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투
예능 방송 막내 작가 안유정은 하필 오늘 이 식당에 온 걸 후회했다.
‘난 왜 오후 세 시에 배가 고팠던 걸까?’
그녀와 조연출 박성훈은 충청남도 소도시로 답사를 가다가 산길 중간 외진 곳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단검으로 무장한 강도 다섯이 그 식당에 들이닥쳤다. 강도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식당 주인과 주방 직원 한 명, 안유정과 박성훈은 순식간에 제압됐다. 시간이 오후 세 시라 다른 손님은 없었다.
두목 조성철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람은 이게 다야?”
옆에서 부하가 즉시 대답했다.
“예. 화장실까지 싹 다 뒤졌습니다.”
조성철이 바깥쪽으로 손짓했다.
“입구 차단해.”
문 근처에 있던 부하가 즉시 밖으로 나갔다.
조성철이 시퍼런 칼날이 달린 단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식당 주인을 불렀다.
“어이. 박지환이. 여기 숨어 있었네?”
식당 주인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예? 저는 박지환이 아닙니다만?”
“아니긴. 이 새끼가. 다 알고 왔는데. 됐고, 물건만 내놔. 그러면 아무도 안 죽어.”
식당 주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대체 무슨 물건을 말씀하시는 건지….”
“너 지금 기어이 피를 보겠다 이거지?”
조성철이 칼을 거꾸로 잡았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손가락이 몇 개가 잘려나갈 때까지 버티나 보….”
갑자기 식당 문이 벌컥 열렸다. 조성철과 부하들이 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처음 보는 남자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조성철이 짜증을 냈다.
“저거 뭐야? 손님이야? 밖에 있는 새끼는 저걸 왜 들여보낸 거야?”
부하가 옆에서 말했다.
“안에서 처리하라는 거겠죠.”
“새끼가 빠져가지고.”
선우현이 식당 안으로 들어와 내부를 쓱 둘러보았다. 한쪽에 있는 선반에 한옥 문고리나 옛날 유기그릇, 곰방대 같은 물건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선우현은 무장강도들을 무시하고 장식용 선반으로 걸어가 그곳에 놓인 물건들을 들여다보았다.
조성철은 선우현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그가 부하에게 물었다.
“야. 저 새끼 또라이냐? 여기 상황이 이해가 안 간대?”
“많이 이상한 놈인데요?”
가면을 쓴 네 명은 단검을 들고 있고, 얼굴이 노출된 네 명은 겁먹은 얼굴로 바닥에 앉아 있다.
보통 사람이 이런 상황을 봤으면 도망을 치거나 겁을 먹어야 한다. 싸울 생각이라면 무기부터 챙겨야 한다.
“또라이라면 이 상황에서 덤빌 수는 있어. 죽을 줄 알면서도 덤비는 놈이 있을 수는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또라이라도 저건 이상하지? 왜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굴어?”
선우현은 선반의 물건만 살펴보고 있었다. 조성철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박지환이. 저 선반에 있는 것들은 뭐야? 귀한 거야?”
식당 주인이 겁먹은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박지환이 아닙니다. 오해가 있으신….”
조성철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죽고 싶어? 대답이나 해!”
“제, 제가 다른 지방에 여행 갔을 때마다 조금씩 산, 각 지역 금속 골동품입니다!”
선우현이 장식용 선반에서 팔찌 형태의 물건을 손으로 잡았다.
조성철이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그럼 저놈이 잡은 저 동그란 건 어느 시대 거야? 신라 유물이나 고려 장신구 같은 거야?”
그렇게 오래된 물건은 비싸다. 삼국시대에 만든 금속 팔찌는 큰돈이 된다. 암시장에서 매수자를 찾기도 쉽다.
조성철 욕심을 감추지 않고 입맛을 다셨다.
“보물이나 국보 그런 거야?”
“아닙니다. 시골 시장에서 옛날 물건을 팔길래 삼만 원인가 주고 샀습니다.”
“어? 저 팔찌가 겨우 삼만 원?”
“다른 거 두 개랑 같이 사서 삼만 원, 그러니까 저건 만 원쯤….”
조성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칼끝으로 선우현을 가리켰다.
“근데 저 새끼는 왜 저래?”
선우현은 씩 웃고 있었다.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표정이잖아!”
“저, 저도 잘….”
조성철이 선우현의 팔찌를 보며 코를 킁킁거렸다.
“박지환. 네가 못 알아본 거겠지. 저건 아마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던 국보급 골동품일 거야. 저기서 돈 냄새가 나거든.”
선우현이 동그란 고리를 손에 쥐고 씩 웃었다.
“찾았다.”
그가 팔찌를 조작했다.
팔찌에서 파란 불빛이 잠깐 깜빡이다가 사라졌다.
부하가 조성철에게 말했다.
“형님. 저 고리에서 파란 게 반짝했는데요? LED라도 박은 거 같은데요?”
조성철이 화를 벌컥 냈다.
“나도 봤어! 이 새끼야.”
그가 국보급 골동품이라고 말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쪽팔렸다.
“씨발. 골동품인가 했더니 흔해 빠진 장난감이잖아.”
