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3화
금강철인이 움직이면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일지 보지 않고도 예상을 할 수 있을 때쯤, 하나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기술을 주고받는 것인가?'
상대의 동작마다 받아치는 행동이 있었고 그것을 금강철인과 공중에 있는 하피가 서로 번갈아 가며 하고 있었다.
공격이라는 것은 뉘앙스로 느낄 수 있었지만, 어떤 공격이 날아온 것인지 정확하게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패턴은 눈에 들어오는데, 뭔가 알 수 없단 말이야.'
실마리를 잡아가는 듯했지만, 또다시 멀어졌다.
하지만, 누구보다 금강철인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 * *
금강철인은 상당히 수준이 높은 로콘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수준이 높다.'
분명 자신이 확인하고자 하는 바가 딱 들어맞았기 때문에 태욱에게 자신이 담당하겠다고 말했다.
금강철인이 로콘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첫 느낀 기분은 확실히 진법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스승님의 진법과 비슷하다.'
본래 진법은 파훼하기보다는 걸려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회피법이었다.
상대방이 들어올 곳을 예상하고 인위적으로 마나의 흐름을 바꾸는 것.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피 말려 죽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투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금강철인의 진법은 상대방을 가두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상당히 도발적이야.'
진법을 통해 정신을 어지럽히고 스스로가 힘을 빼게 만드는 것이 금강철인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법에서 물리력을 행사해 상대를 한다는 점이 크게 달랐다.
두 진법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속도에 따라 다르게 진화되어 왔다.
금강철인과 같이 상대방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시간이 천천히 흘러감에 따라 상대방을 말려죽이는 것을 기본 모토로 지닌다고 하면, 로콘의 진법은 상대방에게 직접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공격력을 가진 진법인 만큼 활발하게 움직이는 유동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동성은 진법에게 있어서 큰 약점이었다.
항상 제 자리에서 안정화 되어 있어야 효과를 내는 것이 진법이 가진 기본 틀이다.
그것을 흔드는 방법이 안정적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공격적이고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그만큼 진법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이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금강철인은 금방이라도 그녀의 진법으로 발을 내딛을 뻔한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이대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로콘의 진법에 비해 공격 성향이 낮은 자신의 진법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면 제대로 된 전투가 힘들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 로콘의 매혹 능력이 더욱 상승한다면 이 힘을 유지하는 것조차 자신이 없었다.
'온전하게 짓누를 수 없다면 스스로가 핵 속으로 들어간다.'
태풍의 주변은 강한 비바람이 몰아친다.
핵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핵 내부는 너무나 평온했다.
비바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하늘은 너무나 깨끗해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전달하는 것이다.
금강철인은 스스로 발을 옮겨 그 자리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스스로 핵 속에 들어갔다가 탈출을 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내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그것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마땅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으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선택하겠다는 그의 다짐이었다.
'한 발.'
저벅.
'또 한 발.'
저벅.
한 걸음씩 천천히 로콘과의 거리를 줄여 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깊게 빠져들어가면 안 된다.'
적당히 늪지의 주변을 살피듯 살금살금.
가장 깊은 곳을 향해 조금씩 걸어 들어갔다.
예상이 가능한 선을 따라 조금씩 거리를 좁혀 들어가자, 로콘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꺄아!"
그녀의 비명 소리가 금강철인의 귓바퀴를 타고 뇌리에 꽂히기 시작했다.
'이건 혼란을 주기 위함이야. 그녀의 행동에 집중해.'
소리를 통해 혼란을 야기하는 로콘이었다.
그녀의 의사를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금강철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 * *
로콘은 상대를 보자마자 코웃음을 지었다.
별다른 힘이 없어 보이는 녀석이 직접 자신을 상대한다니 절로 웃음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감히 날 네 녀석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츄르가를 상대했던 이상한 녀석이 자신을 상대하면 모를까?
아무런 힘도 능력도 보이지 않는 녀석이 직접 나서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감흥을 잃게 됐다.
'내 힘의 10%만 써도 아무런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로콘이 상대를 낮춰 봤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짧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뭐? 뭐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법을 파훼하고 있었다.
주변으로 펼쳐 놓은 진법을 활용해 그를 늪지대로 조금씩 끌어들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금강철인은 정확하게 대처를 했다.
자신의 고유 스킬인 유혹을 사용해 진법의 끝자락에 세웠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유혹을 이용해 상대방을 컨트롤하는 시간은 고작 0.5초.
시간이 긴 다른 하피들의 비해 그녀가 뒤쳐졌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태생적인 한계.
그녀는 고유 특성이 너무나 빈약한 것이다.
다른 하피 중에는 2초 심지어 5초 이상 가능한 녀석들도 있었다.
