 위성이 폭발하거나 부서지면 파편이 위성 궤도를 날아다니기도 하고.”

“아아.”

“그중에 큰놈들은 나사나 북미 방공 사령부 같은 곳에서 추적해. 그런데 그렇게 추적하는 우주 쓰레기가 가끔 사라진다더라.”

“왜 사라져? 누가 주워가나?”

“쓰레기가 진짜 없어진다는 게 아니라, 지상에서 레이더로 추적하다 놓친다는 거지.”

“에이. 그게 뭐야.”

“이상하지? 멀쩡히 추적되던 게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진단 말이야. 그래서 그런 걸 우주 상어의 짓이라고 하더라.”

“응? 쓰레기를 먹는 상어가 우주에 있다고? 진짜야?”

윤하늘이 씩 웃었다.

“당연히 농담으로 하는 소리지. 우주에 어떻게 상어가 살아?”

“그치? 그냥 추적에 실패한 거구나.”

오늘따라 친구의 리액션이 좋았다. 윤하늘은 신나서 말했다.

“난 우주 상어보다는 고대 유럽의 아이 오브 비홀더 전설이나 고대 아시아의 천공의 주시자 전설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봐.”

“에이. 또 그 이야기야? 아까 네가 그거 말할 때 다들 웃었다고. 그거 비웃은 거거든?”

***

선우현이 지상에 내려올 때는 강하 캡슐을 사용했다. 자원을 아끼기 위해 그의 신체에 딱 맞는 크기로 제작된 캡슐에는 여유 공간이 없었다.

게다가 그 캡슐에는 낙하산처럼 위성 궤도에서 지구로 내려오는 기능만 있다. 지상에서 위성 궤도로 올라가는 기능은 없다.

그 캡슐은 사망한 다른 선우현의 관으로 사용되었다.

그가 다른 선우현이 사용하던 옥탑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선아. 이 원룸 말이야.”

- 실내는 오늘 처음 보시는 건데, 어떠십니까?

선우현이 활짝 웃었다.

“진짜 넓다.”

- 그럴 리가 없는데요?

“옥상까지 포함하면 진짜 넓다고. 위성 내부 거주공간에 비하면 여긴 아주 광활해.”

***

일주일이 지났다.

예능 방송 막내 작가 안유정이 방송국 근처 카페에서 일주일 전에 겪은 무장강도 사건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때 짠하고 그분이 나타나셔서 그 강도들을 때려잡는데, 와, 진짜 포스 쩔었어.”

그녀의 맞은편에는 가수 구하니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안유정과 같은 동네에서 자란 이웃집 언니다. 구하니는 지금은 그 동네를 떠났지만 안유정과는 여전히 친하게 지냈다.

구하니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그렇게 대단했어?”

“그러엄!”

안유정이 신나서 그날 일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쉬워했다.

“와. 진짜 그분을 우리 방송에 출연시키면 대박일 텐데.”

구하니가 물었다.

“방송출연이라…. 그 남자, 얼굴도 좀 생겼나 봐?”

안유정이 실실 웃었다.

“응. 좀 생겼지. 흐흐.”

“어떻게?”

“그러니까…. 아. 저기 저 사람처럼.”

안유정이 카페 유리 벽 바깥 인도를 걸어가는 남자를 가리켰다.

“저 남자처럼 생겼어. 진짜 딱 저렇…. 어? 어?”

구하니가 뒤로 몸을 돌리며 물었다.

“왜 그래?”

안유정이 선우현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

선우현은 지난 일주일 동안 지상을 돌아다녔다.

오천 년을 지원위성 내부에서 지내다가 지상에 내려오니 모든 게 좋았다.

“수선야. 여기는 공기가 참 좋다.”

- 선체의 공기 정화 시스템과 산소 발생장치가 가끔 고장 나긴 합니다만, 그래도 생명 유지 기능에 심각한 문제는 없었습니다만?

“그거야 고장 날 때마다 비상용 산소를 써서 버텼으니까 그런 거고.”

- 그때마다 산소를 다 쓰기 전에 수리에 성공했습니다.

“지구 공기는 거기랑 다르다니까.”

- 좋으시겠습니다.

“좋다. 여기 공기는 참 다양한 냄새가 나. 바람에 풀냄새가 섞여 있어. 맛있는 고기 굽는 냄새도….”

- 후방에서 선장님을 향해 뛰어오는 여자가 있습니다! 습격에 대비하십시오!

선우현이 뒤로 돌아섰다.

