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21화
[지금 빨리 선택을 해야 한다.]
결국 데몬은 자신의 꾀에 스스로가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안 돼! 절대 그럴 수 없어."
자신의 손으로 동료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어야 한다니 쉽사리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겠나?]
금강철인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스스로가 죽음으로 가는 길목을 택했는데도 한 치의 후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죽었고 그에 따른 최대의 효과를 내보이기 위함이었다.
"안 돼요! 절대로 우린 그럴 수 없......."
태욱은 몸서리를 치는 영리를 가로막았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을 해야 돼."
"안 돼. 누구 맘대로 그를 죽인다는 거야?"
은비는 태욱과 데몬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태욱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막아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절레절레.
태욱은 고개를 내젓고서는 앞으로 한 발 더 나섰다.
"우리의 동료라고?"
"아니야.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봐. 녀석은 금강철인이 아니야, 우릴 위기로 만들었던 데몬이라고."
"아니야, 아니야."
은비는 속으로 되뇌이듯 주저리주저리 내뱉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그가 데몬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강철인의 목소리가 그녀를 망설이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돼. 그것을 금강철인이 바라고 있고."
"제발. 우리 손으로 그럴 수 없어."
은비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록 흘러나왔다.
선택은 하나밖에 않았다.
그 선택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동료의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마냥 선택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으, 으윽, 빨리.......]
다급한 금강철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었다.
아마 지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최대한 힘을 쥐어짜면서 현 상황을 만들었다.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데몬을 언제 다시 상대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내, 내 손으로 못해."
결국 은비는 고개를 숙인 채 옆으로 비켜 나왔다.
태욱은 담담하게 데몬의 앞으로 다가섰다.
후웅.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는지, 태욱을 향한 어설픈 공격이 이어졌다.
'점점 정신을 차리고 있는 모양이군.'
가만히 서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한데, 태욱이 앞으로 다가오니 절로 공격을 한 것은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인지 육체가 반사적으로 공격한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은 존재했다.
이번 기회에 태욱은 데몬을 죽여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죽어라."
태욱은 실라카의 검을 높게 치켜세웠다.
"하하하합!"
강한 함성과 함께 실라카의 검은 데몬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 * *
데몬은 갑자기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입으로 대화를 할 수 없는 몸이 됐지만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마 녀석의 간계인가?"
데몬은 자신의 신체에 이상함을 느끼곤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금강철인이라는 녀석을 흡수한 직후부터 시작됐다.
조용한 공간에 사방에 단단한 벽을 펼쳐 놓고 평생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 그곳을 더욱 꽁꽁 싸맸다.
도망간 미꾸라지 같은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녀석의 뇌 속에 가득한 정보는 결국 데몬의 품으로 들어오게 됐고 그에 따른 추격이 너무나 수월했다.
하지만, 약간의 방심은 큰 위기를 만들었다.
육체와 정신이 잠깐 끊어지는 시기.
그것을 정확하게 노리고 녀석이 튀어나와 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일시적으로 육체의 통제력을 그대로 잃어버렸다.
쾅!
콰쾅!
주변에 반투명으로 둘러싸인 벽이 자신의 육체의 통제권을 자꾸 끊어 내고 있었다.
데몬은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당연히 자신의 육체는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사이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계략이군.'
씨익.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상대의 완벽하게 설계된 계획이었다.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빨리 이곳을 벗어나 주지.'
데몬은 사방으로 공격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데스 핸드!"
"겁화의 채찍!"
"다크 볼!"
"폭풍 난무!"
손끝에서 피어오른 스킬들은 그 꽃이 만개해 벽면을 거칠게 두드렸다.
쾅.
콰카카카캉.
콰쾅!
터터터터터텅.
휘리리릭 쾅!
순식간에 여러 가지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 경계는 살짝 일렁였다.
"꽤나 강한 보호막인데, 내가 이걸 뚫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때였다.
데몬의 냉소적인 목소리에 절로 금강철인이 반응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어디 감히 인간 따위가?"
데몬은 가소롭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내 힘을 빼앗고서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
당당한 태도의 금강철인이었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강한 신체가 좋은 전투력을 뿜어냈다.
하지만, 이곳은 오직 정신의 세계.
오히려 유리한 입장은 금강철인이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진법 내부에서 상대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유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극명한 힘의 차이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금강철인이라고 할지라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그것이 관건이었다.
금강철인은 지금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었다.
동료들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최대한 그의 호기심을 이끌어야 했다.
