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칼잡이
형사팀장이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어떤 남자가 들어와서 맨손으로 칼을 든 강도 다섯을 때려잡았고요?”
“예. 진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남자가 어떤 물건을 가져갔고요? 그러니까 강도들이 원하던 물건을 가로챈 겁니까?”
식당 주인이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분은 그냥 오래된 문고리를 가져갔습니다.”
“문고리요?”
“제가 예전에 여행 갔을 때 시장에서 산 골동품인데, 문고리로 쓰기 딱 좋게 생겨서….”
팀장이 말을 끊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강도들이 원하는 물건이 뭔지도 모른다면서, 그 문고리를 원한 게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식당 주인은 당황했다.
“예? 그, 그게…. 아! 저놈들이 그 문고리가 골동품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습니다!”
“그럼 저놈들이 골동품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는 건 알고 계셨네요?”
“네? 그, 그게….”
“그 문제는 나중에 서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시죠. 그래서 이놈들을 잡은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건 저도 잘….”
사전 답사를 왔다가 말려든 방송국 막내 작가 안유정이 끼어들었다.
“그분은요! 번개처럼 나타나서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바람처럼 사라지셨어요.”
“네?”
“다 쓸어버리고 그냥 가셨다고요.”
“아아….”
형사팀장이 식당 내부를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 CCTV 있습니까?”
식당 주인이 대답했다.
“있긴 있는데, 저놈들이 부숴버렸습니다.”
“꼼꼼한 놈들이군요.”
안유정이 물었다.
“CCTV는 왜요? 설마 그분을 잡으려고요?”
“잡으려고 그런다기보다, 심하게 다친 사람이 많으니까 찾아서 조사는 해야….”
안유정이 얼른 잡아뗐다.
“어머! 얼굴이 기억이 안 나요! 하나도 안 나요!”
“예?”
“그러니까 몽타주 같은 거 꿈도 꾸지 마세요!”
방송국 조연출 박성훈과 식당 직원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일이 이렇게 될 거 같아서 그냥 가신 거구나.”
“그럼 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로 해야겠다.”
팀장이 혀를 찼다. 목격자들이 협조적이지 않았다.
“이러시면 곤란….”
붙잡힌 무장강도들을 조사하던 형사가 두목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팀장님. 여기 이놈 조성철 같은데요?”
팀장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뭐? 덕구파 칼잡이 조성철?”
“예. 수염을 길러서 처음엔 못 알아봤는데요.”
기절한 두목 옆에서 형사가 스마트폰에 수배자 사진을 띄웠다. 그중에는 변장했을 때를 가정하고 합성한 사진이 있었다.
“다시 확인하니까 조성철 맞습니다.”
팀장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와…. 칼잡이 조성철이 이런 식으로 잡힐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보통 놈이 아닌데.”
“근데 이놈 상태가…. 다리도 꺾이고, 팔도 꺾이고…. 다른 놈보다 더 다쳤는데?”
다른 형사가 옆에서 조성철을 살피다가 말했다.
“잠깐. 얼굴에 저거 발자국인데요? 사이즈가 작은 게 여자 신발…. 혹시 그 사람이 여자 아닐까요?”
팀장의 눈에 막내 작가 안유정의 신발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그건 아니야. 하여간 조성철이 많이 다쳤네. 살려만 놨어. 구급차 빨리 오라고 해. 이놈 꼭 살려야 해. 이놈이 덕구파 마약 거래 정보를…. 어?”
팀장이 식당 사장을 휙 돌아보았다. 사장은 조성철이 찾는 물건이 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려면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사장님. 우리 진지하게 이야기할 게 있어 보입니다만?”
“예? 아….”
식당 주인이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 이렇게 될 거 같더라니…. 형사님. 가기 전에 밥은 좀 먹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설렁탕 시켜드리죠.”
“제가 물에 빠진 고기를 안 먹어서요.”
“아니 뭔…. 짜장면도 배달됩니다. 그런데 성함이?”
“제 이름을 굳이….”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박지환입니다.”
사람들이 박지환을 쳐다보았다. 안유정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대박! 자기는 박지환이 아니라고 그렇게 억울해하더니!”
***
선우현은 그 지역을 벗어났다.
그는 다른 지역에 있는 식당에서 뜨끈한 국밥을 먹으며 감탄했다.
“이거지! 이 맛이 진짜 음식이야!”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물었다.
- 선장님. 맛있습니까?
선우현이 국밥을 먹으며 말했다.
“이 지구의 위성 궤도에 조난되고 나서 정말 오랜만에 먹는 진짜 밥이잖아. 그동안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당연히 맛있지. 아주 충격적으로 맛있다. 합성 칼로리 덩어리만 먹느라 내 혀의 미뢰가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멀쩡히 살아 있었어.”
- 생명유지장치에서 세포 재생 효과를 계속 받으셨으니 혀가 멀쩡한 건 당연하잖습니까? 아주 최상의 상태일 겁니다.
생명유지장치에서 동면에 가까운 상태로 있으면 부수 효과로 신체가 아주 조금씩 젊어진다.
