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질
두목 조성철이 속으로 외쳤다.
‘저 새끼는 힘만 센 게 아니야! 빨라!’
그는 부하들이 선우현과 싸우면 그때 빈틈을 노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부하들이 너무 순식간에 쓸려나가서 기습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가 눈알을 굴렸다.
‘내 실력으로 저 새끼를….’
조성철은 실전 경험이 많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승산을 계산했다.
결론은 순식간에 나왔다.
‘저건 못 이겨.’
정면대결로는 이길 자신이 없었다. 차선책이 필요했다.
그가 선우현에게 협상을 걸었다.
“어이. 그냥 갈 테니까 이쯤 하자. 너도 나랑 싸우면 옆구리에 구멍 정도는….”
“어디서 개가 짖나.”
“젠장.”
조성철의 뒤쪽에는 식당 사람 두 명과 손님 두 명이 있다. 그가 머리를 굴렸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야. 인질을 잡아야 해.’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는 막내 작가 안유정이 몸도 제일 작고 힘도 제일 약해 보였다.
조성철이 즉시 뒤로 돌아서서 안유정을 향해 뛰었다. 그녀가 있는 곳까지 가는 데는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
조성철이 안유정의 팔을 붙잡고 그녀의 목에 향해 칼을 들이밀며 소리를 질렀다.
“거기 서라! 안 그러면 이 여자를…. 어?”
그는 안유정의 목을 향해 칼을 바짝 들이밀려고 했다. 그런데 들어 올린 칼날이 앞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조성철이 오른쪽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뒤쪽 벽 근처에 있어야 할 선우현이 어느새 다가와 그의 오른손을 콱 붙잡았다.
조성철의 오른손부터 어깨까지 오른팔 전체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힘을 줘도 소용없었다. 마치 콘크리트로 만든 벽에 팔이 고정된 느낌이었다.
“어, 언제….”
선우현이 대답하지 않고 적의 팔부터 뚝 부러뜨렸다.
오른팔 전체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 뇌리를 때렸다. 조성철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선우현이 조성철의 부러진 팔을 뒤로 당겼다. 칼날이 안유정의 목에서 멀어졌다.
선우현이 오른손으로 조성철의 목을 잡고 위로 들어 올리며 물었다.
“혼자 왔는데, 그럼 뭐 달라지냐?”
조성철은 지금 이 상황도, 선우현이 보여준 힘과 속도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목을 잡혀 들어 올려진 후에는 발버둥을 칠 힘조차 생기지 않았다.
‘체격이 평범해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힘이….’
생각이 더 이어지지 못했다.
목의 경동맥이 눌려 뇌로 가는 혈액이 부족해졌다. 시야가 좁아졌다. 주변부터 세상이 어두워지다가 눈에 보이는 부분이 작은 구멍만큼만 남았다. 그마저도 순식간에 사라져 암흑으로 변했다.
조성철의 눈이 뒤집혔다. 몸도 축 늘어졌다.
선우현이 적의 몸을 흔들어보았다.
“어? 이놈 왜 이러지? 죽은 건 아니겠지?”
귀에 있는 통신기에서 타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 힘 조절을 하셨어야죠!
“이렇게 허약한 줄은 몰랐어. 온갖 폼은 다 잡길래 좀 하는 줄 알았지.”
- 아니면 목격자가 없는 곳에서 제거했어야죠!
“너무 약해서 몰랐다고. 어? 아! 이놈 아직 살아 있다. 숨 쉰다.”
- 다행입니다. 이제 살살 다루십시오.
선우현이 기절한 조성철을 옆으로 휙 던졌다. 조성철이 탁자를 부수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 소리를 듣고 곧바로 타박이 들어왔다.
- 이 소리는 또 뭡니까?
“버리는 소리.”
- 살살 다루라니까요!
“괜찮아. 저 정도로는 안 죽겠지.”
안유정과 함께 붙잡혀 있던 방송국 조연출 박성훈이, 기절한 조성철을 슬쩍 보며 선우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선생님. 저놈 혹시 죽었….”
“안 죽었습니다.”
“팔이 저렇게 꺾였는데요? 다리도 돌아가 있고….”
“그거 다 몸통에 붙어 있으니까 아마 안 죽을 겁니다.”
선우현이 사람들을 보았다. 조성철 패거리에게 붙잡혀 있던 네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우현이 아군인지 적군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경찰처럼 보이지는 않는 데다가, 싸움을 너무 사납게 했다.