팔찌에서 파란 불빛이 사라지자마자 선우현의 귀에 김수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 휴대용 위성 통신기가 슬립 모드에서 깨어났습니다. 인이어 통신기와의 연결에도 성공했고요. 팔찌의 통신 중계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장비의 상태가 예상보다 좋습니다.
팔찌형 통신기에도 스피커는 있지만, 목소리는 그의 귓속에 있는 근거리 통신기에서 나왔다.
팔찌형 통신기는 지금은 중계기로만 작동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김수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선우현이 팔찌처럼 생긴 통신기를 보며 말했다.
“이건 그렇게 오래 방치됐는데도 작동하는구나.”
- 통신기에 내장된 에너지 대부분이 자연 소실되었습니다. 잔여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몇 시간 후에는 위성통신 중계 기능이 정지됩니다. 장비에 에너지부터 보충하시죠.
선우현이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건 여기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 해야겠는데?”
- 건물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까?
선우현이 무장강도들을 보며 말했다.
“쥐새끼가 몇 마리 있어.”
마지막 말은 목소리가 조금 컸다. 부하가 조성철에게 말했다.
“형님. 저 새끼가 우리 보고 쥐새끼라고 하는데요?”
“설마 나한테 했겠냐? 너네에게 했겠지. 근데 저 새끼 진짜 뭐지? 우리가 무섭지도 않나?”
“장난감 보고 실실 웃고 혼자 웅얼거리는 걸 보면, 그냥 미친놈 같은데요?”
“그럼 좀 패라. 진짜 미쳤는지 보게.”
선우현이 말했다.
“내부에도 무장 병력 넷이 있다.”
- 여기서는 건물 내부를 볼 수 없습니다. 상황 정보가 필요합니다.
“민간인 네 명이 놈들에게 잡혀 있어.”
- 해결 가능한 상황입니까?
“밖에 있던 놈의 전투력은 너도 봤잖아. 이놈들도 비슷하겠지.”
- 약하겠군요.
부하 중 하나가 단검을 빙빙 돌리며 선우현에게 걸어왔다.
“야. 또라이. 너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냐? 우리가 누군지 모르겠어?”
선우현이 부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부하가 칼끝으로 선우현의 가슴을 쿡 찌르려 했다.
“너 엿 된 거라고. 오늘 여기서 죽….”
선우현이 적의 오른팔을 덥석 잡았다.
당황한 부하가 급히 팔을 빼려고 했다.
“이 새끼가….”
빠지지 않았다. 손이 마치 기계에 물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 어?”
적이 급히 왼손으로 선우현의 팔을 후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자기 팔이 꺾이며 몸이 옆으로 휙 젖혀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옆으로 휙 돌아갔다. 벽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벽이 됐다. 그 벽이 빠른 속도로 밀려났다.
벽이 밀려난 게 아니다. 부하의 몸이 옆으로 날아가는 중이다.
선우현이 적의 팔을 잡아 옆으로 던졌다. 마치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라도 던진 것처럼 적의 몸이 휙 젖혀지며 옆으로 날아갔다.
땅값이 싼 산속에 있는 식당이라 실내 공간은 꽤 넓은 편이었다. 부하의 몸뚱이가 그 공간을 가로질러 식당 반대편까지 날아가, 나무로 만든 탁자에 처박혔다.
마치 통나무로 후려치는 듯한 충격이 부하의 등을 강타했다.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케에엑!”
부하의 몸은 박살 난 탁자 한복판에 처박혔다. 허리가 뒤로 꺾여 있었다.
선우현이 부서진 탁자를 보며 말했다.
“나무가 약하네.”
조성철은 선우현이 부하를 던질 때 식당 주인을 보고 있었다. 그는 탁자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야. 좀 조용히 패…. 어? 헉!”
다른 부하 두 놈은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눈으로 보긴 했지만, 동료가 날아갈 때의 모습이 그들의 상식을 조금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박힌 동료와 선우현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단검을 겨누었다.
“이 새끼가!”
“어떻게 저기까지….”
조성철도 당황했다.
‘언제 당한 거야? 저기까지는 어떻게 던진 거고?’
부하가 꽤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그런데 어떻게 날아가는지를 보지 못했다.
‘유도인가? 무슨 요령으로 던진 거지?’
요령을 썼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의 상식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조성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선우현의 모습을 확인했다.
‘옷 속에 방탄조끼나 방검복을 입지는 않았어.’
그건 옷에 비치는 몸의 굴곡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선우현은 경고 없이 그의 부하를 날렸다.
‘경찰은 아닌 것 같고.’
경찰은 사람을 저렇게 구겨놓지 않는다.
조성철이 문을 힐끗 보았다. 밖을 지키라고 내보낸 부하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선우현을 노려보며 물었다.
“어이. 거기. 밖에도 한 놈 있을 텐데?”
“있었지.”
그놈은 식당 밖 땅바닥에 뻗어 있다.
조성철이 다시 문을 힐끗 보았다. 누가 더 들어올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너 말이야.”
그가 선우현을 보며 씩 웃었다.
“혼자 왔구나?”