다만 세포가 젊어지는 속도는 무척 느렸다. 일 년을 생명 유지장치에서 지내봤자 겨우 며칠 정도 젊어졌다.
그렇게 된 이유는 모른다. 관련 이론도 없다.
원래 있던 세계에는 생명유지장치에 느리게나마 젊어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도 천 년이 지난 후에야 눈치챘으니까.”
생명유지장치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중간에 일어나서 확인하고 점검하고, 선체를 수리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 천 년 중에서 그렇게 일어나서 활동한 시간을 다 모으면 이십 년쯤 된다.
선우현은 그때가 되어서야 신체가 나이를 전혀 먹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구연합에서는 짐작도 못 하고 있겠지.”
원래 세계 지구연합의 과학자들은 우주 정거장에서 동물 실험을 하다 동면 효과를 우연히 발견했다. 실제로 동물을 얼린 건 아니지만, 결과가 비슷해서 동면 효과라고 불렀다.
그 기술은 사람에게 써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술의 근본 원리는 알아내지 못했다. 이론은 많이 나왔지만 현상을 모두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게다가 그 동면 효과는 사람이 우주에 있을 때만 쓸 수 있었다. 지상에서는 그런 효과가 없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쓸모가 없어 사장됐던 그 기술은 다른 쪽에서 실용화됐다. 과학자들은 그 효과를 이용해 우주선용 동면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생명유지장비가 버텨주기만 한다면, 이론상 최대 동면 기간은 무제한이다.
이 탐사대 위성에는 그 생명유지장치가 탑재되어 있다. 선우현은 그 장치 덕분에 지구의 위성 궤도에서 오천 년을 버텼다.
“오천 년을 버티면 신체 재생 효과가 굉장히 커진다는 것도 지구연합에서는 당연히 모르겠지.”
선우현은 지구의 위성 궤도에 조난된 오천 년 동안 생명유지장치를 사용했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유지장치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러다 동면 기간이 오천 년쯤 지난 오십 년 전에, 그 효과가 몸에 각인됐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는 생명유지장치의 신체 재생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선우현이 말했다.
“이 국밥은 진짜 장난 아니게 맛있다니까?”
- 선장님. 지금 밥을 먹을 때가 아닙니다만?
“알아. 그래도 이걸 어떻게 참냐.”
- 안정적인 거점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칼로리바랑은 비교도 할 수 없다.”
김수선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 선장님. 저도 먹을 줄 압니다만?
“어? 어…. 너도 같이 내려오면 좋았을 텐데.”
- 우리에게 탑승형 강하 캡슐을 두 개나 만들 자원이 어디 있습니까? 설사 자원이 있다 해도 저까지 내려가면 선체에 문제가 생길 때 누가 수리합니까? 우리 함선이 대기권으로 추락하는 꼴을 보고 싶습니까?
선우현이 지상에 내려올 때 사용한 강하 캡슐에는 다시 우주로 올라가는 기능이 없다.
“수선아. 나만 지상에 내려와서 미안해하는 내 마음 알지?”
- 거짓말 마십시오.
“표 나?”
- 많이 납니다.
“나는구나.”
- 거기서 혼자 맛있는 거 드셔서 참 좋으시겠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선우현이 슬그머니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을 돌렸다.
“어…. 수선아. 나를 쫓아오는 사람은?”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지상의 영상을 확인했다. 위성의 다른 카메라는 대부분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장 났다. 일부는 이미 분해해 수리용 부품으로 사용했다.
이제 멀쩡히 동작하는 건 다목적 관측 카메라 딱 하나밖에 없었다.
김수선은 그 다목적 카메라를 사용해 위성 궤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선우현의 주변을 확인했다.
- 선장님을 미행한 차량이나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됐네.”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물었다.
- 뭐가 됐습니까?
“한 그릇 더 먹으려고.”
- 선장님?
“이것만 먹고 집으로 가자. 사장님! 여기 이거 한 그릇 더 주세요! 보통 말고 특으로!”
- 선장님. 많이 드시고 배 터지십시오.
“그렇게 많이 먹어도 돼?”
- 되겠습니까?
***
한국대학교의 고고학 수업에서 교수가 강의실 스크린에 사진을 띄우며 설명했다.
“이 피라미드 벽화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그중에는 당시 이집트 사람이 하늘 높은 곳, 그러니까 우주에 있는 어떤 존재와 대화했다는 것도 있다.”
강의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윤하늘이 물었다.
“외계인과 대화한 건가요?”
강의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교수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윤하늘은 저 벽화를 이미 알고 있다.
“제가 아는 오파츠 동호회에서는요. 피라미드의 그 벽화가 인공위성 궤도에 있는 사람과 무선으로 통신하는 모습을 묘사한 거라던데요?”
“그런 농담도 있지.”
“비슷한 이야기는 더 있어요. 고대 유럽에는 아이 오브 비홀더의 전설이 있고, 고대 동아시아에는 천공의 주시자에 관한 전설이….”
교수가 윤하늘을 보며 물었다.