선우현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기 주인이 누구십니까?”
식당 주인이 겁먹은 얼굴로 손을 들었다.
“저, 접니다!”
선우현이 이곳 장식 선반에서 찾아낸 팔찌형 위성 통신기를 들어 보였다.
“이 팔찌. 제가 예전에 잃어버린 건데, 돌려줬으면 합니다.”
식당 주인은 그걸 시골 시장에서 다른 오래된 물건 두 개와 함께 삼만 원에 샀다. 그는 지금까지 그게 옛날에 쓰던 문고리인 줄 알았다.
그게 뭐든 지금은 그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식당 주인이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당연히 돌려드려야지요. 아! 다른 것도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저 선반에 있는 건 제가 여행 갈 때마다 조금씩 모은 골동품들입니다.”
선우현이 이곳에서 찾는 물건은 이것 하나뿐이다. 장식장에 있는 나머지는 다 그냥 오래된 물건이거나 골동품처럼 보이게 만든 짝퉁이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필요가 없다.
“다른 건 내가 잃어버린 물건이 아닙니다만?”
“아, 아! 그러시구나! 그럼 제가 선물로 다 드리겠….”
“됐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다른 사람들은 이제 선우현이 아군이라는 걸 확실히 이해했다. 식당 직원은 아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살았다.”
예능 방송 막내 작가 안유정이 정신을 차리고 놈들에게 빼앗긴 스마트폰부터 찾았다.
“내 폰!”
부서진 탁자 중 하나에 스마트폰이 올려져 있다가 싸움에 휘말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가 전원 버튼을 눌렀다. 흠집은 많이 났지만 켜지기는 했다.
그녀가 서둘러 112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여기 떼강도가 나타났어요! 칼잡이 떼강도예요!”
경찰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 거기 위치가 어디입니까!
식당 주인이 뒤늦게 그녀를 보고 당황해서 손을 내밀었다.
“아니, 저기, 손님! 신고는 상황을 좀 보고 나서….”
조연출 박성훈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사장님! 여기 밧줄 있습니까?”
“예? 끈이요?”
식당의 유일한 직원이 얼른 포장용 노끈을 찾아서 가져왔다. 원통에 빨간 노끈이 잔뜩 감겨 있었다.
“여기 많아요!”
“묶읍시다!”
두 사람이 기절한 무장강도들을 포장용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문밖에서 기절한 놈도 끌고 들어와서 묶었다.
안유정은 경찰에게 이곳 위치와 현재 상황을 설명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팔을 걷었다.
“이제 신고도 했으니까!”
그녀가 강도들이 묶여 있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녀에게 칼을 겨눴던 조성철은 기절해 있었다.
그녀가 조성철을 발로 걷어찼다.
“나쁜 새끼야! 무서웠잖아!”
조성철이 그 충격으로 정신을 차렸다. 그가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끄으으….”
그런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오른팔이 꺾여 있었다. 그 팔로 바닥을 짚으려다 다시 고꾸라졌다.
“으아악! 파, 팔이….”
안유정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이 새끼 정신 차렸어요!”
조연출 박성훈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기절할 때까지 차!”
“이야앗! 헥토파스칼 킥!”
“케에엑!”
식당 주인은 사람들이 발길질하는 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어쩔 수 없네.”
이미 안유정이 경찰에 신고했다. 목격자도 많아서 오늘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가 포기한 표정으로 선우현을 돌아보며 제안했다.
“그래도 살려주셨는데,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우리 메밀국수랑 육전이 참 맛있습니다.”
“육전이요?”
“이제 못 팔 수도 있거든요. 마음껏 드시죠.”
“사장님 좋은 분이시네!”
“예?”
그가 작게 말했다.
“수선아.”
- 네.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다. 국수와 육전을 실컷 먹을 수 있어.”
-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아니야. 이런 말씀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지구의 위성 궤도에 떠 있는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그 지역을 망원카메라로 보면서 보고했다.
- 선장님이 계신 장소로 가는 경찰차를 발견했습니다. 약 10분 후에 도착합니다.
“응?”
- 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시라고요. 지금 한가하게 밥이나 먹을 때가 아닙니다.
선우현이 벽에 걸린 음식 사진들을 보았다. 정말 맛있어 보였다. 게다가 이건 그냥 밥이 아니다.
“수선아. 그 오랜 시간을 굶다가 드디어 밥을 먹을 기회가 왔다고.”
