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7화
'독이라면 나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다.'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은비와 지원이 재빨리 사람들을 후퇴시켰다.
"모두 물러서세요!"
태욱이 가지고 있는 만불독침.
동료들은 그의 스킬을 믿었다.
태욱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만불독침이 어떤 독이든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 혹여나 사체 폭발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아 내기 위해 온몸을 던진 것이었다.
다급하게 외치는 동료들의 목소리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펑!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멀뚱멀뚱 피어오른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고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온전하게 팀원들의 행동이었다.
"연기를 마시지 않도록 주의하시고 모두 연기가 날아갈 때까지 자세를 낮추세요."
광활한 대지는 살랑바람이 지속적으로 불어왔다.
독무는 시간이 지나면 바람을 타고 자연스럽게 공중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때까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폭발 속에 갇혀 있던 태욱은 자신의 호흡기를 통해 순식간에 뻗어 오는 독무를 들이마셨다.
'강한 독성.'
지금까지 느꼈던 어떤 독보다 강했다.
심지어 독을 매개체로 사용했던 뱀파이어의 독성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런, 독에 대한 완벽한 내성이 생긴 줄 알았는데.'
태욱은 자신의 안일함을 탓했다.
만불독침.
독에 대한 상당한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모든 독에 대한 완벽한 내성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일만 가지의 독성.
아무리 독을 아는 자라고 할지라도 모든 독성을 알기는 힘들다.
물론 독이라는 물질을 지정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어떤 것이든 지속적인 노출에 의해 사망에 달하는 순간 그것을 독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안으로 밀어 넣는다.
흔하게 사람들이 니코틴이라고 부르는 물질은 소량으로 지속적으로 흡입했을 경우 강한 중독 현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것을 단번에 대량으로 흡입했을 경우 충분히 사망에 이른다는 것은 독성으로 분류하기 좋은 예였다.
수많은 물질들 가운데 일만 가지 안에 포함이 돼 있지 않은 경우.
만불독침인 패시브 상태에서도 피해를 충분히 입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1만이라는 숫자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종류별로 이름을 대며 하나씩 세어 나간다면 하루 동안 모든 종류를 소리 내어 읽어 낼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안일했다.'
태욱은 자신의 판단이 안일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자신의 희생으로 인해 주변에 피해를 적게 입을 수 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 해독하지 못한다면 독을 한 곳으로 몰아낸다.'
신체에 돌고 있는 독성을 태욱은 한 방향으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심장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 사이사이 흩어져 있는 피를 손끝으로 조금씩 밀어냈다.
모든 독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대로 움직이는 독성들이 태욱의 의지에 힘을 실어 줬다.
독은 독으로 제압한다.
1만 가지의 독성의 무궁무진한 조합.
그것이 이번에 다이치의 폭발로 합류된 독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심장 소리는 마치 귓가에서 심장박동의 울림이 생겨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시시때때로 느껴지는 고통은 그의 표정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정작 태욱의 뇌 속으로 뻗어 나가는 독성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독과 독.
두 개의 힘이 서로 태욱의 몸에서 충돌했다.
철썩.
동일한 힘으로 맞부딪힌 파도가 높은 일렁임을 선사하듯 두 개의 독은 서로 부딪혀 시너지 효과를 내뱉었다.
"쿨럭."
입안에는 비리다 못해 쓴 담즙이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붉은 선혈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검붉은색.
독성으로 인해 피 속에 있는 적혈구가 모두 죽어 붉은색을 내는 특성이 사라지자 검은색밖에 남지 않았다.
심지어, 코를 틀어막아야 될 정도로 심한 악취까지 풍겨 내고 있었다.
'이건 온전한 독이 아니다.'
태욱은 다이치가 뿜어낸 것이 온전하게 독만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다.
다이치의 독은 마치 이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태욱의 요소요소를 공격해 들어왔고 가까스로 태욱의 신체에 있는 독성들이 조합을 통해 막아 내고 있었다.
두 개의 커다란 힘의 충돌에 의한 부산물들이 태욱의 입을 통해 밖으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싸움으로 인한 노폐물들이 땀으로 배출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양이기 때문에 강제로 입을 통해서 배출이 됐다.
'크윽.'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독성에 의한 고통에 익숙한 태욱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전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의식이라도 잃었으면 하는 바람이 피어올랐지만, 그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만불독침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쥐고 있는 실라카의 검의 특성인 명경지수가 태욱의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출정을 보냈던 3명의 수하들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데몬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다.
"아직까지 승전보를 가져오지 못했느냐?"
그의 머릿속에는 승리라는 단어 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패배는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그때였다.
자신과 연결돼 있는 고리가 하나 끊겨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츄르가인가?'