“너 그 동호회를 그냥 아는 게 아니구나? 거기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아…. 네.”
“그러면 아주 상식적인 의문을 가져야지. 기원전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위성통신까지 가능한 기술이 있었으면, 피라미드를 돌을 깎아 만들지 않았겠지? 당연히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었어야지. 플라스틱도 넉넉히 쓰고 말이야.”
윤하늘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그…렇기는 하죠.”
“그러니까 이 그림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해석하면 안 돼. 하나하나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해야 해.”
“그러면 너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고 들었는데요.”
“맞아. 그중 어느 게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지.”
교수가 윤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
“네가 말한 인공위성 이론은 절대로 아니야.”
***
5인조 단검 무장강도 사건이 일어난 지역의 경찰서장이 기자 몇 명을 따로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무장강도들은 모두 일망타진했습니다. 한 놈도 놓치지 않았단 말이지요.”
기자 중에는 강력사건 전문인 오경훈도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사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오경훈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조성철은 잡았습니까?”
조성철이 누구인지 모르는 기자 몇 명이 오경훈을 돌아보았다. 그중 한 명이 물었다.
“좋은 정보 있으면 공유 좀 하시죠. 저도 사건 발생 지역 정보를 공유할 테니까요. 조성철이 누구입니까?”
오경훈이 간단히 설명했다.
“덕구파 칼잡이 출신인데,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다른 기자들도 덕구파의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다.
“살인사건이요? 계획 살인인가요?”
“물론이죠. 조성철이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살인만 세 건이고, 상해 사건은 너무 많아서 다 세기도 어렵습니다.”
기자가 몸을 움찔했다.
“어우. 무서운 놈인가 봅니다.”
“그쪽 세계에서는 알아주는 칼잡이입니다.”
경찰서장이 끼어들었다.
“이거 서울에서 오신 기자님이 아주 많이 알고 계시네요.”
“제가 이런 사건이 전문이라서요. 그래서 조성철은 잡았습니까?”
“물론 잡았습니다. 조성철과 부하들까지 다섯 놈을 모두 체포했습니다.”
“부하요?”
“최근에 끌어들였더군요. 조성철이 자기 조직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조직을 만들려면 돈이 필요하겠군요. 아니면 다른 조직과 거래할 물건을 확보하든지요.”
“그거야 조사해보면 나오겠지요.”
그 지역 언론사 기자가 칭찬했다.
“우리 경찰이 그런 흉악한 놈을 잡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서장이 웃었다.
“하하하. 위험한 놈이라고 해서 안 잡으면 경찰이 아니죠.”
오경훈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그놈들을 경찰이 잡은 게 아니라는 소문이 있던데요?”
경찰서장이 멈칫했다.
“아. 그건 말이죠. 음…. 진짜 많이 아시네. 어디서 들었습니까?”
“여기 직원들이 담배 피우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요.”
오경훈은 오늘 이 경찰서에 오자마자 흡연 장소 같은 곳부터 돌아다니며 직원들이 잡담하는 걸 들었다.
서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해도….”
오경훈의 눈이 반짝거렸다.
“사실이군요. 누가 잡은 겁니까?”
경찰서장이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아닐까 합니다.”
오경훈은 물론이고 같이 듣고 있던 기자들까지 당황했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체포한 범인들은 물론이고 구출된 사람들도 현재 경찰이 보호하며 참고인 조사를 하는 중이다.
아직 외부인과 접촉하기 전이라 기자들은 사건 당시 상황을 자세히는 몰랐다.
경찰서장이 설명했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흔히 보이는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쳐들어와서 그놈들을 잡았다고 합니다.”
오경훈이 물었다.
“몇 명이 쳐들어와서 잡았습니까?”
“혼자였습니다.”
“예?”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조성철은 유명한 칼잡이라면서요?”
“부하도 넷이나 있다면서 어떻게 한 명에게….”
오경훈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기삿거리 냄새가 났다.
‘이 기사는 통한다. 최소한 중박, 잘하면 특종이다.’
마음 같아서는 서장에게 따로 묻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지금 빠지면 서장과 아는 사이인 이 지역 기자들이 먼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가 흥분을 감추며 물었다.
“그 사람의 사진을 받았으면 합니다. 기사는 좋게 써드리겠습니다.”
“범인들이 피해자들의 휴대폰을 모두 빼앗아서 사진은 없습니다.”
“CCTV는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식당 CCTV는 조성철 일당이 부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누군지 조사는 하셨을 거 아닙니까?”
경찰서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범인도 아닌데 굳이 조사까지….”
“예? 아니, 범인들이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현장에 출동했던 구급대원을 만나봤습니다.”
“다 알고 오셨구나.”
서장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지금 상황이, 그 사람을 찾아내면 여러 사람 곤란해진다는 것도 알 텐데….”
“예? 무슨 말인지 안 들렸습니다.”
“아! 그 지역은 주변에도 CCTV가 없어서 동선을 추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범인도 아닌 사람을 찾으려고 경찰력을 대규모로 동원해 낭비할 수는 없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