- 선장님은 그 오랜 시간을 생명유지장치에서 잠만 잤습니다만?
생명유지장치에 들어가면 동면과 비슷한 상태로 신체 활동이 정지된다.
“깨어있던 시간도 많았잖아.”
탐사대 지원위성의 선체에 문제가 생기면 생명유지장치에서 나와서 해결해야 한다. 지상에 큰 변화가 있거나 우주에서 특이 현상이 발견돼도 일어나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상당히 많았다.
“내가 활동한 시간을 다 모으면 백오십 년은 되잖아.”
사람이 활동할 때는 당연히 뭔가 먹어야 한다.
- 굶은 날의 비율은 낮았습니다만?
“어쨌든 굶었잖아.”
- 유기물 재처리 합성장비가 고장 났을 때를 제외하면 굶지 않았습니다만?
“재처리하고 합성한 칼로리바를 어떻게 밥이라고 할 수 있냐? 그건 굶어 죽지 않으려고 그냥 씹어 삼킨 거지.”
- 시끄러우니까 즉시 그곳을 이탈하십시오. 경찰차가 계속 접근 중입니다.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는 현지 치안부대와 마주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선우현이 음식 사진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다음엔 꼭 먹을 테다.”
***
선우현은 팔찌형 위성 통신기만 챙겨서 식당을 나왔다.
탐사대 지원위성에서 김수선이 말했다.
- 선장님의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차가 계속 접근 중입니다.
선우현이 불평했다.
“수선아. 나 진짜 밥이 먹고 싶었다. 오천 년 만의 식사였다.”
귓속의 초소형 무전기에서 대답이 들렸다.
- 나중에 드십시오.
“지금 먹고 싶었다.”
- 지금 밥 타령이나 할 때가 아닙니다.
“괜찮아. 여기는 다 산이야. 경찰차를 피하는 건 쉬워.”
- 회수한 팔찌형 통신 중계기의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아. 그 문제가 있구나.”
선우현이 팔에 찬 팔찌형 통신기를 보며 말했다.
“이건 사백 년이 넘게 방치되어 있었잖아.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게 대단한 거지.
- 팔찌에 사용할 간이 에너지 공급장치부터 제작해야 합니다.
“지상에는 자재가 많으니까 만들면 돼.”
- 제 도움 없이 제작할 수 있으면 여유 부려도 됩니다만.
통신이 끊기면 도움을 받기 어렵다.
“빨리 부품부터 구해야겠다.”
- 안정적인 거점으로 이동해 작업하십시오.
“아! 좋은 생각이 났다.”
- 왜 또 불안하게 그러십니까?
“에너지가 모자라니까 통신기를 꺼놓으려고. 필요한 부품이 있는 곳에 가면 통신기를 다시 켤게.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 어디서 약을 파십니까? 몇 시간 정도 사용할 에너지는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밥을 먹을 때가 아닙니다.
“눈치챘냐? 한입만 먹고 가려고 했지.”
- 경찰차가 더 가까워졌습니다. 얼른 이동하십시오.
***
선우현이 식당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이 현장을 확인하는 동안 관할 경찰서의 형사들도 도착했다. 그중에는 권총과 테이저건 등으로 무장한 형사도 있었다.
형사팀장은 몇 분 뒤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묶여 있는 범인들을 보고 당황했다.
“트럭이 들이받았나? 범인들은 왜 구겨져 있는데?”
먼저 도착한 형사가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팔다리가 안 꺾인 놈이 없습니다. 전부 다 최소한 한두 군데는 부러졌습니다.”
“전부?”
“이 식당에 쳐들어온 무장강도 다섯 놈이 다 저 꼴입니다. 아주 그냥 다 박살을 내놨습니다.”
“구급차는?”
“오고 있습니다.”
팀장이 인상을 썼다.
“이놈들은 이런 시골 식당에 왜 쳐들어온 거래?”
“여기 사장님 말로는, 이 다섯 놈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뭔지도 모르는 물건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답니다.”
“여기 사장님이 모르는 물건이라고?”
“예. 진짜 무슨 물건인지 하나도 모른다던데요.”
팀장이 식당 주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팀장의 눈치를 살피다 얼른 시선을 피했다.
팀장이 형사에게 말했다.
“야. 넌 하나도 모른다는 말이 믿어지냐?”
“예?”
“냄새가 난다. 일단 여기 사장님 신원부터 따.”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