조성철이 단검의 칼날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실력이 제법이다? 내가 그동안 담근 놈 중에도 실력이 제법인 놈들이 있어서 잘 알지. 그런데 그놈들이 어떻게 됐을까? 너라고 다를까? 응?”
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안다면 혼자 오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 오늘 여기를 들어오다니. 넌 참 운이 나쁜 놈이야.”
“뭔 개소리야?”
“기회를 주마. 꿇어라. 아니면 이런 산에 무덤도 없이 묻히게 될 거다. 그게 제일 깔끔하거든.”
선우현이 조성철을 보며 작게 말했다.
“저놈이 방금 나를 죽이겠다고 한 거지?”
무전으로 소리만 들은 김수선이 대답했다.
- 허풍일 수도 있습니다.
“저놈 표정 보면 진담이야. 처리해야겠어.”
- 어쩌시게요?
“산에 묻는 게 제일 깔끔하다잖아.”
- 안됩니다.
“위험은 미리 제거해야지.”
- 농담이시죠?
“미리 제거하는 게?”
- 위험하다는 거요.
“음…. 아! 옛날에 현지 협력자가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있었잖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지금은 21세기입니다만?
“요즘도 많이들 그러더라.”
- 그건 다른 나라 이야기고요. 거기는 한국입니다. 목격자가 네 명이나 있습니다. 민간인들까지 제거할 게 아니라면 자제하시죠.
선우현이 인질들을 보았다. 다들 겁먹은 얼굴이었다.
“아. 그렇지. 여기엔 지금 목격자가 있지.”
그가 다시 무장강도들을 보며 말했다.
“운 좋은 놈들이네.”
- 그러게 말입니다.
선우현이 조성철에게 말했다.
“야. 살려는 줄게.”
조성철의 얼굴이 걸레처럼 구겨졌다.
“이 새끼가 미쳤구나?”
조성철이 화는 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덤비지는 않았다.
식당 내부에서 순식간에 한 놈을 기절시킨 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부하가 식당 구석까지 날아가 처박힌 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요령이 좋아도 보통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망을 보라고 한 새끼는….’
문밖에 배치한 부하가 당한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당했는지 싸우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조성철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그가 갑자기 부하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양옆에서 쳐!”
부하 둘이 반사적으로 선우현의 좌우로 튀어나갔다.
산골 식당은 꽤 넓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운동장만큼 넓은 건 아니다. 몇 걸음만 뛰면 선우현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조성철의 계획은 간단했다.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하면 한쪽밖에 막을 수 없어!’
부하들의 양면 공격은 사전에 연습했던 것이라 동작이 딱딱 맞았다. 게다가 선우현의 뒤에는 벽과 선반이 있어서 피할 공간이 없다.
조성철이 자세를 슬쩍 낮췄다.
‘설사 버틴다 해도, 셋이 뒤엉킬 때 내가….’
조성철보다 선우현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가만히 서서 적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았다. 왼쪽으로 접근하는 놈을 마중 나갔다.
놈들은 그 경우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었다. 왼쪽으로 접근하던 놈이 즉시 선우현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죽….”
선우현이 적의 오른팔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느리네.”
“억?”
선우현이 적의 팔을 위로 번쩍 들며 크게 휘둘렀다.
적의 시야가 뒤집혔다. 세상이 빠르게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천장이 바닥으로 변했다.
적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적의 팔과 어깨가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꺾이다 뼈가 뚝 부러졌다.
적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이 시골 식당은 천장이 상당히 높았다. 선우현이 적을 공중에 높이 띄웠다가 개구리처럼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이미 팔이 부러진 적의 등에 바위가 꽂히는 듯한 충격이 들어갔다.
“케에엑!”
오른쪽에서 달려오던 놈은 처음에는 당황했다. 동료가 너무 간단히, 너무 큰 동작으로 당했다.
그런데 그의 눈에 선우현의 등이 보였다. 어차피 그는 동료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잡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선우현의 등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선우현이 뒤로 휙 돌아서며 적의 손을 붙잡혔다.
칼날은 선우현의 배 근처까지 가 있었다. 그런데 배에 닿지는 않았다. 적의 손이 마치 기계에 물린 것처럼 단단히 붙잡혔다.
적이 칼을 앞으로 밀려고 힘을 썼다.
“이익!”
선우현이 적의 팔을 옆으로 휙 당겼다.
적의 눈에 자신의 팔이 반대방향으로 꺾이는 게 보였다. 그렇게 꺾이려면 팔이 빠지거나 부러져야 한다.
앞으로 밀려고 힘을 쓰던 중이라 버틸 수도 없었다. 적은 옆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팔은 이미 부러졌다. 이젠 벽에 충돌한 어깨도 박살 났다.
“끄아아악!”
적이 비명을 지르며 벽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 상태로 움찔거리다 기절했다.
조성철은 부하들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왼쪽을 노리고 들어간 부하와 오른쪽을 노린 부하 모두 팔이 수수깡처럼 꺾인 채로 기절했다. 양쪽에서 동시에 들어간 공격인데도 너무 빨리 박살 났다.
조성철은 확실히 깨달았다. 상대는 고수다. 공격할 때 망설임도 없다.
“엿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