안유정이 선우현을 향해 뛰어와 그의 앞에서 멈춘 후에 숨을 몰아쉬었다.

“하악. 하악. 그, 그때 그분이시죠? 그분 맞죠?”

김수선이 조언했다.

- 다른 선우현이 과거에 알던 여자일 수 있습니다. 상대가 선장님의 신분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선장님이 기억 못 하셔도 의심받지 않을 겁니다.

“음…. 누구시더라.”

“일주일 전에 식당에서 구해주셨잖아요!”

“아. 그 산속 메밀국수랑 수육 파는 식당.”

“네! 떼강도가 쳐들어왔던 식당이요!”

김수선은 위성 궤도에서 지상을 본다. 그래서 그 사건 당시에 식당 지붕 아래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 팔찌형 통신기를 회수하면서 덤으로 구출한 사람 중 한 명이군요.

안유정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 그렇게 그냥 가셔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렸어요. 제가 연락처라도 알아보려고 했는데, 경찰에서도 모른다고…. 아!”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정체는 비밀이신 거죠?”

“어….”

-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시죠.

“내가 귀찮아지는 걸 싫어해서.”

“네! 저만 알고 있을게요!”

그녀의 뒤쪽에서 구하니가 다가오며 말했다.

“이젠 나도 아는데.”

“앗!”

안유정은 당황했다.

“어니. 언니. 그러니까 이 분은…. 내가 알면서도 모르는 그런 분인데….”

구하니가 가볍게 인사했다.

“일주일 전에 유정이를 구해주신 분이라면서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고마워요. 괜찮으시면 제가 보답을 하고 싶어요.”

“됐습니다.”

구하니가 선글라스를 슬쩍 벗었다.

“저 누군지 아시죠?”

김수선이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 가수 구하니입니다.

선우현도 안다.

요즘에는 탐사대 지원위성에서도 지구의 문화를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위성에서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도 사람들은 노는 문화가 있었지만, 위성에서는 무슨 말이 오가는지 들을 수가 없었다.

현지 협력자가 있을 때는 통신기를 통해 주변 소리를 어느 정도는 들을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소리는 없이 구경만 해야 했다.

야외 스포츠 경기라면 대화가 들리지 않아도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건 꼬박꼬박 챙겨보곤 했다.

그러다 지구에서 라디오와 TV가 개발되면서 위성의 문화생활에 혁명이 일어났다.

라디오는 전파에 음성을 담는 구조가 간단했다. 아날로그 방식 TV도 단순한 방식으로 영상과 음성을 전파에 담았다.

위성에서 그 전파를 수신하면 라디오와 TV를 쉽게 즐길 수 있다.

선우현은 위성에 있을 때는 TV 영상이 나오는 모니터를 끼고 살았다.

구하니는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톱가수였다. 선우현은 그녀가 나오는 방송은 물론이고 TV로 생중계되는 공연도 보곤 했다.

선우현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구하니 씨잖습니까?”

“어머. 저를 보고도 하나도 안 놀라시네요?”

“잘 놀라지 않는 성격이라.”

“음…. 제가 따로 사례라도 할 테니까.”

구하니가 눈을 반짝이는 안유정을 슬쩍 본 후에 말했다.

“명함이라도 주시겠어요?”

“그런 거 없는데.”

구하니는 멈칫했다.

“아. 그러시구나. 그러면….”

안유정이 옆에서 얼른 제안했다.

“우리 밥 먹으러 갈 건데, 식사라도 대접할게요!”

구하니가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가 밥 먹으러 갈 거였어?”

“응! 나 배고파!”

밥이라는 말에 선우현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지상에 내려와 지난 일주일 동안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뭘 먹어도 칼로리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그런데 그가 그동안 먹은 음식은 가격대가 높지 않았다. 고급 요리는 예산 문제로 인해 맛보기 어려웠다.

연예인이 먹는 음식이 궁금해졌다.

“밥 좋아합니다.”

세 사람은 중화요리점을 찾아갔다.

별도로 분리된 빈방이 있는지 물어보고 요리를 주문하는 등의 일은 안유정이 처리했다.

그녀가 구하니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언니 일일 매니저 할게.”

“이미 그러고 있잖아.”

안유정이 선우현을 보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뭐 드실 거예요?”

“뭐든 많이 먹을 겁니다.”

“아. 그럼 여기부터 여기까지 시킬까요? 어차피 하니 언니가 사는 건데.”

“다음 페이지도 다 시킵시다.”

“히히. 우리 통하는 데가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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