스스로의 이념에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때, 자동으로 풀리는 효과가 있었지만, 전투에서의 5초의 정지 상태는 상대방을 제압하기 가장 좋은 능력이었다.
'왜 들어오지 않는 건데?'
딱 한 발자국.
발만 내디디면 깊은 호수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던 기회가 여러 차례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는 함정에 빠져들지 않고 있었다.
'진법의 상당한 조예가 있는 편인가?'
손에 쥔 미꾸라지가 약삭빠르게 빠져나가듯 행동 하나하나에 빠져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능숙해 보였다.
'진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다.'
그런 그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유도해 놓은 진법으로 스스로 한 걸음 한걸음 옮겨 가고 있는 것이었다.
먹잇감이 스스로 함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마다 할 로콘이 아니었다.
'그래 넌 여기 들어오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아마 빠져나간다고 하면 그건 네 뼈 무더기밖에 없을 것이다.'
유유히 걸어 들어오는 금강철인의 모습에 로콘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 * *
진법에 발을 들이밀자, 자연스럽게 주위의 환경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따뜻한 봄날의 햇볕이 내리쬐는 호숫가.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진법이다.'
결국 태풍의 눈으로 들어온 금강철인이었다.
핵 속으로 들어오면 분명 파훼법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오산이 만들어 낸 엄청난 일이었다.
'틈이 보이지 않아.'
천천히 주변 환경을 둘러봐도 진법의 틈새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이 내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군.'
금강철인이 나선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스승님의 진법 완성.
금강철인은 그때를 떠올렸다.
* * *
"하아, 배고파."
주린 배를 이끌고 숲속을 헤매고 있었지만, 무언가 허기짐을 때울 수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먹을 게 어디 없을까?"
온통 먹을 것에 정신이 팔린 그는 주위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평소에는 하나라도 나올 법한 식재료들이 오늘따라 눈에 띄지 않았다.
"멧돼지가 다 파헤쳐 먹었나?"
가끔 보이던 약초와 버섯들이 모두 파헤쳐진 흔적을 남겨 두고 있었기에 어린아이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배가 부르면 뭐라도 할 텐데."
더 이상 걸어 다닐 힘까지 떨어진 아이는 제자리에 그대로 뻗어 버렸다.
허기짐에 자꾸 헛것이 보이고 머리도 핑하고 어지러운 것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생각했다.
'다음 생에는 먹을 것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아주 작은 희망이었다.
그때였다.
저벅.
저벅.
저 멀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헛소리까지 들리는 건가?'
이런 깊은 산속에 자신 말고 더 들어올 사람이라곤 없었다.
먹을 것을 찾아 이곳에 왔지만, 자신도 이렇게까지 굶주리지 않았으면 깊은 산속에 들어올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말이라도 해 보는 것이 좋겠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아이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 먹을 것 좀 주세요."
어린아이의 간절한 외침이 그에게 들리지 않았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제발, 먹을 것 좀 주세요."
재차 이어진 아이의 말에 시선이 느껴졌다.
'진짜, 사람, 사람이었어?'
아이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 *
탈진 정도가 심했던 아이가 기절을 하고 정신을 차린 곳은 한 초가집 방 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미음이 사발에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먹을 거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미음에 손을 뻗었다.
먹고 죽더라도 이것을 꼭 자신의 뱃속으로 집어넣어야겠다는 생존 본능이 시킨 행동이었다.
와구, 와구.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만, 마치 금방이라도 그것을 뺏어 먹을 사람이 쫒아오는 듯 보였다.
미음을 한 그릇 다 먹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아이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먹었느냐?"
걸걸하고 사나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따뜻함이 묻어났다.
"가, 감사합니다."
자신을 살려 준 장본인임을 알게 된 금강철인은 재빨리 감사 인사를 건넸다.
어릴 때부터 이런 상황에 많이 처했던 금강철인은 스스로의 생존법을 익혔다.
항상 표현을 하라는 것.
생각보다 어른이라는 족속은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한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것이 말이 됐든 금전이 됐든 노동이 됐든 표현받기를 바랬다.
"다 먹었으니, 이제 내려가라."
하지만, 이번에 만난 어른은 그저 자신의 먹을 것을 내어 주고서는 내려가라는 말을 남겼다.
고작 감사 인사 한 번에 만족을 한 것이다.
'내가 알던 어른이 아니다.'
어린 금강철인은 경계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이내 등을 돌려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어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내가 모르는 일을 벌이고 있어, 혹시 미음에 무언가를 타지 않았을까?'
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했다.
"다음에는 이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마라. 내가 아니었으면 넌 꼼짝 없이 죽은 목숨이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것이 금강철인과 스승의 첫 만남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지면 금강철인은 그곳을 찾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직전 스승이 그를 찾아 음식을 내어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진법으로 주위를 감싸고 있었기에 금강철인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