곧이어 또 하나의 선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로콘? 어떤 녀석이 감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자신의 손으로 키운 수하들이었다.
그들의 단번에 두 명이나 쓰러져 나간다는 것은 그의 관념으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출정 준비를 한다!"
결국 데몬이 직접 움직이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그의 기세가 뒤바뀌었다.
휘우웅.
데몬의 출정을 반기는 듯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그리고 그의 주변의 공기는 마치 중압감을 표현하듯 무거워졌다.
자신의 소중한 부하를 두 명이나 잃었다는 것이 그를 직접 움직이게 만든 것이었다.
마왕군은 재빨리 출정 준비를 했다.
데몬과 수하들은 자신의 몸 하나만 움직이면 그만이었지만, 일반 마왕군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애병을 챙겨야 되고, 그에 따른 부속물들을 챙겨야 했다.
아직 병사들의 준비가 끝마쳐지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데몬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
저벅.
저벅.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마치 축지법이라도 사용하는 듯 기세 좋게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감히, 나의 소중한 아이들을......."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소중한 수하들의 목소리가 아직까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지만, 연결고리가 끊어진 이상 그 목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 쌓여 가는 분노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들을 자신의 의사 없이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낸 녀석들도 같은 방법을 만들어 주면 그만인 것이다.
* * *
몸속에서 싸워 나가는 다이치의 독은 어느 정도 제압이 됐다.
아직도 전신이 욱신거리기는 하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며 신음을 내뱉었던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생각대로 신체를 통제할 수 있었다.
'큰일날 뻔했다.'
만약 그가 다이치의 사체를 감싸 안으며 폭발하지 않았다면 무수히 많은 사람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절로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괜찮아?"
독무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니, 저 멀리에서 은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욱에게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은비였다.
막상 영리가 다이치의 공격을 막아 줬다고 하더라도 그가 주위를 물리고 마지막 공격을 온몸으로 버텨 냈기 때문에 지금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으....... 으......."
목소리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는지, 성대를 긁어내며 거친 쇳소리가 튀어나오자 태욱은 손을 들었다.
번쩍.
자신은 괜찮다는 의사 표현을 하기 위해서였다.
태욱의 손이 위로 올라오자 은비는 태욱에게로 접근하려 발을 옮겼다.
"괜찮으면......."
하지만, 태욱의 재빠른 제지가 이어졌다.
접근하려고 하는 그녀에게 손바닥을 펴 보이며 고개를 흔든 것이다.
'아직까지 독성이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
피부를 통해 끊임없이 독성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 부를 수가 없었다.
스스로 해결을 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를 도와줄 사람은 영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욱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데 영리는 당연히 독성을 이겨 낼 수 없을 것이다.
괜히 동료들의 전투력을 약화시킬 필요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수하가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데몬이 직접 이곳에 행차를 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전투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일은 모두 지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 * *
한국 인천공항.
CIA 요원인 하이든은 관광을 목적으로 둔 비자를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임무를 다한다.'
그가 국가로부터 받은 명령은 바로 드워프를 본국으로 귀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귀환이지, 납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 대결에서 좋은 광물은 힘의 재분배로 이뤄질 수 있었다.
드워프는 그만큼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마르지 않는 샘.
매장량을 확인도 할 수 없는 광맥.
그것이 드워프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드워프들의 무기는 인간의 장인이 만들어 낸 것보다 몆 배는 기본이고 최대 몆 백 배에 달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무구를 만들어 낸다.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실제로 드워프제 무기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것이 월등한 무기의 능력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발표를 하면, 자신의 효용성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상관없이 무기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큰 전투력을 뿜어낸다면 이는 헌터들의 등급을 나누는 것에 큰 타격이 전해진다.
'드워프를 꼭 조국으로 보내야 돼.'
굳게 닫힌 그의 입에서는 단호한 신념이 엿보였다.
"성함이, 미스터 리버스? 어떻게 오셨어요?"
"한국에 관광을 왔습니다. 아주 안전한 나라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입국 심사 직원은 미소를 띠고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 여행을 오는 대다수의 외국인은 나라의 치안을 여행 이유로 꼽는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처럼 치안이 좋은 곳은 찾기 힘들었다.
마치 나라의 칭찬이 자신에 대한 칭찬인 것 같아 입국 심사 직원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나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아마 1주일 정도 머물 것 같습니다."
하이든은 막힘없이 그녀와 대화를 나눴고 입국 심사는 별 이상 없이 끝이 났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겉으로는 표정이 무척이나 밝았으나, 그의 마음은 상당히 조리고 있었다.
부담감.
그것이 하이든의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후읍 후우."
숨을 한 번 고른 이후 하이든은 지정된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