"그런가? 지금 나와 힘의 대결이라도 해 보자는 건가?"
[과연 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오직 데몬은 힘 앞에 모든 이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生)에 있어서 그렇지 않은 적은 없었다.
"네깟 녀석이 뭘......."
그때였다.
잠시 정신을 차린 데몬은 자신의 앞에 아주 보기 싫은 녀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젠장.'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녀석을 공격하려 했지만, 또다시 육체의 통제권은 잃어버렸다.
"네, 네 이놈!"
데몬은 굉장히 광분했다.
자신의 육체가 지금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었다.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늠름하게 자신의 급소를 내놓고 있는 상황.
재빨리 육체의 통제권을 뺏어 오지 못한다면 이대로 죽음이라는 길을 건너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데몬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데스 핸드!"
"겁화의 채찍!"
"다크 볼!"
"폭풍 난무!"
"파이어!"
"붐 스매시!"
연이어 공격 마법이 데몬의 손끝에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정신과 공간의 방. 그 벽을 뚫어 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마법을 펼쳐 내는 것이었다.
콰쾅.
콰카가가강.
연신 거센 폭발음을 내면서도 방의 벽은 부서질 듯 부서지지 않았다.
"X발, 부서져! 부서지라고!"
손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벽을 두드렸다.
콰득.
결국 데몬의 공격에 버티지 못한 벽은 차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 내가 이 상황을 끝내고 난 뒤에 보자고. 아예 소멸시켜 줄 테니까."
데몬은 지금의 자신의 상황을 만들어 낸 금강철인에게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해결할 시간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급소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얀빛이 단번에 쏟아지더니 이내 데몬은 시야를 되찾았다.
"커흑."
하지만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피 맛에 절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 이 녀...... 석....... 쿨럭."
입가에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정신의 방에서 눈을 뜬 데몬은 태욱의 일격을 결국 막아 내지 못한 것이었다.
이미 그가 눈을 떴을 때는 되돌릴 수 없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목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고, 벌써 여러 곳이 난도질당한 상황이었다.
피부 곳곳이 찢어진 상태에서 핏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고, 호흡이 가빠진 것을 보니 폐부에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
만약 데몬이 금강철인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면?
피해를 입은 즉시 막대한 회복력으로 자신의 몸을 재생했을 것이다.
시간을 벌고 여유롭게 전투를 벌여 제 컨디션을 되찾은 이후 다시 전투를 벌였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아니었다.
회복조차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피해를 중첩해 받았다.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에 조금씩 몸을 담그고 있었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젠...... 장!"
억지로 쥐어짜낸 숨을 마지막으로 그는 축 늘어져 버렸다.
회귀 전, 그때에도 데몬을 상대하기 무척이나 어려웠다.
결국 데몬을 죽이지 못했지만, 사지까지 몰고 갈 수 있던 것은 다른 헌터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라는 것이 있는가?'
태욱의 입장에서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데몬을 제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손끝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손으로 동료를 보냈는데, 그것이 아무리 대의를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살을 맞대고 지낸 동료를 보낸 것이었다.
감정이 메말라 있지 않는 이상 동요하지 않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었다.
싱그러운 바람이 그의 이마에 찾아왔다.
살랑살랑.
복잡했던 머릿속을 마치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설마? 금강철인?'
태욱은 하늘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이 마치 금강철인의 얼굴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태욱을 칭찬하는 것 같았다.
"잘했어. 잘했다고"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너무나 생생했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살짝 내려놓는 태욱이었다.
* * *
데몬을 처치하자 전장은 순식간에 헌터들의 유리함으로 바뀌었다.
피해를 입은 것은 오직 하나.
데몬의 에피타이저가 돼 버렸던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다른 나라에서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지 못해서 말썽을 부렸다.
원조 요청을 하는 국가는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원조를 갈 수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펼쳐진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낸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었다.
"우리도 이제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당장 원조를 보내 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부처 장관들은 외부로 눈을 돌리려는 대통령을 잡아끌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전달된 하나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태욱이었다.
"세계로 헌터들을 최대한 지원하세요, 그게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현재 내부도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부로 헌터들을 보내자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내국민이 안전해야 외부로 지원을 나갈 수 있는 것이고 도움을 주고 그에 따른 혜택을 받아올 수 있는 것이었다.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이 철저하게 박혀 있는 그에게 태욱의 발언은 조금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제가 부탁하는 것 하나를 들어 주시기로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 일은......."
"저와의 약속을 지켜 주신다고 생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